충신교회 박종순목사
감사로 제사 드리는 사람들
시편 50:16-23 /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목전에 차례로 베풀리라 하시는도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 세익스피어는 "불테면 불어라 겨울 바람아, 눈보라와 섞어치니 사정도 없다만은 인생의 감사치 않는 마음보다 모질지는 않구나"라고 했습니다. 헬라의 법학자였던 라이피콥스는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을 벌하는 법을 따로 세우지 않는 까닭은 감사할 줄 모르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벌하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천륜이고 인륜입니다. 신앙인이건 신앙인이 아니건 간에 감사가 없는 사람은 겨울바람보다 모질고 눈보라보다 더 삭막한 것입니다. 감사는 반드시 해야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보다는 감사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에 비해 감사할 조건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본질은 하나님께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시편 50편은 그 당시 유명한 시인이자 음악가였던 아삽이 쓴 시입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찾게 됩니다.
1. 악인의 죄에 대한 책망입니다. 16-21절을 보면 크게 세가지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 교훈을 미워하는 죄입니다. 17절을 보면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라고 했습니다. 교훈을 미워한다는 것은 교훈하신 분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을 뒤로 던진다는 것은 말씀과 교훈을 헌신짝 버리듯 던져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뒤로 던지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새로 부임한 사단장이 예하 연대를 순시하며 각 연대 상황을 보고 받고 있었습니다. 훈련상황과 내무반과 병사들의 사기 등을 묻고 보고 받는 자리에서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 지시했습니다. 사단장의 지시가 끝나자 듣고 있던 연대장이 성큼 일어서더니 "그건 안됩니다. 그런 지시가 어디 있습니까? 우린 그런 지시나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라며 대들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이런 일은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것은 지휘관에 대한 불복종이며 군기위반입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하거나 거역하거나 불복종할 권리가 없습니다. 다만 복종이 있을뿐입니다.
2) 윤리적 죄입니다. 18절을 보면 "도적을 본즉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라고 했습니다. 악인이 짓는 두번째 죄는 악과 다협하는 것입니다. 도적과 연합하고 음란한 여자와 한통속이 되어 그들의 죄와 타협하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겐 두 길이 있습니다. 악을 따라 멸망으로 가는 길이 있는가 하면 주님을 따라 영생으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악한 것은 멀리하고 모양도 버리고 따라 가지 않아야 주님을 따라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과 만나고 사귀어야 합니다.
3) 혀를 놀리는 죄입니다. 19-20절을 보면 "네 입을 악에게 주고 네 혀로 궤사를 지으며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미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내 입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도구로 쓰시도록해야 합니다. 내 혀가 형제를 헐뜻고 비난하고 모함하는데 사용되면 안됩니다.
야고보는 "혀를 재갈 물리라"고 했습니다. 흉기에 찔린 상처는 쉽게 치료가 되지만 말에 찔린 상처는 치료도 어렵고 성형도 어렵습니다. 혀를 잘못 놀리는 것은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해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인간은 언어를 구사하는 존재입니다. 새끼를 낳고 암수가 어울려 사는 피조물 가운데 말을 하는 존재는 인간뿐입니다. 그만큼 말은 특별한 은총이며 특권인 것입니다.
말할 때 우리가 조심할 것 세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말이 많으면 안됩니다. 말이 많으면 쓸데 없는 말이 석이게 되고 남의 말이 끼게 됩니다. 그리고 말이 많으면 그와 반비례로 쓸 말이 적어집니다. 삼사일언. 세번 생각하고 한번 말하는 자기 조절이 필요합니다. 둘은 말이 빠르면 안됩니다. 심사숙고란 말이 있습니다. 그 뜻은 깊이 생각하고 살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후사정과 앞뒤 형편을 살펴보지도 않고 들은 대로 본대로 그것도 빠른 속도로 옮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은 발도 없으면서 천리길이나 만리길을 달려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 옮기는 속도를 늦춰야 합니다. 아무말이나 여과없이 다 옮기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어떤 여자가 길가다 멈춰 서서 눈을 부비며 눈을 매만지고 눈물을 닦아 내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때 한 동네 사는 다른 여자가 지나다가 그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왜 그러고 서 있수" "아녜요. 그냥 눈에 뭐가 들어가서 그래요..." 그여 인은 동네로 들어가 자기가 길에서 본 것을 얘기 있습니다. "내가 길에서 오다 보니까 아무개 마누라가 길바닥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울고 서 있는데 보나마나 소박맞고 친정으로 가는 길이더라"고. 이 소문이 하루만에 온 동네 여자들 사이에 퍼졌습니다. "안됐다고 혀를 차며 동정하는 사람, 그럴줄 알았다며 비꼬는 사람, 그러게 여자 운명은 두레박 팔자라며 팔자로 돌리는 사람, 얼굴만 예쁘면 무슨 소용이람, 남편사랑 받는게 중요하지. 라며 비아냥 대는 사람... " 그런데 그녀는 그날 남편이 점심 같이 먹고 쇼핑가자며 나오라고 해서 택시 타러 나가다 눈에 먼지가 들어가 닦아내고 있던 터였습니다.
천천히 말해야 합니다. 천천히 옮겨야 합니다. 천천히 생각하고 전해야 합니다.
셋은 말이 거칠고 독하면 안됩니다. 위아래도 없이 말을 놓고 반말 지꺼리를 내�는 사람도 있고 음담패설이 아니면 말을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남을 비난하고 헐뜯고 공격하는 말만 골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에게 상처주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해전 이야기 입니다. 교회 사무실에서 일할 여자 직원을 한 사람 채용하기로 하고 교계 주간지에 광고를 낸 일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나오고 전문학교를 나오고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여러 사람이 이력서를 내고 응해왔습니다. 실무자들이 서류심사와 면접 후 최종적으로 두 사람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담임목사인 제가 그 둘을 면접한 후 한 사람을 뽑게 되었습니다. 둘 다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 저것 묻다가 출석하는 교회를 묻고 담임목사님 이름을 묻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누구신가요"라고 묻자 한 사람은 "홍길동인데요"라고 대답했고 한 사람은 "홍자 길자 동자신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두 번째 사람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정교육과 교양 그리고 말투가 다듬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글자 다음에 '자'자 세 개 붙이고 취직이 된 셈입니다. 우리말은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이 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22절을 보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을 잃어버립니까? 누가복음 2:4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살 되셨을 때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에 상경하여 유월절 절기를 지킨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사가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 그 당시 유월절 절기가 되면 각처에서 10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려 들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예루살렘은 북새통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모가 열두살 난 소년 예수를 잃어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다가 하루 뒤에야 그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예수를 잃어 버렸다는 것은 여러 가지를 시사 합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동행들과 함께 오고 있겠거니 하다가 잃어버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선택 받은 민족이니까 하나님이 자기네와 함께 하시리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는 동안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본문은 "네가 하나님을 잃어 버리면 하나님이 너를 찢으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잃어버린 죄로 이스라엘이 남왕국과 북왕국으로 찢어졌습니다. 우리역시 남과 북이 찢어진 채 반세기가 넘어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정치 때문이며 교회 때문이며 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결과는 찢기고 상처 받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을 찾읍시다. 하나님께로 돌아 갑시다.
3.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라고 했고 23절을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크게 두 가지 줄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감사함으로 드리는 제사였고 다른 하나는 죄 사함을 받기 위해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본문의 경우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감사의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피동적 행위가 아니라 능동적 행위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인디언 마을에 들어가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추장이 전도자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천지만물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라고 하자 추장은 감격하며 "저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라며 2달러를 내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외아들까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라고 하자 추장은 담요를 내 놓으며 "저도 내 것을 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33년간을 고생하며 걸어 다니며 전도하셨습니다"라고 하자 추장은 "주님께 제 말을 드리겠습니다"라며 자기가 타고 다니던 말을 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자 추장은 울먹이며 "나를 주님께 바치겠습니다"라며 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릴 최상의 예물이 있다면 그것은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네가 지 감사가 있습니다.
첫째, 말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하고 찬양하는 것이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감사입니다.
둘째, 몸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나의 손과 발과 입과 눈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몸이 감사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물질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보물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것처럼 물질로 섬기고 바치는 교회라야 관심이 모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물질로 섬길 때 나의 관심이 주님께로 집중되는 것입니다.
넷째, 마음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마음이 열려야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마음이 가야 몸도가고 물질도 그리고 관심도 가게 되는 것입니다. 늘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입과 몸과 물질로 감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IMF한파는 우리들에게서 '감사'를 앗아가 버렸습니다. 감사가 인색해졌고 섬김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20장 '다 감사 드리세'는 독일의 린카르트 목사가 지은 것입니다. 1618년에서 1648년에 이르는 30년 동안 계속된 30년 전쟁 당시 삭소니의 아이렌 부르크 지방을 오스트리아가 한 차례, 스웨덴이 두 차례 침략하여 1000여 채의 가옥 중 800여 채가 파괴되고 4500명이 사망하는 비극적 전쟁 속에서 지은 찬송이 '다 감사 드리세' 입니다.
'다 감사 드리세' 그렇습니다. 경제불황, 구조조정, 실직과 실업, 침체와 절망 속에서라도 다 감사 드립시다. 감사로 제사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보여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감사로 제사 드리며 하나님의 구원과 영원한 축복을 바라 봅시다. 감사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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