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신교회 박종순목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
1998. 11. 15
골로 새서 3:18-25 /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골로새서는 골로새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입니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 갇혀 있을 때 골로새교회를 세운 에바브라가 찾아와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보고하게 되었습니다. 그 보고를 듣고 문제 해결을 위해 보낸 편지가 골로새서인 것입니다.
골로새서는 크게 두가 지 문제를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리문제와 실천문제 입니다. 교리문제 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시며 이단은 어떤 것인가를 밝히고 있고 실천 문제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그 가운데서 3:18-4:1은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하며 부자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주종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 교훈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남편과 아내에게 주는 교훈
18절을 보면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고 했고 19절을 보면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IMF이후 이혼율이 4배로 불어났다고 합니다. 부부관계는 이상만으로 성립되는 것은 아닙니다. 제아무리 서로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길바닥에서 잠자고 헐벗고 굶으면서 20년이나 30년을 사랑하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내내 사랑하며 살아나온 부부가 환경변화나 생활고를 이유로 헤어진다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의 가족제도는 가부장의 권위를 인정하고 남편의 자리를 높이는 전통을 이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근자에 이르러 여성의 사회진출과 경제활동의 향상으로 가부장의 권위보다는 경제력 중심으로 권위의 축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자리를 잃은 남편보다는 돈 벌어 생계를 꾸려나가는 아내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그 영향력과 주도력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80년대에서 90년대 초 까지만 해도 매맞는 아내를 위한 상담소가 활동을 벌렸습니다만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매맞는 남편을 위한 상담소가 생겨났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성경을 뜯어고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바울은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에베소서 5:22에서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5:23에서 설명했습니다.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 시라"고 했고 5:24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 찌니라"고 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의 신체구조는 머리가 위에 있습니다. 머리가 발바닥에 있거나 횡경막 밑에 있다면 그것은 기형입니다. 교회가 예수 위에 서려고 하면 그것도 기형입니다. 예수보다 교회가 더 강해져서 예수를 교회제도와 예전 속에 가두고 교세를 과시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중세 천주교입니다.
성경대로라면 아내가 남편을 얕잡아보고 무시하고 멸시하는 것은 교회가 예수를 멸시하고 무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성경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2) 가정질서의 확립을 위해서 입니다. (3) 자녀의 바른 교육을 위해서 입니다.
여기 단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남편이 남편으로서 윤리와 도덕과 책임을 다했을 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남편들에게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말라"고 했습니다. 남편들에게는 두 가지 명령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라와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두 명령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아내를 괴롭힐 일이 없습니다. 반대로 사사건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아내를 괴롭히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사회에는 타락한 남편, 방종한 남편, 게으른 남편, 무능력한 남편 때문에 눈물 흘리고 한숨 쉬고 고통 당하는 아내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괴롭힌다는 것은 가시로 찌르는 것, 학대하는 것, 멸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베소 5:24을 보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몸 같이 할찌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 몸처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배고프면 아내도 배가 고프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 찬바람이 몸 속으로 스며들어 한기가 느껴지면 아내도 춥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내가 피곤해 쉬고 싶을 때면 아내도 쉬고 싶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내 몸을 생각하고 돌보고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18을 보면 "주안에서 마땅하니라"했습니다. 바로 이 구절 속에 부부 윤리의 근거가 있는 것입니다. 복종도, 사랑도, 순종도, 돌봄도 주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따뜻한 부부애가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경제적 시련이나 고통 때문에 사랑과 우정에 금이 가게 하지 맙시다. "여보 힘내세요, 함께 노력해요. 이 고비를 넘겨 보자구요"라는 아내의 위로, "여보 고생이 많구려 내 책임 다 못해 면목이 없구려, 우리 힘을 모아 봅시다"라는 남편의 용기와 격려로 헤쳐 나갑시다.
2. 부모와 자녀에게 주는 교훈 20절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고 21절을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어느날 [순]임금이 신하들에게 우물물을 길어 새끼줄로 엮어 만든 구럭(망태기)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신하들은 수군거리며 농담이거니 하고 물을 붓지 않았습니다. 본시 물은 통이나 병에 붓는 것이지 구럭에 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충성스런 한 신하는 "어찌 임금님의 명령을 거역하리요"라며 하루 종일 우물 물을 길어 부었습니다. 신하의 힘이 다 빠져갈 무렵 우물물은 바닥이 났습니다. 바닥난 우물을 들어다 보는 순간 그 바닥에는 누런 황금 덩이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놀란 신하는 그 금덩이를 임금께 갖다 드리고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더니 모든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여봐라 이금덩이는 순종한자의 것이니 그대가 갖도록 하라"며 상급으로 주었습니다.
바 울은 에베소 6:3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면 제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는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식은 성밖으로 끌고 나가 돌로 치는 계율이 있었습니다. 비둘기는 나뭇가지에 앉을 때 어미 비둘기 보다 3단 아래 가지에 앉고 까마귀는 늙은 어미 까마귀를 먹여 살린다고 합니다. 사람의 자식이라면 비둘기나 까마귀 보다는 그 생각과 태도가 나아야 합니다.
부모에게 주는 교훈도 있습니다.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찌니"라고 했고 에베소 6;4을 보면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청소년을 상대로 한 조사 기관에서 청소년들이 음란물 비디오를 어떻게 구입해서 보았는가를 조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은 "직접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보았다" "친구에게서 빌려 보았다"가 제일 많았고 중학생과 초등학생의 경우는 "엄마 아빠가 본 것을 몰래 훔쳐 보았다"가 제일 많았습니다. 이 경우는 부모가 어린 자녀들을 퇴폐와 성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됩니다. 담배 피우는 법, 술 마시는 법, 음란 비디오 보는 법, 소리지르고 싸우는 것, 불순종하고 따지는 것들은 곰곰 생각해 보면 다 부모가 가르쳤고 보여 준 것들 입니다. 내자식을 망친 것도 나이고, 내자식의 영혼을 고사 시키는 것도 바로 부모인 나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했습니다. 자녀에게 유산 물려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다. 부모로부터 기업을 물려받고 재산을 물려 받고 천문학적인 돈을 물려받은 재벌 2세치고 건전한 부부생활이나 가정 생활이나 윤리 생활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술, 도박, 여자 문제에 얽혀 있는가 하면 부부는 이혼, 별거, 냉전상태가 대부분이고 가정은 찬바람 부는 시베리야 벌판 처럼 삭막합니다.
돈이나 재산보다 더 위대한 것은 정신이고 신앙입니다. 예수와 함께 물려주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부모들에게 권합니다. 많든 적든 물려주지 마십시오. 아끼고 쓰다가 죽을 때 하나님과 교회에 바치고 갑시다. 자녀들에게 독립심을 키워주고 효도와 신앙을 가르쳐 줍시다. 돈이나 재산보다 더 위대한 유산을 넘겨 줍시다.
3. 종들에게 주는 교훈 22절을 보면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에베소 6:5-7을 보면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를 두려워 하여"라는 말씀과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라는 것입니다. 우린 이 구절 속에서 기독교인의 직장관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독교인은 그 직장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가장 부지런하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가장 능력 있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장 능력 있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으로 평가 받고 소문나야 합니다. 가장 게으르고 건방지고 말이 많고 비능률적이고 부정직하고 불성실한 사람으로 지탄 받으면 안됩니다.
골로새서 3:23-24은 우리에게 결정적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주께 하듯 하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부부도 부모 자식도 노사도 서로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곳이 어디든 무엇을 하든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옛날 중국의 관자라는 사람은 나라에는 사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예와 의와 염과 치라고 했습니다. 그 나라의 도덕 기준에는 예의와 염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끊어지면 나라가 전복하고 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동방 예의지국이 동방 몰예의 지국으로 전락해가고 있습니다. 염치도 수치도 모릅니다. 도덕적 지주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부모도 몰라보고 어른도 몰라보고 예의도 염치도 몰라봅니다. 우린 언제나 내가 주님 안에 있다는 것과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1884년에 태어난 스위스의 물리학자였던 아우구스트 피가르(Auguste Piccard)가 어떤 날 자신이 직접 만든 콘도르를 타고 성층권에 올라가 관측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셔널 지오그라픽 (National Geographie)지에 다음과 같은 그를 게재 했습니다. "내가 올라가 본 성층권은 거의 일정한 대기권을 말한다. 그곳에는 항상 태양이 빛나고 있었으며 우리를 괴�히는 지상의 먼지입자 따위도 없었다. 그곳엔 미쳐 날뛰는 폭풍우도 없었고 오직 고요만이 계속되고 있었다"고 성층권을 예수의 품, 하나님의 세계라고 가정해 봅시다. 예수의 품은 대기의 성층권보다 더 조용하고 평온합니다. 그곳은 허리케인도, 방사능도, 흙먼지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예수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부도 부자도 친구도 노사도 예수안에 있을 때 평온하고 행복합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부자와 모녀가 함께 노사가 함께 어우러져 주님을 섬길 때 그곳이 살맛 나고 일할 맛 나는 곳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감사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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