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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

[스크랩] 감사하는 사람들(골3:1-17)

충신교회 박종순목사

감사하는 사람들


1998. 10. 4
골로새서 3:15∼17 /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바울 사도가 쓴 편지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교리편과 실천편입니다. 교리편에서는 신론, 구원론, 교회론 등을 취급하고 있는가 하면 실천편에서는 사회생활, 가 정생활, 경제생활, 청지기 생활 등 그리스도인의 삶 전반에 걸쳐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신앙과 삶은 이중구조가 아니며 함께 취급되고 일치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골로새서의 경우 3:1∼4:6은 실천편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새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3:1∼17 에서는 새사람의 생활원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 원리 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위엣 것을 찾으라

3:1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뿌리는 밑으로 뻗어나갑니다만 모든 싹은 위를 향해 뻗어 올라갑니다. 그것이 생명의 특징 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 그래서 새사람이 된 사람이라면 위엣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상근박사는 왜 위엣 것을 바라보아야 하는가의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첫째, 자기의 참 생명이 위에 있기 때문이며,
둘째, 영화로운 보상이 그곳에 있으며,
셋째 내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가 거기 계시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피조물 가운데 하늘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기뻐하는 존재는 사람뿐입니다. 비 바람과 함께 남부지역을 강타한 태풍이 소멸된 다음날 저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티 하 나 얼 하나 없는 코발트빛 같은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마치 푸른 바다를 하늘에 옮겨 놓은 것 같은 장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간 원숭이나 돼지나 개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을 하늘을 예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만 위를 바라보는 존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 을 창조하실 때 적용하신 몇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목에다 금목걸이를 걸고 귀에다 귀걸이를 걸고 손가락에 보석 반지를 끼고 다닙니다만 본래 사람의 원자재는 흙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나무와 풀, 짐승과 곤충은 하나님의 생각대로 창조 하셨습니다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방법이 다릅니다.

셋째는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생기란, 숨, 바람, 기운, 성령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생 명체는 산소를 호흡해야 살 수 있습니다. 짐승도, 물고기도, 곤충도, 심지어 들풀도 산소를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산소호흡만으로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기운을 호흡해야 합 니다. 왜냐면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짐승이나 물고기가 받은 선물과 인간이 받은 선물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넷째는 위를 바라보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위엣 것을 찾으며, 땅엣 것을 생각 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땅의 것이란 현세적이며 물질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물질 이 불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땅의 것이 위엣 것을 가로막는다든지 방해가 된다든지 그것 때문에 신앙이 죽는다면 그것은 불행과 비극의 씨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6:33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 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땅의 것만 찾으면 위엣 것도 잃어버리고 땅의 것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위엣 것을 찾으면 땅의 것은 축복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2.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5절을 보면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체와 관련된 못된 것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음란, 부정, 사욕, 악한정욕, 탐심이라고 했습니다. 지나친 금욕주의도 신앙생활에 방해가 됩니다. 그러나 방종과 향락은 신앙의 원수이며 적입니다. 정 당하지 못한 남녀관계나 성관계가 음란이며 정욕입니다. 성은 아름다운 것입니다만 그것이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가 된다면 음행과 음란이 되는 것입니다.

분별없이 돈을 탐하고 남의 것을 가로채는 것을 사욕과 탐심이라고 합니다. 지금 우리시대 는 음란마귀가 성도덕과 가정윤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탐심마귀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닫 아 버렸습니다. 실컷 챙기고 먹고나서 들통이 나면 "뇌물이 아니다, 정치탄압이다, 표적수사 다, 나는 먹은 일없다"고 얼버무리고 맙니다. 그럴만한 사정이야 있겠지만 정치지도자들의 이런 가치관이 우리사회와 법치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눈앞이 아찔합니다.

에머슨은 "그에게 여자와 돈을 주어 보라. 그것을 극복할 때 그는 완전한 인격자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라세니아」라는 이름을 가진 꽃은 잎이 술병처럼 생겼습니다. 잎 끝 에 술병처럼 생긴 「사라세니아」잎술 끝에서 꿀을 분비합니다. 그리고 잎술 아래는 병처럼 생겨 물이 고여 있습니다. 곤충이 꿀을 먹으려고 덤볐다가 미끄러져 잎술 아래로 떨어지면 잎술은 닫히고 곤충은 「사라세니아」의 먹이가 되고 맙니다. 꿀맛 보려다 미끄러져 식물의 먹이가 되는 곤충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런 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순 간의 꿀맛보다는 영원한 행복을 추구해야 합니다.

어떤 젊은이가 슬기로운 왕을 찾아와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왕은 그에게 잔에 물을 가득 부은 후 그것을 주며 시내로 나가 한바퀴 돌 아오라고 했습니다. "만약 네가 한 방울이라도 물을 흘리게 되면 그 땐 네 뒤를 따라가는 군사가 네 목을 쳐버릴 것이다" 젊은이는 담을 흘리며 물 잔을 들고 거리를 한바퀴 돌아 왔 습니다. 물론 뒤에는 군사가 칼을 차고 뒤따랐고 그는 한 방울의 물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잘했다. 그래 다녀오는 도중에 뭘 좀 보거나 들은 얘기가 있느냐?" "전혀 없습니다. 폐하" "뭐라고?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다고? 거리에 널려 있는 거지들, 술집들, 상인들, 여자들, 노 름꾼들, 아이들을 보지 못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폐하. 그런 사람들을 보지도 못했고 그들의 소리를 듣지도 못했습니다." "허 허 왜 그랬을까?" "칼을 든 병사가 제목을 칠까봐 보고들을 겨를이 없었나이다" "옳도다. 이제 네가 비결을 터득했도다. 앞으로도 네가 하나님 께만 마음을 바치고 바라본다면 너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니라."...

옛날 얘기입니다만 뜻하는 바가 큽니다. 당장 목이 날아가고 지옥 갈텐데 어떻게 다른 여자 와 남자, 돈과 세상에 눈을 돌릴 수가 있겠습니까? 바울은 "네 지체를 죽이라"고 명령합니 다. 지체가 살면 영이 죽고, 지체가 죽으면 영도 살고 지체도 삽니다.

3. 사랑을 더하라

13절을 보면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 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라고 했고, 14절에서는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서로」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서 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 그렇습니다. 네가 용서해라가 아닙니다. 나도 너도 용서하는 것 입니다. 용서도 사랑도 함께 서로 피차 해야 합니다. 남을 용서하지 않고 앙심을 품으면 여 러 가지 손해가 뒤따릅니다.

첫째, 정신건강에 해롭습니다. 분노는 신경조직을 경직시키고 긴장시킵니다. 그래서 정상적 신체기능의 작동을 방해합니다. 둘째, 육체 건강에 해롭습니다. 앙심을 품고 화를 내면 혈압이 오르고 위벽이 긴장해서 위액 분비가 안됩니다. 그리고 암세포도 빠른 속도로 전이가 된다고 합니다. 셋째, 기도가 막힙니다. 기도가 막히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차단되고 그렇게 되면 신앙이 시 들고 메말라 죽고 맙니다.

그러나 용서는 모든 긴장 관계를 풀어 주고 막힌 통로를 열어 줍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 은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는 것입니다. 주경가 람제이(RamSey)는 "기독교의 모 든 윤리는 사랑 한마디로 설명된다"고 했습니다. 미국이 낳은 세계적인 정신분석학자 에릭 프롬(Erich Fromm)은 "미숙한 사랑은 내가 사랑 받고 있기에 나도 사랑한다는 원리를 따른 다. 그러나 성숙한 사랑은 내가 사랑하기에 나도 사랑을 받는다는 원리를 따른다"고 했습니 다. 미숙한 사랑은 사랑 받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고 성숙한 사랑은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 에 사랑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랑과 용서가 필요합니다. 부부가, 부모와 자녀가, 형제와 이웃 이, 교인과 교인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야할 때입니다. 이유는 세상이 점점 전투적으로 변 모하고 있으며 살벌한 황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더 합시다.

4. 감사하는 자가 되라

15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 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호랑이가 깊은 웅덩이에 빠져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불쌍히 여 겨 살려 주었습니다. 웅덩이에서 나온 호랑이가 입맛을 쩍쩍 다시더니 배고파 견딜 수 없노 라며 사람을 잡아먹겠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힌 사람은 너를 살려 준 나를 잡아먹겠다니 이 럴 수가 있느냐며 설득했지만 호랑이는 그건 지나간 일이고 지금은 너를 잡아먹어야 되겠다 며 덤벼 들었습니다. 다급해진 사람은 그러면 물어보고 결정 하자며 나무를 찾아갔습니다. 전후 사정을 다 듣고 난 나무는 잡아먹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람들이란 걸핏하면 나무를 찍고 자르고 불어 던지곤 했는데 나라고 사람편 들 수가 없다 는 것입니다. 소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한참 생각하더니 잡아 먹는 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밭 갈고 짐 나르고 험한 일 시키다가 걸핏하면 도살장으로 끌 고 가 때려죽이고 안창살 따로 떼고 안심살 따로 떼고, 갈비는 토막내고…, 마침 그 때 토끼 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토끼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토끼가 말만 들어선 잘 모르겠다며 당시 상황을 재연해 보자고 했습니다. 호랑이는 원위치인 웅덩이로 들어가고 사람은 웅덩이 가에서 있고…, 원위치로 돌아가자 토끼는 이대로가 좋겠다며 가버렸고 사람 역시 웅덩이에 침을 뱉고 가던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이 얘기 끝에는 "은혜를 배신하는 자는 호랑이 꼴이 되느니라"고 써 있었습니다.

감사의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감사의 보편성입니다. 편식이 나쁘고 투정이 나쁜 것처럼 선택적 감사는 참 감사가 아닙니다.

둘째 늘, 언제나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감사의 일상성입니다.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평안과 고통, 동과 서, 낮과 밤, 가리지 않고 늘 언제나 어디서나 감사해야 합니다.

셋째 계속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감사의 지속성입니다. 지난 일에 대해 단 한번 감사 를 표시하고 끝내는 것은 세상이나 사람을 대하는 감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감 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감사가 중단되면 감격이 중단되고 감격이 중단되면 신앙이 중단되 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은 감사의 고백 성입니다. 대상이 분명합니다. 사건도 사람도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신 일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죄에서 건지셨습니다. 고통과 시련과 위기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앞으 로 영원한 천국에 이르도록 인도해 주실 분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고 한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주님 오늘도 감사합니다.

출처 : 일만구역이상
글쓴이 : 충실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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