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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기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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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기들의 시와 산수화 江陵郊外 (48×69㎝) 梨花雨 흩뿌릴 제―계랑 배꽃 흩어뿌릴 때 울며 잡고 이별한 임 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지은이 : 계랑(桂娘). 여류시인. 부안의 기생. 성은 이(李) 본명은 향금(香今), 호는 매창(梅窓), 계생(桂生). 시조 및 한시 70여 수가 전하고 있다. 황진이와 비견될 만한 시인으로서 여성다운 정서를 노래한 우수한 시편이 많다. 참 고 : 梨花雨―비처럼 휘날리는 배꽃 乾川里 (46×68㎝) 送人 양양 기생 사랑을 나눈 시냇가에서 임을 보내고 외로이 잔을 들어 하소연할 때 피고 지는 저 꽃 내 뜻 모르니 오지 않는 임을 원망하게 하리 弄珠灘上魂欲消 獨把離懷寄酒樽 無限烟花不留意 忍敎芳草怨王孫 지은이 : 영양 기생 참 고 : 농주(弄珠)―연인과 함..
한천자님 풍경 수채화 작품 석양.노을 21.09.11 05:55
평생 특별대우 받던 천재, 나이 60에 첫 고과평가 '굴욕'.. 김홍도 마지막 그림 김정연 입력 2021. 07. 24. 09:01 천재 화가 김홍도는 죽기 직전, 쓸쓸한 말년을 그림으로 남겼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지난 21일부터 열리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에 걸린 조선시대 그림은 단 두 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국보 제 216호 ‘인왕제색도’ 옆에 걸린 그림은 조선 화가 김홍도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다. 추성부도는 김홍도(1745~1806)가 사망하기 직전인 1805년 11월에 그린 그림이다. 추성부도 이후에는 날짜가 명기된 작품이 없어, 사실상 김홍도의 마지막 작품으로 본다. 생기 넘치는 인왕제색도 옆에서 추성부도는 쓸쓸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이수경 연구관은 “그림 전체적으로 힘이 빠져있다. 말년에 아프고 가난했던 김홍도..
피재필 화백 작품
전통 회화기법 파괴한 렘브란트.. 빛이 어둠을 이기다 [김한들의 그림 아로새기기] - 입력 2021. 07. 03. 16:01 (61) '야경' 과학기술로 다시 보는 예술 네덜란드 라익스미술관 대표적 소장품 렘브란트 작품 '야경' 300년 만에 공개 첨단과학과 협업해 복원 온라인 전시 빛과 어둠 대비 통한 다양한 그림 선봬 진부한 종교화·역사화 대신에 새 시도 평생 남긴 100여점 자화상엔 삶 흔적 얼굴의 선·명암 어떻게 변하는지 실험 AI기술 활용 당시 그림 살려내 큰 감동 #팬데믹에 익숙해진 온라인을 통한 삶 최근 교육부는 2학기부터 대면수업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학 역시 실험과 실기 수업 우선으로 제자리를 찾기로 했다. 1년이 넘는 시간 만에 기다리던 결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결정을 듣자 예상만큼 기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도 모두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風俗畵家 이서진 畵伯 作品 녀들 / 43 x 43cm 이슬비 / 43 x 43cm 입춘대길 적선 시주 버들피리 제비집 물레방앗간
복수가 가져온 비애…‘퓨리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 [시리즈 칼럼] 고전회화는 사람의 내면에 무엇을 남기는가 2021년 6월 20일 삶에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가 받은 고통의 대가를 그들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하지만, 윌리엄-아돌프 부게로(William-Adolphe Bouguereau)의 작품 ‘퓨리스에게 쫓기는 오레스테스(Orestes Pursued by the Furies)’를 감상하다 보면 복수보다 용서가 왜 더 좋은 것인지, 시각적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의 복수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오레스테스는 트로이 전쟁 중에 그리스인들을 이끌었던 영웅 아가멤논 왕의 아들이었다. 아가멤논은 스파르타의 왕이었던 틴타레오스의 딸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결혼해 슬하에 세 딸과 아들 오레스테스를..
'가난'이 만든 명작 '가난'이 만든 명작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는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그레빌의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했던 가정 형편으로 지붕에 구멍이 뚫린 집에서 자랐고, 겨울에는 땔감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먹을 것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해 건강도 극도로 나빴다고 합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그림에 대한 열정이 있던 밀레는 20대가 된 후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우기 위해 파리로 떠났는데 그곳에서도 가난과 굶주림은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이 소식을 들었지만, 고향에 갈 여비가 없어 갈 수 없었습니다. 당시 밀레는 너무도 슬픈 마음에 삶을 마감하려 했던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며 점점 파리에서의 생활도 어려워지자 결국 그는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