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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

[스크랩] 나눠주는 사람들(전11:1-8)

충신교회 박종순목사

나눠 주는 사람들


1998.12. 13 전도서 11: 1-8 /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찌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구름에 비가 가득하면 땅에 쏟아지며 나무가 남으로나 북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 것을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휘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찌로다 그러나 캄캄한날이 많으리니 그 날을 생각할찌로다 장래 일은 다 헛되도다


본문 1-2 절을 보면 '너는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려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눠 줄찌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린 오늘 본문에서 '던지라, 나눠줄찌어다'라는 명령을 주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주경가들은 '던지라'와 '나눠줄찌어다'를 대가를 바라지 말고 이웃을 돕는 구제에 힘쓰라는 교훈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왜 대가성 없는 구제에 힘써야 하는지 몇 가지 이유를 찾아 보겠습니다.

1. 창조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고인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썩지 않습니다. 이것은 자연질서입니다. 밀림속에 서 있는ㄴ 나무들도 일정한 간격이 유지되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밀림속에는 자연솎음질이라는 질서가 지배합니다. 나무와 나무사이에 서 있어선 안될 나무는 저절로 말라 죽음으로 다른 나무가 생존하도록 도와줍니다.

사람은 나무를 심고 나무는 사람을 위해 목재와 신선한 공기를 내 줍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조화와 균형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사람이 나쁜 것을 버리면 땅이 썩고 강물이 썩게 됩니다. 사람은 썩은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하고 썩어 냄새 나는 물을 마시게 됩니다. 그 결과는 질병과 죽음입니다.

신체구조 역시 받았으면 주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의 신체구조는 입구와 출구가 분명합니다. 입구로 음식물이 들어가면 출구로 배설물이 나가야 합니다. 제아무리 산해 진미라 하더라도 배설작용 없이 먹기만 한다면 그 사람은 살아 남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제 아무리 돈이 소중하고 재물이 귀하다고 하더라도 내보내고 나눠주는 출구가 막혀 버리면 그것은 나를 망치는 독이 되는 것입니다. 먹고 배설하는 것과 벌었으면 쓰는 것, 그리고 가졌으면 나눠주는 것은 창조질서 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 가을에 곡식을 거두었다면 그것은 두 가지 예외 사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농사지은 밭에서 몰래 거둬들였거나 아니면 바람에 날아온 씨앗이 절로 자란 곡식을 거둬 드린 것일 것입니다. 씨뿌리지 않고 거두는 것이나 일하지 않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거둔 것이 있으면 다시 뿌려야 하고 가진 것이 있으면 나눠 써야 합니다.

저는 교회가 정성껏 마련해 주는 생활비로 22년간 충신교회를 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 돈으로 책사고 자식들 공부시키고 살림하고 있습니다. 제 생활비의 경우 농어촌 교회 목회자에 비하면 많은 편이고 대도시 목회자들에 비하면 그다지 많은편이 못됩니다. 제 아내와 함께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한평생 월급적다는 얘기는 하지 말자는 것, 다른 하나는 우리가 받는 생활비의 10분의 5는 하나님과 교회에 되돌려 헌금 드리고 10분의 5만 가지고 살자는 것입니다. 고마운 것은 지금껏 제 가족들이 이 일을 협력해 주었고 집안 살림 맡은 사람이 약속을 잘 지켜 주었기에 오늘에까지 떳떳하게 교회를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식들이나 후배들에게도 그런 자세와 태도로 목회에 임하라고 당부하곤 합니다. 그리고 저는 IMF이후 개인적으로 절기헌금이나 특별헌금을 더 하기로 마음먹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은 하는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할 만한 사람, 할 수 있는 사람, 해도 될 만한 사람들은 헌금도, 남을 돕는 것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생활이 어렵거나 실직당한 이들이 못하는 몫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들어 오는 것과 나가는 것, 버는 것과 쓰는 것, 소유하는 것과 나누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 질서이며 섭리입니다. 섭리를 역행하지 압시다.

2. 장래 준비를 위해서 입니다.

"네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줄 찌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른지 네가 알지 못합이니라"고 본문 1-2절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 구절에서 식물을 물위에 던지고 일곱이나 여덟사람에게 나눠주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날 후에 도로 찾게 되기 때문이며 언제 무슨 재앙을 만날 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면 여름이나 가을에 곡식을 거둡니다. 꿈나무를 심으면 20년이나 30년 후에 그 결과를 보게 됩니다. 여러날 후에 도로 찾는다는 것은 남을 돕는 행위의 결과가 즉석에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탓으로 주일학교에서 배운 것 외에는 오락을 모릅니다. 예를 들면 장기, 바둑, 화투놀이, 포커놀이 등 할 줄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 대신 달리고 뛰는 운동은 어려서부터 즐겼습니다.

저는 낚시를 해 본적도 없고 즐기지도 않는데 친구 목사님이 낚시를 몹시 즐기는 분이 있습니다. 5년전 어느 여름날 그 친구가 낚시를 가는데 동행하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낚시는 취미가 없다고 했더니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데 친구가 가자면 한번쯤 동행할 일이지 왜 뒤로 빠지느냐며 성화를 대는 바람에 따라 났습니다.

강 속에 들어가 흐르는 물에 낚시를 드리우고 고기를 잡는 낚시였습니다. 낚시에 지렁이를 먹이로 끼워 낚시를 던져 놓고 있으면 고기가 물게 되는데 타이밍을 잘 맞춰 낚아 채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친구는 계속 탄성을 지르며 낚아 올리는데 저는 한시간이 지나도 한마리도 낚아 올리질 못했습니다.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지렁이를 아끼지 말고 물위에 몽땅 던지면 먹이를 먹기 위해 몰려든 고기들이 낚시에 낀 지렁이를 먹기 위해 걸려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때 흐르는 물에 먹이를 던져야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잠언 11:24을 보면 "흩어 구제 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소설가 죠지 엘리오트가 쓴 단편 가운데 '실라스 마너(Silas Maner)'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실라스 마너는 황금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돈만 생기면 금은받에 나가 금을 사 모았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촛불을 켜고 그 촛불에 반사되는 황금빛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도취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도둑이 들어 마너가 모아 놓은 금을 몽땅 도적질해 갔습니다. 도둑을 찾아 나선 실라스 마너는 길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집없는 소녀를 만났습니다.소녀의 머리는 금발이었습니다. 그는 그 소녀를 집으로 데려와 하룻밤만 재우고 다음날 고아원에 보내기로 마음 먹고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소녀와 정이들고 사랑이 깊어져 양녀로 삼고 정성과 사랑을 다해 키웁니다. 그리고 어떤 날 '실라스 마너'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황금 빛, 그것은 허무한 빛이다. 그러나 이 아이의 금발빛은 미래로 빛나고 있다."라고 도울 수 있을 때 할 수 있을 때 남을 돕고 삽시다. 반드시 도로 찾을 때가 옵니다.

3. 주님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45을 보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린 여기서 나눠주는 삶의 새로운 차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은 돈이나 물건을 나눠주신 것이 아닙니다. 천하보다 귀한 목숨을 주러 오셨고 그 목숨을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뭡니까? 예수님께서 자기 목숨을 주기위해 오신 날입니다. 그 주님께서 마태복음 14:6을 보면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떡을 주라는 뜻만으로 해석해선 안됩니다. 사람의 척추뼈는 모두 24개입니다. 상단부분에 있는 경추 7개, 중간부분에 있는 흉추 12개, 하단에 있는 요추 5개 모두 24개의 뼈로 척추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여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신체의 균형이 깨지고 다른 신체에도 병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척추를 인체의 대들보라고 부릅니다. 척추는 구부러져도 안되고 뼈와 뼈 사이가 빗나가도 안되고 염증이 생겨도 안됩니다. 신체구조와 신앙구조도 비슷합니다. 은혜만 받고 일을 안하면 그것은 기형입니다. 축복을 받고 누리면서 나눌 줄도 모르고 베풀 줄도 모르면 그것도 기형입니다.

역대 부 총회장 선거 가운데 제가 부 총회장으로 당선되던 해가 가장 편했다고 주변에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무리하게 운동을 하러 다니거나 표를 모으기 위해 전국을 순회하지 않고도 당선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공로를 충신교회 성도들의 기도에 돌립니다. 명성교회에서 총회가 모여 선거를 하는 같은 시간 충신교회에서는 저를 위해 많은 성도들이 교회에 모여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가 있었다면 주변 친구들 때문입니다. 저는 평소 원수를 맺고 살지 않는다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베풀며 나누며 살기를 힘썼습니다. 평소 제 도움을 받았던 선후배들과 교제를 나눴던 친구들이 앞을 다투어 저를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지금도 제가 확신하고 있는 것은 “베푼 만큼 거둔다”는 진리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나라 왕으로 즉위하고 백성을 수탈하고 폭정을 폈다면 아무도 그를 높이고 기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기 위해 오셨기 때문에 ‘예수’ 그이름 두 글자 앞에 온 세계가 무릎을 꿇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10일 늦은 저녁 마지막 뉴스를 보기 위해 텔레비젼을 켰다가 MBC 방송을 보게 되었습니다. 창사기념 특집으로 마련한 다큐멘타리 ‘생명시리즈’ 마지막회 ‘승부’라는 기획물이었습니다.장소는 서울 중앙병원 외과 수술실이었습니다.내용은 건강한 사람의 간을 떼어내 간암환자의 간에 문제가 있는 환자의 간을 떼내고 이식하는 수술장면을 취재 구성한 것이었습니다. 16세된 아들에게 아버지가 자신의 간을 떼어 이식하는 이야기 병든 남편에게 아내가 간을 떼내 이식하는 장면 28세된 아들이 53세된 어머니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하는 이야기 등 실로 감동적인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아내는 병든 남편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했지만 마침내 부작용의 원인 규명도 못한 채 응급실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을 가슴이 터지고 눈물이 솟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경우 간이식 성공율은 50% 정도인데 비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70% 이상의 성공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수술실 거기를 가리켜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현장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간을 이식 받고 살아난 사람들은 제2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인체 중 가장 중요하다는 간을 때어 나눠 주는 사람과 그 간을 이식해 살아난 사람들 그들은 어떤 감격으로 인생을 살아가고 있겠습니까? 회복실에서 깨어나 엉엉 우는 사람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사람들의 모습속에서 나누는 삶은 아! 나누는 삶은 정녕 아름다운 것이라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목숨을 주시니 예수님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던지신 예수님 우리가 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면 나눠주는 삶을 배우고 닮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동안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예수님을 위해 그 무엇인가를 나누고 드려야 합니다. 교인은 교회 때문에 돈벌고 교회 때문에 덕을 보려는 마음을 가지면 안됩니다. 돈은 밖에서 벌고 그 돈으로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봉사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과 교회에 도움을 주고 이익을 주고 덕을 끼쳐야지 손해를 주면 안됩니다.

이스라엘 성지에 가면 골고다 언덕 길이 있습니다. 주님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그 언덕을 올라 가시며 쓰러지고 넘어지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길 좌우에 아랍사람들이 구멍가게를 열고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싸게 팔아요. 1달러요” 라며 호객 행위를 벌리고 있습니다. 그들이야 말로 예수 장사꾼들인것입니다. 예수는 믿지 않으면서 예수 때문에 밥 먹고 돈 벌고 사는 사람들! “아 내가 저런 사람이 되어선 안된다”라는 생각으로 ‘비아돌로사’ 언덕을 올라간 일이 있었습니다.

단돈 만원이라도 밖에서 벌어서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씁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으로 나누는 사람이 됩시다.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일곱이나 여덟에게 나눠주라” 나눠주는 사람 나눠주며 사는 사람 나눠 줄 것이 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 : 일만구역이상
글쓴이 : 충실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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