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기타/책 읽기

부의 위기

작가 - 오마에 겐이치

http://kr.blog.yahoo.com/bkblues95/1349673

2007/02/25 오 전 1:02 | 칼럼스크랩

서장 | 본질이 보이지 않는 까닭

고이즈미 극장의 본질은 무엇인가


장대한 정치 드라마 고이즈미 개혁! 그것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이 흥이 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천재 정치가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수상이 하고 있는 일이 '추리소설'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극장'이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그의 방식은 드라마로서는 재미있다. 어쨌든 무대에서 하고 있는 것이 일본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시대극의 기본 스타일, 즉 권선징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업을 꾸준히 성공으로 이끌어온 고이즈미 수상은 참으로 대단한 인물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정치적 수완가다. 게다가 야스쿠니 신사참배 등에서 보이는 '신념'은 종래의 일본 외교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소설 같은 접근 방식이며, 왜곡된 외교관계의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내정과 외교에 나타나는 고이즈미 수상의 방식에서 진짜 문제는, 그 수법이 '문제 있는 현상'을 발견하고 스쳐가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정치 드라마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문제에 서둘러 접근해야 한다는 절실함과 그에 따른 분노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일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여기에 있다. 국민 대부분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개혁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5막으로 구성된 고이즈미 극장은 이미 4막까지 끝내버렸다. 개혁이 끝나가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들의 생활은 전혀 편안해지지 않았다. 그의 개혁은 정치의 본질인 국민을 향하고 있지 않다. 고이즈미 극장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모든 개혁을 국민 생활자의 편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꿈을 실현시키겠다는 정치 자세다. 그런데도 “이봐, '개혁하면 생활의 질은 높아지고 비용은 내려간다'는 것이 드라마의 핵심이지 않았어!?”라고는 아무도 따지지 않는다. 국민들도 어차피 그런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흥이 깨진 상태이면서도 고이즈미 극장을 즐기면서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분노할 순간은 멀지 않았다.

현상이 아닌 원인을 고쳐라


최근 20년 동안 내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은 일본이 생활자 주권이 보장되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정면으로 부딪치면 '생활의 질은 올라가고 비용은 오히려 줄어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헌법'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법률을 만들고 일본을 진정한 '생활자 주권 국가'로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생활자 주권'에 대립하는 개념은 '제공자의 논리'다. 전후 일본은 모든 것이 제공자의 논리로 구성되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으므로 그것은 시대의 요청이기도 했다. 하지만 쇼와 말기 무렵이 되자 이러한 제공자의 논리가 국민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숫자상으로는 풍요로워도 생활의 질은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서 낮고 오히려 개발도상국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 원인은 생활기반보다 공공사업 등 생산기반, 사회기반을 중시하는 지나친 제공자의 논리다. 그 증거를 파악한 나는 '생활자 주권 국가 만들기'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치가가 주도하는 개혁은 다시 구호나 슬로건에 그칠 뿐이며, 그에 따른 이익이 봉급생활자의 지갑에까지 미칠지도 알 수 없다. 오히려 생활자가 소리를 높여 주택, 교육, 자동차, 식비, 사회복지 등 커다란 경비 면에서 근본적인 비용절감을 요구해야 한다. 요컨대 개혁의 어젠다를 정치가에게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생활자가 제안하고 주도해갈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현재 일본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중하류 중 하류 계층 사람들을 위해, 다시 말해 다수파를 위해 썼다. 중하류 계층은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무엇을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우리 모두의 인생설계와 생활습관에 대한 재검토를 제안함과 동시에 통치기구에서부터 세제에 이르기까지 새롭게 재편하고, 생활의 질이 높아져도 비용은 내려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제시했다. 정부가 실천해야 할 과제를 요청하는 나의 20년의 집대성이다.

1장 일본의 구조변화와 'M자형 사회'

경기회복에 속지 말라


일본의 현재 경제상황은 결코 불경기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봉급생활자는 급여가 오르지 않는 이유를 경기 탓으로 돌린다. 그리고 경영자는 경영자대로 “지금은 경기가 나쁘니까 조금만 더 참아달라”고 말한다. 그러면 사원들도 왠지 모르게 조만간 좋아지리라 생각하고 불평하면서도 그저 가만히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국민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있을수록 급여는 오르지 않고 생활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1990년대에 접어들어서부터 일본은 구조적으로 '장기침체기'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경기회복', '일본은 아직 건재하다'라는 식의 속임수에 속지말고, 물리현상을 보고 일본이 '장기침체'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그러한 바탕 아래 쇠퇴의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을 근본에서부터 치료하지 않는 한 새로운 번영의 길은 결코 열리지 않는다. 그것은 고이즈미 수상의 두더지 잡기 게임식 개혁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일본이 장기침체에 빠져버린 근본원인을 간단히 말하면 내가《신자본론》에서 제시했듯이, 1985년에 시작된 '새로운 경제'로 전환이 늦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제'라는 보이지 않는 대륙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공간이 있다. 구세계에서부터 연속되는 '실체 경제'의 공간, 돈이나 정보가 국경을 초월해서 자유롭게 유통되는 ‘무국경 경제’의 공간, 인터넷을 비롯한 다양한 통신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은 '사이버 경제'의 공간, 그리고 자기자본의 백 배, 천 배나 되는 멀티플배율 자금이 움직이는 ‘멀티플 경제’의 공간이다. 현재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이 네 가지 공간이 서로 복잡하게 관계하며 일어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지가나 주식의 급등, 그리고 뒤이은 거품경제 붕괴 현상도 사실은 이 '새로운 경제'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그래도 아직 일본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선 최근 20년 동안 일어난 일본 구조변화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중하류 시대가 닥쳐왔다


장기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일본의 사회구조는 크게 변했다. 이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소득계층의 양극화'와 그에 따른 '총중류 사회의 붕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일본 사회에 극적인 '질적 변화'를 불러 왔다. 이런 현상이 미치는 영향은 개인의 생활에만 그치지 않는다. 시장의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기업전략의 전환이나 조직체계의 개편을 촉진한다. 동시에 일본 사회나 국가의 구조 그 자체에도 커다란 변혁을 가져오는 계기가 된다. 그런데 일본인 대부분은 좀처럼 과거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중류이고 싶다는 일본인 대다수의 계속된 바람과 총중류 사회라는 허상 속에 머물던 일본인의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일본도 30년 전 미국의 뒤를 쫓듯이 급격한 'M자형 사회'로 구조가 변화했다. 총중류 사회가 붕괴된 미국이 경제력을 회복하고 실업률을 개선시키기까지 거의 2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일본의 수입 저하, 경제 침체 역시 최소한 20년 동안 계속될 수 있다.

개혁의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지금까지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따른 손실은 헤아릴 수조차 없다. 하지만 과거의 일은 후회해봤자다. 앞으로 일본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가 문제다. 중위수(자료를 크기 순으로 정리했을 때 가운데에 위치하는 값) 연령이 50세를 넘은 사회에서는 젊은 에너지를 잃고 자기변혁은 불가능하다. 일본이 변혁할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 과거를 돌아보아도 변혁의 시대에 활약한 것은 젊은 세대들이었다. 젊은이들의 에너지를 끄집어낼 수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일본은 구조적으로 장기침체를 벗어날 수 없다. 이미 일본은 2005년에 인구감소 사회로 전환했다. 앞으로는 장기침체가 무한히 계속되고 일본이 이류 국가, 삼류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앞으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을 때 이야기다. 아직 방법은 있다. 먼저 일본의 '장기침체'의 본질을 이해하고 총중류 사회의 붕괴와 함께 대두되어온 중하류 계층이 가져오는 사회의 질적 변화를 주시해야 한다. 세제뿐 아니라 일본이 장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한 개인과 기업, 그리고 정부 차원의 대책은 여러 가지가 있다.


2장 중하류 시대의 기업전략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


총중류 사회가 붕괴하고 소득계층이 양극화되면서 일본 시장에도 변동이 발생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많은 수인 연간 수입 300만~600만 엔의 중하류 계층이 앞으로 더욱 확대되어 시장에서 커다란 핵을 형성해갈 것은 틀림없다. 이러한 점은 일본 기업의 전략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최대 시장인 중하류 계층에 어떻게 접근하는가가 핵심이다. 그 열쇠는 모두 '난차테지유가오카'다. '난차테지유가오카'란 간단하게 말하면 '가격은 저렴하지만 감각은 지유가오카풍(부자들이 모여 살고 고급 점포가 즐비한 도쿄의 대표적인 부촌(富村))'의 상품과 서비스를 일컫는다. 언젠가는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리인 지유가오카에서 살수는 없지만 그 분위기만이라도 즐기고 싶다는 사람들이 최대다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성공 모델은 이미 생겨나고 있다. 한 예가 바로 소매업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내추럴키친Natural Kitchen'이다. 말하자면 '감각은 상류 계층, 가격은 중하류 계층'에 맞춘 컨셉트가 소비자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소개해온 '난차테지유가오카' 노선과 달리 이른바 '뉴럭셔리New Luxury'상품과 서비스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 난차테지유가오카가 '가격은 중하류, 감각은 중상류'인 것과 달리 뉴럭셔리는 '가격도 감각도 중상류 수준'인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실제 타깃은 중상류 계층이 아니라 중하류 계층이다. 말하자면 중하류인 사람들이 조금 무리를 해도 이것만은 갖고 싶다고 생각할 만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뉴럭셔리다. 이것은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붙인 이름인데, 나의 해석을 덧붙이면 뉴럭셔리는 중하류가 주류가 된 가운데 '약간의 사치를 부리고 싶은 구매동기'가 바탕이 된다. 뉴럭셔리가 대두한 배경으로는 몇 가지 요인을 생각할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디스카운트스토어가 일반화되어 가계의 소비가 절약되고 그런 만큼 중하류 계층도 고급 상품을 살 여유가 약간 생겼다는 점이다. 또한 일하는 독신여성이나 주부들 사이에서도 '자신에게 주는 상', '가끔 부리는 사치'같은 지출이 정착되고 수입은 중하류라도 해외 브랜드를 구입하는 여성도 많다. 이러한 중하류층의 심리를 잘 파악하고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의 상품을 제공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매력적인 시장은 중하류다


소득격차의 확대로, 상류 계층은 이전보다 훨씬 높은 수입, 자산을 가진 층이 생겨났지만, 중상류 계층의 규모 자체는 작아졌다. 저소득자층 가운데에서도 다소 우위에 있는 중하류 계층(연간 수입 300만~600만 엔)은 가격 면에서는 하류 계층과 같은 저렴함을 추구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는 식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각은 중상류 계층용 상품 수준을 원한다. 품질과 감각이 양호한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해서는 프리미엄을 지불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이 유통을 비롯해 비용절감 구조를 구축하거나 뉴럭셔리 상품 개발력을 갖춰야 하는 매우 엄격한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연간 수입 300만 엔 이하의 하류 계층은 감각보다는 저가상품을 선호하는 특징이 있다. 이 시장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존 할인점과 혹독한 비용 경쟁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세워라


일본 전체를 보면 수입이 감소하고 있지만 그것은 기업에게 부정적 측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구조의 변화에 따라 생겨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 요구되는 것은 역시 세련된 상품을 저가로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 기업은 대부분 그것을 견딜 만큼의 비용구조를 구축하고 있지 못하다. 그 주요한 원인은 행정규제, 그리고 일본의 독특한 유통 체계에 있다. 요컨대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지에 따라 가격경쟁력에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중하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업은 저마다 유통개혁을 피할 수 없다.

앞으로는 일본 기업도 전 세계의 최적지에서 만들고 직접 소비자에게 공급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렇게 하면 거의 모든 비용은 절반 이하가 된다. 그리고 비용이 떨어져도 질은 오히려 향상되고 세계 최고급 품질에 가까워질 것이다. 일본이 이러한 방향을 향해 간다면 소비자로서는 중하류가 되는 것이 전혀 두렵지 않다. 수입이 줄어들어도 그 이상 가격이 내려가고 게다가 좀 더 좋은 질의 상품을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가격저하의 움직임을 정부는 아직 '디플레이션'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부가 이 책에서 서술하는 국민의 구조변화, 시장의 심리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서 이 나라 위정자들이 국민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또한 유통에 관해서도 지나치게 규제하는 등 일본의 제도는 그 자체로 문제가 심각하다. 일본이 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철폐하면 중하류라도 상당히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의 질을 높이고 비용을 낮춘다.” 내가 20년 가깝게 계속 주장해온 것이 드디어 정치의 중심과제가 된 것이 아닐까?


3장 중하류 계층의 의식개혁

고정관념을 깨고 인생 모델을 바꿔라


소비자의 구매 의식 ·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구조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수입이 줄어들고 부담이 계속 늘어나는 생활자 자신이야말로 지금이라도 바로 의식을 개혁하고 인생 전략을 재정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 경제의 장기침체와 소득계층의 양극화에 따른 수입 감소, 중하류 계층의 증가는 시대의 조류이고, 이러한 시대의 변화는 일본인의 의식에 어떤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불안의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인이 자기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 관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90퍼센트가 '자신은 중류 계층'이라고 생각하고 있듯이 일본인은 오랫동안 총중류 사회의 획일화된 가치관 속에서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나름의 인생 가치관을 쌓으려고 하지 않았다. 연공서열로 점차 지위와 급여가 올라간다는 전제가 무너져 자칫하면 평생 중하류 계층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은 '만일 수입이 줄어들면 어떻게 할까'라는 가정법에 따른 대화에 서툴다. 의사소통에 서툴기 때문에 상황을 가정한 대화는 오히려 싸움이 되기 때문이다. 승진과 승급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가정 아래 이야기를 하면 아내는 그런 의욕 없는 생각을 한다거나 게으르다고 나무랄지도 모른다. 반대로 말하면 지금까지 이런 정직한 대화를 하지 않아 일본 가정이 과묵하고 불행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모처럼 가족이 모여서 저녁식사를 할 때에도 텔레비전을 켜두고 식탁의 화제를 텔레비전이 점령하는 상황이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세계적으로 보면 온 가족이 식사하는 저녁 시간에 텔레비전을 켜두는 가정은 일본밖에 없지 않을까? 가족이면서 소통이 없고 진정한 연결고리가 없다면 그 이상의 불행은 없다. 특히 중하류 계층 사람들은 한정된 수입과 자산을 어떻게 활용하고 어떻게 시간을 쓰면 인생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을지 잘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쓸 수 있는 돈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앞으로의 시대를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관리해가는 발상이 반드시 필요하다.

편견이 척박한 생활을 만든다


어째서 일본 중하류 계층의 생활은 풍요로워지지 않는 것일까? 그 원인은 한마디로 하면 규제와 시장의 폐쇄성에 따른 높은 물가 때문이지만 일본인이 가진 편견도 그 원인의 하나이지 않을까? 최근에는 무농약 채소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무농약 채소라며 팔고 있는 상품의 대부분은 농약으로 지정되지 않은 약품을 사용해서 재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정말로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배하면 슈퍼에서 판매하는 것처럼 곧은 오이나 예쁜 토마토는 재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재배한 구부러진 오이를 판매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점 측의 말로는 그렇게 하면 소비자가 사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일본 소비자의 상품 선택기준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일본 소비자는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고 하지만, 달리 말하면 상품 선택기준이 그만큼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물가가 높아지는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인의 편견 가운데 최고는 광우병 문제에 대한 대응이다. 2003년 12월 미국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발견되었다. 그때부터 일본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금지했고, 일본의 매체들은 모든 소를 반드시 검사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며 큰 소란을 피웠다.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광우병에 감염된 소가 20마리 발견되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2마리(2005년 7월 현재)에 그쳤다. 미국에는 일본보다 소가 100배나 많이 있으므로 위험 정도는 일본이 1,000배 가깝게 높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도 어째서 '국산 소는 안전' 하고 '미국산 소는 위험' 하다는 것인가? 이렇게 이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므로 일본은 전세계로부터 '편협한 국가'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수입금지 조치 이후 국내 소고기 가격은 사상 최고치로 올랐으며 중하류 계층에게 소고기 값은 그야말로 금값이었다. 소비자는 자신들에게 선택권리를 주지 않고 일률적으로 수입을 금지하는 것은 국내 축산 농가 등 일부 소수 이익단체를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문을 품고 분노의 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원래 인종차별을 한 것처럼 편견이 매우 심한 나라였지만 국가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문호를 개방해서 전 세계 사람을 받아들이고, 지금은 편견이 거의 없는 나라가 되었다. 미국 중하류 계층이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편견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는 가격과 품질로 상품을 선택하므로 품질이 같다면 값이 저렴한 쪽으로 간다. 편견 없이 스스로 보고 만지고 사용한 경험만 믿는다. 물건을 보지 않고 브랜드로 구입하는 일본인과는 전혀 다르다. 일본에서 상품의 가격이 높은 이유는 90퍼센트가 정보와 업계에 문제가 있지만 나머지 10퍼센트는 소비자 측의 편견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우선 편견을 버리고 “수입이 내려가도 절대로 생활의 질은 내리지 못하겠다”고 결심하고, 규제 철폐나 쓸데없는 유통업자 배제를 요구한다.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해서 질 좋은 상품을 저렴하게 구입한다. 이러한 생활이 거듭하면 중하류 계층이라도 충분히 풍요롭고 여유있게 생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장 생활자 대국으로 가기 위한 처방전

시장개방이 생활의 질을 바꾼다


세계적으로 보면 고수입인데도 일본의 중하류 계층 사람들이 풍요로움을 실감할 수 없는 것은 물가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원인은 일본 시장의 폐쇄성에 있다. 그 전형이 바로 농업이다. 특히 일본의 식료품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이 정도로 식료품 가치가 높은 이유는 일본의 농업생산성이 세계 최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업생산액에 대한 보조금 비율은 58퍼센트로 일본이 세계 제일이다. 좁은 농지에 모여 있는 많은 농가를 정부가 보조금으로 부양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농업보조금으로 최근 10년 동안만 해도 40조 엔이나 사용되었다. 기업이라면 당연히 투자에 대한 성과를 측정하게 된다. 신문기자를 비롯한 언론매체에 종사하는 이들이 정부에 대하여 '40조 엔이나 써서 생산성은 얼마나 향상되었는가?' 또는 '시장개방 준비는 되었는가?'라고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대중매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국민들 사이에서도 분노의 목소리가 조금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것이 일본의 실태다.

농업 보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입이 중단되면 큰일이다. 따라서 식량 안보安保가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러한 변명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식량 안보를 꾀한다면 해외에 토지를 사서 쌀을 경작하면 되지 반드시 일본에서 경작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일본이 해외에 논을 사는 것은 토지를 수입하는 것과 같다. 해외에서 토지를 사고 농지를 개발하면 그것이 식량 안보가 된다. 토지를 수입할 수 있다는 발상을 하면 일본인의 생활은 크게 바뀐다. 호주의 토지를 수입하면 일본은 좁기 때문에 땅값이 비싸다는 전제는 사라지고 땅값은 크게 내려간다. 특히 도시 부근의 농지를 해방해서 택지화하면 중하류 계층이라도 충분히 넓은 주택지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무국경 세계에서는 이러한 발상이 필요하며, 이러한 발상으로 전략을 세우면 장기침체에 빠진 일본도 아직 새로운 번영을 맞이할 기회가 있다. 이러한 논의를 하면 매체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산간 농가는 어떻게 생계를 이어나갈 것인가?'라는 동정론이 우세해진다. 하지만 도시의 서점이나 식당이 문을 닫을 때는 이러한 동정론은 들리지 않는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 밀려 서점이 도태되고 가까이에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겨서 대중식당이 망하는 상황과 과연 무엇이 다른가? 나아가 구조조정으로 25년 동안 근속한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게 된 사람이 몇 백만 명에 이르도록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지가 하락은 디플레이션을 불러온다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본질은 지가의 '적정화 適正化'다. 생활자의 처지에서 보면 지가가 떨어지면 그만큼 가처분소득이 올라가기 때문에 생활에 여유가 생겨 주택 차입금 때문에 고생하던 생활 자체가 풍요롭게 바뀐다. 중하류 이하가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지가 하락은 일본이 '생활자 대국'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중하류에서 상류로 갈 수 있다


연간 수입 600만 엔은 해외로 나가면 당당한 상류 계층이다. 가령 일본의 물가가 세계 평균 수준이라면 연간 수입 600만 엔 가운데 대략 절반은 여유소득이 되고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필요 이상의 규제나 산업보호 때문에 생활비용이 높아지고 여유소득 대부분이 줄어들고 있다. 반대로 말하면 규제를 완화하거나 농업보조금을 철폐하면 일본과 세계의 생활비용 차이가 해소되고 일본의 중하류 계층이 그 연간 수입에 걸맞은 상류 계층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된다.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의 첫 번째 임무는 여유소득의 차이를 국민에게 환원하는 것이다. 또한 국민도 이것을 당연한 권리로서 요구하고 정치와 건전한 대화를 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시장을 개방하고 세계에서 가장 질이 좋고 저렴한 것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면 중하류 계층이라도 두렵지 않다. 미국에서 연간 수입 5만 달러면 중상류 계층에 속하고 호주에 가면 당당한 상류 계층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없는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사람들로, 나는 이들을 '프롬프터 인종'이라고 부른다. 텔레비전 공개방송 프로그램에서 모인 고객들에게 “여러분, 제가 이런 신호를 보내면 박수를 쳐주세요”라고 지시를 내리는 사람을 프롬프터Prompter라고 한다. 일본인 가운데는 이렇듯 지시대로 박수를 치거나 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아주 많다. 국민은 아무런 의문도 품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 소득계층이 양극화된 M자형 사회로 이행한 것을 계기로 일본인이 변하지는 않을까 살짝 기대해본다. 국민의 80퍼센트가 중하류 계층 이하가 된 지금 국민이 정부나 기업에게 상당히 분노를 느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하류 계층 사람들 자신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프롬프터 인종에서 탈피하고 시끄러운 다수파로서 목소리를 높여가는 일이야말로 일본이 좋은 의미에서 '질적 변화'를 가속시켜 생활자 대국으로 새로운 번영을 쌓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5장 진정한 구조개혁은 이것이다

개혁의 정체는 무엇이었나


일본이 중하류 계층이라도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는 '생활자 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소수 이익집단을 지키기 위한 규제나 보조금 제도를 철폐하고 큰 정부에서 작은 정부로 전환하는 일이 필요조건이다. 또한 중앙집권 대신 통치기구로서 '지방분권'이 아닌 진정한 '지방자치'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으면 자치는 있을 수 없으며 세계와 교역해서 자본이나 기술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번영할 수 없다. 자기 지역의 세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서 남는 자본을 가져온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이 경쟁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이 1990년대부터 계속되는 번영을 쌓아올 수 있었던 것은 1980년대에 레이건 대통령이 '레이건 혁명'이라는 철저한 규제완화와 재정삭감을 하고 '작은 정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레이건 혁명'에도 여러 가지 결점은 있지만 적어도 규제철폐나 재정삭감,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기술은 지금의 일본이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경제'가 시작되고 이미 20년이 지났다. 기업은 좋다는 말도 싫다는 말도 없이 사이버나 무국경의 새로운 경제대륙에서 극심한 생존경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관료들은 변함없이 구대륙의 인식밖에 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는 일이나 소수 이익단체의 일만 생각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낼 생활자를 위한 이익을 깎아먹고 있다. 일본의 구조개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는 현재와 같은 구조가 이익이 되는 사람들과 그 안에서 대우와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 개혁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봉급생활자는 구조조정 되었을 때 보상이 없다. 또한 경영자도 회사가 파산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고, 보장은 전혀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은행에 개인보증을 해버린 경영자는 집마저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릴지 모른다. 한편 무책임하게 돈을 빌려준 은행은 공적 자금과 제로 금리로 안전하게 보호받는다.

정부 비용을 10분의 1로 줄인다


일본 정부의 채무 잔고는 정부 단기채무, 재투채(재정융자자금특별회계국채), 지방 · 중앙 정부 채무를 합하면 2004년 기준으로 1,033조 엔에 달한다. 이에 비해 세수는 고작 44조 엔인데 세출은 82조엔이 가운데 국채비가 20조 엔이나 된다. 일반 가정을 예로 설명하면, 1억 엔 이상 빚이 있고 연간 수입이 440만 엔인 사람이 이자를 포함해서 연간820만 엔이나 쓰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채무가 팽창한 까닭은 세입이 줄고 있는데도 정부의 소비지출이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채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당연히 채무를 줄여야 한다. 다음으로 지출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하는 공무원 급여를 삭감, 즉 공무원의 수를 줄여서 인건비를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불필요한 공공사업이나 공공 서비스를 없애야 한다. 이 세 가지 정부 구조조정이 급선무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만약에 딱 한 가지만 개혁한다면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망설임 없이 '교육'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현재 세계는 빌 게이츠 같은 천재 한 사람이 경제를 움직이는 시대, 인재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재란 일본에서 말하는 '공부 잘하는 아이',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을 요령 있게 수행하는 아이'가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립한 인재다. 새로운 경제의 '보이지 않은 대륙'에서는 스스로 미지의 대지를 개척해갈 능력이 필요하다. 현재 일본의 학교교육에서는 새로운 세계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인간이 대량생산되고 있을 뿐이다. 일본이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번영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교육개혁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일본의 중하류 계층이 세계 수준에서 그 수입에 걸맞은 상류 계층의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미국이 1980년대에 했던 규제완화, 경제 자유화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면에서는 북유럽에서 배워야 한다.

이들 국가의 교육현장에서는 '가르친다Teach'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배운다Learn'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가르친다'는 것은 답이 있다는 전제로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가르친다는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21세기인 오늘날, 전 세계에서는 정답이 없는 문제투성이다. 따라서 북유럽에서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한다는 사고방식이 철저하게 자리 잡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는 '아카데믹스마트Academic Smart'와 '스트리트스마트Street Smart'라는 표현이 있다. '아카데믹스마트'는 학교 성적이 좋고 정해진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난 유형이다. 한편 '스트리트스마트'는 거리에서 자랐다는 의미로, 실제 사회에서 경험을 쌓고 성공한 사람을 가리킨다. 혼란의 시대에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일본이 키워온 '아카데믹스마트'가 아니다. 현실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답이 없는 문제에 자기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스트리트스마트'다.


6장 새로운 번영의 법칙

증세 없이도 재정을 재건한다


소득계층의 양극화에 따라 일본은 M자형 사회가 되고 국민의 80퍼센트가 중하류 계층 이하인 시대가 되었다. 평균 수입이 감소해서 급여같은 플로우는 줄어들고, 반대로 개인금융자산 같은 스톡은 점점 늘어난다. 스톡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젊은 세대에게는 매우 불공평하다. 가만히 있어도 젊은 세대는 부담이 무겁고, 연금은 자신들이 납입한 것보다도 적은 액수밖에 못 받는다. 고령자를 부양하기 위한 건강보험이나 개호보험(노인요양 서비스만 전담하는 의료보험)의 부담도 더욱 무거워진다. 이러한 상태에서 줄어들고 있는 소득에 세금을 매긴다면 젊은 세대가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세대간 투쟁이 일어나고 젊은 세대가 고령자 부양을 포기하고 연금이나 보험의 납입도 거부한다. 늘어나는 부담을 견디지 못해서 범죄가 증가하거나 정치 감정도 불안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장래의 일본인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세제는 어떠한 것일까? 일본을 고부담 시대에서 벗어나게 하고 새로운 번영을 향한 길로 이끌 세제여야만 한다. 내 생각으로는 기본적으로 일본에는 두 가지 세가 있었으면 한다. 그 한 가지는 자산에 대한 과세다. 소득세는 현재 14조 엔의 세수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는 국민의 소득 그 자체가 줄게 되므로 여기에서 세금을 늘리려 해도 국민들은 세금이 과중하다고 느낄 뿐, 실제적인 세수 증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애초부터 소득세를 늘리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다.

소득에 세금을 매기지 않고 자산에 세금을 매기는 데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하나는 노동의욕을 촉진해서 노동세대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자산의 유동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산에 세금을 매기면 자산 고정화의 폐해를 없애고 경제를 활성화 할 수 있다. 동시에 일본인의 기분을 활성화하는 효과도 낳는다. 자산이 있는 고령자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 고령자들도 젊은 세대가 처한 험난한 상황을 알고 있으므로 뜻밖에 '젊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며 자산과세를 원만하게 받아들여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또 한 가지 세稅 체계는 부가가치세다. 소비세처럼 소비에 대하여 세금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나 서비스에 부가가치가 더해지는 단계에서 세금을 매긴다. 어떤 제품의 가격이 정해지기까지에는 원재료를 만들어내는 단계, 그것을 가공해서 제품을 만드는 단계, 유통시키는 단계, 가게에서 판매하는 단계 등 각각의 단계에 부가가치가 더해져서 최종적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그 각 단계에 부가된 가치에 대하여 세금을 매기는 것이 부가가치세의 기본이다. 현행 소비세는 세금을 거두는 데 누락되는 부분이 매우 크다. 요컨대 모든 경제 행위가 이 두 가지 세제로 보충되는 것이다. 그 밖의 모든 세금을 폐지하는 것이 내가 제안하는 방법이다. 자산세와 부가가치세의 이중구조라면 자산이 풍부한 고령자층이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되고, 젊은 사람들도 자산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기므로, 이는 매우 공평한 세제다. 또한 그렇게 되면 세무서가 할 일은 거의 없어질 것이다.

지역국가로 재편하라

일본의 생활비용이 높고 생활자가 풍요로움을 실감하지 못하는 까닭은 각종 규제나 이권구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구조가 이렇듯 일그러진 원인, 즉 '모든 악의 원인'은 세계적으로 드문 극도의 중앙집권제도로 말미암은 단일문화 국가가 형성된 데 있다. 모든 부가 도쿄에 집중되고 도쿄에서 재분배되는 경제의 흐름이 전제가 되어 그것이 기득권을 낳고 기득권에 몰려드는 무리를 낳는 온상이 된 것이다. 또한 지금으로서는 시대에 뒤떨어진 중앙관료나 정치가의 머리 수준에서 개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세제조사회나 경제전략회의처럼 제자리를 맴도는 논의로 끝나버린다. 메이지 같은 부국강병 시대라면 몰라도 지금까지도 중앙이 커다란 권한을 쥐고 있는 구조는 시대착오다. 지방이 독자적으로 창의력을 발휘해 산업을 육성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에서 내려오는 예산만을 집행하고 있다면 지방은 언제까지나 자립할 수 없고 점점 약해질 뿐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지방으로의 재원 이양처럼 세부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국가의 구조 그 자체, 즉 통치기구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이러한 발상은 현재 활발하게 거론되고 있는 지방분권과는 전혀 다르다. 지방분권은 도쿄에 있는 관료기구는 그대로인 채 일부 권한을 지방으로 나누어주는 것이므로 중앙집권구조에 변화는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회사에 비유하면 지역독립체산제地域獨立採算制에 가까운 광역 사업부제다. 각 도주가 마치 하나의 국가처럼 세계를 상대로 직접 교역할 수 있는 바람직한 지역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도주제란, 말하자면 '지역국가'제이고 일본이 '새로운 번영'을 쌓는 데 가장 적합한 국가체계다.

그렇다면 일본에게 가장 적합한 도주제는 무엇일까? 현재 번영하고 있는 북유럽이나 아일랜드, 미국이나 아시아의 '지역국가' 등의 경제활동 단위를 측정해보면 무국경 경제에서 '번영의 최적단위'는 최소한 인구 300만 명에서 최대 2,000만 명 정도다. 300만~2,000만 명의 단위는 지역국가로서의 규모가 되므로 중앙의 권한을 이양하기에 충분한 그릇이 된다. 국가는 방위나 통화 따위의 국가의 통치를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일만 하고, 나머지는 모두 도주에 맡기면 된다. 입법도 반드시 전국적으로 통일할 필요가 있는 사항을 제외하고 기본적으로 도주별로 하도록 하면 된다. 만약 1,000만 명을 하나의 단위로 한다면 일본은 10~12개 도주로 나누는 것이 타당하다. 도주의 구역을 나누는 방법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도주가 하나의 지역국가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역사나 문화적으로 뿌리를 같이하는 지역의 일체감이 필요하다.

바로 나 자신이 개혁자다


일본이 장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시장과 사회 모두 개방해서 사람, 물자, 자금이 전 세계에서 몰려오도록 하는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일본으로 유입되고 있는 자금은 겨우 연간 9,000억 엔(2004년, UNCTAD 자료) 정도다. 정점인 시기에는 3조 엔인 적도 있었지만 그것도 거의 벌처펀드와 같은 것으로 직접투자라고는 할 수 없는 자금이었다. 그에 비해 중국에는 연간 7조 3,000억엔(2004년, UNCTAD 자료)이 해외에서 유입된다. 자금과 기업, 그리고 사람도 오지 않아서는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은 제로에 가깝다. 이래서는 장기침체를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출산 고령화에 제동을 걸지 못하면 일본인의 중위수 연령은 2025년에는 50세를 넘는다. 자녀가 급격히 늘어날 리도 없으므로 해외에서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방법말고는 젊은이의 수를 늘릴 도리가 없다. 문제는 일본에는 이민자를 받아들일 제대로 된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도주제는 각 도주가 경쟁하며 전 세계에서 인력, 물자, 자본을 모으는 '번영의 단위'다. 도주제는 도주를 번영의 단위로서 생각하고 각 도주가 중국이나 미국처럼 전 세계에서 인력, 물자, 자본을 불러들일 지혜를 짜내면 된다. 이렇게 해서 일본 국내에서 각 도주가 서로 경쟁할 때야말로 일본 전체가 '새로운 번영'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정부에는 이러한 비전이 없다. 국민이 가만히 있으면 시끄러운 소수파인 소수 이익단체가 하는 말만 듣고 일본은 중앙집권구조인 폐쇄사회인 채로 장기침체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미래에는 지금까지처럼 '타인에게 맡겨두는 자세'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한 사람의 생활자로서 발언하고 행동해야 한다. 중하류 계층 사람들은 이제 '수입이 줄고, 승진도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부담만 늘어난다'고 한탄하는 희생자가 아니라 '나는 개혁자다'라고 자각해야 한다.

나오는 말


고이즈미 개혁은 눈부신 정치적 성과를 거두었다. 적어도 그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일들은 모두 끝마쳤다. 부산물로써 숙적 하시모토 파가 모두 퇴치되고 파벌의 보스들의 싹이 잘렸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문제다. 일련의 '개혁'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문제에서 나쁘거나 잘못된 점을 제거했을 뿐, 앞으로 일본이 국제적으로도 경쟁력을 갖추고 국민생활이 좋아지는 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인생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성장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고이즈미 개혁을 대증요법(對症療法, 환자를 치료하는 데 원인이 아닌 겉으로 드러난 증세에 대응하여 처치를 하는 치료법)과 같다고 한 까닭은 이 때문이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나는 고이즈미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본 국민으로서 고이즈미에게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이 길은 누군가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길이었다. 오래된 것을 부수는 일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때 반드시 필요한 의식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새로운 것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21세기에는 국가보다 지방, 지방보다 기업, 기업보다 개인이 주도권을 쥐는 시대다. 반대로 말하면 뛰어난 개인이 있으면 기업은 세계 어디에서도 성립하고, 그러한 개인이 있는 곳이 번영하는 기업이 된다. 나아가 이러한 기업을 많이 가진 곳이 결과적으로 번영한 나라가 된다. 국가의 최대 · 최종 책무는 그러한 임무를 견딜 수 있는 인재, 개성 풍부한 뛰어난 인재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만드는 일이다. 지금까지처럼 대량생산에 적합한 인재를 아무리 만들어도 세계에서 일본의 지도력, 경제력은 유지할 수조차 없다. 그러한 산업 자체는 브릭스(BRICs)나 그 밖의 다른 개발도상국으로 옮겨갈 것이다. 이러한 점을 깊이 인식한 지도자가 고이즈미 다음에 나오지 않으면 일본의 재기는 그만큼 늦어지거나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하게 된다.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느끼는 점은 지금은 그만큼 중요한 때라는 사실이다.

이제 막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에 걸쳐 자신이 벌 돈보다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부담이 훨씬 큰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도 아직 위정자들은 악습을 고치지 않고 잔치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왕위계승(차기 수상 임명)'에 대해 뜻을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 적어도 다음 수상은 고이즈미 수상이 해온 '구세대의 악습을 파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낳기 위해 대담한 첫걸음을 내딛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제까지나 파괴만 해서는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이제 정치적인 어젠다를 국민이 직접 요청해야 한다. 일본은 지금까지 궁지에 몰릴 때마다 기적적으로 좋은 방향을 잡아왔다. 핵심이 빗나간 고이즈미 극장도 대단원의 막을 내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 극장은 지금까지와 비교해보면 재미있지만 사실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이득이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편 항간에서는 중하류가 80퍼센트가 되고 국민들 사이에서 분노가 끌어 오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그 역사적 전환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도서요약 월간지 "for Beautiful Leaders" 07년 2월호)

'취미기타 > 책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카르페 디엠  (0) 2007.07.28
여러분들은 블루슈머인가요?  (0) 2007.07.28
한국사회의 해체와 재구성  (0) 2007.07.08
국가의 역할  (0) 2007.07.08
[스크랩] 지식의 힘 - 박종현. 이보연 지음-  (0) 2007.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