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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기타/책 읽기

한국사회의 해체와 재구성

http://kr.blog.yahoo.com/bkblues95/1349674 
2007/02/25 

한국 사회의 해체와 재구성 - 정기효 지음 (에코리브르 / 2006년 10월 / 341쪽 / 13,500원)

▣ 저자 정기효

부산 개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7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검정고시를 거쳐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1989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5대학에서 교육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파리에 거주중이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현재 우리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 양상의 이면에 깔려 있는 ‘논리의 문제’를 밝혀내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여기서 ‘논리의 문제’는 사유하는 과정, 사유하는 방식이 그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전통 사회에서 현대 사회로, 독재에서 민주로, 후진에서 선진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가를 논의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논리의 틀은 ‘인식론적 논법’과 ‘다차원적 논리 공간’이다. 즉 우리가 세계화의 시대적 조류를 따르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타자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논리적 바탕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관념을 어떻게 우리의 의식에 이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그 방법이 바로 교육이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교육개혁은 단적으로 명사적 지식 대신 동사적 지식을 가르치라는 것이다. 명사적 지식이란 이미 만들어져서 굳어진 지식을 말하고, 동사적 지식이란 그런 명사적 지식을 만들어내는 이면에 개입되어 있는 관점, 방법론, 물러나서 반성하는 능력 등을 일컫는다.

따라서 명사적 지식은 ‘형이상학적 논법(봄, 관점)’에 의해 구현된다고 볼 수 있다. 즉 현상세계를 일으키는 원인의 원인을 찾아들어가서 궁극적 인과시원(仁果始原), 절대적 일자(一者)를 통하여 현상세계를 해석하기 때문에 절대적 진릿값(하나의 정답)만을 인정하는 ‘사지선다형’ 학습 방법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동사적 지식은 ‘인식론적 논법’을 통해서 구현된다고 할 수 있다. 인식론적 논법이란 세상을 어떤 절대적 진릿값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어가는 가변적, 잠정적, 과정적 대상으로 보는 방식이다.

따라서 이러한 논법에서는 어떤 절대 값에 억눌렸던 모든 개체들이 시원성을 부여받을 수 있게 되므로 가변적, 잠정적, 과정적 결정들을 협상하고 합의해 내야 하는 대화식, 토론식 학습방법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교육 방법이 주입식, 암기식, 객관식, 사지선다식에서 벗어나 대화식, 토론식, 주관식, 논술식으로 대체되어야 우리의 논법과 논리공간도 인식론적, 다차원적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노와 사, 여와 야, 진보와 보수 등의 대립을 겪고 있다. 이러한 국론분열은 결국 현대사회에 걸맞은 논리적 바탕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혼란이다. 기존의 일자는 무너졌지만 붕괴된 일자 대신에 자아가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자아의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욕구와 이익에 내맡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세우는 구호의 극단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동일한 논리적 바탕 위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변혁을 꾀하려 한다면, 자신들의 의도에 맞는 명제를 골라 그 신념만 깊이 하려해서는 안 된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논리 공간을 갖추지 못하면 개혁은 실패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개발독재 시기에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정규교육과정을 밟지 못했다. 후에 28세라는 늦은 나이로 대학에 입학했으나 당시는 전두환 정권의 강압정치가 극에 달해 있었고, 이에 저항하여 민주화운동이 불붙어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프랑스 유학을 가게 된 저자는 그곳의 선진화된 사회 구조에 문화적 충격을 받고, 자유와 질서라는 상반된 두 속성이 서구사회에 공존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오랜 기간의 사유를 통해 그가 얻은 해답은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존중’의 원칙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식론적 논법’과 ‘다차원적 논리 공간’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 "for Beautiful Leaders" 07년 2월호

머리말
01 자생적 사고에 대하여
02 글로벌 스탠더드
03 명사적 지식에서 동사적 지식으로
04 새로운 인성과 사회 구성체를 위하여
05 인문학 살리기
06 상대주의란 무엇인가
07 상대주의와 그 물질적 토대
08 선진 논리
09 교실 붕괴 현상과 개혁의 함정
10 새로운 가정에서 새로운 문명으로
11 마르크스를 넘어서
12 좌우를 넘어서
13 중도를 향하여
14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서
15 신국부론
16 새로운 인간형

자생적 사고에 대하여

우리 사회에서 지적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인 시험이라는 것이 아직도 암기력, 순발력을 중요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른바 공부를 잘한다는 학생은 암기력과 순발력이 뛰어난 학생들이다.

 

반면 스스로 생각하고, 넓고 깊게 사유하려는 욕구를 가진 학생들의 생각은 쓸데없는 잡념으로 폄하되고 결국 그러한 학생들은 열등생으로 전락해버린다. 물론 암기력과 순발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사고력’에서 떨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역설적으로 공부를 못한다고 평가받는 학생들이 사고력에서 앞선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우리사회의 모든 통과 관문인 시험이라는 것이 사고력보다는 암기력, 순발력을 측정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 보니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자생적 사고 능력을 기를 수 없는 것이다.

학교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명사적 지식을 주입하는 것은 시대의 넌센스이다.

그것은 독단과 아집을 파생시키고, 결국 그로 인해 어느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관념의 우물에 빠지고 만다. 자신의 관념에 절대적 신념을 부여하는 사람은 사회운동가로서는 적당하지만, 학자(생각하는 사람)로서는 끝나버린 인생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명사적 지식은 책과 컴퓨터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쓰면 된다. 자생적 사유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스스로 생각하고 물러나서 반성할 수 있는 학교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동사적 지식’이라는 항체를 우리의 머릿속에 배양해 이식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의 전제(관점)에서 끊임없이 물러나는 지적 자세, 이 ‘물러남의 사유’가 바로 자생적 사유의 생명이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물러나서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

사실 ‘자생적 사유’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의 방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세상을 나름대로 볼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구상한 새로운 생각의 틀은 ‘인식론적 논법과 다차원적 논리 공간’이라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틀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명사적 지식’으로부터 물러나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방법론적 지식인 ‘동사적 지식’을 통해 만들어질 수 있다. 이 개념은 책을 읽는 동안 무수히 접하게 될 것이다. 아무튼 이를 통해 ‘생각하는 방법’에 관하여 물러나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또한 그것이 주는 즐거움과 기쁨에 눈뜨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글로벌 스탠더드

1989년 10월, 나는 파리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수중에 쥔 것이라곤 편도 비행기표 한 장과 아르바이트로 번 110만 원이 전부였다. 집에서 생활비를 보내줄 형편도 아닌데다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기로 결심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프랑스의 대학은 학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1년 등록금이 10만 원 정도밖에 들지 않음)과, 다른 어떤 나라보다 지적, 문화적 자유로움에 열려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내가 유학을 떠나올 때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독재 체제와 권위주의 문화에 깊이 잠겨 있었다.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된 지 몇 년 되지도 않았고, 사회정화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완장을 차고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들을 지시하고 통제하던 시기였다. 힘 있는 자들은 부패하고, 기득권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힘없는 자들은 가진 것이 없을 뿐 일상 속 그들의 논리도 권위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 문화에 젖어 있던 나에게 서구 사회에서 마주친 자유로움은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에는 그곳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때부터 그곳에서 자란 외국인이 많다. 오리지널 프랑스인이라는 사람 중에서도 2, 3대 위로 가보면 할아버지나 할머니 중 한 분이 외국인 출신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한 인종과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들을 융화시켜 더 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사실 다양성이라는 개념은 현실에 쉽게 받아들여 질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다양성에는 절대로 동일시 할 수 없는 ‘차별성’이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프랑스인들이 다양성을 융화시켜 화합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차별성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차별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존재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

나는 인간이 존재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고 생각한다. ‘형이상학적 논법’과 ‘인식론적 논법’이 그것이다. 형이상학적 논법이란 현상세계를 일으키는 원인의 원인을 찾아 들어가서 궁극적 인과시원 ․ 절대적 일자를 통하여 현상세계를 설명, 해석하는 봄의 방식이다.

즉 인간의 의식 속에 일원론적 논리공간을 형성하고 일반적으로 인과와 가치의 위계서열을 강조하는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봄’의 방식은 개별 존재들에게 주체성을 허용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이에 저항하는 ‘이분법적 논리 공간’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이때는 붕괴된 일자 대신 자아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 ‘자아 중심적 논리 공간’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 공간들은 모두 ‘절대적 진릿값’을 형성하는 형이상학적 논법의 산물이다.

우리가 현대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존재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즉 ‘인식론적 논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식론적 논법이란 봄과 봄들이 얽혀(어울려) 세상을 보는 논법이다. 즉 세상을 어떤 절대적 진릿값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되어가는 가변적, 잠정적, 과정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식론적 논법을 어떻게 우리의 의식 속에 이식시킬 수 있겠는가? 나는 그것이 교육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유아기 때부터 개체성과 보편성을 끊임없이 양화, 고도화시킬 수 있는 사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주체성을 확보하면서도 타자와 더불어 더 큰 보편성을 추출해내는 능력을 소유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세계화 시대에 걸맞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출 수 있을 것이다.

명사적 지식에서 동사적 지식으로

나는 하나 더하기 하나도 모른 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국민이 가난에 시달렸고 우리 가정은 그중에서도 하위권에 속해 있었으니, 부모님은 내가 학교 공부를 제대로 따라가는지, 숙제는 하고 다니는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다. 그런 내가 공부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6학년 때부터였다. 그때 담임선생님의 교육방법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초 스파르타식이었다. 선생님은 5~6명을 한 분단으로 배치하고, 그중 제일 공부를 잘하는 학생을 분단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거의 하루에 한 번씩 시험을 치고 성적이 나쁜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팼다. 나는 매를 맞지 않기 위해 공부를 했는데, 성적이 90점대로 접어들자 그때부터는 경쟁에 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일류 중학교에 합격했다. 그런데 두들겨 패서라도 공부를 시키는 선생님이 없으니 또다시 빈둥거리게 되었고, 한번 놓친 과목들은 영영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나마 공부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중학교 3학년 전반부쯤에서 끝이 났다. 가정 형편상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마음 편안하게 시간을 때우다가 졸업을 했다. 그 후 공장에 취직을 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28세에 대학 입학을 하기까지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경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만큼 늦게 시작한 공부는 내 대학생활에 큰 이로움을 제공해주었다. 나이가 들면서 이해력이 생겼던 것이다.

나는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이런저런 한국 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결국 교육 부문으로 귀결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즉 아이들에게 명사적 지식 대신 동사적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명사적 지식이란 이미 만들어져서 굳어진 지식을 말하고, 동사적 지식이란 그런 명사적 지식을 만들어내는 이면에 개입되어 있는 관점, 방법론, 물러나서 반성하는 능력 등을 일컫는다.

따라서 명사적 지식은 절대적으로 옳은 하나의 관점만 있고 그 외의 다양한 관점들이란 틀린 것일 뿐이다.

그러니 절대적 진릿값을 가진 사지선다형 학습방법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반면 동사적 지식은 주관식 ․ 서술식 ․ 논술식 ․ 대화식 ․ 토론식 학습이라는 도구를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인식론적 논법과 다차원적 물러남의 논리 공간이 필요하게 된다.

논법(봄 ․ 관점)과 논리 공간은 우리의 의식과 인성, 사회구조 등 모든 부문에 퍼져 있어서 그 모두를 한꺼번에 바꾸기는 쉽지 않다. 즉 당장 부모와 교사들을 동사적 지식과 그 도구인 주관식 ․ 논술식 ․ 대화식 ․ 토론식, 그리고 그 바탕인 인식론적 논법과 다차원적 논리 공간을 갖도록 재교육하려 든다면 개혁의 왜곡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들을 어떻게 교육의 중심에 이식시켜야 하는가.

가장 좋은 방법은 앞바퀴가 움직이는 대로 뒷바퀴가 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 교육이 대학 입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대학 입시와 각종 국가고시들을 동사적 지식을 측정하는 완전한 주관식 시험으로 바꾼다면 그 나머지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맞춰지게 되리라고 본다.

새로운 인성과 사회 구성체를 위하여

우리는 흔히 동양은 집단주의, 서구는 개인주의가 강하다고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은 관점을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우리가 개인주의라고 믿는 서구 사회가 사실은 사회적 연대도 강하게 추구하고 있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프랑스 국민의 절반 이상이 매년 자선단체에 수표를 써서 기부금을 낸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또 뉴스에서 가끔 보는 광경이지만, 어느 지역에서 사고로 누군가가 죽었을 경우 많은 주민들이 사망 장소에 꽃을 갖다놓고 시가행진 등으로 애도하는 사회적 연대성은 참으로 인상 깊다. 우리가 이런 연대성을 당장 따라잡기는 힘들겠지만, 우리사회의 문제점인 권위주의나 감정의 극단 이행, 이기주의라는 코드를 제거하는 방법만큼은 모색해야 한다.

일반적인 사회는 수직적 ․ 수평적 축의 짜임으로 세워진다. 수직적 축에서는 생산성과 효율성 ․ 경쟁력 ․ 질서 ․ 안정 ․ 통합 등의 가치가 분화되어 나오고, 수평적 축에서는 자유 ․ 평등 ․ 분배 ․ 인권 등의 가치가 생성되어 나온다. 이때 가장 손쉬운 사회 구성 방법은 수직적 축으로 수평적 축을 억누르는 것이다. 마치 가정에서 말 안 듣고 고집 부리는 아이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위협해서 가정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과 마찬가지다. 고전적 사회 구성 방법에서는 이것이 딜레마였다. 사회적 통합을 강조하게 되면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기 쉽고,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다 보면 사회적 통합이 무너지기 쉬웠던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다양화 ․ 복잡화한 사회에서는 획일화하고 전체화한 효율성은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수평적 축에 흩어져 있는 개체성과 수직적 축에 맺히는 보편성을 동시에 양화 ․ 고도화(승화)시켜 나갈 수 있는가? 여기서 나는 ‘경우의 수’라는 수학적 개념에 주목하고자 한다. 즉 어떤 사태와 관련해 경우의 수(인과시원 ․ 봄 ․ 관점)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경우의 수들을 담을 수 있는 논리 공간은 넓어진다. 민주 ․ 선진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은 개인은 무한히 자유로우면서 전체적 연대성은 높다는 것이다. 즉 개체성과 보편성이 동시에 확대되는 것이다.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자에 의해 일원화하고, 수동적 상태에 놓여 개체화되어 있던 개인들을 주체화 ․ 다양화시켜 거기서 ‘논리적 창조력’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며, 그 방법이 바로 교육이다.

인문학 살리기

한국에서 인문학이 죽어간다고 한다. 그 징후가 나타나는 이유를 진단해보면, 학생들이 돈을 버는 데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학문으로만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 ․ 문학과 같은 인문학이 모든 응용 학문의 기초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철학적 이론으로 구성되었고, 수학의 집합론과 대수 ․ 위상기하학 등의 이면은 존재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철학적 견해와 연결되어 있다. 예술이라는 것도 그 이면에 흐르는 방법론적 논의들은 과학과 일치한다. 따라서 인문학의 붕괴는 학문적 기둥의 밑둥이 잘리는 것과 같다. 나는 초 ․ 중 ․ 고등학교 교과 과정의 국 ․ 영 ․ 수를 철학 ․ 수리철학 ․ 문학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 교육이 외우고 계산하는 훈련방식(명사적 지식)에서 벗어나 인류의 지성사에 나타났던 중요한 이론이나 사상적 조류들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방향(동사적 지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이 죽어가는 또 하나의 징후는 인문학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먹고살 길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다. 나는 이 문제를 한 국가의 학문 시스템이 산업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존속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즉 학문이나 예술 부문을 생산 ․ 분배 ․ 소비하는 산업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그 행위 자체가 유지되거나 확대 재생산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른바 순수 인문학자에게 열린 직업이 극히 제한적이다. 대학교수나 극소수 인문과학연구단체의 연구원 빼고는 거의 전무한 실정인 것이다. 대학 교수라는 게 흔한 직업도 아니고 교수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물론 이러한 현상은 서구 선진국도 거의 비슷하다. 서구 역시 이들을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모두 수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서구의 인문학자들은 무엇으로 먹고 사는가? 바로 책 출판이다. 이들의 수입원은 바로 저술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 나는 프랑스 TV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토론 중에서 대학교수라는 타이틀만으로 초청되는 사람들을 본적이 없다. 토론에는 당연히 그 주제에 관하여 책을 쓴 사람들이 초청된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은 개론적이거나 총론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깊이가 있고 치열하다. 인문학자가 저술활동으로 생활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그 책을 사서 읽어줄 독자의 구매력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거의 동네마다 공공도서관이 갖추어져 있다. 그리고 그 도서관들은 이웃의 학교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선생님들은 거의 매일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오도록 하거나, 직접 학생들을 도서관에 데리고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빌려오는 습관을 기르게 한다. 즉 어릴 때부터 책을 사거나 빌려서 읽는(소비하는) 습관을 심어주는 것이다.

내가 아는 A라는 프랑스인은 프랑스사 연구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프랑스사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쓸 정도면 프랑스사 전반에 대해 해박할 것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의 논문 주제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 파리 근교의 한 특정한 지역을 대상으로 ‘토지 관계의 변화에 의해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역학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었다. 우리 눈에는 그 일이 부분적이고 가치 없는 작업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프랑스 역사학계가 A가 하는 식의 구체적인 연구를 하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면 그 나라의 역사학 연구가 얼마나 깊고 넓게 양화 ․ 고도화되어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모든 분야의 학문이 그렇게 철저하게 분화되고 각론화 되어 있다면 그 사회의 학문 풍토는 우리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넓고 깊게 뿌리 내려 있는 것이다.

상대주의란 무엇인가

몇 해 전 한국 신문에 동남아 국가들 사이에서 반한 감정이 확산되고 있다는 우려의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린 적이 있다.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체들의 임금 체불, 종업원들에 대한 인격 모독,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부당대우, 동남아를 여행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거만한 행동 등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일부 골프 여행객들의 안하무인격인 행동이 현지인들의 감정을 극도로 자극한다고 했다. 현지인 여행 가이드들에 따르면 한국인 골퍼들은 조그마한 불편도 참지 못하고, ‘내가 누군데’라는 고자세로 나오기 때문에 심기를 맞추기가 여간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는 권위를 내세우면서 자신보다 강자 앞에서는 조그만 일에도 피해의식을 느끼거나, 혹은 필요이상 비아냥거리는 습성을 갖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나는 파리에 여행 온 관광객들에게서 그러한 습성을 자주 느끼곤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 관광객들은 “이 새끼들 잘 해놓고 사네.”라든가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라는 말을 자주한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서도 예술품을 감상하기보다는 ‘여기에 있는 것들은 대부분 훔쳐오거나 빼앗아왔다’는 것을 먼저 강조한다.

그것도 사실이니 뭐가 잘못이냐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혹 우리에게 사물의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을 부각시켜서 보는 습관이 배어 있지는 않나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권력자들의 부조리(권위주의 부패)를 비난한다.

그러나 자신이 권력에 다가갈 경우 역시 그 부조리를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선진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습성을 만들어내는 논리적 바탕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논리적 바탕을 갖추어야 한다.

나는 사상사적 측면에서 ‘상대주의’라는 지적 흐름이 현대의 논리적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자의 이질성 ․ 다양성 ․ 차별성 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관용하고 포용하는 지적 태도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중세 1000년을 암흑기라고 일컫는다. 그 기간 동안 태양이 다른 은하로 출장 갔다 온 것도 아닌데, 왜 1000년이라는 긴 세월이 암흑으로 덮여 있어야 했던가. 일반적으로는 왕권신수설을 앞세운 군주제와 교회의 권위를 앞세운 기독교가 그런 역할을 수행했다고 지목한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에 드러난 대행자에 불과하다. 중세를 지배한 숨은 세력은 ‘절대주의’라는 거대한 사상적 흐름이었으며, 그 이면에 깔린 ‘논리적 바탕’이 형이상학적 논법과 일원론적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이었다. 다시 말해서 중세 때는 하나의 절대적 인과시원(군주, 하나님)으로 세상을 재는 판단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수많은 지적 선각자들에 의해 상대주의라는 논리가 조금씩 그 형태를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천동설을 뒤엎고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고 주장한 갈릴레오의 지동설은 서구인들의 정신세계를 흔들어놓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이로 인한 지적 흐름은 전체성에 억눌려 있던 개체성의 눈을 뜨게 했고, 신성과 거룩함에 억눌려 있던 개인의 존엄성에 눈을 뜨게 했다.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혁명, 미국의 시민전쟁(남북전쟁) 등은 그 당시의 역사적 필요성에 의해 일어났다기보다는 르네상스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상대주의라는 도도한 지적 흐름을 중세의 둑이 더 이상 막아낼 수 없어서 터져버린 사건으로 봐야 한다.

교실 붕괴 현상과 개혁의 함정

내가 처음 접한 프랑스 대학의 교실 분위기는 한국과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수업 시작과 함께 학생들의 입실이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수업 시작 때 입실한 5분의 3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학생들이 수업이 끝날 때까지 찔끔찔끔 들어오는 것이었다.

심지어 급히 나가느라 책상에 걸려 넘어지는 학생도 있었다.

그런 광경을 처음 접한 나로서는 참으로 산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수업 중에도 잡담하는 학생들이 꽤 있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원래 소곤소곤 말하기에 시끄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바로 옆에 앉은 사람들은 꽤나 신경이 쓰일 텐데 주위 학생들이나 교수님은 주의를 주는 법이 없었다. 한국에서 툭하면 단체기합에다 무지막지하게 패기도 하는 선생님들을 겪은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문화였다.

내가 프랑스 교실의 예를 든 것은 서구 사회가 우리보다 훨씬 자유로움에는 틀림없으나 그것은 한쪽 모습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이 사소한 부문까지 철저하게 법제화시켜놓은 것을 보면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저런 사회에서 갑갑해서 어떻게 살까’ 생각할 것이다.

파리 시내에서는 절대로 빨래를 베란다에 널어놓을 수 없고, 창문틀 하나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아파트 전세계약에 있어서도 규칙이 적힌 대여섯 장의 서류에 각각 서명을 해야 한다.

벽에 박은 못 하나에 얼마씩 계산해서 보증금에서 제하는 규칙까지 들먹인다면 아마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너무 심하다고 말할 것이다.

이처럼 서구사회는 자유와 질서라는 서로 상반된 두 속성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수년 전, 한국의 교육부장관 주도하에 교육부문에 대한 개혁이 시도된 적이 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 개혁의 파장으로 인해 교실 붕괴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당시 개혁의 취지는 교실에서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권위주의를 제거해 학생들에게 자유를 돌려주고,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자율적 교육으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내세운 모토가 너무나도 옳고 정당한데 교실붕괴와 같은 왜곡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 역시 논리의 문제다.

즉 어떤 정책을 시행할 때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은 내세운 명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 정책의 이면에 깔려 있는 논리 공간의 속성을 따르게 된다.

다시 말해서 개혁에 내건 모토가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개혁의 주체들이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논리 공간을 갖추지 못하면 개혁은 실패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프랑스 대학의 자유로운 교실과 한국의 붕괴된 교실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표면상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논리적 바탕이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자유로움이 숨 쉴 수 있는 다차원적 논리 공간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인 반면, 후자는 기존의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 부정을 동반하는 극단적으로 이행된 이분법적 논리 공간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개혁론자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논리적 함정이 바로 이것이다.

 

개혁의 오류들은 어느 하나를 부정함으로써 다른 하나를 세우려는 데서 시작된다.

즉 권위주의와 위계질서라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에서 일자를 제거하면 그것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아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다시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을 가진 사회로 변형된다. 문제는 이때의 사회는 자아의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욕구와 이익에 내맡겨지게 된다는 점이다. 한국의 교실 붕괴현상은 바로 이러한 논리적 귀결이 만들어낸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를 넘어서

1987년 6월 10일, 재야 세력이 구심점이 된 전국 규모의 민주화 요구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는 전두환 정권의 강압정치가 극에 달해 있었고, 경찰의 박종철 씨 고문 치사사건으로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도 정점에 이르렀다.

따라서 시민들의 심정적 동조 여론을 등에 업고 학생운동도 급격하게 세를 넓혀가고 있었다.

특히 그 전날 시위에서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고 뇌사 상태에 빠진 이한열씨 사건이 6.10 항쟁의 열기를 지속시키는 불씨가 되었다.

여기에 88올림픽을 앞둔 대외적인 부담감이 더해져 당시 집권당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 씨가 이른바 ‘6. 29’민주화선언이라는 것을 공포하기에 이른다.

나는 참으로 우연히 그 격동의 현장에 있게 되었다.

6월 9일에는 친구에게 떠밀려 이한열 씨가 최루탄을 맞은 그 시위 현장에 있게 되었으며, 6월 10일에는 시위 집결지인 소공동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그 무시무시한 가투(가두투쟁)라는 것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 후 이한열씨 영정 앞에서 분향하는 내 모습이 기막히게 우연히 사진에 찍혀 다음날 신문 일면에 나오기도 했다.

이런 격변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나로서는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모색은 피할 수 없는 과제였다.

내가 생각하기에 독재 타도는 독재의 논리적 바탕을 민주적 바탕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 이후 우리의 민주화는 결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당시의 저항세력은 독재 세력이 기대어 있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하기 위하여 그 반대편에 있는 마르크시즘과 사회주의 체제로 달려갔던 것이다.

일반 시민들과 운동권이 연대한 6. 10항쟁이라는 텍스트에는 두 가지 중요한 해석의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시민들에게는 반독재, 민주화운동이었지만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체제 변혁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시민이 제기하는 반미는 과거에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든, 지금은 서로의 관계가 대등하지 못하다는 것(한미행정협정 등에 의한 것)과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너무 많은 이익을 빼앗아 간다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우리나라를 미국에 종속된 반식민지 상태로 보았다.

미국이 우리의 주권을 좌지우지하고 거기에 민중을 억압하는 독재정권이 빌붙어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반미자주에 올인하는 북쪽 이데올로기에 동조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주세력과 마르크시즘의 결합은 우리 민주화운동의 가장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마르크스 관점을 수용하고 마르크스가 지향하는 사회를 위해 감옥에 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젊은이들이 그 기나긴 역경의 터널을 뚫고 이제 우리 사회의 파워 엘리트로 성장했다.

사실 오늘날 386세력으로 지칭되는 개혁, 진보 세력들도 1980년대 마르크시즘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학계에서 이른바 ‘소장학자’라는 의미는 마르크스적 관점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마르크스적 관점에 암묵적으로나마 동의하지 않으면 지식인 행세를 하기 어려운 묵시적 규율이 있다고나 할까.

사실 우리가 어떤 이론이나 이즘을 받아들일 때 그 자체에 절대적 진릿값을 부여하고 거기에 빠져드는 경향성은 우리가 세상을 ‘형이상학적 논법’으로 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시즘의 문제는 마르크시즘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형이상학적 논법을 통해 수용한다는 데 있다.

마르크시즘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이분법적 논리 공간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의 일자가 가하는 ‘권위적 억압’에 대한 거부 ․ 부정 ․ 반발로 형성된다.

그러나 이분법적 논리 공간은 주변인이 중심에 들어가면서 그 역시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을 갖게 된다. 독재와 민주, 보수와 진보 세력들은 그 구호의 극단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적 논법과 일원론적 논리 공간 위에 동일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해체주의는 기존의 것을 해체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 그것을 새롭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즉 우리의 정치 지형 속에 박혀 있는 낡은 피라미드적 ․ 이분법적 논리 공간을 밝혀내고, 그것들을 새로운 다차원적 논리 공간으로 교체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내가 생각하는 전략은 다음과 같다.

 

우선 피라미드적 논리공간에 기반을 둔 수구세력에서 중도 우파를 분리해내고, 이분법적 논리 공간에 기반을 둔 체제 변혁세력에서 중도 좌파를 분리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를 다차원적 논리 공간에 기반을 둔 현대적 시민의식으로 한데 묶어야 한다.

이른바 극우와 극좌를 소수 세력으로 만들고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가운데 부분을 두툼하게 차지하는 확률분포 곡선을 그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좌파가 미워서 중도 우파가 극우의 목소리에 동참하거나, 우파가 미워서 중도 좌파가 극좌와 어울린다면 정치적 후진 상태는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도를 향하여

우리의 이른바 민주 세력이 지목하는 독재자, 독재 정권, 독재 이데올로기는 사실 박정희와 그 정권, 그 이데올로기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박정희 신화를 깨는 것은 보수 세력의 의식 속에 세워져 있는 상징체계를 해체하는 작업이 되는 것이다.

박정희 신화의 공과는 뚜렷하다.

공은 경제발전이고 과는 정권유지를 위한 인권 탄압이었다.

박정희 옹호자들은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국민 전체가 강력하게 결집하는 것이 필요했고, 따라서 개인의 요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억압은 피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반대자들은 그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 등으로 정적들을 제거하고 유신헌법 등으로 장기집권 체제를 수립함으로써 반민주적 인권 탄압과 권위적 독재 정치의 폐해를 정치사에 남겨놓았다고 주장한다.

나는 박정희 체제의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싶다.

돌이켜보면 박정희로 상징되는 우리의 근대화 세력은 그 시대가 요구하던 소임을 훌륭히 완수했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그들의 소임은 거기까지였다.

거기서 파생된 자유의 문제, 분배의 문제, 인권의 문제는 이후 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어떤 부문의 개혁을 원한다면, 각각의 주체들이 타자성을 인정하고 상위 단계의 보편성을 추출해낼 수 있는 다차원적 논리 공간을 구성해내야 한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사고의 다양성 추구가 기존 세력들이 거부해온 다른 명제를 개발해서 거기에 새로운 절대적 진릿값을 부여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진정한 다양성은 자신의 의도에 맞는 명제를 골라 그 신념을 깊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태에 관련된 서로 상반된 수많은 명제나 관점들을 다 제시함으로써 사유의 폭을 넓고 깊고 유연하게 하는 데서 이루어질 수 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처음으로 일을 시작한 곳은 조그만 가내공장이었다.

그때 내가 한 일은 500원짜리 동전 크기만한 양철 가운데에 동그란 구멍을 뚫는 일이었다.

양철 조각을 기계 밑판에 놓고 기계 옆에 붙은 자동차 핸들같이 생긴 손잡이를 돌리면 위에서 쇠막대기가 내려와 밑에 놓아둔 양철에 구멍을 뚫었다.

나는 그것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알지 못한 채 하루 종일 그 일에 매달렸다.

어린 나는 똑같은 일을 아무 생각 없이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지만, ‘앞에 일하던 애는 하루에 몇 개를 찍어냈는데’라는 비교에 조바심을 냈다.

그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이 2,000원이었다.

나는 그 돈을 당시로서는 아무 필요도 없었던 소설책 한 권을 사는 데 써버렸다.

중학교 3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오던 『귀향』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그 책을 왜 사고 싶었는지는 지금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당시 우리 집 형편은 참으로 어려웠다.

아침, 점심, 저녁을 수제비, 칼국수, 수제비 순으로 끼니를 때웠다.

겨울에는 머리맡에 놓아둔 물이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방에서 결혼한 큰누나를 제외한 5남매와 어머니가 붙어 자야만 했다.

이런 형편에 내가 받은 2,000원의 월급이 어머니에게는 얼마나 필요했겠는가.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고등학교에 보내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그 돈을 생활비에 보태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 후 목욕탕 보일러공 등 여러 가지 일을 거치다가 진양트레이딩 이라는 공장에서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내가 그곳에서 받은 첫 월급이 1만원을 조금 넘었던 것 같다.

그 때부터 7년 후 직장을 그만둘 때까지 생활비를 보태며 참으로 어렵고 힘든 청년기를 보냈다.

직장을 그만두던 그해 내 나이 27세였다.

나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해 다음해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남겨놓은 발자취는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 단단한 지층으로 남아 있다.

그들이 발휘했던 역량은 논리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른바 ‘박정희식 경제개발 모델’이 성장 동력을 얻는 것은 형이상학적, 피라미드적 논리공간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산업기반이 아직 조성되지 않은 후진 상태의 국가가 성장 동력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에서 강력한 수직적 축을 세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축은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었다.

사실 상품의 가격 경쟁력이라는 것은 저임금에다 순종적이고 훈련된 노동력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런 노동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일자에 의해 개체성이 억압되어야 한다.

즉 피라미드적 논리공간이 바탕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시스템은 그 자체 내에 파국의 논리를 스스로 잉태한다는 점이다.

한 국가가 가격 경쟁력으로 상품의 국제 경쟁력을 갖게 되면 경제가 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이 높아지고, 이러한 소득의 향상은 사회적 민주화를 확대시키게 된다.

즉 억눌려 있던 개인의 요구들이 튀어나오고 불필요한 비용으로 억눌렀던 복지비용이 상승하게 되면서 전체적 효율성이 서서히 붕괴되는 것이다.

중진국 선에 들어서더라도 문제를 안기는 마찬가지다.

후진적 성장 동력(가격경쟁력)을 잃은 상태에서 선진적 사회 구성 방법과 성장 동력을 미처 갖추지 못한 상태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술력에 앞서가는 선진국과 가격 경쟁력에서 앞서가는 후진국 사이에 포위당하는 샌드위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양상이 바로 이 중진국 병의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요사이 우리 기업과 정부는 10년 후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차세대 먹을거리를 찾아 나서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그 대부분이 IT산업 쪽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느 한쪽 산업만을 특화시킨다는 것은 경제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최근 우리 경제는 수출은 잘되는 데 내수는 무너지는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내수 침체와 중소기업의 붕괴로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데 첨단 산업을 가진 일부 대기업의 선전이 만들어낸 경제의 착시현상이다.

한 국가의 전체적인 상품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가 브랜드의 이미지를 높이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한 기업이 만들어내는 상품의 가치는 그 국가의 총체적인 국가 이미지와 비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상적인 삶속에서 만들어내는 모든 것, 즉 표정, 분위기, 감정, 말투, 생각, 지식, 시스템 등의 가치를 높여야만 우리는 선진국가 대열에 설 수 있다.

새로운 인간형

인류 초기의 논리는 자연과 외부 환경에 종속당하는 ‘귀속적 논리’와 반복적 경험으로 지식을 축적해가는 ‘관성적 논리’였다.

이처럼 자연과 주변 환경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귀속적 논리에서 신화와 원시 종교가 탄생되었고, 이것의 인과시원을 찾아 들어가는 형이상학적 논법이 각기 흩어져 있던 인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논리적 바탕이 되었다.

즉 형이상학적 논법에 의해 상위단계의 동일성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이 씨족공동체들을 부족국가로 통합시켰던 것이다.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이 가장 강력한 이념으로 나타났던 것은 유대인의 민족종교다.

그것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강력한 추진력을 추출하고 결집시키기에 유리했다.

우리는 유대인의 민족종교에서 발전되어 나온 가톨릭이 유럽 문명을 지배했을 때 서구 세계가 가장 강력한 제국을 형성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가톨릭 자체가 가진 종교의 힘이라기보다는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논리 공간의 힘 때문이었다.

 

즉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려진 절대적 일자(하나님)를 향해 모든 개인들이 나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피라미드적 논리공간은 언제나 가장 강력해졌을 때 파국을 맞이하는 운명을 겪는다.

즉 강해질수록 자체 내에 종속된 개체(개인, 민족, 국가)들을 그만큼 억압해야 하고 그럴수록 그에 대한 저항도 커지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 이후에 형성된 서구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은 문명의 충돌이라기 보다는 사실은 ‘논리의 충돌’이었다.

즉 기독교의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과 거기에 대항하는 이슬람의 이분법적 논리공간이 충돌을 일으켰던 것이다.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에 바탕을 둔 발상은 다양하고 이질화한 세계의 경험을 담아내는 논리적 바탕이 될 수 없다.

중국이 중화사상을 민족적 결집의 구심점으로 삼는다면 단기적으로는 유용하고 효율적인 전략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 외부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으로는 결코 초국적 헤게모니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나중에 피라미드적 논리공간을 다차원적 논리 공간으로 바꾸느라 엄청난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오늘날 한국이 겪는 혼란의 근저에도 이러한 ‘논리의 문제가 있다.

일자로서 독재는 무너졌지만 그 논리적 바탕이 되는 피라미드적 논리 공간은 여전히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거기에 대항한 이분법적 논리 공간에 자리한 자아가 다시 일자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가 대립과 분열로 갈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를 대변하게 될 ‘새로운 논리적 바탕’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 내가 강조해왔던 인식론적 논법과 다차원적 논리 공간이다. 유아기 때 습관화한 질료의 흐름은 성인이 되어서도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선진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되는 가정과 학교에 인식론적 논법과 다차원적 논리 공간을 이식시켜야 한다.

 

교육의 장에 인식론적 논법과 다차원적 논리 공간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학습 방법이 주관식, 대화식, 토론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사태에 관련된 모든 경우의 수(봄, 관점, 견해, 패러다임) 등을 고려하고 예상하고 전제하는 사고의 습관을 기를 수 있다. 그것이 정치나 경제 . 문화 등과 같이 거시적인 영역을 변혁시키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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