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호시우보(虎視牛步)

228

 

호시우보(虎視牛步)


북한이 6자 회담에 다시 참가하겠다고 밝혀 북 핵실험 이후 고조됐던 한반도 위기상황은 잠시 숨 고르기 들어갔다.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를 비롯하여 미국의 북한 고립화 강화, 중국과 한국의 에너지 및 경제지원 감축 등의 사태에 직면하여 북한이 시간 벌기에 나선 것으로 보여진다. 짧게는 11월 7일로 예정된 미국의 중간선거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의미도 숨어 있는 듯하다. 행동의 타이밍을 잡는 데 있어 북한은 참으로 능수능란하다.

평화를 향한 길, 지루한 공방 속 넘어야 할 과제 많아

현재 미국 주요 언론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이번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하원의 다수당이 되는 것은 물론 상원마저도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북한으로선 지난 2000년의 향수를 꿈꾸며,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기대해 봄직도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2000년은 북한 김정일 체제의 봄이었다. 6.15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공동선언 채택에 이어, 10월엔 북한 조명록 차수가 미국을 방문하여 클린턴 대통령을 면담했고 북미 공동 코뮤니케가 발표됐다. 그 후 울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 답방을 통해 클린턴의 방북 및 북미관계 정상화(=북한 김정일체제 인정)가 논의되었다. 북한의 오랜 염원이 해결되는 듯 했으나, 2001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시가 승리함으로써 물거품이 되었다. 더 나아가 북한은 외교적 겨울을 맞아야만 했다. ‘악의 축’이란 표현으로 압축되는 부시 정권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맞서 북한은 한편으론 6자회담에 참가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미사일 시험과 10.9 핵실험에 이르기까지 체제생존을 위한 강온전략을 구사해왔다.

만약, 미국의 민주당이 이번 중간선거에서 승리하고 더 나아가 2008년 초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지난 2000년과 같은 북한의 봄은 다시 올 수 있을까? 그 전망은 밝지 않다. 민주당이 지금 북한의 핵실험으로 부시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이는 선거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001년에 발생한 9.11테러 사건은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 설령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다 해도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적 관심은 역시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일 것이고, 북한은 부차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제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쟁의 위험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고, 오히려 우리가 북한의 핵 인질이 되어버렸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려면 53년 7월의 정전협정이 휴전협정, 평화협정으로 대체될 때, 즉 20세기의 산물인 냉전체제가 종식되어야 가능하다. 그 때에 비로소 한반도에 평화의 봄이 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문제는 동북아 차원의 지역문제인 동시에 세계적인 문제다.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선언했지만 대북 금융제재 완화문제부터 기존 6자회담의 성과물인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이행방안을 놓고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 북미 관계 정상화, 주변국의 대북경제협력 지원, 그리고 북한 핵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삐걱거리며 갈 것이고, 한 두 해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 여러 해가 걸릴 것이다.

10년 안에 반드시 이뤄질 남북관계 변화에 대비해야

하지만, 향후 10년 안에 남북관계의 질적인 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미중 간에 최근 ‘북한체제 전환’(regime change) 논의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을 예의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최대 우방인 중국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상하이 엑스포 등 대규모 국제행사를 목전에 둔 마당에 미사일과 핵실험 같은 북한의 긴장고조 활동을 그대로 묵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북한 김정일이 현재와 같은 경색국면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권력의 속성이나 올해 65세인 김정일의 생물학적인 나이를 감안하더라도 10년 이상 권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문제는 오히려 한국이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이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는 것과는 달리 당장 내년에 대선전이 시작되면 국내 여론이 분열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 핵 문제로 인한 한반도 위기관리와 더불어 평화체제 구축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우리도 10년 앞을 내다보며 호시우보(虎視牛步), 즉 호랑이처럼 매섭게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소처럼 우직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허 욱
· LIBRA컨설팅(주) 대표
· 前 CBS 보도국 기자
· 前 CBSi(주) 대표이사
· 前 인터넷신문 업코리아 편집국장
· 현재 공공정책과 경영전략, SystemEngineering 부문 컨설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