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자료/인성교육

(430)
버큰헤드호의 구조 원칙 버큰헤드호의 구조 원칙 대영제국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1852년, 영국 해군의 수송선이었던 버큰헤드호는 군인과 민간인 638명을 태우고 아프리카 남단을 항해 중이었습니다. 케이프타운에서 65km 떨어진 바다를 지나던 버큰헤드호는 2월 26일 새벽 2시, 그만 암초와 충돌하고 말았습니다. 서서히 침몰하던 배는 기울기 시작하더니 결국 차가운 바닷물이 들이닥치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완전히 허리가 끊긴 배에는 고작 3척의 구명정이 있었는데 1척당 60명, 전부 합해 180명밖에 탈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곳은 사나운 상어 떼가 우글거리는 곳이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풍랑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그때, 그 배에 타고 있던 영국군 74 보병연대의 지휘관인 알렉산더 세튼 중령은 병사들을 갑판에 집..
아이와 어른의 생각 동심이 가득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래 문장을 보면 무엇이 생각나나요?" 1. 이건 작지만 들어있을 건 다 들어 있어요. 2. 아빠가 출장을 가도 계속 남아 있는 거예요. 3. 어른들이 어린이가 다 갈 때까지 보고 있어요. 4. 이건 딱 손가락만 해요. 5. 엄마랑 목욕하면 이걸 꼭 해야 해요. 6. 이게 있으면 물건을 못 버려요. 7. 우리 엄마가 기분 좋을 때 아빠한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무지 화나면 혼자서도 해요. 8. 엄마가 아빠랑 외출할 때 맨날 이걸 해요. 9. 차에 친구가 안 타면 안 탔다고 소리치는 거예요. 10. 엄마가 아빠에게 닭고기를 주실 때 그중 제일 맛있는 부분을 골라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답들이 떠오르셨나요? 아이들은 아래와 같은 순수한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만나면 피곤한 사람 'personal space(개인 공간)' 란 침범 받고 싶지 않은 일정한 자기 공간을 뜻하는 말로 이 개념을 정립한 인류학자 에드 워트 홀에 따르면 사람은 누구나 타인이 일정한 거리 이내로 접근해 오는 것에 긴장감과 거부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가족과는 20cm, 친구와는 46cm, 동료와는 1.2m 정도의 거리가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는데 이는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심리적 거리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래서 알아본 만나면 피곤한 사람의 4가지 특징 1.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강요하는 사람 2. 본인 마음대로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 3.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일삼는 사람 4. 신뢰관계가 없는데 사적인 질문을 하는 사람 이 밖에도 진심이 담긴 이야기가 아닌 의도가 뻔히 보이는 질문을 한다..
☘ 3초의 비밀 알고 있습니까? ☘ * 열흘만 살다가 버리는 집이 누에고치 입니다. * 6개월만 살다가 버리는 집이 제비들의 집입니다 * 1년을 살다가 버리는 집이 까치들의 집입니다. 그런데 * 누에는 집을 지을때 자신의 창자에서 실을 뽑아 집을짓고 * 제비는 자기 침을 뱉어 진흙을 만들어 집을 짓고 * 까치는 볏 집을 물어 오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빠져도 지칠줄 모르고 집을 짓습니다. * 날짐승과 곤충들은 이렇게 혼신을 다해 집을 지었어도 시절이 바뀌면 미련없이 집을 버리고 떠나 갑니다. * 그런데 사람만이 끝까지 움켜 쥐고 있다가 종내는 빈손으로 떠나게 됩니다. * 사람을 위해 돈(화폐)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돈에 너무 집착하다 보니 사람이 돈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이 있는데 너무 비싼 옷을 입으니 내가 옷..
한 위대한 한국인을 무릎 꿇고 추모하며 양상훈 50년 전 1965년 7월 19일 오전 0시 35분 하와이의 한 노인 요양원에서 나이 아흔의 한국인 환자가 숨을 거두었다. 한 달 전부터 피를 토했다. 7월 18일엔 너무 많은 피가 쏟아졌다. 옆에는 평생 수발하던 아내, 대(代)라도 잇겠다며 들인 양자와 교민 한 사람밖에 없었다. 큰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숨이 끊어졌다. 어떤 어려움에도 우는 법이 없었던 아내가 오열했다. 전기 작가 이동욱씨는 영결식의 한 장면을 이렇게 전했다. 한 미국인 친구가 울부짖었다. "내가 너를 알아! 내가 너를 알아! 네가 얼마나 조국을 사랑하는지… 그것 때문에 네가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지. 바로 그 애국심 때문에. 네가 그토록 비난받고 살아온 것을. 내가 알아…." 그 미국인은 장의사였다. 그는 1920년에 미국서 죽..
진짜 위대한 사람 가난하지만, 심성이 착한 한 청년은 신문을 볼 때마다 답답하고 슬프고 우울했습니다. 신문 뉴스에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이야기가 가득했고, 힘과 권력을 가졌지만 부패한 사람들의 행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청년은 세상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에게 힘과 권력과 지혜가 있다면, 세상을 위한 더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해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배움도 짧고 가난한 청년은 세상을 위한 일을 어떻게 시작할지조차 몰라, 영국의 철학자인 토머스 칼라일에게 찾아가 조언을 청했습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제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세상을 위해 더 좋은 일을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단순한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제가 지금 하는 일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
최고의 명예 출처 따뜻한 하루 영국 귀족 자제들이 주로 가는 영국 최고 명문사학 중 하나인 이튼칼리지 출신 중에서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5,619명이 참전해 1,157명이 전사했고,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4,690명이 참전해서 748명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1차 세계대전 중 고작 15세의 나이에 차량 정비 장교 보직을 맡았었고, 여왕의 차남 앤드류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습니다. 우리도 삼국 시대, 신라의 귀족 자제로 이루어진 화랑은 전쟁터에서 항상 가장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습니다. 김유신의 아들 김원술은 당나라와의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 전투에 뛰어들려는 것을 부하 장수들이 김원술의 말고삐를 잡고 퇴각하여 살아 돌아올 수 있었습니..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다 (호머 헐버트 박사) 뛰어쓰기도없고쉼표도없고 마침표도없는글을읽는것은 매우불편한일입니다 미국인 호머 헐버트 박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위에 글처럼 불편하고 답답한 문장을 읽고 쓰면서 지내고 있을지도 혹시 모릅니다. 1886년 7월 23세의 청년이었던 호머 헐버트는, 조선의 청년들에게 서양문화와 영어를 가르쳐 달라는 조선 정부의 요청을 받고 제물포를 통해 조선에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조선에서의 생활을 시작한 호머 헐버트는 조선인보다도 조선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조선에 들어온 지 3년 만에 '선비와 백성 모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의 '사민필지'를 편찬하였습니다. 이 책은 순 한글로 만들어진 조선 최초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의 한글 사랑은 대단했습니다. 어느 순간 미국인 선교사가 아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