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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영재교육

평준화 제도 내에서 수월성 교육은 불가능한가?

김미숙(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센터소장)
E-mail: meek@kedi.re.kr
발행일자: 2007.10.11
 
평준화 제도 내에서 수월성 교육은 불가능한가?

평준화 제도 내에서 수월성 교육은 불가능한가?

 

 

 

   1. ‘학교 평준화’와 ‘학생 평준화’

 

   평준화 정책과 수월성 교육을 논의할 때 우리가 다소 혼동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한 예로 학교 평준화와 학생 평준화 간의 혼란이다. 고교 평준화 정책은 학교 서열화와 학교 간 교육격차를 해소하고자 하는 ‘학교 평준화’를 추구하는 정책이지, 학생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시키는 ‘학생 평준화’를 추구하는 정책은 아닐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수월성 교육과 평준화 정책이 서로 상반되는 개념인 양 논의되고 있는 현상은 적절하지 않다. 평준화 정책은 학생을 시험으로 선발하여 뽑지 않음으로써 학교들 간 수준이 크게 다르지 않고 고른 모습으로 출발하고 존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나 각 학교 안에는 당연히 우수 학생부터 중위권, 하위권에 이르는 다양한 수준의 학생들이 존재하며 이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또한 실제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고 다른 학교 입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의 학생을 받아 그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키는 사례가 우수사례로 종종 보고되고 있으며 이러한 교육이 바로 수월성 교육이다. 따라서 평준화된 학교에서도 방법과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수월성 교육이 가능하다.

 

   2. ‘수월성 교육’과 ‘영재교육’

 

   또 하나의 혼란은 수월성 교육과 영재교육에 대한 오개념이다. 수월성 교육의 키워드는 ‘다양성’과 ‘우수성’이다. 여기서 우수성은 교육 결과의 우수성을 말하는 것이지 교육대상자의 우수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성은 수월성 교육의 가치와 방법에 관한 것이다.

   

   즉 수월성 교육은 다양한 수준의 학생 개개인이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성취를 이루도록 추구하고 지원하는 교육을 의미한다. 따라서 수월성 교육의 대상자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학교 안의 모든 학생’이며 수월성 교육은 모든 학교들이 추구해야 하는 교육의 본질적 목표이다.

 

   간혹 ‘수월성 교육’을 ‘우수학생을 위한 교육’이라고 이해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수월성 교육에 대한 잘못된 이해이다. 수월성 교육은 우수학생 뿐 아니라 중하위권 학생들을 위한 교육적 목표이기도 하다. 중위권이나 하위권 학생을 위한 수월성 교육이 있듯이 우수학생을 위한 수월성 교육도 그러한 차원에서 의미 있는 일이며, ‘영재교육’은 수월성 교육의 한 부분으로서 모든 학생 중 우수학생에 초점이 맞추어진 수월성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 안에서 다양한 수준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에 대해 좀더 다양한 교육과정과 교수학습방법이 제공될 수 있다면 평준화 제도 안에서도 수월성 교육 및 영재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

 

   3. 영재교육에서의 ‘다양성’과 ‘우수성’

 

   영재교육의 키워드도 수월성과 마찬가지로 ‘다양성’과 ‘우수성’이다. 즉 다양성은 수월성 교육 뿐 아니라 영재교육의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재교육에서의 우수성은 교육 결과 뿐 아니라 교육 대상자의 우수성도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 더 포괄적 개념을 가진 수월성 교육과 다르다.

 

   즉 우수한 영재성을 보이는 학생에게 그에 맞는 방법의 다양성을 가지고 결과의 수월성을 취득하고자 하는 것이 영재교육이다. 따라서 영재교육에서 ‘우수성’은 대상자와 결과에 대한 것이고, ‘다양성’은 방법에 대한 것이다.

영재교육을 제공하는 방법으로는 일반 정규교육과정으로 제공하는 방법과 학교 교육과정과는 별도의 추가적인 프로그램 형태로 제공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과학고와 한국과학영재학교는 전자의 형태로 분야 특수성이 인정되는 과학 분야에서 영재성을 보이는 학생들을 선발하여 일반학교에서 제공하기 어려운 차별화된 특화된 교육과정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과학과 예술과 같이 분야특수적인 영재성이 인정되는 경우 이를 위한 특별한 학교가 존재하기도 한다.

 

   다만 그 외 일반적인 지적 능력이나 미래 창의적 성취에 대한 잠재력 등을 보이는 영재들의 경우는 특수 분야 학교로 따로 분리해서 교육을 제공하기 보다는 일반학교 내에서 수준별 학습이나 차별화된 교육과정 형태로 영재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인 영재교육의 형태이다. 학생들의 미래 성취 가능 영역을 너무 어려서부터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창의적 인재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통합적인 사고 교육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학교 여건을 조성하고 제대로만 한다면 평준화 제도의 틀 안에 있는 일반학교 안에서도 얼마든지 영재들에게 적합한 수월성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며 실제로 대부분의 선진국형 영재교육은 일반학교 내에서 다양한 수준의 학습자들을 위한 맞춤형 차별화 교육으로, 학습자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에서 영재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4. ‘다양성 존중’과 ‘특권 부여’

 

   수월성 교육의 중심에 특목고 등의 영재교육이 있고, 형평성 논의의 중심에 대학진학에서의 유불리 문제가 놓여 있다. 영재교육은 위에서 기술한 대로 평준화 교육에서 자칫 간과하기 쉬운 학습자의 다양성을 인정해서 학습자에 맞추어진 차별화 교육을 제공하라는 것이지 대학 입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대입 진학의 특권을 부여하라는 것이 아니다.

 

   외국의 어느 사례에서도 영재교육대상자에게 대학 진학에서의 혜택을 보장해 주는 곳은 없다. 대학전형의 내용이 학생의 학업성취를 비롯하여 개성과 창의성, 미래 잠재 가능성, 성취동기, 리더십 등 다양한 요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고교 교육과정의 내용(내신)이 위의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영재교육을 받은 학생들도 예외 없이 고교에서 경험한 교육내용을 가지고 일반 학생들과 경쟁해서 대학으로 진학하게 된다.

   

   물론 고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대학 진학 전형 간의 연계가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영재학생들에게 교육의 내용적인 측면으로 인한 유리함은 있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특목고의 문제가 ‘다양성’과 ‘특권’을 혼동한데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혼동으로 인해 평준화 정책이 수월성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고 수월성을 위해서는 형평성의 훼손이 불가피한 것으로 잘못 전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의 내용면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수월성 교육 정책이 진행되어야지 자꾸 교육외적인 것에 예외적인 조항을 두어 특권을 제공하는 쪽으로 진행되어서는 특목고든 영재학교이든 실효 없이 파행을 거듭할 뿐이며 일반 국민들의 영재교육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에도 설득력이 떨어질 것이다.

 

   5. ‘영재교육’과 ‘입시교육’

 

   특별하고 예외적인 교육환경을 보장해 주면 우수인재가 더 높은 성취를 할 것이라는 기대가 특목고의 설립을 정당화하고 있지만 실제로 특목고를 통해 해당분야의 영재교육이 취지에 맞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증거를 찾기가 현재로서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며, 다양성 배려가 아닌 특권적인 교육적 배려는 영재의 창의성 신장의 결과를 낳기 보다는 입시에 유리한 교육이 되고 있다는 것이 선행 연구결과들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따라서 수월성 교육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형평성이 훼손되어야 한다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으며, 수월성과 형평성은 한쪽이 높아지면 한쪽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호 대치관계의 개념이 아니라 모두가 높아질 수도 있고 모두가 낮아질 수도 있는 서로 독립된 개념이다.

 

   그러므로 특목고나 영재교육의 정책 방향은 어떻게 하든지 수월성과 형평성을 모두 높여주는 방향으로 잡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즉 불필요한 특권적 배려는 제거하고, 창의성 신장 교육을 위한 교육과정의 융통성 구현, 우수교원 확보를 위한 단위학교 운영의 자율성 제고, 질 관리 체제 보완 등 실질적인 교육효과로 이어지는 부분에 대한 개선으로 수월성 교육을 위한 교육적 에너지가 집중되어야 한다.

 

김미숙 연구위원은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로체스터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동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센터 소장, 교육인적자원부 지정 영재교육원 원장, 중앙영재교육진흥위원회 위원, 국제학술지 Pacific-Asian Education 부편집장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연구 실적으로는 영재 리더십 검사도구 및 프로그램 개발, 영재교육 강화 사업성과 지표평가 연구, 시ㆍ도 교육청 영재교육기관 프로그램 운영평가, 중학생 영재의 지적ㆍ정의적 특성에 따른 효과적인 교수학습 전략 탐색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