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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영재교육

[사이언스 에세이] 쓸모없고 설명 힘든 기초과학

                                한국일보 2007.10.7

 

초정밀 레이저분광기술로 200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테오도로 핸슈 교수는 노벨상 수상 기념강연 중 재미있는 그림을 하나 보여줬다. 어미 닭이 앞에 놓인 반원 모양 창살 건너편에 떨어진 모이를 쪼려고 하지만 창살에 막혀서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한편 병아리는 호기심에 이끌려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창살을 돌아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모이를 먹을 수 있다. 목적지향적 연구보다 호기심에 이끌린 연구가 때로 훨씬 훌륭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기초과학 연구가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따지는 것은 옥시모론(모순어법)이다. 기초과학의 연구 결과 중에 엄청난 기술혁명을 가져온 경우가 많이 있지만, 애초부터 그런 기술개발을 염두에 두고 하는 것이 기초과학 연구는 아니다. 그런데도 기초과학 연구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제안서에는 연구의 파급효과, 즉 쓸모가 있느냐 하는 것을 쓰도록 되어 있다.

 

정수론은 디지털 통신과 암호기술에 엄청난 혁명을 가져왔다. 정수론 연구가 애초부터 이런 기술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추상수학 연구는 유용한 기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혹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는 없지만.

국민의 세금이나 기부금으로 연구비를 대면서 유용성을 따질 수 없다면, 적어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기초과학은 당장의 유용성을 따질 수도 없지만, 일반인들에게 그 내용을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몇 년 전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가 증명되었다고 떠들썩했다. 다행히도 페르마의 문제는 초등학생들이라도 관심만 있으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추상수학문제는 일반인뿐 아니라 수학자들에게도, 답은 물론이고 문제 자체도 이해하기 어렵다. 2006년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은 고등과학원 황준묵 교수에게 그가 해결한 ‘라자스펠트’ 문제에 대해 몇 번 물어보았지만,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나도 여러 사람에게 내 연구를 신이 나서 설명하지만 비슷하게 받아들일 것 같다. 생물ㆍ의학ㆍ환경 분야는 사람들이 건강에 관심이 많고 언론보도도 많아서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물리화학 등은 직접 관련된 전문가가 아니면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 제로존 이론이라는 유사과학이론을 보도하여 물의를 일으킨 월간지 기자는, 과학자들이 과학을 일부러 어렵게 만들어 일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아주 어려운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 몇 명이 작당을 하여 세상을 속일 수도 있지 않을까. 벌거숭이 임금님 이야기에 나오는 옷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경우다. 황우석 사태를 거친 우리로서는 그런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바로 그런 이유로 과학자들의 윤리의식이 중요하다. 확인도 하지 않고 서로 찬양하는 유사과학과 달리, 과학자들은 확인이 될 때까지 속을까 봐 의심을 가장 풀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핸슈 교수가 호기심에 이끌려 연구한 레이저분광학은 앞서 말한 그 유사과학자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값비싼 자연상수 측정실험과 초정밀시간측정의 필수적인 기술을 제공한다. 그 덕분에 오늘날 항법과 통신이 가능해지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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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완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