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영관리/CEO

느티나무는 한국인이다(이규태 과학 칼럼)

이규태의 과학 칼럼
▲ 느티나무  ⓒ
봄이면 솜을 날려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개량나무들을 느티나무로 바꿔 심는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나라 기후 풍토에서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병들지 않으며 가장 장수하는 나무가 느티나무요, 보호받고 있는 1만4천 그루의 보호수 가운데 절반인 7천 그루가 느티나무이며 그중 1000년 이상 되는 노거수가 25그루나 된다. 한국 사람의 체형이나 체질, 그리고 사고방식이 한국 풍토와 밀접하듯이 한국 풍토에 적응한 느티나무는 한국인이다.

다빈치의 명화 「수태고지(受胎告知)」만 보더라도 배경의 나무들이 마치 자로 재어 그려놓은 것처럼 좌우가 대칭이 돼 있으며 사실 유럽 나무들이 그렇게 균형미가 있다. 레스피기가 음악으로 그 수직감을 냈다는 로마의 소나무들은 늘씬하고 곧게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것이 아름답고 쓸모가 있다면 느티나무는 수형이 들쑥날쑥 아름답지 못하고 가지가 밑동 가까이부터 돋아나 늘씬하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장자는 재목으로 쓸 만한 나무를 문목(文木), 쓸모없는 나무는 거목이라도 산목(散木)이라 했는데 느티나무는 산목이다.

집을 짓는다던지 배를 만드는 등 재목으로는 부적하지만 비중이 0.7로 여느 어떤 나무보다 단단하고 치밀한 데다 목리(木理), 곧 무늬가 아름다워 일상생활의 목기나 가구로는 이보다 좋은 재목이 없다. 큰 재간은 몰라도 잔 재간 좋기로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인은 느티나무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이민촌은 한국인을 비롯, 일본인 중국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밤송이 같은 낯설고 고약한 어저귀 농사에 가장 빨리 적응한 것이 한국인이요, 병원나들이도 중국이나 일본 이민에 비해 10명에 한 명꼴이었다는 보고가 있다. 곧 부적하고 낯선 여건에도 잘 착근하여 자라고 병충해에도 강한 한국인은 느티나무다.

많은 나무들이 집단이었을 때 잘 자라고 고독할 때 발육이 지체된다던데 느티나무는 독야청청이 적성이요, 그래서 정자나무로서 한 그루만으로 그 그늘에 많은 사람을 쉬게 하고 한 그루만으로 방풍림 구실을 하기에 그 쓸모가 많은 것으로 미루어 혼자이어야 똑똑해지는 느티나무는 한국인이다.

이규태 고문은 조선일보에 '이규태 코너'를 인기리에 연재하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논객이다. 1959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한 후 46년간 기자, 특파원, 부장, 편집국장, 논설위원, 주필, 전무이사,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국인의 의식구조」등 한국학 관계 100여 종이 있다.
/이규태 조선일보 고문  


2006.02.12 ⓒScience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