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형성과 발달은 그런 오감의 작동 상태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욕구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표정이나 손짓 발짓, 간단한 음성 기호만으로는 그 표현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했을 것이므로 말이 생성되었고,그것을 보다 넓고 오래 공유하고자 한 욕구가 문자를 만들었을 것이다.
뜻글자인 한자와는 달리 순 우리말 한글은 자연의 파장을 그대로 옮긴 시늉말이 많은데 ‘너울너울’과 같이 사물의 모양이나 움직임을 흉내 낸 ‘꼴시늉말’과 ‘개굴개굴’과 같이 사물의 소리를 흉내 낸 ‘소리시늉말’로 나뉜다.
꼴시늉말은 그것의 생김새를 환하게 그려 보여주고, 소리시 늉말은 그것의 파장과 가락을 들려준다. 우리말은 그렇게 오감을 자극하며 언어 자체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소리, 말할 수 없는 마음을 듣다>(최승범 지음. 이가서)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 책이다.
우리의 삶과 애환, 정서가 녹아 있는 107가지의 소리들을 채집해 그 낱낱의 생성 과정과 쓰임새를 밝히고 있다. 은어와 저속어를 남발하고 있고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중심으로 일상 언어의 변형과 왜곡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시점이어서 이 책이 더욱 반갑고 의미 있다. 우리의 옛시조, 야사, 민담, 민요,소설, 시, 에세이 등에서 찾아낸 소리시늉말들을 소개하고, 일본과 중국 등의 자료를 통해 각국의 소리 형태를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아름다운 우리 소리를 따라가 보자. 우선 구수한 향기가 감도는 맛의 소리들이다.
‘좌르르 톰방톰방’은 시름을 잊게 하는 술 거르는 소리이고
‘호록후루룩’은 국수 먹는 소리,
‘뿔럭뿔럭 볼락볼락’은 팥죽 끓는 소리다.
‘쏘왈랑 쏘왈랑’은 솥 가시는 소리이고
‘홰홰칭칭 홰홰칭칭’은 맷돌 돌리는 소리,
‘쩌락쩌락’은 인절미 떡 치는 소리,
‘콩닥콩 콩닥, 쫄기덕 쿵 쫄기덕 쿵’은 떡방아 찧는 소리다.
이어서 일과 관련된 소리. ‘사운 사운 사운’은 쟁기질 소리,
‘철뜨럭궁 철뜨럭궁’은 모 찌는 소리,
‘쩔렁쩔렁 딸랑딸랑 쫄랑쫄랑’은 말방울 소리,
‘또드락 딱딱’은 다듬이 소리다.앞의 것이 사람이 내는 소리라면 다음과 같은 자연의 소리도 있다.
‘서걱서걱 오슬오슬’ 갈댓잎소리,
‘동글동글 자갈자갈’ 조약돌 부딪히는 소리,
‘똘랑똘랑’ 낙숫물 소리,
‘주루루룩 솰솰’ 물소리,
‘혜혜랭랭 혜혜랭랭’ 매미 소리,
‘왜앵 부부붕 부부붕’ 풍뎅이 소리 등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귀로는 들을 수 없는 마음의 소리로 꽃피는 기척을 ‘왁자히 자지러질 듯 눈부신 웃음’이라고 했고, 회초리 소리를 ‘위엄과 사랑의 소리’라 했다 피리 소리는 ‘바람으로 와서 바람으로 가는 소리’이며,북소리는 ‘날개 달고 두둥둥 날고 싶은 소리’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진정 좋은 소리는 우리들의 귀뿐 아니라 눈도 코도 혀도 살갗도 즐겁게 하여 화응할수 있는 것’이라 했다.
보기에 좋은 것이 먹기에도 좋다고 했지만 이 책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 듣기에 좋은 것이 다 좋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러한 소리를 추스르자면 오늘의 현실보다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만큼 우리가 좋은 우리말들을 많이 버리고 왔음을 반성하게 하는 대목이다.
자연이 많이 훼손되었다고는 하나 잠시 짬을 내어 몇걸음 밖으로 나가보면 오감을 살찌울 재료들은 아직 지천에 널려 있다.
여름은 사계절 중에서도 자연의 기운을 가장 많이 수혈 받을 수 있는 계절이다.
밖으로 뛰쳐 나온 것들, 밝은 햇살과 바람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려고 활짝 가슴을 열어놓고 있는 자연과 더불어 몸 속가득 새로운 기운을 채우는 여름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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