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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교육정책

이종서 교육인적자원부 차관 칼럼

                                                                                                                     2007.03.09 
꿈과 열정으로 ‘특성화’되는 아이들
 
이종서 교육인적자원부 차관

“너, 미쳤니?”
“그래, 엄마 나 미쳤어!”

얼마 전 발간되어 우리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책 <그래, 엄마 나 미쳤어>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책은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특성화 고등학교 아이들의 꿈과 열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입학부터 쉽지가 않다. 부모의 반대를 넘어서면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이 기다리고 있고….

목적의식 뚜렷한 특성화고교 학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고 입학 후 아낌없이 자신의 열정을 불사르는 특성화고교에는 과연 어떤 매력이 숨어 있는 것일까.

특성화 고교에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지닌 학생들이 있다. 획일적인 대학진학의 꿈을 마다하고 자신만의 꿈을 좇는 아이들이다. 편한 길이 결코 아니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면서 행복을 찾겠다는 용기 있는 선택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를 뛰어 넘겠다(애니메이션)’ ‘내 삶의 조리사는 바로 나(요리)’에서부터 ‘레드 카펫을 밟는 그 날까지(영상)’ ‘원석을 가공하듯 나를 다듬다(세공)’ ‘촌놈, 꿈의 그린에 오르다(골프)’에 이르기까지 얼핏 제목만 보아도 특성화고교 주인공들의 꿈은 알차고 다양하다.

한줄 한줄 읽어 내려가다 보노라면 ‘미쳐야(狂) 미친다(及)’는 경구를 실감할 수 있다. 이런 학생들의 희망과 꿈을 어떻게 실현시켜 줄 것인가.

관련부처가 손잡고 특성화고교 육성

교육인적자원부는 ‘실업계 고등학교 육성’을 올해 주요한 업무계획 중의 하나로 마련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온 경력 자체가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나가려는 것이다. 이름하여 ‘희망을 실현하는 실업계고 육성 전략’이다.

올해부터 산업분야별 관련 부처들끼리 협약을 맺고 102개의 특성화고교를 육성하게 된다. 정부 여러 부처가 손잡고 실업계 고교의 특성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특성화고교는 말 그대로 소질과 적성 및 능력이 유사한 학생을 대상으로 특정분야의 인재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또는 자연 현장 실습 등 체험 위주의 교육을 전문적으로 실시하는 고교를 말한다. 선정된 학교에는 예산지원이 뒤따르고 각 학교는 부처가 요구하는 맞춤형 교육으로 학생의 진학과 취업을 이끈다.

이와는 별도로 2009년부터는 교육인적자원부-지방자치단체-기업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100여개의 특성화고교가 추가로 육성된다. 이렇게 되면, 현재 전국적으로 104개인 특성화고교가 2009년에는 300여개교로 늘어나게 되면서 각 학교가 산업 분야별로 정예화될 것이다.

기술인력 구인난, 특성화고교가 해법

30~40년 전만 해도 명문 실업계 고교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이름을 대면 “아! 그 학교!” 할 정도로 졸업생들이 금융계는 물론 산업계의 중추로 성장, 한강의 기적을 일구는 데 크나 큰 역할을 했던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필자의 지인 중에서도 당시 경쟁률이 하늘을 찌르던 실업계 고교를 졸업하고 현재 유수 기업의 임원으로 재직 중인 이가 많다. 하지만 시대가 흐르고 대학진학 열풍이 불면서 너도 나도 대학을 선호하는 통에 실업계 고교의 명성이 조금씩 퇴색되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취업난이라고 아우성을 치는 와중에서도 정작 기술 인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은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는 어려운 상황에 봉착해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기도 하다. 뚜렷한 소신과 목표 없이 너도 나도 대학을 가자는 풍토가 오늘날 사상 최악의 고학력 실업난을 빚어낸 것이리라. 이런 상황을 과연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특성화고 육성에서 해답을 찾고 싶다.

취업약정제 확대 등으로 우수인재 유치

올해 교육인적자원부의 실업계고교 육성 전략 속에는 산학협력 취업약정제를 확대하여 취업과 전문대 진학을 보장함으로써 우수한 인재를 실업계고등학교에 유치한다는 목표가 들어 있다.

학교에서 직장으로, 다시 직장에서 학교로 연결되는 시스템(School to Work, Work to School)을 구축함으로써 입직연령 단축과 과잉교육을 해소함은 물론, 평생직업교육의 선순환 체계를 확립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비전 2030’ 계획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는 전략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경기기계공고, 논산공고, 합덕산업고생들은 졸업 이후 신성대학으로 진학하여 해당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현대제철로, 그것도 연봉 3500만원이라는 좋은 조건에 취업을 보장받기로 되어 있다. 이와 함께 본인의 선택에 따라서는 전문대 전공심화 과정 이수를 통해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앞으로는 직장에서 학위를 딸 수 있는 사내대학이 활성화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대기업·공무원 취업때 우대 “희소식”

모든 정책이 다 그렇지만, 교육정책에는 사회적 호응이 필수적이다. 과거 우리사회가 그렇게 ‘기술입국’을 외쳤으면서도 그 동안 기술인에 대한 사회적 대접을 정작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냉정히 되돌아 봐야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아무리 실업계고, 특성화고교를 육성해도 사회적 뒷받침이 없으면 공허한 정책에 그칠 뿐이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기술 연마에 인생의 승부를 건다는 것이 희망과 행복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인프라를 마련해 나가는 일이야 말로 시급한 일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삼성전자가 전국 기능대회 입상자 전원을 특채하겠다는 협약을 노동부와 맺은 것을 비롯,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등 대표적인 대기업들이 각종 기능대회 입상자들을 채용에서 우대한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좋은 소식이 한 가지 더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실업계고 졸업자들에게 취업의 우선권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가 1년에 4명씩, 그리고 대구광역시, 부산시교육청과 강원도교육청, 전남 고흥군과 강진군청에서 실업계 고교 졸업자들을 특채하기로 했다고 한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서 정당한 대접을 받고, 행복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길을 열어줄 차례다. 기술 인력을 우대하는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도 우리 사회가 해 나가야 할 몫이다.

오늘도 밤낮으로 묵묵히 작업실에서, 혹은 실습실에서 기량을 닦고 있는 그들이 바로 내일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점에 어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인가?
이종서 교육부 차관 (slee720@moe.go.kr) | 등록일 : 2007.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