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0일로 이라크 전(戰) 발발 4주년을 맞았다. 2001년 9월 11일 저 끔찍한 테러가 발생한 9일 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지구상의 모든 테러 그룹을 찾아내 저지하고 패퇴시킬 때까지 전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로부터 약 1년 반 후인 2003년 3월 20일 이라크를 공격하여 실제로 전쟁을 수행했다. 이라크 침공의 직접적인 이유는, 사담 후세인이 9·11 테러의 배후 인물이고 이라크가 대량 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민주주의의 확산’이었다.
전쟁을 개시한 후 4년간 미국은 14만 명의 병력과 5000억 달러의 전비를 이라크에 투입했다. 그동안 미군은 3240명이 사망했고 2만 3924명이 부상당했다.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들이고 수많은 인명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전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애초에 명분 없는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명분 없는 이라크 침공, 9.11 테러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 없어 2006년, 9·11 테러 5주년이 되는 날 부시는 사담 후세인이 9·11 테러와 관련이 없다는 점을 공식 인정했다. 그리고 대량 살상무기도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침공의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미국은 전쟁을 계속했고, 2006년 12월 30일에는 사담을 처형했다. 사담이 처형당한 것은 9·11 테러나 대량 살상무기와는 관련이 없다. 1982년에 있었던 두자일 마을의 시아파 주민 148명을 학살한 죄를 물어 처형한 것이다. 두자일 학살사건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라크 국내 문제이다. 물론 이라크 법정에서 이라크인에 의하여 재판이 진행되었지만 미국이 조종하고 있었다는 것은 천하가 아는 사실이다. 아마 부시는 사담을 처형함으로써 명분 없는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이라크는 말할 수 없는 혼란에 빠져 내전(內戰)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의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이 모든 참상의 원인 제공자는 부시이다. 9·11과 무관하고 대량 살상무기가 없다는 사실이 판명되었을 때 부시는 이라크에서 물러났어야 했다. 물러나지 않고 전쟁을 계속한 유일한 명분은 ‘민주주의의 확산’이다. 즉 사담은 인류의 공적(公敵)이기 때문에 사담이 망쳐놓은 이라크를 민주화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미국은 어떤가? 악명 높은 관타나모 수용소와 아부그레이브 감옥에서의 소름끼치는 인권침해는 과연 민주적인 처사였던가? 2005년 11월 19일에 있었던 이라크 서부 하디타 마을의 학살도 민주적이었던가? 미 해병대는 이 마을에서 휠체어에 앉은 노인과 세살 난 아기까지 무차별 사살하고 심지어 자식을 품에 안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여성도 사살했다고 한다. 1968년 베트남 미라이 마을의 학살과 무엇이 다른가.
미국의 전쟁,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있는가? 2006년 현재 미국의 해외 파병 병력은 144개국에 46만 명이고 전 세계 군사비의 48%를 미국이 쓴다고 한다. 이만하면 미국이 지구상에서 벌이는 주요 활동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전쟁이다. 미국은 이 전쟁이 악(惡)을 징계하고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라 강변한다. 세계 144개국에 미군을 주둔시켜 세계의 경찰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전 세계가 달갑게 여기지 않고 미국민 자체도 반대하고 있다. 9·11 당시 90%에 육박했던 부시의 지지율이 지금 30%대로 하락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미국은 이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세계 경찰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미 시사 주간지 타임의 다음과 같은 9·11 5주년 특집기사가 흥미롭다. “결국 테러와 벌이는 전쟁을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지는 알 수 없으나, 미국 혼자 세계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을 지난 5년은 가르쳐줬다.” 이라크 전에서 아들을 잃고 부시의 목장 앞에서 일인 시위를 했던 ‘반전 엄마’ 신디 시핸이 “우리는 전쟁기계의 그늘 밑에 있다”고 한 절규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