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란이 발발하기 10년 전, 병조판서였던 율곡은 임금에게 “국세가 부진한 것이 극도에 달했으니 십년이 지나지 않아서 마땅히 토붕와해(土崩瓦解)의 화가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십만의 군병을 미리 길러 도성에 2만 명, 각도에 1만 명씩을 비치하고는 호역을 면제하여 재간자를 교련하여 6개월로 나누어 교대로 도성을 수비하게 하고…” 라고 아뢰었다고 한다. 조선 말기에 화서(華西) 이항노 선생은, 율곡의 십만양병설을 상기하면서, “팔도에 각각 1만 명, 서울에 2만 명의 병력을 정규군이 아닌 농민병으로 숨겨두어 유사시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상소를 올린 일이 있었다. 율곡의 주창은 비록 선견지명이나 실천에 이르지 못하여 공허하여졌고, 화서문하의 제자들은 외양내수(外揚內修)의 정신으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다 비장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돌이켜 보면 십만의 정예군, 아니 그에 훨씬 못미치는 2-3만의 정예군도 상비(常備)하지 못하여 이 나라를 침공하는 적군의 선봉대를 저지하지 못하고 전국토가 전장터로 황폐하게 되고 말았었다.
군 병력 감축에 앞서 생각할 점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6.25 전쟁 이후 남과 북이 각각 50만 내지 100만의 상비군을 50년 이상 유지하고 있고, 오늘날처럼 국민개병의식이 넓게 자리 잡은 시대가 일찍이 없었다. 이제는 여군의 숫자도 늘어가고 있어 장차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총력전에 투입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그동안 남북은 주적(主敵)으로 팽팽하게 대치하여 왔고, 냉전이후에도 군비의 강화는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정부는 근래에 군 병력을 50만 명 수준으로 감축하고, 군복무기간도 단축하여 나갈 것이라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군 병력의 감축에 대하여는 여야 의원이 같은 견해를 보이는 이들이 있고, 그들은 실질적 군사력의 기준이 되는 군 현대화를 더 주문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군 병력을 30만 명선까지 감축하여도 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혹자는 국방이나 안보의식 보다는 정치적 목적의 포퓰리즘이라는 경계와 비판을 강력하게 하고 있다.
필자는 군 병력을 감축하기 전에 몇 가지 생각하여 볼 점을 같이 나누려 한다. 율곡은 10만양병론을 주장하였다가, 군비의 조달문제와 군사양성의 국내적 위험성을 이유로 반박을 받았다고 하고, 화서의 십만양병의 상소 역시 비답(批答)을 얻지 못하였으나, 지금은, 두 분의 생각이 현실적으로 실현되어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 군의 존재의의와 목적을 새롭게 하는 일이다. 전시체제에 준하는 현재의 군사력 유지가 과연 적정한가에 대하여는 전문가에 의하여 현실적으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남북, 북미(北美)의 대치상태가 해소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나면 우리의 국토방위선은 자연히 한반도의 외연으로 대폭 확대되고, 우리 군의 존재의의는 어떠한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남북의 강역 전체를 지켜 낼 수 있는 자강군(自强軍)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그때에 필요한 군사력이 어느 수준이어야 할지는 주변국가들과의 군사, 외교적 긴장도에 따라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국민개병의식은 더욱 철저하고 충실하게 유지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민주적 선거를 거치면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은 지도자의 필수적인 덕목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국민정신을 토대로 하고,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병기의 성능과 수준, 활용능력을 극대화하여 적어도 우리 스스로는 지켜나갈 수 있는 군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요즈음 자주 군기강의 해이, 군장비의 허실 등이 언론의 공격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하나같이 심상하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SMILES의 성능상의 허점이나 전투기의 정비불량과 같은 상황은 철저하게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유사시에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하여 혼란과 패전이 있어서는 안 되고, 반대로, 군장비의 성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전투기의 정비력에 대하여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임할 수 있어야 그나마 억제력이 발휘될 것이다. 충실한 무기획득사업을 위하여 방위사업청을 신설하였으나 그 성과가 어떠한지 알 수 없다.
민주적 토대 위에 강한 군대를 유지 발전시켜야 또한 민주화시대라고 하여 군을 소홀하게 예우하여서는 안 되고, 민주적 토대 위에 다른 어느 때보다 강한 군대를 유지 발전시키는 정책을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 군인정신만으로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데에는 문제점이 많았기 때문에 문민정부를 기본적인 형태로 채택하고 있기는 하나, 그로 인하여, 문약(文弱)하거나 문졸(文拙)한 국방의식이 군의 기강과 위상을 저해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군사독재정부시대의 상흔(傷痕)으로 군을 견제하는 경향이 뚜렷하나 경시하는데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군지휘자를 자강군의 핵심으로 육성하여야 할 것이며. 현역이나 전역자나 모두 귀하게 예우하여야 할 것이다. 자강군으로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강직하고 창의적인 인물을 발굴하여 요소에 배치하고, 향후의 정세를 대비할 전략군의 창설도 생각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입안하여 둔 것이 있다면 그 신속한 실천을 위하여 회심(回心)의 추진력을 발휘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십만양병론은 우리나라의 국방의 실패를 되돌아보게 하는 회한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십만양병론의 토대를 갖추고 있으므로, 여기에, 생명력과 조직력을 불어 넣는 투혼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와 같은 정신을 잊지 말고 군조직의 변화를 기하여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싶다. 대한민국에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강군의 체계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역량에 그치지 않고 강대국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자주독립성을 보존하기를 원하는 대다수 국가들의 표상이 될 것이고, 그 국가들이 우리의 진정한 우군으로 버텨 줄 것이다. 앞으로 십만양병론의 정신은 단임제 또는 임기제 대통령의 비망록이 되어, 정권과 정략을 훌쩍 뛰어 넘어서 계속 전수되어지기를 바란다.
율곡의 십만양병론이 이 나라의 지도자와 엘리트들이, 국민들이 보고 느끼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끊임없이, 국토방위와 국민복리에 헌신하는 정신으로 화현(化現)되고 있음을 국민들이 굳게 믿는다면, 충무공과 같은 외로운 장군의 사투가 되풀이되지 않고도 나라를 보존하게 될 것이고, 필자와 같이 향토예비군의 연령마저 넘은 범부(凡夫)들도 유사시에는 빈 들을 지키는 경계병이나 군수품을 나르는 사역병으로 기꺼이 종사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