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디지털 교과서

269

 


교육부가 지난 3월 9일 디지털 교과서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 발표에 따르면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 사전, 공책 등의 기능을 통합한 단말기로 기존의 종이책 교과서를 대체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1년까지 5년 동안 660억 원을 투입하여 2013년부터는 전국 초·중·고교에 전면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학생들은 교실 안에서 모든 종이책을 사용할 필요가 없고 공책도 필요 없으며 연필이나 볼펜 등의 필기도구도 무용지물이 된다. 학생들은 등, 하교 시에 노트북 컴퓨터 하나만 지참하면 된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꿈의 교과서’라 부르기도 한다.

교육부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겠다고 한 직접적인 계기는 “지식의 생명주기가 갈수록 짧아지는 상황에서는 교육과정을 수시로 개정할 필요가 있지만 현재 교과서 형태로는 어려운 점이 많다”는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창의적인 개별학습, 교육격차 해소, 사교육 의존도 완화, 전자책 관련 산업 활성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기대하는 이러한 효과는 장밋빛 환상일 뿐이요 허황한 백일몽(白日夢)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교육은 인격체 간의 교감(交感)이 있어야

40여 년 동안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나의 경험으로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학생은 교과서와 공책과 필기도구를 준비하고 선생은 교단에서 백묵으로 흑판에 판서(板書)를 하면서 진행하는 것이 수업의 정도라는 것이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필기하는 데에 따라서, 학생들이 던지는 질문에 따라서 수업의 내용이 달라진다. 아니 학생들의 앉은 자세나 눈빛에 따라서도 강의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같은 과목을 해마다 반복해서 가르치는데도 그때그때 교실의 분위기, 학생들의 반응에 따라 강의 내용도 달라지고 진도도 달라진다. 때로는 교과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이야기를 즉흥적으로 말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교육은 살아있는 인격체와 인격체가 부딪치면서 이루어진다.

첨단 교육론자들이 추구하는 이른바 ‘백묵과 흑판이 없는 강의’, ‘책과 연필이 필요 없는 수업’으로 참다운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지식의 전달만이 교육의 전부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지식의 전달이 교육의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식을 전달하는 데에도 선생과 학생간의 생생한 교감(交感)이 있을 때 그 효과가 극대화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외에도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두통이나 시각장애를 일으키는 ‘VDT 증후군’은 컴퓨터 전문가들도 경계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개발한 빌 게이츠 조차도 자식들의 컴퓨터 사용을 제한한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우리 학생들이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하루 종일 컴퓨터를 조작한다고 상상해보라. 어린 학생들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임이 분명하다.

어린 학생에겐 인간 냄새 나는 아날로그식 교육을

또한 종이책의 장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2000년이 시작될 무렵, 세계의 석학들은 인류 최상의 발명품으로 종이를 꼽았다. 지식의 전달 수단으로 종이책을 능가하는 것이 아직은 없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대신하리라는 예측도 빗나가고 있다. 종이가 발명된 이래 인간은 종이책을 보면서 지식을 전달받았고 사고력을 증진시켰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디지털 중후군’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다. 온통 디지털에 미쳐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은 그것대로 발전시켜야 하겠지만 적어도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만이라도 인간의 냄새가 나는 아날로그식 교육을 시키는 것이 어떨는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왜 어린 학생들을 디지털의 수렁으로 몰아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글쓴이 / 송재소
·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 저 서 : <다산시선>
            <다산시연구>
            <신채호 소설선-꿈하늘>
            <한시미학과 역사적 진실> 등
      

'칼럼모음 > 다산 칼럼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新) 십만양병론  (0) 2007.04.12
간난과 고독 속에 얻은 학문공동체  (0) 2007.04.04
다산과 괴테  (0) 2007.04.02
대통령과 언론  (0) 2007.03.24
사람과 짐승  (0) 2007.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