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생각을 베끼지 않는’ 교육풍토를 [시론] 과학의 창의력은 미래 한국의 희망...
그런데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과학 독후감 2편을 매우 정성껏 써주었다. 책을 읽고 난 소감을 솔직하면서도 기승전결이 분명하게 정리한 내용들인데 독후감 말미에 “뭐 이 정도?”라는 꼬리말이 매우 인상적이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점도 있었다. 이 학생이 다른 사람이 써준 독후감들을 학교에 제출했을 때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학교에서 의도하고 있는 과학교육의 성과를 제대로 거둘 수 있을지 극히 의문스러웠다.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 궁금한 점을 풀어가는 교육이 아니라 남의 좋은 글을 베끼는 일을 가르쳐주는 교육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앞섰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어린 학생들은 물론 대학생, 대학원생, 심지어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님들까지도 남의 것을 베끼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다. 한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분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놓았다. “오늘 대학원생들의 글을 채점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국 과학교육의 진짜 문제는 선생들이 아닌지... 그들은 소유한 지식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학생들에 대한 열정에도 관심이 없다...” “최소한 열정을 가졌다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들이 인터넷 글을 조합하거나 심지어 통째로 베껴서 낼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그 비율이 꽤 높다. 조기유학 보내는 학부모 심정을 이해한다. 아무튼 인터넷 글에 그나마 약간의 변형을 가한 분들은 한국의 더러운 관행(?) 덕으로 학점을 챙겨간다.” “그러나 어떻게 박사과정에서 과학교육을 전공하는 사람이 과학교육지나 기존 학회 발표문을 그대로 수정조차 없이 리포트로 제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과학을 전공하고 교육계 브레인을 양성하는 사범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학생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마지막 수업에서 노골적으로 저에게 리포트를 보여 달라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당황스러워서 계속 못 알아듣는 척 하면서 팁만을 가르쳐주었는데요... 그들은 아주 불만족스러워 했죠.” “다른 학과에서 온 학생이 좀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그렇게 노골적으로 압력을 가하고 리포트 낼 시기에 집중적으로 연락하고... 그 이후로 의도하지 않아도 사범대 대학원생들 보면 색안경이 껴지는 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러면서 불쌍해지는 건 우리의 중.고등학생들...” 한 나라의 과학기술력을 상징하는 지표가 되는 것이 세계과학논문인용색인(SCI)이다. SCI에 등록된 논문의 수를 볼 때 한국인의 논문 발표량은 지난 2005년 2만3천48건으로 세계 14위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동안 R&D 평가, 교수 평가 등에서 학자들의 연구활동을 평가하는 지표로 논문 발표를 독려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한국 과학자들의 논문을 다른 과학자가 1회 이상 게재한 비율은 56.32%에 그치고 있다. 한국인이 발표한 논문 중 절반 정도는 1년에 단 한 번도 인용되지 않았다는 것인데 그만큼 논문 내용에 있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학기술계의 많은 리더들이 이 문제를 자주 지적하고 있다. 한국에서 많은 논문이 게재되고 있으나 독창적이고 창의력 있는 논문은 매우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국내외 석학들의 지적이다. 한국의 과학기술력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서는 논문의 질을 높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더 능력 있고 창의력 있는 인물들을 다수 배출해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을 위한 과학교육 풍토 조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최근 교육당국에서도 과학교육 혁신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7차 교육과정에서 과거의 경직된 내용의 교과서를 컬러사진, 삽화, 만화 등을 섞어가면서 학생들의 생각하기, 실험 등의 탐구활동을 중점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점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더 나은 과학교과서가 편찬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커리큘럼, 좋은 교과서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남의 독후감이나 논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베껴대는 풍토에서는 학생들의 창의력을 중시하는 좋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 무엇보다 과학을 가르치고 계시는 선생님들의 솔선수범이 요구된다. 미래 한국을 짊어지고 나갈 과학인재 양성을 위해 남의 것을 베끼는 일을 진심으로 창피하게 생각하는 국내 교육환경을 만들어내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거듭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강봉 편집위원 aacc409@hanmail.net | |
2007.01.02 ⓒScience 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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