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헤어짐,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겪지 않을 수 없는 일이지만, 역시 이별은 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부터 별이(別離)의 한(恨)을 노래한 시치고 슬프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다산은 생이별, 사이별을 수없이 겪느라 정말로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서럽고 애처롭게 살아가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집에는 참으로 많은 이별의 노래가 실려 있습니다.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이별을 시작으로, 서른이 넘은 어른으로 아버지와의 사별(死別)도 슬펐지만, 40세 당한 신유교옥(辛酉敎獄)으로 셋째형과의 영원한 이별, 귀양살이를 떠나면서 숙부나 형제와의 이별, 처자식들과의 이별, 둘째형과의 귀양길에서의 이별은 참으로 슬프고 괴로운 운명의 장난이었습니다.
역사(驛舍)에 가을이 내리는데 이별하기 더디구나 驛亭秋雨送人遲 이 머나먼 외딴 곳에 아껴 줄 이 다시 또 누구랴 絶域相憐更有誰 반자(班子)의 신선에 오름 부럽지 않으랴만 班子登僊那可羨 이릉(李陵)의 귀향이야 기약이 없네 李陵歸漢遂無期 대유사(大酉舍)에서 글 짓던 일 잊을 수 없고 莫忘酉舍揮毫日 경신년(1800)의 임금님 별세 그 슬픔 어찌 말하랴 忍說庚年墜劍悲 대나무 몇 그루에 어느 날 밤 달빛 비추면 苦竹數叢他夜月 고향 향해 고개 돌려 눈물만 주룩주룩 故園回首淚垂垂 「送別」
뼛속 깊은 아픔과 서러움이 담긴 시이지만 사연도 많은 내용이 바로 이 시입니다. 세상에는 김이교(金履喬)라는 친구와의 이별에 지은 시라고 알려져 있으나 이미 제가 밝힌 대로 이 시는 김이교의 사우인 김이재(金履載)라는 친구와의 이별시입니다. 안동 김씨로 김이교는 정승에 오른 다산의 친구였고 그 아우 김이재는 판서를 지낸 친구였습니다. 신유교옥에 시파(時派)로 몰려 김이재는 강진의 바다 건너 고금도(古今島 : 완도군)에 귀양왔다가 1805년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함께 벼슬했던 친구인 다산을 찾아가 만나고 헤어질 때 다산이 부채에 적어준 시가 바로 그 시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는 ‘선자시(扇子詩)’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 시 때문에 다산이 해배되는데 도움을 받았다는 일화(逸話)가 있기도 합니다.
반자(班子)로 상징되는 친구는 풀려서 돌아가는데 한(漢)나라 때 오랜 유배객이던 이릉처럼 다산은 풀리지 못하는 서러움을 이별시에 담았으니 얼마나 가슴 아픈 시인가요.
더구나 이 시는 필사본인 다산의 문집에는 실려 있으나 활자본인 『여유당전서』의 시집에는 빠져 있어 아직 세상에 많이 알려진 시도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슬픈 시여서 번역해서 읽어보면 가슴이 저려오는 아픔을 이기기 힘들 뿐입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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