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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철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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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이야기


서울생활을 접고 대구로 내려온 지 어느덧 27년이 꽉 차 간다. 그 27년 가운데 8년 남짓은 경산에서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일로 서울을 자주 오르내리게 되고, 자연히 기차 타는 일이 잦다. 철도교통에 대해 관찰한 것은 그런 연고 때문이다.

기차를 타러 갈 때면 산보삼아 으레 걸어간다. 그런데 집에서 경산역으로 가자면 반드시 굴다리를 지나거나 육교를 넘어 한참 돌아야 한다. 걷는 것을 좋아하니까 불평 없이 다니고 있긴 하지만, 왜 이렇게 정문 쪽에서만 역으로 드나들게 할까 하는 데 의문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뒤쪽으로도 출입할 수 있다면 돌아가는 수고를 덜 텐데. 아니, 아예 개찰구-집찰구를 없애고 승강장을 개방적인 공간으로 만들면 어떨까.

일제 관점 반영된 철도교통, 주민 편의 관점에서 되짚어봐야

예전 1950년대, 60년대에는 기차를 몰래 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의자 밑에 숨어서 검표를 피한 다음 목적지 근처에서 위험하게 뛰어내리는 사람도 더러 보았다. 그런가 하면 여객의 지갑을 노리고 기차에 오르는 재주꾼도 있었고, 심지어 야간에 적재화물을 털어가는 떼도둑도 없지 않았다. 그러니 사람들이 마음대로 활동하는 사회적 장소와 기차를 타고내리기 위한 장소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이러한 분리는 5,60년대 가난했던 시절의 유산이 아니라 말하자면 일제잔재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철도가 부설되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이었지만, 우리나라 철도교통의 기본구도가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였다. 그때 일제 식민지 당국이 한국인들의 편리와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철도를 건설했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식민지 통치자들로서는 철도에 대한 한국인들의 접근을 통제하고 차단하는 것이 정책의 주요 목표였을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철도이용의 혜택이 우리에게 얼마간 돌아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철도의 노선 자체가 한반도 지배와 만주 진출을 노리는 일제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지도를 펴놓고 들여다보면 금방 그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대륙과 반도의 물적 자원을 항구를 통해 일본 열도로 들여가고 그 길을 거슬러 일본인들이 육지로 나오기 좋도록 철로가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1970년대 이후 산업화와 중앙집중화에 따라 농촌중심지로서의 지방도시가 쇠퇴하는 대신 공단 중심의 새로운 도시가 생겨나고 수도권 낯선 땅에 갑자기 인구가 밀집되었듯이, 일제 강점기에는 철도교통의 요지가 도시발달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나라의 철도가 이 나라 주민들의 편의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환승을 하려고 하면 실감할 수 있다. 가령, 대구에 사는 사람이 전북 익산이나 강원도 영월을 기차편으로 갈 엄두를 낼까. 동대구-익산-영월이 모두 선로로 이어져 있으니까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만약 호남선 열차가 경부선과 마찬가지로 대전역에 서게 되어 있다면 대구에서 익산을 기차로 가는 것은 당연히 아주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이 간선철도의 설계자는 틀림없이 일본인 기술자였을 것이고, 그의 눈에 반도인 여행자의 불편 따위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구에서 기차로 서울에 가서 지하철을 탈 때 어리둥절해지는 것이 기차는 좌측통행인데 왜 지하철은 우측통행인가 하는 점이다. 좌측이건 우측이건 목적지를 잘 살펴보고 바르게 타면 실수가 없지만, 그러나 기왕이면 기차와 지하철 모두 한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의문은 일본에서는 여전히 기차도 자동차도 다 좌측통행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쉽게 풀렸다. 기차는 일제 때 그대로 좌측통행인 반면에, 지하철은 1970년대에 우리 손으로 건설하면서 미국식 통행방식 즉 우측통행을 따랐던 것이다.

철도 비롯한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정책을

근본적인 문제는 70년대 이후 경제발전으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일제잔재를 청산할 여력이 생겨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데 있다. 철도역 승강장에 사람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 무임승차를 막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인가. 그런 면도 없지 않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보다 일제시대의 관습적 사고 즉 주민들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관료적 사고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환승에 대해서 말한다면, 고속철도(KTX)가 개통된 이후 새마을과 무궁화 승객을 흡수하기 위해 사정이 좀 나아진 셈이다. 그러나 경부선에서 호남선으로, 또 중앙선에서 충북선으로 갈아타는 것과 같은 의미의 환승은 아직 충분히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여기서 떠오는 것이 유럽의 철도교통이다. 유럽에서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노선들의 놀라운 환승을 경험하고 나면, 왜 유럽의 철도노동자들이 그처럼 높은 직업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저절로 이해하게 된다.

미국이나 캐나다와 같이 널따란 평원에 인구가 띄엄띄엄 흩어져 사는 나라는 다르겠지만, 우리는 당연히 철도와 대중교통 중심의 교통정책을 펴야 한다. 그런데도 지난 30여 년간 닦고 넓힌 길도 모자라다는 듯이 지금 이 나라는 국토 전체가 거대한 도로공사장이다. 석유와 자동차 및 건설업에 대한 의존을 줄이면 경제가 쓰러지는가. 그러나 그렇더라도 석유생산이 조만간 줄어들 것은 필지의 사실이라지 않은가. 참으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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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염무웅
· 문학평론가
· 영남대학교 교수
· <창작과비평> 발행인, 민예총 이사장,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등 역임
· 저서:<민중시대의 문학><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