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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글짓는 일은 글자 공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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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짓는 일은 글자 공부부터


다산보다 18세 위이던 복암(茯菴) 이기양(李基讓 : 1744~1802)은 다산이 존경하며 따르고 가르침을 받던 높은 벼슬아치이자 큰 학자였습니다. 아무리 나이어린 후배의 말이라도 사리에 맞고 정당한 주장일 때는 곧장 머리를 숙이고 승복하면서 금방 옳다고 인정해주는 포용력이 큰 어른이었습니다. 아파 누워있던 복암을 다산이 찾아가 대화를 나누다가 「자설(字說)」이라는 글에 나오는 견해를 다산이 이야기하자,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복암은 병석에서 벌떡 일어나 관(冠)을 바르게 고쳐 쓰고 앉아 탁상을 치면서 “내가 오늘은 병이 나았다. 지극한 이치의 말을 듣고 인정하고 보니 맑고 서늘한 마음이 솟는구려”라고 하면서 식사까지 실컷 자시더라는 것입니다. 복암이 그렇게 탄복한 다산의 주장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옛날에는 자서(字書)만 익혀 글자마다의 의미를 연구하여 상형(象形)·회의(會意)·해성(諧聲)의 글자가 되어진 까닭이 마음과 눈 사이에 명백하게 이해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알고 난 뒤에 문장을 만들면 글자와 글자가 결합하여 알맞게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좌씨(左氏)·맹자·장자·굴원의 독특한 문장이 나왔다. 뒷세상에는 글자는 익히지 않고 곧장 고문(古文)만 읽고서 글자의 뜻도 모르고 글의 구절을 통째로 인용해버리니 글자의 뜻이 실제의 뜻에 완전히 어긋나지만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문장이 모두 진부(陳腐)하고 실제의 일에 절실하지도 못하다.”(「字說」)

다산의 학문 태도가 분명하게 나타난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으로 말한다면 글자나 언어의 의미를 명석하게 이해하고 깨달은 다음에 글을 지어 문장으로 만들어야지, 언어와 글자의 자의(字義)를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고 짓는 글이 어떻게 명쾌한 논리의 문장이 되겠느냐라는 의미라고 여겨집니다.

이렇게 명확한 깨달음으로 통쾌한 논리를 전개하는 다산이었기에, 대선배인 복암이 병환에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병이 다 나았다면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외쳤을 것입니다.

사물의 근본을 꿰뚫은 뒤라야 어떤 일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는 다산의 주장은 지금에도 옳게 여겨집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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