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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성경공부

주기도(6-1)

주기도의 전반부 3가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주기도의 후반부 4가지는 이웃의 영광을 위해서 기도하게 된다.

처음에, 그날 음식을 오늘도 우리들이 먹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마태 6장 31~33절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그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이 하는 것이다.
너희들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의식문제는 문제도 안 될 것이다.’

마태복음 4장 4절에는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말씀으로 산다고 하였다.
사람들의 마음이 욕심으로 가리어져. 쓸 데 없이 쌓아두고 썩혀서 먹을 것이 없는 것같이,
사람들이 깨어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가면 먹고 입는 데 문제가 있을 리 없다.
이런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체가 해야 한다.

우리의 제도를 뜯어 고쳐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도록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정의를 이룩하고, 민주국가를 실현해야 한다.
그 나라와 그 의가 구현되면 먹을 것, 입을 것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내 것이 없는 사회가 되어야 골고루 일용할 양식이 얻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런 나라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도 해야겠지만 그런 나라가 오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선 우리는 지금 비록 사유재산 속에서 살지만 이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체가 하나님의 것이요, 나라의 것이다.
내 돈이 내 돈이면서 나라의 돈인 것처럼, 내 재산도 내 재산이면서 하나님의 재산이다.

우리는 내 밥이라도 하나님께 돌렸다가 다시 타먹는 마음이라야 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일체가 자연의 소산이요, 하나님의 것이다.
쌀도, 김치도 모두 자연의 것이요,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가 노력을 했다고 해도 인간의 힘이란 씨를 만든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린 것뿐이요,
불을 만든 것이 아니라, 불을 땐 것뿐이다.
일체는 하나님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오늘 하루도 먹을 양식을 주시고 생명을 주셔서 살게 해주시는 아버지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하루의 양식이면 족하다.
그것은 신앙생활이란 언제나 하루를 사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천년을 살아도 하루를 사는 것이다.
하루 속에 천년이 들어가 있다.
하루를 만족하고 살면 천년 산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만족한 하루, 그것은 밥 한 그릇에 김치면 족하다.
인간에게는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물은 넘치고 공기는 빛난다.
밥 한 그릇에 내 살은 뛰고, 김치 한 그릇에 내 피는 난다.

 

건강한 육체는 그것으로 족하다.
그 이상이 되면 병이 되고 죽음이 된다.
못 먹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너무 먹어서 죽는다.
건강한 소화력을 가지면 조금 먹어도 살 수가 있다.

일용할 양식은 적은 양식이다.
양식은 적어도 몸이 튼튼하다.
너무 먹고 토하는 동물이 되지 말고, 조금 먹고 생각하는 정신이 되자.
생각하는 데는 많은 음식이 필요 없다.

생각할 수 있으면 먹을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사람은 먹을 것도 해결 못할 인간이 아니다.
먹을 것 정도는 공중의 나는 새도 해결하지 않는가.
사람은 먹을 것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

우주의 이치를 알면 먹을 것이 문제가 되겠는가.
태양이 그대로 먹을 것인데 태양이 빛나는 동안 먹을 것이 문제가 될 이치가 없다.
그것보다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이다.
마음이다.

우리에게 마음만 있으면 먹을 것이 문제가 될 이치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씀이요, 믿음이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만 잘 쓰면 먹는 것은 문제도 안 된다.
머리 없는 사람이 없듯이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믿음이란 생각할 수 있는 힘이다.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진 것은 산을 옮길 만한 힘을 가진 것이라고 한다.
우리의 생각하는 힘은 겨자씨 정도가 아니다.

일용할 양식을 충분히 얻고도 남을 머리들을 가지고 있다.
오늘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기도는 먹을 것이 없어서 드리는 기도가 아니다.
사람이 살려고 먹게 되면 먹는 문제는 문제라고 할 것도 없다.
살려고 먹어야 할 음식이, 먹으려고 살게 되었다.

먹는 것이 목적이 되고, 사는 것이 수단이 되고 말았다.
배가 하나님이 되고, 인간은 악마가 되었다.
서로 물고 찢는 동안에 먹을 것은 다 없어지고 말았다.
먹을 것을 달라는 기도는 새 질서를 달라는 기도와 마찬가지다.

살려고 먹기까지는 새 질서는 오지 않는다.
식욕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고, 도적을 버리기 전에는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은 없다.
아귀도餓鬼道에 신음하는 인생으로서 유일한 구원은 살려고 먹는 것이다.
생각하려고 먹는 것이다.
기도하려고 먹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기도를 위해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소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기도할 만큼만 즉시 주시옵소서.’
이것이 믿는 사람의 기도일 것이다.

 

(김흥호목사/사색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