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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수가 사형을 당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전기의자에 앉아 전기 충격으로 사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형수를 위해 기도해 준 목사님께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허겁지겁 나오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긴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그러더니 “목사님 제가 너무 두렵습니다. 그러니 제가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당할 때 제 손을 꼭 붙잡아 주세요! 마지막 부탁입니다.” 그 부탁의 말을 듣고는 뛰쳐나가신 겁니다. 아니, 여러분! 부탁을 해도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합니까?
기독교 부활은 확실한가?
현대인들이 기독교 신앙을 갖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부활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끝이지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기독교가 타 종교와 다른 점은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한 독실한 크리스천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해 있는 어떤 건설회사와 용역계약을 맺고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 볕을 쪼이며 숨이 컥컥 막히는 섭씨 40도가 넘는 더위를 무릅쓰고 일하면서 같은 직장에 있는 모슬렘교도를 사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모슬렘교도는 자기가 믿는 회교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우리는 매일같이 하루에 다섯 번씩 기도하며 엄한 규율대로 살아야 하고 메카를 순례 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 회교의 큰 자랑감은 우리나라 메카에 있는 모하메드의 무덤이야. 너희 기독교의 교주인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지만 우리 교주의 무덤은 아주 웅장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모하메드의 아름다운 묘지,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야.” 이 말을 듣고 있던 크리스천은 대답하기를 “그렇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와 회교의 차이점이다. 모하메드나 다른 종교의 교주는 모두 죽어 무덤에 묻혀 썩어 버렸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지 사흘 만에 돌 무덤을 여시고 부활하셨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제공한 바로 그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잔인한 로마병정과 간악한 유대인에 의해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칼 바르트(K. Barth)라는 신학자가 말하기를 ‘부활절과 성탄절의 설교는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이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기 때문이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엘리야처럼 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에녹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산 채로 승천해 버린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고, 돌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 오늘! 죽음을 이기시고 돌 무덤을 여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돌아가시고 난 후 몇 십 년 후나 몇 백 년 후에 부활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고 하면 그분은 지상 최대의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입니다.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부활이 진실이라면 오직 그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부활이 확실하다면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틀림없습니다. 그냥 ”세계 4대 성인 중이 한 사람이다.”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분에 대한 배려인 것처럼 보이고 크게 인정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처럼 논리적으로 엉터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하나님은 하나 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든지, 아니면 거짓말쟁이나 정신 이상자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 둘 중 하나 일 뿐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그런데 신으로 인정하기는 싫고, 그렇다고 정신병자 취급하기에는 그를 신으로 인정하고 그를 경배 하며 따르는 자가 너무 많습니다. 또한 이 땅에 살고 있는 50억 인류 가운데 그 3분지 1 이상이 부활을 믿고 있으며 50억 인류의 대부분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일(일요일)을 공휴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을 묵시적으로 인정하고 또 웅변적으로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 말했다가는 말하는 자가 정신병자 취급 받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세계 4대 성인 중 한 사람 정도로 해 둡니다. 사실 그것처럼 모독적인 발언은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걸림돌
어느 집사님이 담임 목사님을 만나 따지듯 물었습니다. 그분은 남편을 일찍 떠나보내고, 두 자녀와 여러 가지로 너무 어렵게 힘들게 사시는 분입니다. “목사님! 정말 예수님이 부활했습니까? 우리도 부활합니까? 나도 부활합니까? 천국이 정말 있습니까? 대답을 좀 확실히, 화끈하게 해주세요! 목사님, 대답 못하시면 저는 이 시간 이후로 교회 안 나옵니다.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큰일 났습니다. 한 영혼을 얻느냐 잃느냐 하는 기로에 섰습니다. 이 순간 한 마디라도 잘 못하면 한 생명이 끝나는 겁니다. 대답을 당장 듣기 원하기 때문에 뒤로 미룰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펼쳐서 진지하게 그러나 쉽게 ‘예수님이 부활하심’과 ‘천국과 영생’을 설명했습니다. 그제서야 “이제 됐습니다. 이제부터는 이 문제 때문에 의심하거나 불안해 하거나 믿지 못하거나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무슨 일을 만나도 다 괜찮습니다. 부활이 있고, 천국이 있는데 이 세상이 무슨 대수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일어섰습니다.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닌데, 너무나 크고 중요한 주제인데, 저한테는 물어 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거는 궁금하긴 한데 제가 대답 못할까 싶어서 봐주는 것입니까? 아니면 “이 세상사는 것도 복잡하고 당장 해야 할 일도 많은데 그것은 지금 생각하고 따져 볼 여유가 없다. 덮어놓고 믿자!” 그러는 것입니까? 저는 여러분들을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문제는 아직도 50억 인구 중에 3분의 2는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고 있고, 그래서 부활도 영생도 믿지 못하고,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활하시는 분들 중에도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문제를 좀 확실히 이해하기 쉽게 증명하고자 합니다. 오늘 제가 전하는 이 말씀의 요약된 것을 참고하실 뿐만 아니라 원고 전문을 출력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의 신앙을 확실히 하고 나아가 전도하는 데 도구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없는 허구였는데 사도들이나 초대 크리스천들이 기독교의 상징으로 만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안토니 플루와 게리 하버마스의 논쟁
최근에 ‘안토니 플루 박사’와 ‘게리 하버마스’ 박사가 미국 달라스에서 3천여 명의 관중 앞에서 1985.5.2.-3까지 이틀 동안 부활논쟁이 붙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 번 만 논쟁한 것이 아니고, 2003년 1월에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열린 베리타스 포럼(Veritas Forum)에서 논쟁했고, 2004년에는 뉴욕대학교에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논쟁을 지켜보면서 심사하는 심사위원이 10명이 있었는데, 7명은 ‘게리 하버마스’의 부활 논증이 탁월하다 해서 승점을 주었고,두 명은 무신론으로 무장한 ‘안토니 플루’의 손을 들어주었고, 한 명은 동점으로 평가했습니다. 무신론자 안토니 플루(Antony Flew; 1923~2010)는 목사의 아들인데 ‘신과 철학(God and philosophy)’, ‘무신론(The presumption of Atheism)’ 이런 책을 저술해서 무신론의 철학적 틀을 제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20세기에 무신론자로 활동한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 ; 1872~1970)과 장 폴 샤르트(Jean Faul Sartre ; 1905~1980) 보다도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간 무신론자였습니다. 그의 저서는 무신론 발전에 기여한 책들입니다. 그래서 요즘 문제가 되었던 ‘만들어진 신’이란 작품을 쓴 옥스퍼드 대학 ‘리차드 도킨스’ 교수와 ‘신은 위대하지 않다’라는 책을 저술해서 기독교를 공격하면서 무신론을 확산시킨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안토니 플루가 논쟁을 통해서 자신의 무신론을 포기하고 ‘신이 있다’고 인정하고 2007년에 ‘신은 존재한다’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여기에서 자기 자신이 어떠한 여정을 통해서 무신론을 포기하고 신의 존재를 수용하게 되었는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지성인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 왔던 이어령 교수가 기독교로 전향하고 세례를 받게 되니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신앙으로 돌아서게 한 것처럼 그의 저서를 통해 많은 무신론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리차드 도킨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기들의 정신적 스승이 무신론에서 신을 인정하면서 받아들였으니 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 되고 갈 방향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무신론자의 최후(아반과 스메르자코프의 경우)
러시아 최고의 작가 도스토엡스키의 작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란 작품에 카라마조프의 네 명의 아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 둘째 아들 이반이 나오는데 이반은 무신론자입니다. 그의 무신론의 근거는 ‘어린아이들의 고통과 눈물’입니다. 당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죄 없는 어린아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립니다. 그래서 이반은 “어린 아이들의 고통과 눈물을 보라. 신은 없다.” 그런 결론을 내립니다. “신이 있다면 저 어린 것들의 고통과 눈물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 어린 것들의 고통과 눈물은 신이 없다는 증거이다.” 그때 그의 동생 스메르자코프는 “신이 없다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도 무신론자의 반열에 섭니다. 이반이 대답합니다.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스메르자코프는 ”아버지를 죽여도 됩니까?“ 이반은 ”괜찮다“고 대답합니다.
스메르자코프는 정말 아버지를 살해합니다. 그리고 자살합니다. 이반은 동생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이론을 제공한 것 때문에 괴로워 하다가 미쳐버리고 맙니다. 도스토엡스키는 이 작품에서 무신론자의 최후는 자살하거나 정신 이상자가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성경 내용의 분석을 통한 부활 증명
영국의 ‘프랭크 모리슨(Frank Morison)’이라는 사람은 모든 사물을 삐딱하게 보고, 모든 사건을 비판적으로 보는 기자였으며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기독교도 부활이라는 허구적 사실 위에 선 거짓을 믿는 종교라도 판단하고 죽기 전에 인류에게 공헌할 큰 업적을 남기고자 했습니다. 그 업적이 무엇인고 하니 부활의 허구성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일주일을 집중적으로 검토하고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구석구석을 무려 3년 동안 찾아다니면서 부활이 거짓인 증거를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의도 대로라면 그가 저술할 책의 제목은 ‘부활의 허구성’이 되어야 하고 결론은 “부활은 허구다. 사기다. 거짓이다. 사실이 아니다.” 이런 결론이 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무신론자의 균형 잡힌 사고와 탁월한 추리력으로 결론짓기를 “예수는 부활하지 아니한 것이 아니다. 부활하셨다. 다시 사셨다.” 이렇게 선포합니다.
예수의 시체는 이미 썩었고, 그의 환상을 보았다는 말도, 예수는 쌍둥이였다는 말도 있었고 시체를 훔쳐갔다는 말도 있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결국 책의 제목은 “누가 무덤의 돌을 옮겼는가?”로 바뀌고, 결론은 부활의 확실성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여러분들에게 모리슨을 비롯한 많은 부활의 진위를 검토한 사람들의 연구를 종합해서 어떻게 해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가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입니다.
유대의 대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당시에 사형을 집행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온 것입니다.그들은 예수께서 ‘유대인의 반란을 도모하는 로마의 반역자’라는 죄목으로 사형시키기를 원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라는 젊은 선지자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로마의 총독이며 법의 전문가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풀어주고자 했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그렇게 하면 가이사(시이저)에게 충신이 아니라고 야유하며 백성을 선동했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 형에 처형하라는 판결을 내리고 백부장을 통해 사형을 집행하도록 했습니다. 십자가 처형의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졸도설이나 기절설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참혹한 채찍질과 십자가에서 못 박은 큰 고통 때문에 심지어 한 병사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죽음을 확인했습니다. 메시야의 십자가형은 이미 구약 성경에 예언되었고 예수님 스스로도 그 죽음과 부활을 예견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부인할 수 없는 공인된 역사적 사실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묻힘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학설 중에 무덤 착각설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바르려고 찾아간 여성들이 날이 아직 밝지 않았고, 정신이 없는 가운데 잘못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엉뚱한 빈 무덤을 보고는 부활했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짜 무덤을 찾아서 시체가 여기 있다고 하면 간단히 끝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만에 하나 혹시 예수께서 부활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염려했던 대제사장들의 부탁으로 성전 수비대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아리마대 요셉의 요청으로 빌라도가 내어 주었고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되었습니다. 눅 23:55을 보면 세마포에 싸인 예수의 시신과 함께 여인들이 함께 무덤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 시신을 넣어 두는 것도 목격했습니다. 예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여인들이 무덤을 잘못 찾은 가능성은 아무리 가정을 하며 추측해도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셋째, 빈 무덤
십자가 처형 후 예수님을 시신을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넣어 두었는데 그 시신이 사라졌습니다. ‘시체 도난설’은 누가 예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무덤에서 시신이 없어진 이유는 무엇이란 말씀입니까? 제자들은 이미 겟세마네 동산에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무덤을 지키고 있었던 병사들은 보통 병사가 아닙니다. 특수훈련을 받은 성전 수비대입니다. 그들은 근무시간 중 잠들거나 근무지를 이탈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임무를 다하지 못하면 곧바로 군법에 회부되어 죽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누구라도 경비병 몰래 2톤이나 되는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에게는 예수의 시신을 훔쳐낼 용기와 방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국가 반란범으로 처형된 스승이신 예수는 이미 무덤에 내버렸습니다. 그 시체를 훔쳐다가 어디에 쓸 것입니까? 제자들은 여인들의 보고와 예수의 빈 무덤을 보고 온 베드로와 요한의 증언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도망갔던 그들이 갑자기 돌변해서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빈 무덤은 부활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넷째, 부활하신 주님의 출현
이 출현은 환상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나타난 빈 무덤과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목격한 자는 여성들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부활을 조작하려고 했다면 당시 사회에서 법적 증언의 효력이 없는 여성을 최초의 목격자로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눅 24:13~32). 골방에서 떨면서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500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고전 15:6). 한 개인이 심약한 상태에서 환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여러 사람이 같은 환상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환상을 보았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환상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조작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입니다.
다섯째, 제자들의 변화
‘사이몬 그린리프(Simon Greenleaf)’의 증언,
하버드 대학교 법대교수인 사이몬 그린리프 박사는 하버드 법대를 미국 명문으로 끌어올린 석학입니다. 3권으로 구성된 ‘증거의 법에 대하여’라는 저서는 법학의 걸작이자 ‘법학 서적 중 단연코 독보적 작품’입니다. 현재 미국의 재판 제도는 그린리프가 구성한 증거의 규칙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가 강의를 하면서 “예수의 부활은 믿을 수 없는 단순한 전설에 불과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강의를 듣던 학생들 중 3명의 학생들이 교수님의 증거의 법칙을 부활 사건에 적용해서 하신 말씀이냐는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그렇지는 않다고 했더니 “예수의 부활은 교수님의 증거 법칙에 적용해서 자세히 조사한 후에 다시 말씀해 달라”는 재촉을 수없이 했습니다. 그린리프 교수는 거절할 수 없는 도전 앞에 제자들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시작할 때는 자기의 명석한 두뇌로 부활이 거짓임을 밝히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린리프 교수가 문헌을 종합하는 조사와 연구를 거듭하면 할수록 예수께서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결론은 확실해졌습니다. 그는 이 강력한 진실의 힘 앞에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린리프의 불신앙과 회의론은 부활사건의 진실 앞에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의 부활 사건 후 제자들의 변화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의 용기가 부활의 증거였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스승을 직접 만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신념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고 목숨을 버리면서 순교하기까지 따르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결론입니다.
연구를 마친 그린리프 교수는 전도자의 증언(The Testimony of the Evangelists)이라는 책에서 무신론자였던 자기 자신이 독실한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편견 없이 진실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역사적 문헌과 증언들을 종합해 열심히 하는 마음을 연구해 보면 누구든 자기와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섯째, 부활 사건 이후 당시 유대사회의 변화
한 사회가 변화하는 데는 변화의 원인이 있습니다. 그냥 변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이 변화하는 데도 변화의 원인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회에도, 국가에도, 세계에도 다 그대로 적용이 됩니다. 당시 유대사회는 지금도 매한가지 이지만 유대교라는 정통적 종교의 율법을 열심히 지키는 사회였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유월절을 지키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다섯 가지의 기둥이 있습니다.
‘동물희생 예식, 율법 준수, 유일신 사상, 안식일 준수, 정치적 메시아관’ 이렇게 다섯 가지입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유대교 전통에서 벗어난 젊은 선지자 예수를 출교시켰습니다. 당시 출교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처형당하시고 난 후 국가 반란죄로 처형된 바로 그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따른다는 고백은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는 결심입니다. 지금처럼 예수 믿겠다고 하며 세례 받고, 세례증 받고, 사진 찍고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의 설교 한 번으로 3,000명이 회개하고 또 한 번의 설교로 5,000명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의 설교 주제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유대교의 율법과 절기에 충실한 유대인들이 한꺼번에 이렇게 많이 개종하는 일은 당시 유대 사회의 엄청난 변화와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습니까? 베드로의 메시지 때문입니다. 그때 행한 설교가 요약되어 있는데 행 2:32입니다.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행 2:36)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 사건의 증인입니다. 이 일을 증거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행 2:37)” 그런 반문을 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당시 종교적 전통을 버리게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유대 나라를 해방시킬 메시아를 기대하던 기대를 죄를 대속하시는 대속의 메시아관으로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토요일에 지키던 안식일을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을 주님의 날로 지키며 부활의 신앙고백이 들어 있는 안식 후 첫날 예배드립니다. 유대교 신앙인 유일신 신앙을 3위 1체 신앙으로 믿습니다. 행 6:7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했습니다.
결론
이러한 기록은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크리스천이 아니었던 유대인 역사학자 ‘요세프스’의 ‘유대 전쟁사’에도 동일한 증언이 나와 있습니다. 로마의 역사학자 타키투스(Tacitus, AD 53~120)의 저서 ‘연대기’에도 예수에 대한 역사적 사건과 증인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AD 112년 경 소아시아 비두리아의 총독 플리니(Pliny)가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보고서에도 기독교가 로마제국 전역에 이렇게 해서 번지고 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으로 충분히 공인되고 인정받는 저서 455 군데에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행적과 십자가 처형과 부활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의 의미
당시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 성도들은 핍박의 시대에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구약성경이 예언한 메시아가 바로 나사렛 예수라고 증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복음을 전하기에 합당한 거룩하고 도덕적인 생활의 모범을 실천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받은 자로 당연히 그렇게 산 것입니다.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노예들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했습니다. 국가의 복지정책이 개인에게 전달이 안 될 때 구제를 통해서 사회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강력한 기도로 귀신이 떠나가고, 병자가 일어나고, 다른 곳에서는 비교가 안 되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로마의 핍박을 이기고, 유대교만 믿는 동족의 핍박을 이기고, 기독교는 불길처럼 번져 나갔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부활과 영생을 믿지 않는다면 그냥 그대로 이방인들처럼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고, 천국을 예비하시러 간 것이 사실이고, 다시 오실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의 믿음을 재검토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 일대일의 관계에서 스스로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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