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코리아 2020. 2. 23
구약의 정경
A.D. 400년경 유대 탈무드(Talmud)에는 유대인의 성경이 나오는데 대략 그 순서와 이름은 오늘날 우리의 히브리 성경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았다.
12 소선지서를 하나로 묶었으며 사무엘서와 열왕기서 그리고 역대기서는 각각 한 책으로 계산해서 24권이었는데 그 내용은 율법서 5권, 선지서 8권 그리고 11권의 책들(시편, 잠언, 욥, 솔로몬서의 아가서, 욥기, 애가, 전도서, 에스더, 다니엘, 에스라, 느혜미아, 역대기)이었다. 초기에 그들은 사사기와 룻기를 한데 묶었고 예레미야와 예레미아애가를 하나로 묶어 히브리어 알파벳 22자에 일치하는 22권을 만들었다. 250년경에 오리겐(Origen)은 구약 22권의 목록을 작성했으나 탈무드의 순서는 아니었다.
유대인의 역사가 조세푸스(Josephus)는 A.D. 90년경에 아피온(Apion)에 반대하는 그의 작품을 썼는데(:8) 유대인이 받은 22권의 책들은 모세의 율법서 5권, 예언서 13권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과 생활을 위한 교훈서 4권이었다. 그는 말하기를 이런 책들은 경건한 유대인€_들이 바꾸거나 부인하기보다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것이라 하였다.
A.D. 90년경에 유대인들은 잠니아(Jamnia)회의를 개최하였다. 거기서 어떤 책들 예컨대 전도서와 잠언 등의 정경성에 대한 토의가 있었다.
제1세기의 애굽계 유대인 필로(Philo)는 22권의 히브리 성경을 수납한 것이 분명했다. 왜냐하면 그는 그 책들에서 많은 것을 인용하였으며 권위가 있는 것으로는 그 책들에서만 인용하였다. 신약의 증거도 일치하는데 구약의 대부분의 책을 인용하지만 7권의 외경에서는 인용하지 않았다. 신약은 구약의 책들을 순서적으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3분화보다는 2분화하여 인용하였다. 예를 들어 율법과 선지서 혹은 모세와 선지자들이었다. 여기에 구약의 22권이 포함되었으며 단 한번 다른 곳에서 모세와 선지자와 시편의 셋으로 구분해서 인용되기도 했다(눅 24:44). 그러나 후에 헬라어의 번역본이었던 칠십인역(LXX)에서도 후대의 복사판은 3분화의 구분 대신 2분화를 따랐다. 이상에서 본 대로 외경의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비1서와 2서 그리고 에스더나 다니엘에 어떤 추가된 것들은 고대에 권위가 없었으며 그리스도와 사도들 혹은 유대인들에 의해 용납되지 않았다. 다만 1545년 로마 가톨릭의 트렌트(Trent)회의에서만 정경이 되었는데 이것은 개혁자들에 대한 반동의 결과였다.
구약의 정경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는 다니엘서가 선지서의 정경이 마감된 B.C.165년까지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지서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견해가 있었으나 요세푸스의 증언은 초기에 다니엘서가 선지서 중에 있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람들은 선지자로 불려졌으며 이들이 없이 영감된 어떤 그룹에 대한 기록은 없었다. 대부분의 구약의 저자는 선지자들이었다. 물론 여호수아나 잠언, 솔로몬의 아가 대부분의 시편 등의 다른 저자들도 역시 선지자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적어도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았기 때문이다(민 12:6). 그밖에 책들 예컨대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그리고 열왕기서와 룻기 욥과 에스더서도 선지자에 의해 기록되었다. 확실히 이런 책들은 쿰란(Qumran)의 사해사본에서와 신약에서 선지서의 이름에 포함되어 있다.
이렇게 선지자적 출처의 책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용납되었다면 그것이 구전에서처럼 기록된 교회의 권위서에 대한 검증의 실제적 시험이었다(신 13:1-5, 18:15-22).
신약의 정경 처음에 교회가 정경으로 크게 수납한 책들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동의했으나 세부적으로 각 책에 대해서는 정경에 대한 견해가 일치되지 않았다. 어떤 책들은 한 곳에서는 수납되었으나 다른 곳에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신약의 27권 이외의 책들이 보편적으로 용납된 적은 없었다. 그 책들의 수집역사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1. 주후 170년대 170년경에 무라토리 정경(Muratorian Canon) 목록에 기록된 책들은 사도적이요 교회들에서 읽혀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 목록은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의 13서신을 언급하며 어떤 위서들을 경고하고 있는데 아마도 요한 2, 3서와 유다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이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묵시는 우리 가운데 있을지라도 교회에서 읽혀지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헤르마스의 목자서(Shepherd of Hermas)도 비사도적인 저작으로 배제되었다. 그 목록에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만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웨스트코트(Westcott)은 생각하기를 이것은 이런 모든 책이 초기에 수납되어 왔으므로 사본에 대한 원형의 파손이었으리라고 하였다.
2. 주후 140년대 이 시기는 순교자 져스틴(Justin Martyr)이 어떻게 사복음서가 구약과 함께 예배에서 읽혔는지를 말해준 시대다. 그는 히브리서를 포함해서 다른 여러 책들을 인용하였다. 이 시기부터 우리는 근래에 애굽에서 발견된 진리의 복음(Gospel)에서 새로운 증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 책은 노스틱파의 발렌티누스(Valentinus)가 쓴 것으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 삼서 그리고 유다서를 제외한 신약이 포함되어 있으며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이 포함되어 있다.
3. 주후 95년에서 118년까지 이 시기에는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이그나티우스(IgatiusS) 그리고 폴리갑(Polycarp) 세 사람이 95년과 118년 사이에 글을 썼다. 이 사람들은 인용에 의해서나 암시로서 누가복음, 계시록,골로새서, 빌레몬서, 베드로후서, 요한이, 삼서 그리고 유다서를 제외한 모든 신약을 알았고 인용하였다. 그런데 그 책들 중에 얼마가 제외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요한계시록과 요한이, 삼서는 클레멘트가 95년에 글을 쓸 당시 아직 기록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초기부터 신약의 정경 27권이 모두 한결같이 수납되어 온 것은 아니었다. 복음서는 언제나 의심이 없었다. 요한서신은 이단들도 의심했을 정도였다. 히브리서는 애굽에서 바울의 저작으로 수납되었다. 로마에서는 여러 교부들이 사용하였으며 마침내 애굽과 팔레스타인의 견해가 널리 보급되어 완전히 수납되었다. 베드로후서는 외중은 미미했으나 내증이 강했다. 유다서는 무라토리 정경 속에 포함되었고 터틀리안이 베드로후서 3:3로부터 분명하게 인용하므로 수납되었다(1).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제4세기 이래로 신약에 속한 것으로 인식되어온 27권의 신약은 값진 판단이 아니라 사실의 언급이다.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신약의 정경은 너무 엄격하거나 너무 포괄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는 정경의 동일함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정경은 그들이 생각하거나 말한 것 때문에 줄어들거나 더해 지지 않았다. 주 1. The Zonervan Pictorial Bible Dictionary, Morrill C. Tenny, Edited, (Grand Rapids : Zondervan, 1967), pp.144-146 2. F.F. Bruce, The Canon of Scripture (Downers Grove : IVP,1998)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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