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없는 목사가 교회에 있다면..., 목사의 정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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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목사는 없다”는 당연한 주장에 대해서 나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반발이 거세다. 겉으로 드러내고 비난하지 않아서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성경에 목사는 없다”는 나의 주장에 비분강개하는 목사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물론, 부름 받은 종의 ‘소명’을 내세우는 목사의 입장에서 “성경에 목사는 없다”라는 말이 고이 들리지 않겠지만, 나로서는 주장을 번복할 생각이 전혀 없다. 이유인즉, 목사의 역할에 대한 판단은 일단 차치하고, 성경에 목사라는 이름이나 직분은 분명히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에베소서 4장 11절을 들먹이며, “목사는 분명히 신약시대의 5중직 – 또는 4중직 –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었다”면서, 예를 들면 ‘사도’·‘선지자’·‘복음 전하는 자’, 그리고 ‘목사와 교사’가 성경에 뚜렷이 명시되었다며 당당히 반론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런 반론은 사실인즉 답변할 가치조차 없는 억지이자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에베소서 4장 11절에 기록된 ‘목사’(pastor)는 헬라어 ‘포이멘’(poimen)의 오역, 또는 의도적인 왜곡이다. 신약성서에 통틀어 18번 등장하는 포이멘이 예외 없이 다른 구절에서는 ‘목자’(shepherd)로 번역되었으며, 유일하게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만 목사로 번역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이후에 개신교에서 포이멘을 목사(pastor)로 변역하면서 목사를 ‘새로운 성직자’로 둔갑시켰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다른 한편, 성경에 명시적으로 기록된 '장로'가 오늘날 목사에 해당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또한 어설픈 주장이며, 성경적 근거가 없는 사설(私說)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 성경에 기록된 ‘장로’가 지역교회의 ‘어른’이었다는 점과 연관지어, ‘개(별)교회 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개신교의 목사를 장로와 일치시키는 것 같은데,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개신교 목사가 성경에 명시된 장로와 일치하는 직분이라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장로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해야 성경적인 직분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목사를 두고 종종 ‘가르치는 장로’라고 표현한다. 사실이 그렇다면, 목사라는 신조어를 애써 만들 필요가 없이 장로라는 이름을 당당하게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라는 성경적인 호칭을 두고 목사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사실인즉, “목사는 장로와 격이 다르다”는 의미를 은연중에 함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교회에서 목사는 장로가 아니라 장로들을 다스리는 ‘당회장’이다. 이렇듯 목사는 장로가 아니며 격이 다르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한편, 장로가 성경적인 직분이라는 것을 빌미 삼아 개신교의 목사가 장로와 같은 직분으로, 이를테면 성경적인 직분이라는 주장은 그 자체가 자가당착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목사라는 명칭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목사는 장로와 동일한 지위에 있지도 않고 처음부터 동일한 성격도 아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elder)는 신구약을 통틀어 신앙공동체의 어른을 의미한다. 신앙의 깊이나 연륜에서 어른일 뿐 아니라, elder라는 호칭이 시사하듯 – 디모데를 비롯해서 일부 예외가 없지 않지만 – 나이부터가 이미 공동체의 어른이다.
‘일곱 집사’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도행전에서 보듯이, 초대교회에서는 집사를 선출할 때에도 공동체의 의견에 따라 결정한다. 반면에, 한국교회에서 목사는 신앙의 연륜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신학교를 마치고 형식적인 시험을 치른 뒤, 목사안수를 받으면 즉각 목사가 되지 않는가? 도대체 성경적인 직분, 다시 말해 초대교회의 장로직분과 개신교의 목사 사이에 무슨 연관성이 있기에 목사가 장로에 상응하는 성경적인 직분이라고 주장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목사라는 '새로운' 호칭 자체가 성경에 없이 다만 개신교에만 존재하고, 더욱이 한국의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편찬한 ‘공동번역’에조차 목사라는 호칭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가톨릭에서 목사라는 비성경적인 호칭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개신교에서도 목사라는 이름을 주장할 만한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보다 분명하게 결론을 내린다. 목사가 성경적인 직분이 아니라는 나의 주장이나, 그에 대한 반론으로 제기하는 주장이나 사실상 둘 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 목사와 연결지어 '성경적인 직분' 운운하는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성경의 기록연대를 고려할 때 성경적인 직분은 초대교회에나 있을 수 있는 직분이다. 성경이 1세기에 기록되었는데,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부터 시작되는 개신교의 목사라는 직분이 유령이 아닌 다음에야 시대를 거슬러 존재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내가 “성경에 목사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던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다.
나름대로 종교적인 필요와 명분에 따라서 만들어진 목사 직분을 무턱대고 부정하거나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목사라는 직분이 마치 '태초부터 예정된 거룩한 성직'인 양 함부로 거들먹거리지 말라는 고언일 뿐이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한국 교회가 이토록 타락하고 왜곡된 가장 치명적인 원인에 대해서 나는 주저 없이 목사들의 교만과 허튼 소명의식, 나아가 몰지각한 선민의식과 이에 맹종하는 교인들의 목사의존신앙에 있다고 본다.
성경에 목사가 없다면, 그럼에도 종교적인 필요에 따라 ‘인위적으로’ 정한 직분이라면 목사에 대해 나름대로 사역자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목사를 ‘기름 부음 받은 종’, 나아가 태초부터 선택받은 ‘하나님의 종’ 따위 수사는 결코 가당하지 않으며, 목사가 교회의 전권을 장악해서 설교를 비롯해서 교회의 재정·인사·행정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분명 반성경적인 오류일 뿐이다.
이런 글을 쓰면서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비난을 받을 이유가 없는 ‘좋은 목사들’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차 없이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나의 충정을 이해하기 바란다. 목사가 마치 교회의 제왕인 양, 지금처럼 절대 권력을 장악하고 기세등등하게 날뛰면 교회는 반드시 타락하고, 타락한 교회는 마치 ‘촛대’가 옮겨지듯 그리스도의 성령이 떠나며, 성령이 떠난 교회는 이름만 교회일 뿐 이미 ‘죽은 교회’이기 때문이다.
목사들이여! 주께서 제자들에게,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제발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진정한 영적 권위를 소유하라! 목사가 낮을 대로 낮아져서 모름지기 죽기까지 낮아져야 비로소 교회가 살고 예수가 산다. 목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너희들 가운데 높아지려는 자는 낮은 자가 되라!”는 주의 말씀을 명심하라.
‘낮은 자가 되라!’는 주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비루한 존재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큰 자’가 되기 위한 순종이며 연단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의 ‘본’이 되시는 예수께서 낮아지시고, 낮아지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 죽으셨기 때문에 부활하셨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모든 이름 위에 가장 뛰어난 이름, 이른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찬란한 영광을 입으신 것이 아닌가!
강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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