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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공병호 칼럼

한국인과 일본의 사회성

김용운 교수님의 신간에는 오랫동안 양국을 경험해
온 분만이 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교훈적인
내용들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 글 가운데서 ‘한국인과 일본의 사회성’에 대한
내용도 인상적입니다.


1. 개인의 성격에 절대 선, 절대 악이 없는 것처럼
    민족의 원형 또한 일방적으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것은 없다.
‘한국인은 분열하기 쉽고 시샘이 많다.’고 하지만 8.15광복 이후
남북 분단과 6.25전쟁까지 겪으면서도 주체성과 향상심을
발휘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속담 그대로 분열하면서도
변화의 틈새를 이용해 잘 살 수 있는 슬기를 지니고 있다.
사교육비가 국가 경제를 좌우하고 선행 학습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다.
공부해야 양반이 될 수 있고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조선 시대의 가치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결과이고,
이로써 국제적으로 활약하는 많은 인물을 배출해내기도 했다.

2. 일본인은 거추장스러운 사상 없이 오직 ‘결속과 단결’만으로
    단시일에 군사 대국과 경제 대국을 이룬 반면 사상, 윤리 등
사회적인 완충 기능이 없었기에 무모한 전쟁에서
패했고 같은 이유로 경제 대국에서
버블의 나락으로 빠졌다.


3. 중국 혁명의 아버지 쑨원은 일본이 서구를 쫓아 제국주의적
   야심으로 날뛰는 것을 보고 “서양을 추구하지 말고 아시아로
돌아오라.”고 충고했으나 후쿠자와 유기치는 반대로
‘탈아론(脫亞人歌)’을 내세워 일본이 아시아에서 이탈하고
나올 것을 외쳤다.
일본은 피부색과 지리적으로만 아시아일 뿐,
유교를 국교화하지 않았고 정사 편집이나 과거제도를 채택하지
않았으며 사상과 문화적으로도 아시아다운 적은 없었다.
‘탈아론’은 사상적 체계는 아니며, 진보보다는 과거 지향만하는
중국인과 말 많은 한국인이 싫다는 감정론에서 출발한 것이다.

4. 나라마다 국민의 원형에 공명을 일으켜 국민적 노선을
    미화하고 고취하는 국민적 작가가 있다.
일본의 국사로도 추앙받는 시뱌 료타로는 (언덕 위에 구름),
(사카모토 료마) 등 메이지유신에서 러일전쟁까지 근대화에
활약한 인물을 중심으로 여러 작품을 남겼다.
그는 제국주의 전쟁에 참여한 신정부의 국책에 따라
맡은 바 임무에 헌신하며 일본적 아름다움을 구현한 젊은이들을
설득력 있는 필치로 묘사했다.


5. 침략 전쟁으로 국력이 신장되는 시기에는 청년들에게
   출세나 영달의 기회가 많다.
이들 작품의 주인공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우수한
인물인 것은 사실이지만 국사답게 역사관이 없는
역사소설로 일본적 정서, 특히 책임감과 취미에 헌신하는
이들의 모습을 미화해 국민 작가로 칭송받았다.
개인으로서는 양식 있는 신사로서 한국과 한국 지식인들에게
호의적이었으나, 공인으로서는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국수적 자존심을 고취해 우경화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6. 한국문학의 대표 작품인 (토지), (태백산맥),
    (혼불), (영웅시대) 등의 주제가 민족, 사상 등인 것과는
정반대이다.
일본의 장시(長詩) 작가 모두가 재일 교포인 것은 우연이
아니며 이들은 일본에 거주하면서도 사상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인은 탐미주의자이기에
장시에는 흥미가 없다.


7. 일본은 권위를 존중하면서 사람의 입, 구설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군말 없이 전체(공동체)를 거스르지 않는
행동(대세 사관), 즉 ‘큰 나무 그늘에 기대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았다.
교육 목표로는 사회규범 준수를 중히 여겨 예의범절을
가르친다는 의미인 시츠케(躾) 사상을 중심에 두었다.

8. 사상이 철학보다는 사회질서를 우선시하고
    남이 베푼 사소한 친절도 폐로 여겨 부담을 느낀다.
요즘은 꽤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정교육에서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마라’, ‘거짓말을 하지 마라’, ‘한 가지
일만 열심히 하라‘고 강조한다.


9. 지난 동북 대지진에서 보인 일본인의 질서 의식은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이는 ‘방사능에 죽을 수는 있어도 마을과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고는 못 산다.’는 마음가짐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생활관으로 일본은 군사, 경제 대국을 이뤘다.
그러나 세계나 인류에는 관심이 없어 보편 사상을
형성하지 못했다.
-출처: 김용운, (풍수화), 맥스미디어, pp.262~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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