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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공병호 칼럼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의 고백: 경주마처럼 달려야

우리가 다른 분의 인생을 대신 살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의 삶의 애환과 단상을 기록한
글들은 삶의 간접 경험을 더해 주고
분발을 촉구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일본 4세대 건축가의 대표주자
(나, 건축가 구마 겐고)의 글은 참으로 생각할
것들이 많습니다.
 달랑 가방 하나를 들고 수주와 현장 확인을
위해 돌아다니는 구마 겐고 씨의 세상 읽기도
강한 자극을 줍니다.


1. (달랑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매일 매일 세계의 이곳저곳을 방문하는 그에게
비친 세상의 모습은 어떨까요?)

세계화라는 시스템은 잘 진행되면 흥청망청 하지만,
일단 그 가면이 벗겨지면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하며
모든 것을 무너뜨립니다.

현재 세계는 유럽과 아시아,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조차도
이 힘으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21세기 유럽의 쇠락, 미국의 부진, 일본의 그늘은
그 결과이며, 어떤 선진국도 자기들이 설 발판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아니, 잃어버리기 전에 자기가 서 있을 곳이 애당초 없었다는
것을 발견하고야 만 것입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이야기입니다.
이걸 잘 알게 되면 ‘어떻게 잘 되겠지’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2. (수주에 목을 맬 수 없는 분이기에...)
   돈 때문에 늘 녹초가 됩니다.
하지만 일에 매달려 "이렇게 싼 가격으로 이렇게까지
해냈다!"라는 쾌감의 포로가 되고 맙니다.
그것이 왠지 상대의 노림수 같지만,
제약 속에서 지혜가 생기고 그것이 건축을 다듬어
아름답게 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2. (그가 보는 자신의 직업은...)
   발주하는 사람들은 눈에 띄는 건축가 몇 명을 전 세계에서
불러 싸우게 합니다.
우리는 그 싸움에 참가해 선택을 받지 못하면 일을
시작할 수도 없게 됐습니다.
그 바람에 지금은 1년에 내내 레이스에 참가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말해놓고 보니 매주 레이스에 나가야만 하는 경주마
같은 존재네요. 따라서 오늘날의 건축가는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정신력과 체력 없이는 해낼 수 없는 직업이
됐습니다.
빌바오 이후, 건축가는 상대를 내려다보며 일을 고르는
엘리트가 아니라 매번 레이스에 나서야 하는 의무를 지닌 비참한
경주마 신세가 됐습니다.


3. 돌이켜보면 제가 받은 일본의 학교 교육은 정밀도와 정확성,
   또는 추상성 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좋게 이야히가면
그것은 인간의 제품화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제가 받은 그런 공업사회 방식의 교육을 사회에 나간 뒤에
부정하는게 진정한 건축가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대부분은 받은 교육에서 그대로 멈춰 있습니다.
일본 건축이 시시해지는 과정에 있다면
그것도 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4. 한국도 삼성, 현대, LG 등의 대기업이 국제사회에서
   지니고 있는 존재감과 비교하면
건축가의 존재감은 없습니다.
왜 일본에서만 이렇게 해외에서 활동하는 건축가가
나오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겠죠.

(일본에 유독 세계적인 건축가가 나오는 이유에 대하여)
하나의 이유는, 20세기 공업사회 속에서 성립한 세계적인
규모의 건축 시장에서 시장 구조를 분석하는 미디어적 시각과
자기가 서 있는 장소를 깊이 파내려가는 장인적 근성을
겸비할 수 있는 토양이 일본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미디어적인 시각만 있다고 세계적인 작품이 되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장인적인 근성, 장소를 파내려가는 것만으로는
세계적인 작품이 되지는 못합니다.


5. 초고층아파트 단상?
   21세기가 되어 지난 세기의 맨션 개념을 뛰어넘은
초고층맨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3.11대지진으로 재해가 일어났을 때 잠깐 초고층맨션의
위험성이 화제가 됐습니다만, 초고층맨션에 사는 게
새로운 생활양식이라는 개발업자의 전략이 유사 이해의
위험을 뛰어넘었습니다.
초고층맨션의 건설과 판매가 부활하면서
그것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어느새
논의 저편으로 사라졌습니다.


6. 이미지는 인간의 일상을 지탱하거나 목숨을
   지켜주지 않습니다. 자산조차 되지 못합니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맨션은 완성된 순간부터
성능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커지면 커질수록 재건축도 쉽지 않아서
예전 일본의 목조건축처럼 부분적인 자재가 설비 교체,
혹은 세월에 따라 아름답게 변화하는 재료의 선택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되기는커녕 점점 썩어들 뿐입니다.


-출처: 구마 겐고, (나, 건축가 구마 겐고-나의 매일은
숨 가쁜 세계 일주-), 안그라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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