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리뷰] 소설 남한산성 - 병자호란, 남한산성, 그리고 답답함.. [소설서평] 나부랭이 / 서평/리뷰
2013/03/08 00:48
http://blog.naver.com/bluemir98/60186002150
- 소설 남한산성의 디자인은 원색의 분홍색.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찬 병자호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분홍색의 디자인을 선택한 것은 고통스러운 시련을 겪은 후의 희망찬 봄을 뜻하는 것일까? 하긴, 생각해보면 그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기댈 곳이라고는 헛될 수도 있는 희망이라는 단어밖에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나저나 책의 옆 표지에 인쇄되어 있는 작가 김훈의 사진이 좀 뜬금없다;;;
소설가 김훈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칼의 노래'가 아닐까 싶다. 임진왜란 시기 충무공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뇌와 삶을 담담하게 그려냈던 '칼의 노래'를 상당히 인상 깊에 읽었었던 기억이 나고, 작가의 필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경륜이 소설 속에 묻어나오는 느낌이랄까? 김훈은 칼의 노래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인 '흑산'이나 이 '남한산성'을 통해서도 시대적 배경과 그 시대 속에 살아가는 등장 인물들의 생활상을 소설 속에서 매우 상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이름이 높다. 그리고, 그러한 세밀한 묘사 속에 드러나는 뚜렷한 주제 의식 또한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온다는 점에서 감히 좋은 작가라고 평하고 싶다. 다만, 독자들에게 친절한 서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는 보기 어려운 면이 없지 않아서, 처음에는 그의 작품들을 찾기가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소설 남한산성이 김훈 작가의 첫 작품은 아니어서 그나마 별다른 어색함 없이 이 작품을 선택할 수 있었다.
소설 남한산성은 1636년 발발한 청(淸)나라의 조선 침략, 즉 병자호란 당시 조선 16대 왕 인조(仁祖)와 그 신하들의 남한산성 피난, 민중들의 고난 등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는 역사 소설이다. 주제 자체가 우리 나라 입장에서는 전혀 유쾌하지 않은 굴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제이긴 하지만, 치욕과 시련의 시기를 조선의 군주와 신민은 어떻게 버텨냈는지에 대해서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소설이라고 생각이 든다.
1636년 발발한 병자호란은 조선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 못했던 전쟁은 아니었을 것이다. 명(明)나라가 무너지고 청(淸)이 대두하는 혼란스러운 시대에 양국 사이에서 외교적 중립을 유지하려고 했던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을 쫓아낸 인조반정은 그 비극의 서막이었다.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16대 임금 인조(仁祖)와 그 신하들에게 있어서 외교의 유연성과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고, 단지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을 지키기 위한 고집과 아집, 수구적인 면만 가득했을 뿐이니.... 무너지는 제국인 명나라에 대한 사대(事大)의 예(禮)만을 고집한 그들에게는 이미 10년 전에 청나라가 침입하였을 때(정묘호란) 강화도로 피신한 치욕스러운 경험이 있었는데, 그렇게 이미 신흥 강국인 淸에게 제대로 한번 데였음에도, 그 후의 10년 동안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명나라와의 의리를 강조한 것 뿐이었다. 의(義)와 예(禮)만이 남아있었던 조선에서 실질적인 국력 증강과 내실을 다지는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결국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무작정 도망가는 것 빼고는 길이 없었다.
" '저 안(남한산성)에 들어가서 대체 무엇들을 하고 있는 겐가?'
'안에서 저희끼리 싸우고 있을 것입니다....'
'막아 놓고 쉬십시오. 시간이 흐르면 성 안이 스스로 말라서 시들어버릴 겁니다.'"
" '영상과 병조는 예판의 말대로 시행하라. 종친과 사대부들부터 (여벌의 마른 옷과 모자, 귀마개, 버선 등을) 거두어라. 서둘러라.'
영의정 김류가 말했다.
'예판의 말은 옳으나 그 헤아림이 모자랍니다. 종친의 의관을 거둠은 왕실의 체통을 허무는 일이옵니다. 왕실이 위엄을 잃으면 이 춥고 외로운 성 안에서 신민들이 의지할 곳을 잃게 될 것이옵니다.'..." - 책 본문에서
남한산성으로 일단 피난을 들어간 조선의 군주와 신하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병력과 병기가 충분한 것도 아니었고, 군량미가 많이 축적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외부의 지원을 기다릴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외부와 고립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적 방편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냥 단지 도망갔을 뿐. 그러한 망국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암담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도 신하들은 여전히 허황된 체통과 위엄만을 내세우고, 명분과 대의를 언급하면서 말뿐인 '전쟁'을 외치고 있었다. 실질적인 타개를 위해 화친을 주장하는 신하는 역적으로 몰아가면서 말이다. 거기다가 성 밖에 청나라의 수많은 군병들이 진(陳)을 치고 있는데도 새해가 밝았다고 이미 스러져가는 명나라의 황제를 위한 예식을 거행하는 모습을 보면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참 한숨밖에 안나오긴 한다. 하긴, 존명배청(尊明背淸)을 내세우면서 반정(反政)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와 그 신하들이 청나라에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심각한 자기부정이자 자기모순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니, 전혀 이해못할 바도 아니지만 말이다.
이렇게 '아둔한' 조선국을 바라보는 청나라 칸(汗)의 시각이 당시의 조선의 상황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다.
"한 번의 교전도 없어서 진군대열(청나라의 군대)은 한가했고,.... 가마에서 흔들리며 칸은 이 무력하고 고집 세며 수줍고 꽉 막힌 나라의 아둔함을 깊이 근심하였다." - 책 본문에서
조선의 이러한 아둔함은 이번이 처음도 끝도 아니었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임금이 의주까지 피난을 갔고,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로 피난을 갔으며,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도망가고, 거기에 고종 때에는 러시아 대사관으로까지 도망을 간다. 실제로 병자호란의 치욕에도 불구하고, 그 후의 군주들은 여전히 치욕스런 일이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기도한 것 뿐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조그마한 반도 안에서 서로 죽고 죽이고, 말뿐인 의와 예를 주장하는 이러한 나라가 결국에는 멸망에까지 이른 것은 어찌 보면 역사의 순리였을 것이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럼에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에도 200년 이상을 버틴 것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다루는 작가 김훈의 필치는 매우 세밀하고 그저 담담할 뿐이다. 아무런 대책없이 남한산성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임금의 아둔함, 그 안에서도 명분만을 내세우는 신하들의 아집, 어떻게 해야 살아나갈 수 있는지 걱정스러운 일반 백성들의 모습과 더불어서 철저히 고립된 남한산성 안에서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남한산성을 읽으면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나라의 지도층과 국민들이 어떻게 살아 나가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생각을 하게 만든다.
도대체 남한산성에는 무엇 때문에 들어갔는지 답답하고 슬플 따름이다. 그 안에는 아무런 길도 없었거늘...
▶ 내 마음대로 평점주기
읽는 속도 [ ★★★★★ ] 굉장히 흥미롭다고 할순 없지만, 그래도 다음페이지가 기다려진다.
읽는 재미 [ ★★★★★ ] 슬픔과 씁쓸함이 묻어나는 남한산성 안에서의 이야기
얻는 정보 [ ★★★★☆ ] 병자호란을 겪는 권력층과 민초들은 어떠한 삶과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 책 크기 : A5
- 작가 : 김훈
- 관련 읽을거리
엔하위키 병자호란 : http://rigvedawiki.net/r1/wiki.php/%EB%B3%91%EC%9E%90%ED%98%B8%EB%9E%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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