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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누가 아이들을 죽이는가!

제 550 호
누가 아이들을 죽이는가!
유지나(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자전거 도둑>(1948)을 기억하는가? 한국인이 다시 보고픈 명화로 꼽는 <길>과 더불어 거론되는 이탈리아 영화이다. 전후 피폐해진 이탈리아, 실업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든다. 주인공은 어렵사리 일을 얻지만 자전거가 필수이다. 그는 전당포에 침대보를 잡혀가며 어렵사리 구한 자전거를 신주단지처럼 모신다. 그런데 벽보를 붙이다 한눈판 사이 누군가 잽싸게 자전거를 훔쳐간다. 그는 자전거를 찾기 위해 어린 아들 손을 잡고 종일 거리를 헤맨다. 지쳐버린 그는 아들을 멀리 두고, 홀로 남의 자전거를 훔친다. 그러다 발각되어 군중에 둘러싸여 망신당하는 장면을 아들에게 들키고 만다. 흑백화면 가득히 번져 나오는 비애감은 생각만 해도 처절하다.

비토리오 데 시카감독은 이렇듯 아이들이 어른들 세상을 관찰하며 받는 치명적 상처를 기막히게 포착해낸다. 이 영화 직전에 만든 <아이들이 보고 있다>(1944)에서는 제목 그대로 소년 프리코가 지켜본 어른들 세상이 드러난다. 부모와 친척 모두 아이를 사랑하다면서 돌보지만 철학없는 인생관을 드러낸다. ‘어린 것이 뭘 알겠어’ 같은 어른들의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태도에 아이는 깊은 상처를 받는다.

십대들의 놀이판은 누가 돌리는것일까?

최근 아이들을 둘러싼 사태를 보노라니 데 시카의 영화들이 마음 아프게 떠오른다. 이를테면 지난 5월 OECD에서 조사한 ‘한국 어린이, 청소년 주관적 행복지수’에서 한국은 꼴찌를 했다. 한국이 자살률 평균수치의 2배로 1등이라는 점과 어우러진다. 한국이 14년째 가장 일을 많이 하는 국가란 점까지 얹어 생각하면 우리 사회의 불행감을 형성하는 공기가 확 다가온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이 26위로 행복지수 하위권 어른들보다 더 불행하다는 진단은 매우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다.

한류를 유럽까지 몰고 간 <소녀시대>가 애국적 존재로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어린 연예인을 스파르타식으로 양성하는 한국형 기획시스템이 유럽 언론에서 비판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화를 질투하기 때문이라고 넘겨버리기엔, 심각하게 불행한 사태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6월 17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아동, 청소년 보호조항’을 사상 최초로 삽입한 연예인 ‘표준 전속 계약서’를 발표했다.

십대 아이들을 아이돌로 만들기 위해, 숙면과 의무교육조차 불가능한 일정을 강요하고 ‘하의실종’ 복장으로 노래하고 춤추도록 짜인 이 놀이판은 누가 돌리는 것일까? 바로 이들의 인기와 흥행으로 이윤을 도모하는 반문화적인 어른들이다. 물론 이 판에 가담한 아이들의 스타 판타지를 탓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살벌한 사회에서 명문대를 안 나오고도 잘 살아내려면 스타가 되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 이들도 또한 어른들이다.

다수 멤버가 등장하는 ‘하의실종’ 걸그룹을 보면서 마치 뷔페에서 음식 고르듯이 누가 더 섹시한지 평가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십대 여성 연예인 지망생 여론조사에 따르면 60%가 강요로 인한 노출복장 경험을 밝히고 있다. 걸그룹들 멤버수의 증가는 한두 명이 빠져나가도 그룹 유지에 좋은 전략이다. 그런 현상을 선택폭의 확대로 받아들이는 오빠부대, 삼촌부대 팬클럽의 지지는 또 뭔가? 심지어 평균연령 9.75세인 걸그룹 지스토리도 지난해 나왔다. 아이들을 어른용 놀이감으로 삼는 이런 반인권적 사태는 연예계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명문대 아니면 스타가 되라고?          

지난 5월 열린 ‘진주논개제’에서는 여자 아이들이 왜장 인형을 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체험 이벤트를 벌여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매운 충절 반듯하게!’라는 주제하에 전통예술체험을 내걸고 21세기 여자 아이들에게 전통 기생 따라하기 재현극이라니! 지역 홍보, 애국정신 같은 명분을 내걸고 이런 것을 문화라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아이들은 살아가고 있다. 더 큰 아이들은 돈 없어도 공부할 권리를 외치며 등록금 반값을 걸고 거리로 나선다.

대체 우리들, 기성세대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일까? 물질이 곧 행복이라는 주문에 걸려 체면차리기형 어른으로 살면서 ‘스타 되기’, ‘명문대 가기’를 인생가치관으로 유도해온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요즘 애들이란 …’을 읊으며 세대차이만 탓한 것은 아닐까?

그래도 나는 희망을 갖는다. 시위문화를 놀이문화로 바꿔놓은 촛불세대의 창의성과 호모루덴스형 일상이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문제없다. 물질을 가치로 바꿔버린 어른들이 문제의 근원이다. 자녀사랑이라는 명분으로 공부를 강요하는 어른들, 아이들을 이용해 물질을 얻으려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이 각자의 삶에서, 그리고 제도적으로 반성하고 개선하지 않는 한 아이들의 불행과 죽음을 막을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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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유지나
· 이화여대 불문과
· 파리 제7대학 기호학전공. 문학박사
· 영화평론가.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 세계문화다양성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정부로부터 학술훈장 수상.
· 저서 :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 등
· 2008년부터 ‘유지나의 씨네컨서트’, ‘유지나의 씨네토크’를 영화, 음악, 시가  어우러진 퓨전컨서트 형태로 창작하여 다양한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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