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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공병호 칼럼

극복하기

 

                                                                                출처 : 공병호경영연구소

 

 

기재지 : 행복한 동행       기재일 : 2007-12-17 05:55:00    조회수 : 986

이따금 사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리더들의 사적인 욕심이나 원망이 자신뿐만 아니라 조직의 앞날을 망쳐버리게 되는 사례를 만날 때가 있다.

1752년부터 1800년까지 24년 동안 조선의 국왕으로 있었던 인물이 정조(正祖)다. 역사를 연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영정조 르네상스’라는 단어를 한번 정도는 들어보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정조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라 부를 정도로 태평성대의 시대였다는 말이다. 이런 주장은 보통 사람들에게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여져 왔다. 특히 정약용이, 정약전, 채세공 등과 같은 걸출한 인물들을 등용하였던 정조의 혜안에 대한 칭송은 급기야 근거 없는 정조의 독살 음로론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개혁에 반대하는 일군의 세력들이 정조를 독사하게 되었다는 그런 주장이다. 영조의 독살설을 극화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면 원작을 바탕으로 1995년에는 영화까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개혁 군주와 반대파의 암투 그리고 독살. 독자나 방청객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매력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들을 조선실록의 충실한 고증을 바탕으로 정면으로 뒤집는 이야기를 다룬 사람이 이한우 씨다. 그는 ‘6군주 열전’의 마지막 책인 <정조: 조선의 혼이 지다>라는 책을 통해서 일반인의 상식과 완전히 다른 주장을 펴고 있다. 독살설과 같은 허무맹랑한 주장들이 단순히 픽션에 바탕을 두고 있다면 이한우 씨의 주장은 철저히 고증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시다시피 정조의 아버지는 뒤주에 갇힌 채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그가 11세 되던 해에 그는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아버지가 뒤주에 갇혀 죽는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어린 시절이 이 같은 사건으로부터 정조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사건은 평생 동안 정조를 괴롭힌 업보로 자리 잡았을 것이며 틀림이 없기 때문에 연산군 처럼 폭군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정조가 퍽 괜찮은 군주였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음을 이한우 씨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결코 개인적인 피해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릴 때의 극한체험은 결국 정조를 공(公)보다는 사(私)에 집착하도록 만들었다. 부성애의 결핍, 그러면서도, 아니 그 때문인지 우유부단했다. 사도세자를 추숭(追崇)하려면 전격적으로 할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국왕 개인의 영역에 마물러 있도록 내버려둬야 했다. 그러나 정조는 24년이란 집권 기간 내내 아버지 추숭 문제를 관철하지 못하면서도 이 문제로 조정 신하들과 참으로 불필요한 쟁론들을 수없이 만들어내고 갈등을 빚었다. 집권하자마자 사도세자를 ‘장헌(莊獻)세자’로 추숭하지만 죽는 그날까지 결국 왕으로 추존을 하지도 못했다.”

물론 이런 혹평이 사실인지는 추가적인 연구를 더 필요로 한다. 하지만 필자의 마음에 꽂히듯이 다가오는 한 단어는 ‘피해의식’이다. 리더가 반드시 피해야 할 단어 가운데 하나이다. 누구든지 자신 만의 과거를 갖고 있다. 현재와 미래는 어떻게 해 볼 수 있지만 지나온 과거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일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과거의 일들에 대해서 스스로 마음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함으로써 권력을 쥐고 있는 내내 과거의 무게에 짓눌려서 지내는 리더들을 만나는 일은 아주 어렵지 않다. 근래에도 우리는 비슷한 경험을 한 바가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일어나게 되면 그것은 개인에게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를 따르는 사람 모두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 일반인들의 예상과 달리 정조의 집권과 함께 10년 이상이나 계속된 역모와 반란은 단순한 권력층의 파워게임이 아니라 사심 때문에 실정을 거듭하는 임금과 조정에 대해서 더 이상의 희망을 갖기 어려웠던 사람들과 나라의 상황을 말해준다. 리더라면 어떤 과거라도 개인적인 것들은 그대로 가슴에 묻어야 한다. 대신에 현재와 미래에 눈길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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