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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기타/golf

골프와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

골프와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

                                                                                              박민준 칼럼  

 

 

어느 분야에서건 수준의 단계 또는 등급이 있기 마련이다. 장기 바둑 태권도 등은 객관적인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등급을 부여하고 음주 노름 낚시 등 객관적 기준 설정이 어려운 분야에서도 나름대로 만인이 공감할 기준으로 단계를 매긴다.

낚시꾼들에겐 ‘구조오작위(九釣五作尉)’가 꾼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로 애용되는 것 같다. 소설가 이 외수 선생이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에 실렸던 글을 한 낚시 전문지에 기고한 뒤 회자되기 시작한 구조오작위론은 장기의 말 이름과 작위의 이름을 원용해 꾼들의 수준을 적절하게 제시해준다.

이 선생의 독창적인 착안인지, 어디선가 차용한 것인지는 알 길 없으나 그는 낚시에 구조오작위의 등급이 있다며 낚시꾼은 조졸 조사 조마 조상 조포 조차 조궁을 거쳐 남작 자작 백작 후작 공작, 그리고 조성과 조선에 이르는 14 등급이 있다고 했다.

이 선생이 열거하는 각 등급별 설명을 들어보자.

1. 조졸(釣卒) : 초보자를 일컫는 말로서 한 마디로 마음가짐이나 행동거지가 아직 치졸함을 벗어나지 못한 단계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빵점이다. 낚싯대를 들고 고기만 잡으면 무조건 낚시꾼인줄 아는 것도 바로 이 부류에 속한다. 고기를 잡을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건 말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 마리도 잡히지 않으면 신경질이 나서 낚시질을 때려치우고 술부터 찾는다. 그리고 취하면 그제서야 분이 풀려 고성방가를 시작한다. 술을 못 마시면 집에 가서도 그 분이 풀리지 않을 정도다. 이 단계에서 가장 낚싯줄이 많이 엉키거나 미늘이 옷에 걸리거나 초릿대 끝이 망가져 버리는 수가 많은데, 마음가짐에 따라 낚싯대나 낚싯줄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지 동작 여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마음이 흐트러지면 반드시 낚싯대나 낚싯줄도 제멋대로 움직이기 마련이다.

2. 조사(釣肆) : 그러나 몇 번 낚시질을 다니고, 재미가 붙기 시작해서 몇 번 좋은 수확을 거두거나 대어라도 두어 마리 낚게 되면 차츰 달라지기 시작한다. 장비도 제대로 갖추게 되고,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 제법 신경을 쓰게 될 뿐만 아니라 공연히 목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을 대단히 고상하고 낭만적인 존재로 착각하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방자할 사(肆)자가 붙어서 조사(釣士) 아닌 조사(釣肆)로 한 등급이 올라가는데, 낚시에 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다는 듯 어디서든 낚시 얘기만 나오면 열을 올리기 시작한다. '입질이 온다'라고 해도 될 것을 반드시 '어신이 온다'라고 말하고, '고기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라고 해도 될 것을 반드시 '조황이 별로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단계가 바로 이 단계이며,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 단계이다. 하지만 옆에 앉은 사람이 자기가 잡은 것보다 큰 놈을 올리거나 수확이 잦을 경우는 대번에 의기소침해져 버리는 것도 바로 이 단계다. 그리고 이 단계만 거치게 되면 비로소 낚시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3. 조마(釣痲) : 홍역할 마(痲)자를 쓴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어디서든 찌가 보여서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라는 낚시질을 가지 않으면 몸살이 날 지경이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나 연휴 때에 친구가 결혼을 하면 정강이라도 한 대 걷어차 버리고 싶을 정도다. 물론 적당한 구실을 붙여 되도록이면 식장에 참석하지 않고 낚시질을 간다. 더러는 결근도 불사한다.

4. 조상(釣孀) : 과부 상(孀). 마누라쟁이를 일요 과부로 만드는 것은 약과다. 격일 과부로 만드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사업조차 낚시 때문에 시들해져 버리고, 급기야는 잦은 부부 싸움 끝에 이혼하는 사례까지 있다.
5. 조포(釣怖) : 낚시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는 단계. 이쯤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절제를 시작한다. 취미를 다른 것으로 바꾸어 보려고도 노력한다. 낚시 때문에 인생 전체를 망쳐 버릴 듯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6. 조차(釣且) : 또 차(且). 다시 낚시를 시작하는 단계. 행동도 마음가짐도 무르익어 있다. 고기가 잡히건 잡히지 않건 상관하지 않는다. 낚싯대를 드리워 놓기만 하면 고기보다 세월이 먼저 와서 낚시 바늘에 닿아있다. 그러나 아직은 낚을 수 없는 단계. 고기는 방생해 줄 수 있지만 자신은 방생해 주지 못하는 단계. (여기서부터 매우 철학적인 뜻을 담고 있다. 잡힌 고기를 방생해줄 만큼 유유자적 하는 것 같지만 스스로는 입신양명의 기회를 잡으려고 기다리고 있다는 뜻인 것 같다.)

7. 조궁(釣窮) : 다할 궁(窮). 이제부터는 낚시를 통해서 도를 닦기 시작하는 단계.

8. 남작(藍作) : 바구니 남(藍). 마음 안에 큰 바구니를 만드는 단계.

9. 자작(慈作) : 사랑할 자(慈). 마음 안에 자비를 만든다.

10. 백작(百作) : 마음 안에 백 사람의 어른을 만든다.

11. 후작(厚作) : 두터울 후(厚) 마음 안에 후함을 만든다.

12. 공작(空作) : 비울 공(空). 나중에는 모든 것을 다 비운다.

13. 조성(釣聖) : 모든 것을 다 비운 뒤 나타나는 경지.

14. 조선(釣仙) : 조성과 구분되지 않는 최고의 경지일 것이다. 즉 도인이나 신선이 되는 것이다.

굉장한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낚시의 구조오작위(九釣五作慰)를 골프에 적용해 ‘구골오작위(九骨五作慰)’로 패러디한 글을 한 블로그에서 발견했는데 역시 골퍼들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아 다시 소개해본다.

1. 골졸(骨卒) : 매너와 샷 모두 치졸함을 벗어나지 못한 초보의 단계. 골프채를 든 것만으로 골퍼인체 하다가 잘 맞지 않는 날에는 캐디를 탓하든가 동반자에게 술에 취해 고성방가 하는 것으로 화풀이를 한다. 연습도 소홀하게 하면서 좋은 결과만을 기대하며 약간의 담이 결린 것을 갈비뼈가 나갔다고 주변사람에게 자랑스럽게 떠든다. 18홀에서 드라이버를 열네 번 잡아야 골프라고 굳게 믿으며 섹스가 골프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벙커 수리를 하지 않고 캐디언니에게 끊임없는 작업을 시작한다.

2. 골사(骨肆) : 골프의 선비(骨士)가 아닌 방자할 사(肆)자가 붙는 단계. 100파를 하고 가끔씩 치는 90대 초반의 스코어와 내기에서 이기기라도 하면 골프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는 듯 기고만장해 한다. 연습장에서 허풍이 세어지기 시작하며 비싼 값의 장비에 눈독을 들인다. 자신이 골프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고 굳게 착각하는 단계. 연습장에 열심이고 고수에 대한 동경이 시작되지만 캐디에게 태클과 기술은 계속 들어간다.

3. 골마(骨麻) : 밥상의 반찬이 홀 컵으로 보이기 시작하며 누워서 천장을 보면 그림 같은 페어웨이 속에 해저드가 보이는 초기중독의 단계. 홍역을 앓듯 밤이나 낮이나 빨간 깃발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필드에 자주 못 가면 한 주내내 끙끙 앓는다. 아내의 바가지도 불사, 친구, 친지의 결혼식 불사, 결근도 불사하며 오직 골프가 아님 죽음을 달라는 태도다. 연습장에서 늘 살면서 라이벌에겐 거의 바빠서 연습을 못한다고 귀여운 거짓을 논한다. 80대 중반의 스코어를 가끔 기록하면서 스푼으로 티 샷을 하는 법을 배운다. 섹스와 골프를 선택하라면 <글쎄…>라고 반문하는 단계. 로브 웨지를 사서 한껏 멋을 부리지만 계속 되는 뒷땅에 조루의 연속이다.

4. 골상(骨孀) : 과부 상(孀). 드디어 아내는 주말과부=필수, 주중과부=선택이 된다. 직장생활이 제대로 될 수 없고, 집에 쌀이 있는지, 자식이 대학에 붙었는지, 아내가 이혼소송을 했는지 어쨌는지, 골프가 인생 최고의 목표이자 삶의 의미가 된다. 첫 싱글의 길목에서 수 없는 좌절을 겪으면서 비거리 우선으로 클럽을 교환하는 우를 범하면서 클럽과 공의 중요성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다. 고수가 그린 보수를 하는 것을 곁눈질로 배우며 벙커의 보수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주변의 친한 사람모두에게 골프를 적극 권장하며 연습장에선 훈수와 참견에 여념이 없다. 동반자에게 훈수를 하면서 내상을 치료하려 노력하지만 집에 가는 길목의 전봇대를 잡고 수없이 눈물을 흘리곤 한다.

5. 골포(骨怖) : 드라이버 아이언 어프로치가 모두 잘 되었지만 퍼팅이 안 되든가 다른 세 가지를 모두 잘했는데 드라이버의 오비로 싱글을 하지 못하고 80타 주변을 한동안 헤매는 고행의 단계. 첫 번째로 골프에서 진정한 고민과 좌절을 하기 시작한다. 골프 자체에 공포와 회의를 느끼고 골프가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아내와 자식들은 "돌아온 아빠"를 기쁨 반, 우려 반으로 반기지만 TV의 골프중계를 보면서 절망은 어리석은 자의 결론이라며 싱글에의 굳은 각오를 다지며 연습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골프란 스포츠가 아닌 구도의 길이 아닐까 고민하는 단계.

6. 골차(骨且) : 인생을 망칠지 모른다는 공포로 보이던 골프채가 다시 동반자로 보이는 단계. 샷이나 매너가 한결 성숙해져 골프채는 기쁨을 위한 도구가 된다. 그린에서 잔디의 방향을 이해하며 퍼팅을 시작하고 바람과 라이에 대한 개념, 다운 힐 등의 트러블 샷에 대한 정의가 생긴다. 로브 �지의 용도와 거리감에 익숙해지면서 어느 날 싱글 패를 받고 무차별 쏘지만, 그러나 골프의 심오한 세계를 알기에는 아직 역부족. 골프와 섹스를 택하라면 두말없이 골프를 택하는 단계.

7. 골궁(骨窮) : 다할 궁(窮). 골프에서 샷을 만들고 자신의 스윙을 분석하면서 드로우와 페이드를 연습하는 단계. 연습장에서 훈수하는 방법이 상당히 세련되어 진다. 이븐이나 언더파를 노려보지만 여덟 번은 80대 초반이고 두 번 정도는 70대 후반을 친다. 겸손한 골퍼인가 졸인가로 골프가 정확하게 구분되는 아주 중요한 단계. 캐디에 대한 예의도 바르고 나쁜 스코어는 하수들과의 라운드 때문이라며 스스로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하수의 때를 아직도 벗지 못한다.

8. 남작(藍作) : 인생을 담고 세월을 품는 넉넉한 기쁨이 페어웨이에 있다. 펼쳐진 그린 앞에 한없는 겸손함을 느끼며 버디를 기다리지 절대로 버디를 찾아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내기를 즐기되 결코 내기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동반자와 쉽게 친하되 경망스럽게 라운딩 중 참견이나 훈수를 하지 않는다. 연습장에서 초보자가 물으면 아주 겸손하게 상의하듯이 연습하고 라운드의 복장이나 매너에 굉장히 신경을 쓴다. 라운드의 대부분이 70대 스코어를 기록하는 고수의 길로 접어든다. 그동안 당한 골프에서의 손실을 하수에서 찾으려 하는 졸 같은 싱글과 겸손하고 멋진 싱글골퍼로 다시한번 나누어지는 단계.

9. 자작(慈作) : 마음에 자비의 싹이 트는 심오한 단계. 거짓 없는 자연과 한 몸이 되면서 스코어보다는 대자연과 좋은 친구들과의 라운드를 함에 신에게 감사하는 생각을 가진다. 골프를 치면서 자기 자신까지 잊을 수 있다. 내기 욕심이 완전히 사라지고 스코어와 샷에 대한 욕심도 절대로 내색하지 않는다. 한 번의 스윙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이 샤프트를 타고 전율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내기에서도 자신이 잘 쳐서 이기려 하지 절대로 동반자가 무너지길 기대하지 않으며 이븐 파와 언더파의 주변에서 맴돈다.

10.백작(百作) : 한 번의 라운드에 백 번의 라운드를 경험한다. 그러나 아직도 참으로 배울 것이 많으니 골프의 지혜를 하나하나 깨우치는 기쁨에 세월의 흐름을 알지 못한다. 골프도 세월도 라운딩도 한 몸이 되면서 비로소 골프라는 심오한 운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시작된다. 인간은 골프라는 위대한 존재 앞에 한없이 초라한 미물임을 깨닫는 날, 인생에서 최초의 언더파를 기록한다.

11.후작(厚作) : 마음 안에 두터운 믿음을 만드는 단계. 해탈을 위한 작은 노력이 시작되고 골프도(道)의 깊이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다. 지혜와 샷은 심후한 내공으로 깊게 갈무리되어 범인들은 도저히 그 깊이를 알 수 없다. 연습장이나 필드에서조차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섣불리 골퍼임을 말하지도, 드러내지도 않으며, 행동 하나 하나에 연륜과 무게가 엿보인다. 내공은 오기조원(五氣朝元- 내단학 수련에서의 고급단계)의 경지에 도달하고 초식(무공 용어로 검을 다루는 기본자세, 여기선 골프채를 다루는 자세)엔 화려함이 모두 사라지고 극도로 단순해진다. 골프도(道)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단계.

12.공작(空作) : 모든 것을 다 비우는 무아지경의 단계. 골프를 통해 삶의 진리를 모두 깨달았으며 우주의 신비 또한 거칠게 없이 이해되는 입신의 경지에 거의 도달한 상태. 지나온 골프인생을 무심한 미소로 돌아보며 조용하게 신선이 되는 때를 기다린다. 혼자 조용하게 해탈할 것인가 중생들 모두를 두루두루 함께 깨달음의 세상으로 인도할 것인가 가름되는 단계.

13.골선(骨仙) : 수많은 골프의 희로애락을 겪은 후에 드디어 입신의 경지에 이르는 깨달음의 세계. 이는 도인이나 신선이 됨을 뜻하며 대자연의 윤회를 벗어나 대승적인 관점에서 해탈을 준비한다. 나도 없고 골프도 없고 골퍼도 없어지는 무상의 세상이 펼쳐진다.

14. 골성(骨聖) : 무아의 경지로 피안에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 중생의 슬픔을 외면 않고 어둠을 질러오는 한 세상의 아픔도 결코 외면하는 법이 없다

구조오작위(九釣五作慰)론에서 차용했으되 그 깊이는 더욱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 바로 앞 회에 쓴 필자의 <골프의 10단계>에 원용된 심우도(尋牛圖)의 개념과 어찌 그리 일치하는지 놀랍다.

나는 과연 ‘구골오작위(九骨五作慰)’의 14단계 중 어디쯤 머물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