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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영재교육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뇌

[과학칼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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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라는 이름의 그림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사랑스러운 젊은 여인으로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마귀 할멈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한 가지만으로 보는데, “이것이 코고, 저것이 입”이라고 가르쳐 주면 비로소 다른 모양을 보게 된다. 귀가 눈이 되고, 턱이 코가 되고, 목걸이가 입으로 바뀐다. 아내와 만나기로 한 레스토랑에서 시끄러운 속에서도 멀리 있는 아내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린 기억이 있는가. 처음 듣기가 힘들지 한번 들으면 그 후 더욱 잘 들린다. 친구가 약속과 다르게 행동하면서도 스스로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당해 보았는가.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주의집중을 설명하는 데 많이 쓰이는 현상이다.

시각과 청각 등 감각기관에서부터 두뇌로 신호가 전달되는 순방향 경로와 더불어 두뇌로부터 감각기관으로 전달되는 역방향 경로가 있다. 두뇌의 보다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영역에서 시작되는 이 역방향 경로가 순방향 경로의 감각신호 전달을 변형시킨다. 즉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선택적으로 막아버리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없는 것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배경 잡음은 이 과정에서 줄어들고, 다른 요인으로 손실된 정보는 복원되어 정확한 인식이 가능해진다.

더 나아가면 환상을 보거나 환청을 듣게 된다. 뇌에서 시각을 담당하는 부분에서는 망막과 유사한 분포로 신경세포들이 반응하게 되는데, 환상을 보는 사람들은 실지로 영상을 볼 때와 비슷하게 신경신호가 나타난다. 환청을 듣는 경우도 청각을 담당하는 부분에서 신경신호가 나타난다. 즉 환상이나 환청의 경우 실지로는 영상과 소리가 없지만, 두뇌에서는 스스로 만들어진 영상과 소리가 있다. 이것이 심해지면 영화 ‘아름다운 영혼’과 같은 정신분열증이 된다.

사람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리고 여러 가지를 파악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한곳에 주의가 집중되었다가도 곧 다른 쪽으로 주의를 옮기게 된다. 주의가 지속되는 시간은 그 대상에 대한 우리 두뇌의 관심 정도에 따라 증가한다. 즉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곧 다른 관심사로 주의가 옮겨가지만 중요한 대상에 대해서는 스스로 주의를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 심하면 외부에서 자극을 주더라도 주의가 지속된다.

선거철만 되면 한 사람을 뽑는 데 수 십 명의 후보가 나타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그런데 막상 본인이나 선거캠프 관계자들은 당선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당선된다고 믿고 싶기에 다른 것이 다 막히고 안 보이는 것이다. 무엇에 씐다고 하던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푸슈킨). 당신이 스스로를 속인 것이다. 인간은 원래 그런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조물주가 만들었든, 오랜 진화를 거쳐 발전하였든 인간의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시각 시스템은 초당 수천만 개의 정보를 받고, 청각 시스템은 수만 개의 정보를 받아 실시간으로 처리하며 살아간다. 인간 두뇌가 초당 100조 번의 계산을 하더라도 시청각 시스템의 정보를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하여 처리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미리 생각하고 있던 것을 중심으로 ‘빨리’ ‘대강’ 처리하는 것이다. 맹수를 만나면 빨리 도망가는 등 살아가기 위해 즉각적인 반응이 필요했던 원시 시대에는 이것이 매우 필요한 기능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마도 아직 인류가 더 진화해야 하는 요소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자기 멋대로 생각하기보다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아는 마음의 눈을 키워 보고 싶다. 당신은 오늘 아내의 얼굴에서 무엇을 보나.

이수영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약력=서울대 전자공학과, 뉴욕공대 전자물리학 박사,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뇌과학연구센터 소장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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