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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구의 역사 칼럼] 안 예쁜 여자는 없다

 

이순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 제32호 | 20071020 입력
“남자들은 자신이 20대에도, 30대에도, 40대에도 변함없이 20대 여자만 찾는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가벼움을 성토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남자들은 왜 젊고 예쁜 여자를 찾을 수밖에 없는 걸까?

“여자에게 있어서 7은 중요한 숫자다. 즉 7세에 치아가 모두 나고, 14세에 성적으로 성숙하며, 21세에는 여성으로서 정점에 이르며, 49세에는 폐경을 맞는다.” 중국 의학 문헌에 나와 있는 여자의 신체 변화에 대한 설명이다. 이 의학서는 이어서 남자에게는 8이라는 숫자가 중요하다고 했다. “즉 8세에 치아가 모두 나며, 16세에 성적으로 성숙하고, 24세에 남성으로서 정점에 이르며, 64세에는 자손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 숫자들을 놓고 보면 여자는 남자보다 젊은 기간이 짧다. 빨리 성숙하고 빨리 노화한다. 결정적으로 여자의 폐경기는 49세이고 남자들은 64세까지 생식능력이 있다. 사실 남자들은 생존하는 한 아이를 낳기도 한다. 생식 능력에서 남녀는 15년 이상 차이 난다. 여기에 이유가 있어 보인다.

『예기(禮記)』에서 ‘남녀의 결합은 위로 조상을 받들고 아래로 후손을 잇기 위한 것’이라고 했듯이 인간에게 종족 보존은 생의 기초다. 관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자들이 생식능력에서 우세한 젊은 여자를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남자들을 성토할 일만은 아니다. 성토해도 바꾸기 어렵다. 그보다 현실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짧은 젊은 기간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여기에는 또 이런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잘 활용 좀 해보려고 해도 남자들이 너무 예쁜 여자만 찾는다고. 사실이다. 예쁜 여자에게 목매지 않는 남자가 있는가?

그러나 예쁜 여자에 대한 개념에는 틈새가 있다. 예쁘다는 건 젊음만큼 절대적이지는 않다.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 청나라 문학가 이어(李漁·1611~1630)는 여자에게 있어서 자태(姿態)를 중시했다. 자태란 ‘아름다움의 독창성’이랄까, 단순한 미모[姿色]보다 한 수 위라고 정의한다.

“자태가 사물을 빚어내는 것이다. 아름다운 사람을 더 아름답게 하거나 요염한 사람을 더욱 요염하게 할 수는 없지만, 나이 든 사람을 젊게 하고 못생긴 자를 곱게 만들 수 있다. 정이 없다가도 정이 붙게 하고, 그녀에게 속더라도 깨닫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여자가 한번 미태(美態)가 생기면, 3~4할의 자색을 갖고도 6~7할의 자색을 가진 여자를 이길 수 있다. 6~7할의 자색을 지녔으나 미태가 없는 여성과 3~4할의 자색을 지녔으나 미태를 가진 여성을 함께 세워 놓고 보라. 사람들은 3~4할의 미태를 좋아할 뿐 6~7할의 자색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자태는 얼굴에 비해 그 효과가 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몇 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여자들 중에는 용모는 하나도 볼 것이 없으면서도 계속 생각나게 하고, 심지어 그녀의 명령에 복종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태(態)’ 하나가 수작을 부리는 경우다.”

얘기의 요지는 좀 덜 예뻐도 뭔가 특별한 자태가 있으면 더 예쁜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자태가 도대체 뭐기에 그럴 수 있다는 것인가. 요즘 말로 옮기면 매력일까? 웃는 얼굴, 성격, 배려, 지성, 옷차림, 카리스마, 섹시함, 착한 몸매, 아니면 이효리가 말하는 자신감? 어쩌면 그 무엇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래전 학자의 말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아름다움에는 주관이 개입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 것만큼은 상기할 만하다. 주관성은 심지어 더 이상 젊지 않은 여자들도 아름다워 보이게 할 수 있다. 모름지기 여자들은 언제나 자기가 예쁘다고 우길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거기에 걸려들 주관 있는 남자들은 많기 때문이다. 세상에 안 예쁜 여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