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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기타/책 읽기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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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2007년 7월 25일자로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의 20쇄가 간행되었다고 출판사 「창비」에서 증정본 1권이 배달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희한한 일도 있을까 싶어 그 책에 대한 전말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1979년의 정월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제 나이 40도 되지 않은 때인데,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찌든 생활을 하다가 겨울방학을 맞아 서울에 와서, 그 전 해에 외우 조태일 시인이 새로 시작한 출판사 '시인사'에 들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놀았던 때입니다. 하루에 7~8시간의 수업으로 주당 32시간의 강행군 수업을 하던 불쌍한 고교교사, 세상사에 궁금하여 방학을 맞으면 겨우 한 차례 광주에서 상경하여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 세상사의 궁금증을 푸는 경우가 많던 시절입니다. 유신독재가 극악한 상태에 도달하여 유비통신이 아니고는 전혀 사실이나 진실을 알 수 없는 때여서, 직접 서울에 와야 그래도 한두 가지라도 소식을 얻어듣던 때라, 그때도 아마 그래서 상경했을 것입니다.

조태일 시인은 앞뒤도 따지지 않고 그냥 강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 너 책 좀 써라. 뭐 좋은 것 있으면 출판해주마.” 그런 질문의 답변으로 다산의 서간문을 읽어보니 좋은 내용이 많은데 한문으로 된 책이니 시간이 나면 한 번 번역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광주에 내려오자마자 바로 전화로 독촉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요. 책을 펴보지도 않았는데, 몇 페이지 번역했느냐고 다그쳐 묻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 독촉에 못 이겨, 그해 여름방학 때에 겨우겨우 얼마정도 번역했는데, 독촉은 빗발치고, 어떻게 하는 수가 없어 찌든 수업에 밤잠을 설치며 옥편에도 없는 한자를 찾으며, 출처도 모르는 고사성어는 적당히 얼버무리며 10월이 다 되어서야 다산이 유배지에서 아들에 보낸 편지, 경계해준 이야기, 형님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 등을 묶어서 겨우 송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인사에 출입하는 내 친구들이 가필도 하고, 손을 보아 책이 출간되던 때가 11월 초순. 10월 26일 대통령의 시해 사건이 터져 계엄령이 내려져 계엄당국의 검열을 받아야 출판이 가능한 시기가 됐습니다. 어찌어찌하여 11월 초순에 책이 나왔으니, 제목 하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동아일보는 국내 최대의 독자를 가진 큰 신문인데, 그 신문의 문화면에 박스로 ‘화제의 책’으로 소개되어 세인의 입에 오르는 책이 되었습니다. 독재에 항거하고, 유신철폐를 외치던 학생이나 민주인사들이 감옥을 메우고 있던 때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는 제목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던 책임에 분명했습니다.

시인 조태일이 교수로서 대학으로 떠나자 시인사가 문을 닫으면서 그 책은 13년 만인 1991년에 창비로 넘어가 개역증보판으로 ‘창비교양문고’라는 책으로 또 하나의 서문을 달고 탄생했습니다. 10년째인 2000년 7월 15일자로 13쇄에 이르던 책은, 2001년 5월 다시 증보하고 양장본으로 꾸며 또 다른 서문을 달고 출판하였는데, 그 책이 20쇄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단 한 차례 책광고를 한 적도 없고, 누가 크게 그 책을 선전해주지도 않았건만 6년 사이에 20쇄가 간행되었으니 일단은 대단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더구나 2002년에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그 책에 실린 두 편의 글이 게재되면서 책이 세상에 더욱 알려져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아들에게, 형님에게, 제자들에게 극한의 유배지 생활을 묵묵히 견디면서 보내준 인간 다산의 깊은 내면의 심사가 토로된 서간문의 글, 역시 그런 진정성이 독자를 울리지 않을 수 없는가 싶어서 더욱 경건해집니다. 이에 그 책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되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녹색 차의 빛깔로 꾸며진 표지도 역할을 하는지, 어떤 사람은 책 표지 색깔이 너무 고와서 책을 샀더니 내용이 너무 좋다는 말까지 하기도 합니다.

소설도 아니고, 어떤 전문적인 학술서적도 아니건만, 인간 다산의 체취 때문에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의 생명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만 같습니다. 처음 책을 펴내준 다정했던 친구 조태일 시인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데, 책은 계속 살아서 독자들에게 파고들어가고 있기에, 희비가 엇갈리는 생각으로 책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