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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영재교육

“서울대학이 간판이 된다면, 한국의 미래 없어”

원로물리학자 김정욱 교수가 던지는 苦言 (2)

수학이라는 수의 학문을 통해 자연과 우주의 섭리를 신묘막측(神妙莫測)하게 풀어나가는 물리학.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물리학은 과학의 최고봉으로 일컫는다. 물리학 속에는 아름다운 인생철학이 있는가 하면 가공할 위력의 위험도 잠재해 있다. 물리학 속에서 코페르니쿠스가 나왔는가 하면, 뉴턴의 만유인력,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왔다. 새로운 과학시대를 열고 있는 현대과학 양자물리학도 그렇다. 우주탐사도 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다. 핵폭탄과 수소폭탄을 비롯해 대량살상 무기도 우주의 신비를 캐는 물리학에서 나왔다. 기초과학이 이처럼 중요하다. 21세기는 창조성(creativity)의 시대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국제경쟁력에서 과학교육이 나갈 길을 짚어보기 위해 원로 물리학자 김정욱 교수를 특별히 초대했다. 고희를 훨씬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학문활동을 하고 있는 김 교수는 기초과학의 산실인 고등과학원의 초대 및 2대 원장을 지냈으며 우리나라 기초과학의 역사를 지켜본 증인이다. ‘원로 물리학자 김정욱 교수’라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김 교수가 던지는 쓴 소리와 그의 인생철학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 [편집자 註]


“서울대학이 간판(看板)이 돼서는 결코 안 돼”

▲ 원로물리학자 김정욱 교수는 서울대학이 간판으로 전락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서울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하고, 어떤 창의력을 갖고 나왔는가 하는 것이죠. 서울대학 졸업장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돼서는 서울대학을 우리나라 최고 학문의 요람이라고 부르기에는 부적절합니다. 창의력 있는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이 바로 최고의 대학입니다.”

요즘 가짜 학위 파동도 다 대학을 하나의 간판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만연돼 있기 때문입니다. 과목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학위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명문대학의 학위가 그 사람을 ‘명문’으로 만든 건 아닙니다. 과학자도 마찬가지지만 사회에 봉사하고 인류에 이바지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명문대 출신들이 아닙니다. 더욱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가짜 학위파동’은 우리나라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거라는 거죠. 쉽게 없어질 것 같지가 않네요? ”

김정욱 교수는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회와 인류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대학을 간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와 인류에 대한 봉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 대학을 간판으로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서는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창의력’이 자라날 수 없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다. 주입과 베끼기 식의 교육도 그와 같은 차원이다.

“물론 서울대학교에는 아주 똑똑한 젊은이들이 들어갑니다. 세계 어디에 갖다 놓아도 꿀리지 않을 훌륭한 인재들이 들어갑니다. 서울대를 졸업한 학생들이 사회에 나와 또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외국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는 과학자들 가운데 상당 부분 서울대 출신입니다.

“가짜 학위파동은 대학을 간판으로 생각하는 풍조 때문”

그러나 공부 잘하는 학생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서울대에 모인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법대도 서울대, 의과대도 서울대, 과학대(이공계)도 서울대. 모든 게 서울대입니다. 이거는 안 됩니다. 대학은 학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곳입니다. ‘진짜배기’ 학문을 본격적으로 하는 곳입니다.

본격적이고 전문적인 학문을 하는 곳이 서울대학만 돼서는 안 됩니다. 강원도에 있는 대학도 학문적인 요람이 돼야 하고 충청도에 있는 대학도 내세울 수 있는 학문의 요람이 돼야 합니다. 최고의 지식과 지식인이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면 아름다운 미래를 기약할 수 없습니다.

▲ 위대한 과학자는 학문적 방황 속에서 나온다. 아인슈타인은 단순한 지식축적의 천재가 아니다. 창조와 상상력의 산물이다.  ⓒ
다시 말해서 한 곳에 모두 모인다는 것은 자연적이지 못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강제력이 그 속에 내포하고 있다는 이야기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정말 따지자면 사회 분위기가 그러한 강제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강제성이란 바로 서울대학을 간판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입니다.”

김정욱 교수가 지적하는 문제는 서울대학이라는 한 대학에 우리나라 인재들이 다 모인다는 것만이 아니다. 또 다른 큰 문제가 있다. “그러나 서울대학에는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한국의 미래를 짊어져야 할 인재들 대부분이 주입식 교육에 의해 좋은 성적을 받은 사람이 많다는 겁니다.

교사들이 모든 걸 만들어 제공하고, 그 제공한 것을 그저 암기하듯이 외워 좋은 성적을 받은 인재들이 모여든 곳이 서울대학이라면 우리나라 미래에 별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울대학이 최고의 대학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주입과 베끼기에 익숙해져 버린 학생들에게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과학도 그렇고, 학문은 사회와 인류에 봉사할 수 있어야”

대학은 전문적인 학문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과학도 그렇고 학문의 본질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데 있습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못하는 학문은 죽은 학문이나 다름없습니다.주입과 베끼기 식의 교육은 모방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국 창의성 있는(creative) 인재를 키울 수 없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서울대학의 문제는 학생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주입과 베끼기, 그리고 모방의 풍토와 분위기가 학문의 요람 대학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이래서는 서울대학의 미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미래도 별로 밝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죠. 과외와 학원 교육에 젖은 인재들이 서울대학에 몰린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영재교육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던졌다. “영재교육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제교육의 대상인 영재들이 과외와 학원에서 만들어진 영재라면 그때는 상당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영재들이라면 영재교육은 그렇게 장려할 만한 일이 못 됩니다.

영재란 많은 지식을 축적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창의적인 인재’를 의미합니다. 창의성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해도 무의미한 것이죠. 영재란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이 돼야 하고 영재교육 역시 창의력을 생산하기 위한 교육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영재입니다.

“영재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창의적인 인재”

요즘 수학올림피아드를 비롯해 각종 국제 과학경시대회 같은 게 많이 열립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머리가 좋아 훌륭한 성적을 받아옵니다. 그러면 서울대학에 입학하기가 쉽죠. 서울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앞으로 학문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 대학시절 물리학과 동기생들과 북한산을 찾았다. 둘째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안경을 낀 학생이 김 교수다.  ⓒ
산이나 바다와 같은 곳을 직접 찾아 자연을 연구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자연체험(field trip)을 통한 현장학습(field training)이야말로 창의성에 필요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길러줍니다. 별을 보면서 신기하게 생각하지 많고, 호기심이나 상상력이 없다면 천체물리학이나 우주론 학자가 되는 게 어려운 일 아닐까요?

그리고 도심에는 과학관들도 있습니다. 그 곳을 자주 방문해서 자연과 친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교육도 그러한 패턴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남의 것을 갖고 오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21세기 국제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가 바로 창의성입니다.”

과학은 더욱 더 그렇고 학문은 지극히 자연적이어야 한다. 학문의 요람인 대학도 자연적이어야 한다. 오늘날 인문학을 대표하는 자연철학, 이공계를 대표하는 자연과학에 모두 자연이라는 말이 붙는다. 자연적이라는 건 강제적이라는 말과 대비되는 표현이다. 서울대학에 모든 인재가 모인다는 것은 자연적이지도 못하고 학문적이지도 못하다.

“자연과 친해져라, 그래야 창의성이 나온다”

김정욱 교수의 학문에 대한 철학 역시 그렇다. 자연적이어야 한다는 거다. 그 속에 학문적 방황이 있고 자유가 있다. 또 그 속에서 21세기가 정말로 요구하는 위대한 창조(creativity)가 탄생한다. 자유, 사색, 상상력 없이는 훌륭한 학문이나 과학이 탄생할 수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지론이다. 김 교수가 가장 좋아한다는 ‘학문적 방황’이 내포하고 있는 내용이다.

아인슈타인의 꿈을 꾼 김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그러나 서울대에 일침을 가하고 있다. 아름다운 학문을 위해서다. 이는 서울대만이 아니다. 연,고대도 마찬 가지다. 사회적인 아집과 독선에 의해 획일적으로 모인 지성인의 집단 속에서는 학문의 꽃이 필 수 없다는 게 원로 물리학자 김 교수가 던지는 쓴 소리다.

김 교수는 웬만하면 이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는다. 아마 서울대학을 너무 욕하다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든 것 같기도 하다. 또 당신의 걸출한 경력으로 보아 서울대학을 욕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는 내용도 된다.

“뭐 그렇게 대단히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졸업할 때 전교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박사(대통령)가 주는 대통령상을 받고 악수도 했지요. 기분이 좋았죠. 1958년 당시 제가 졸업할 때 이 대통령이 서울대 졸업식에 참가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수석 졸업했다고 자랑하려고 하는 건 아니고…. (여기에서 김 교수는 쑥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여튼 그 때 서울대학은 지금처럼 주입식이나 획일적인 분위기는 아니었고, 어수선했지만 자유롭고 학문적 방황이 가능했던 때입니다. 당시 서울대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학문의 출발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그런 경우를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학문의 수준은 낮았지만 나름대로 적당할 정도의 낭만이 있었고, 방황도 있었습니다. 상아탑의 분위기가 많이 배어 있었죠.

서울대학교 수석 졸업, “난,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서울대는 학문의 출발점이 아니라 목적지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서울대학이 간판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다닐 때도 모든 분야에서 서울대가 최고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과는 색다른 분위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서 학문적 분위기가 대단했죠.

실력을 갖춘 인재가 나와야 합니다. 대학과 같이 인재를 양성하는 곳은 분산될 필요가 있습니다. 전공에 따라 말입니다. 훌륭한 학문은 획일적인 곳이 아니라 다양성이 보장된 곳에서 탄생합니다. 모방이 아니라 창조성에서 나옵니다. 제가 서울대학을 꼬집어 말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최고의 인재들이 한꺼번에 모여 획일적이고 주입식 교육을 받는다면 훌륭한 과학이 탄생할 수 없습니다.”

서울대에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공계에서부터 인문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재를 ‘독식’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자연적인 일도 아니고 학문적이지도 못하다. 인재는 분산 수용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인재가 나와야 한다. 김 교수가 서울대학에 던지는 쓴 소리 속에는 이런 주장도 포함돼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
/김형근 편집위원  hgkim54@hanmail.net


2007.09.26 ⓒScience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