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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교육정책

<연합칼럼> 학력위조자를 위한 '변명'

미술인 신정아씨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글을 시작하기 전에 위조는 나쁘다는 사실을 분명한 전제로 깔아두자. 학력(學歷)위조도 물론 잘못된 일이다. 이는 무학자라도 다 안다.

   그런데 잘못인 줄 알면서 사람들은 왜 학력을 몰래 위조할까? 그저 심성이 구부러져서일까?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위조로 몰아갈까? 개인 차원을 떠나 사회적 요인은 없느냐는 것이다.

   최근의 학력위조파문을 보고 한 고졸 친구는 한숨을 쉬며 토로한다. 그래도 그들은 '배짱'과 '재주'라도 있어 위조했겠지만 자신은 그마저 없었다고. 살아오는 동안 못 배운 설움이 컸고, 그 콤플렉스가 뼈에 사무쳤으나 먹고 사느라 그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고.

   만학열의 할머니나 주부 얘기가 미담처럼 종종 언론에 소개된다. 한결같이 보람 속에 배움의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그 나이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 속깊은 사연들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딱히 취업에 활용할 것도 아니면서 자식이나 손자뻘 되는 학생들과 나란히 공부하며 사각모 쓰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이다.

   주부대학, 노인대학 등 '대학' 간판을 내건 오만 가지의 대학이 성업하는 이유는 과연 뭘까? 그저 순수한 학문적 열정 때문일까? 배운 사람들은 가슴 깊이 응어리진 이들의 한과 아픔을 잘 모른다.

   이들에게 방송통신대학이나 야간대학은 내면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쓰다듬을 수 있는 위안처다. 전국 100여 개 대학이 만학도 대상의 특별전형을 실시하는 것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학벌사회에서 대학 졸업장 없이는 사람 취급받기가 쉽지 않아서다. 이른바 '가방끈'은 우리 사회를 옥죄는 사슬이다.

   못 배워 좌절했던 설움을 털어내려는 몸부림은 처절하다. 이를 '만학열'이라고 단순 미화하기엔 당사자들의 현실이 너무 고달프다. 그래서 형편이 조금만 펴면 대학졸업장을 기대하며 학교문을 두드리는 게 아닌가. 그들은 실력보다 학벌이 말해준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수없이 확인해왔다.

   그래서 머리를 좀 굴릴 줄 아는 사람은 위조의 유혹에 쉽게 말려든다. 물의를 빚은 신정아, 이지영, 이현세, 심형래, 김옥랑, 정덕희, 윤석화 씨 등은 수많은 사례 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의원, 기업인은 물론 교육계에서도 학력위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들은 생존과 출세의 수단으로 위조를 택한다. 정상궤도를 이탈해 은근슬쩍 뻥튀기를 하는 것이다. 안 다녔어도 중퇴라고 둘러대고, 중퇴했으면 졸업했다고 위장한다. 연수를 갔어도 대학졸업은 물론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통크게 나간다.

   솔직히 말하자. 고졸이라고 말하기가 왠지 쭈뼛거려지고, 마지못해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상대의 시선이 금세 달라지진 않던가. 반대로, 유명대학 간판을 들이밀면 실력과 무관하게 '역시!'라는 부러움의 감탄사가 표정으로 금방 나타나진 않던가.

   우리 사회에서 유명대학을 나와 탄탄대로를 달리는 건 비교적 쉽다. 반쯤 접어주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거꾸로 초중고교 졸업장으로 사람 대접 받기란 좀처럼 어렵다. 어쩌다 재력가가 되거나 출세를 해도 '학력' 문제는 밀린 숙제처럼 꼭 해결해야 한다. 각 대학에 설치된 최고경영자과정에라도 다니며 움푹 팬 콤플렉스의 웅덩이를 메워야 하는 것이다.

   다시 강조한다. 학력위조는 나쁘다. 어려운 처지는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위조까지 하거나 상황에 밀려 '어쩔 수 없이' 거짓말까지 하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심리적ㆍ도덕적ㆍ법률적 자해 행위다.

   차라리 자신을 떳떳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되 그 현실을 바탕으로 분발하면 어떤 직업이든, 어떤 자리든 그 자체로 소중하고 아름답다. 자신을 거짓의 수렁에서 해방시켜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게 바로 당당한 행복의 첩경이 아닐까. 일부 인사의 고백처럼, 세상은 속여도 자신을 속이기란 좀처럼 힘들고 괴롭기 때문이다.

   그와는 별도로, 비교와 차별을 통해 끊임없이 이들을 위조의 길로 유혹하는 사회 전반의 관행들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이 시점에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도마 위에 오른 몇몇만을 타박하며 비판자의 우월성과 무혐의를 확인한 가운데 문제의 본질에서 슬쩍 비켜가는 일과성 소동으로 그치고 말 것이다.
나아가 졸업장이 당사자의 학력(學力)을 그대로 보증하는지도 차제에 물어봐야 한다. 신입생 선발에 초점을 맞춘 채 재학생 교육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현실을 반성하자는 얘기다. 졸업장은 있으나 그에 합당한 학력이 없다면 이는 '명실상부'하지 않은 '불량품'일 뿐이다. 우리 사회도 외적 학벌이 아닌 내적 학력 중심으로 가야 하고, 교육의 주체인 대학들도 학위와 학력을 일치시킬 수 있도록 학사관리를 엄격히 해야 한다.

   ido@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8/17 09: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