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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람나무의 정체 >> 본 문(슥 4:7~10)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수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나니라.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가로되 이는 기름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 >>> 해 설 스가랴는 성경을 쓴 선지자들 중에 말기의 사람으로 에스겔과 같이 제사장의 자손이다. 에스겔이 성전에 관한 계시를 많이 받은 것같이 스가랴도 성전을 상징적으로 보았다. 성소의 등대는 생시에 알고 있었으나 평상시 볼 수 없었던 감람나무 두 가지가 등대 좌우에 있고 금 같은 기름이 감람나무에서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 신기하고 뜻을 알지 못하여 천사에게 문의하였다. 등대와 두 감람나무에 관하여 천사에게 문의하였을 때 천사는 다른 각도에서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신의 능력으로 된다고 하였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앞에 평지가 되리라." 하는 본문의 말씀을 상고하면 스룹바벨은 하나님의 권세를 받은 자로 명시하였다. 성경 학자들은 4장에 등장한 스룹바벨은 포로 당시 바벨론에서 출생한 유대 왕국 왕손으로, 바사 왕이 유대 총독으로 임명하여 귀국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다. 스룹바벨이 본국에 돌아와 성전 건축을 총괄하여 성전을 완성한 사실이 없고 인접국들의 방해로 성전 건축은 중단되었다. 4장 본문에는 태산 같은 악의 세력도 스룹바벨 앞에 평지가 되고 다림줄이 그에게 있어 그가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완공한 것으로 기록되었으니 당시 인간 스룹바벨로 해석하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니 잘못된 해석이다. 본문에서 말하는 성전은 하나님 나라를 묘사하였고 큰 산이 스룹바벨 앞에 평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항하는 악의 세력을 스룹바벨이 격파한다는 말이니 스룹바벨은 마귀와 싸워서 이긴자이니 평지가 된다는 것은 굴복한다는 말이다. "스룹바벨을 멸시하는 자 누구냐. 일곱 눈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다"고 한 것은 여호와의 신과 능력이 그에게 있음을 명시하였다. 그런즉 스가랴가 본 계시는 스가랴와 같은 시대 사람 스룹바벨이 아니니 스가랴의 기사는 2천5백여 년 전 과거사가 아니요 영적 스룹바벨, 감람나무인 오늘의 이긴자를 말하였으니 본문에서 명시한 그대로 금 같은 기름, 이슬 성신이 이긴자의 몸에서 발산되고 있으니 스가랴의 예언은 오늘에 응하였다. 두 감람나무, 두 가지는 이긴자와 이긴자를 키우신 영모이니 두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온 세상에서 주 하나님을 모신 자다. 온 세상에서 주를 모신 자라 한 것은 다른 곳에는 하나님을 모신 자가 없다는 말이다. 스가랴서는 요한 계시록과 상통하는 부분이 많은고로 두 사람의 기사는 짝이 맞는 기록이 전장(全章)에 분포되어 있으니 성경을 상고하는 사람은 반드시 스가랴서와 계시록을 같이 참조하면 완성자로 오시는 구세주의 실상을 알 수 있다. 스가랴가 본 등대(燈臺)는 순금 등대로 일곱 등잔이 등대에 붙어있고 등대 좌우에 있는 두 감람나무에서 흘러내리는 기름은 등잔에 담기어 일곱 등불을 밝히고 있으니 일곱 등불은 계시록의 일곱 교회 일곱 촛대니(계 1장,2장) 성신 받은 성도요 구원 얻은 자들이니 보혜사(保惠師) 성신은 감람나무에서 나오는 것이니 감람나무를 떠나서는 없는 것이다. 첫 언약으로 모세가 기록한 성소의 광경을 보면 성소에서 제사장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등대 곁에서 일곱 등잔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감람나무 기름을 등잔에 부으면서 등불을 간검(看檢)하였다.(출 27:20~21) ※감람나무의 유래는 노아 시대 홍수 직후 비둘기가 감람나무 새 잎을 입에 물고 돌아온 기사(창 8:11)와 모세 시대 감람나무에서 채취한 기름으로 성소에 등불을 밝힌 것(출 27:20~21)과 스가랴 시대 감람나무는 사람으로 장차 올 것을 말하고(슥 4장) 요한은 흰옷 입은 사람이 일곱 촛대 사이에 있는 것을 보여 주었다.(계 1:13~16) 그런즉 감람나무는 구세주로 올 것을 태고 시대부터 암시적으로 점차 정체를 밝히었으니 여러 시대에 걸쳐 선지자들에게 보여주고 감람나무에 관한 기사를 쓰게 한 것은 성경의 기사대로 본체가 올 때에 그를 영접하여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무지하고 소경이 된 오늘의 거짓 목자는 천국문을 닫고 있는 자들이니 심판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등대의 구조 설명은 출 37:17~24 참조, 두 감람나무는 슥 4장과 계 11장 참조)
모세의 법통을 계승한 유대교는 세칭 구약 성경만을 성경 전서로 인정할 뿐 예수교 경전인 신약은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교가 서기 397년 카르타고 종교 회의에서 예수교 경전을 완성하고 선포할 때에 유대교 경전을 구약으로 예수교 경전을 신약으로 부르도록 하였다. 성경 전체를 상고하여도 첫 언약(言約)인 구약과 새 언약이라는 신약의 내용은 동일하지 않으니 구약은 메시아의 영존(永存)과 지상의 낙원인데 신약은 메시아의 죽음과 부활과 천상의 낙원이니 유대교는 예수교를 성경을 악용하는 사교라고 지탄하는 것이다. 예수교가 예수 이후는 신약 시대로, 구약은 지나간 역사책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유다 왕국의 건국 태조(太祖) 다윗은 재위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의 후손에게 영원까지 왕통이 계승된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시(敎示)받음으로써 다윗의 왕국은 망하지 않고 계승되다가 때가 이르면 만국을 통치하는 만왕의 왕, 그리스도가 자기 자손에서 탄생할 것을 굳게 믿었다.(삼하 7장 참조) 다윗의 신앙 고백서라고 불리는 시서(詩書)를 통하여 자신의 후손에게서 영원한 왕, 메시아가 강림한다고 시편에 수차 언급하고 영원한 왕, 그리스도는 신격으로 강림하는 것으로 믿었으니 다윗은 장차 임할 왕을 "나의 주"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예수와 제자들은 다윗의 글을 인용하여 조상 다윗이 증거한 유대인의 영원한 왕은 예수라고 주장하였다. 복음서(福音書)에서 예수의 출생에서 죽을 때까지 유대인의 왕으로 세상에 왔노라고 증거하고 예수는 죽기 직전까지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는 것은 잠시요 다시 와서 너희와 영원토록 같이 하늘나라에서 영복을 누린다"고 약속한고로 제자들은 자기들 생존시에 예수가 재림한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였다. 그러므로 예수와 제자들은 그 당시를 말세라고 당당하게 말하였다. 제자들이 예수를 증거할 때 예수의 강림이 임박하였다고 강조하므로 예수교에 입교하는 사람들은 집과 토지까지 다 팔아 제자들에게 헌금하고 예수의 강림을 기다렸다. 만일 예수가 수십 년 후에 온다고 말하였다면 믿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살아갈 생각을 하였을 것이니 재산의 전부를 바칠 수 없는 것이다.(행 2~4장 참조) 제자들 당시 일반 사회 사람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정신병자로 취급하면서 그들의 재산을 헐값으로 사들인 것이다. 제자들이 말한 대로 짧은 시일내에 끝날 것으로 믿고 일도 하지 않고 놀면서 헌금한 재정은 다 소비하고 바닥이 나니 초기에는 인심이 후하여 서로 물건을 통용하였으나 나중에는 먹고 쓸 것이 없어 구제받으려고 싸웠으니(행 5장) 세상 사람들은 조롱하고 신자들은 예수교 믿다가 망했다고 재산 바친 것을 후회하면서 배교자가 속출하고 또한 유대교의 박해가 심한고로 예수교는 유대 땅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방 땅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 말세에 관한 예수의 예언 >> 본 문(마 24장, 눅 21장) (상략)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하고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도 겉옷을 가지고 가려고 집에 들르지 말고 일하던 그 자리에서 급하게 도망가라고 하였다. 급하게 도망가지 않으면 죽음을 당하는고로 그날에 아이 밴 여인과 젖먹이는 여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였다.(마 24:15~19)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날에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란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저희가 칼날에 죽음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로 인하여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 21:22~33) >>> 해 설 예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예수가 한 말의 근본 뜻을 모르고 막연하게 예수를 기다리고 있다. 제자들이 말세의 시기를 예수에게 질문할 때 다니엘의 글을 읽으면 알 수 있다고 하였다. 다니엘이 말한 말세 기간은 7일(7년)이다. 7년을 전기, 후기로 정하였으니 전기 3년 6개월은 기름부음 받은 거룩한 자의 증거 기간이요 후기 3년 6개월은 기름부음 받은 거룩한 자가 원수에게 죽음을 당하고 성도들의 환란으로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는 전무 후무한 큰 환란이다. 다니엘이 말한 대로 예수는 다니엘의 예언속의 거룩한 자로 왔다고 증거하였다.(단 9장, 11장, 12장) 예수가 말한 본문을 깊이 상고하면 예수가 말한 말세는 너무나 당연하다. 예수가 3 년간 자기를 증거한 것은 다니엘이 예언한 그대로 전기 3년 반으로 복음을 전한 기간이요 후기 3년 반은 미운 물건 마귀가 거룩한 자를 꺾고 거룩한 성전을 점령하고 성도로서 예루살렘에 있는 자를 학살하는 형벌의 날이니 그 모습이 너무 비참하므로 창세 이후 이런 재앙은 이때까지 없었다고 하였다. 예수는 당시 제정 로마를 미운 물건으로 단정하였으니 "너희가 알 것은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포위되는 것을 보거든 지체하지 말고 예루살렘을 떠나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였고 성안에 있는 자도 옷이나 물건을 가지고 나가려고 지체하지 말고 즉시 도망가라고 경고하고 빨리 도망갈 수 없는 아이 밴 여자, 젖먹이나 어린아이 딸린 자는 뒤쳐지다가 원수들에게 학살을 당하고 산과 굴에서 환란 기간을 참고 살아야 되는고로 임신한 여자와 아이 딸린 여자들의 고통은 홀몸으로 있는 자보다 고통이 막심한고로 화가 있다고 하였다. 미운 물건 또는 가증한 물건이라고 한 것은 자기가 성전에 앉아 하나님으로 행세하므로 택한 자를 미혹한다고 하였다. 환란 기간이 길면 살아 남을 자 없는고로 환란 기간을 감하였다고 하였는데 위에서 언급한 대로 미운 물건의 기간은 3년 반이다. 환란 직후 일월이 빛을 잃고 하늘의 징조가 나타나고 구름을 타고 영광과 권능으로 자기가 재림한다고 강조하면서 천지가 없어질지언정 자신의 말은 없어지지 않고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다니엘이 말한 7년 환란은 유대인의 환란으로 명시하였듯이 예수도 그대로 인용하여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인의 재난으로 말하였다. 많은 사람이 칼날에 죽음을 당하고 남은 자들은 포로가 되어 이방에 잡혀가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찰 때까지(3년 반) 밟힌다고 하였다. 거룩한 자, 기름부음(이슬성신) 받은 감람나무 이긴자가 오신 오늘에 이르러 사실은 밝혀졌으니 예수 자신도 자기를 알지 못하고 자기가 기름부음 받은 자, 구세주로 착각하였다. 예수는 자기가 원수에게 죽음을 당하였다가 환란 직후 재림할 것으로 믿었으니 예수가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변명할 수 없는 것은 다니엘의 예언이 자기에게 응하였다고 하였으니 7년의 기간이 2천년으로 연기될 수가 없는 것이고 지금까지 지연된 사실을 예수에게서 영적으로나마 전해들은 자가 하나도 없으니 예수가 생존하여 하늘에 있다면 직접 또는 천사를 통하여 전하였으리라. 일체 소식이 없는 것은 예수는 죽어 없어진 사람이니 예수의 부활 승천 재림을 믿는 사람은 평생을 속아 살다가 죽는 것이다. 다니엘의 예언에서 넷째 짐승을 멸망의 미운 물건이라 하였으니 넷째 짐승은 로마제국이라는 것은 기존 성경 학자들도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이 짐승은 잔인 무도하여 먹고 부숴트리로 발로 밟아 죽인다고 하였다.(단 7:7~8) 그런고로 짐승이 예루살렘 성전을 점령할 때는 폐허가 되고 이 백성(유대인)에게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는 대환란이라고 하였다. 예수는 로마 군대가 몰려와서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광경을 눈 앞에 보는 듯이 말하였다. 예수가 십자가 형틀을 메고 갈보리 산 사형장으로 끌려갈 때 예수를 믿는 예루살렘의 여자들이 예수의 죽는 것을 슬퍼하면서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말하기를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짐승의 날이 이르면 수태하지 못한 자와 젖 먹이지 못한 여인이 복이 있다 하리라. 그때에 사람들이 산을 향하여 부르짖기를 산아, 우리 위에 무너져 우리를 죽게 하라 하리라. 푸른 나무(예수)에도 비참한 죽음이 있거든 마른 나무(죄인)들의 당하는 죽음의 형벌은 더욱 참혹할 것"이라 말하였다.(눅 23:28~32) 예수의 예언대로 로마군이 유대인을 학살할 때 아이 밴 여인들을 창으로 배를 찔러 죽이고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어린아이들을 찔어 죽이고 땅에 메쳐 죽였으니 형식적이나마 재판 과정을 거쳐 죽는 자신의 죽음은 안락사(安樂死)로 표현하였다.(눅 21:20~24) 이스라엘의 전통 사상은 무자(無子)한 여인은 저주받은 자로 인정하여 수태 못 하는 여자는 평생 수치심과 탄식으로 살았다. 무자한 여인들이 환란을 당하여 급하게 피난갈 때 홀몸으로 도망하여 죽음을 면하게 되어 아이 낳아 보지 못한 자신이 복된 것을 알게 되었다. 로마군의 횡포로 유대인 수십만 명이 학살당하고 외국으로 추방당하였다. 환란 직후 천지가 진동하고 인자(예수)가 하늘에서 강림한다고 강조하면서 "천지는 폐하여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않으리라"고 하였으나 오늘날까지 온다는 소식이 없는 것은 예수의 부활 승천 재림은 영원히 없는 것이다. 다니엘서와 복음서의 본문을 독자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재삼 상고하면 예수의 예언은 먼 장래를 말한 것이 아니고 예수가 떠난 직후 유대인들이 로마제국에 복종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1세기 후반에 로마군에게 대학살을 당하는 것을 미리 말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본문의 기록은 분명히 유대땅에 국한된 환란인데 1천9백년 전 과거 사건이다. 지나간 환란을 장차 다가오는 전 세계적인 7년 대환란으로 해석하는 자는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의 재림을 전제로 하는 해석이니 예수의 말을 잘못 전하는 것이다. 예수가 다니엘의 글을 인용하여 자신을 거룩한 자, 기름 부음 받은 자로 증거하였으니 다니엘의 예언대로 응하려면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짐승인 로마에게 죽음을 당한 후 짐승이 환란을 일으켜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고 한때 두때 반때(3년 반)을 지나 '뜬 돌'인 예수가 재림하여 온 천하가 성도의 나라로 되어야 완전히 끝이 나는 것이다.(단 9장 참조) 성경을 신봉하는 신도들이 각성하여 총명한 눈으로 하나님의 오묘한 비밀을 발견하여야 될 것이니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과거 이스라엘 땅에서 역사한 것은 모형(模型)이요 원형(原形)이 아니다. 또한 성경은 가본(假本)이요 진본(眞本)은 아니다. 붉은 용 마귀가 유대인을 말살시키면 하나님의 뜻이 망하는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2천년이 지난 후 한반도에서 그림자가 아닌 본체의 역사가 전개되고 있다. 짐승이라 표현된 제정(帝政) 로마는 그림자 격으로 예수 전후 시대에 활동하였고 진짜 짐승은 말세에 등장하는 잔인무도한 공산당이니 공산당이 짐승의 본체이다. 요한의 글에서 증명하는 것은 끝날에 두 짐승, 즉 정권(政權)과 교권(敎權)이 야합하여(계 17장) 하나님과 싸우다가 망한다는 것이다. 첫째 짐승 공산당이 등장하였으나 한반도 천하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50 년간 발악하다가 뿌리까지 뽑힌 상태가 된 것은 승리자가 악의 세력을 꺾었기 때문이다. 둘째 짐승 교권이 참 그리스도의 진리를 꺾으려고 대항하고 있으나 거짓 그리스도, 비진리는 점차 소멸될 것이다. 다니엘과 스가랴와 요한의 글을 재조명(再照明)하여 메시아의 실상을 바로 알아야 될 것이니 다니엘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구세주를 미가엘 또는 흰 옷 입고 강물 위에 서있어 하나님의 소식을 증거하고(단 12장), 스가랴와 요한은 구세주를 기름 부음 받은 감람나무 사람으로 주 하나님을 모신 자로 짐승과 싸워 이길 것을 말하였다.(슥 4장, 계 11장) 예수는 자기가 사명자로 착각하고 그 세대에 짐승이 등장하고 7년 환란이 연속되고 자기가 다시 올 것을 말하였으나 예수의 말이 실현되지 못하고 부도(不渡)가 난 것은 그는 사망을 이긴 승리자가 아니었다. 다니엘이 말한 '남은 1주(7일)'는 구원자가 역사하는 기간이니 7수는 완성의 수로 육적 날수로 계산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가 아니다.
* 예수 재림의 예언(Ⅰ) >> 본 문(요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예비하려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 해 설 본문을 읽으면 예수의 말은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땅에 건물을 짓듯이 집을 짓는 기간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하늘나라에 사는 집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로 준비가 될 것인데 구태여 예수가 가서 있을 곳을 예비할 필요가 없고, 있을 곳을 준비하기가 얼마나 시일이 필요해서 2천년이 가깝도록 준비를 못하였을까. "예비하면 즉시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나와 같이 있으리라"고 약속하였는데 지금까지 소식이 없으니 누가 그 말을 믿으며 예수가 살아있다고 하겠는가. 제자들은 선생의 말을 믿는고로 자기들 생전에 예수가 다시 올 것을 확신하였다. 예수가 하늘에 살아있다면 자기를 기다리며 이 세상에 사는 제자들에게 천사를 통하여 왜 오지 못하고 지연되는지 사유를 전달할 것이다. 예수교 신자들은 지금보다 초창기에 더욱 예수 오기를 갈망하였다. 바울이 전도하여 세운 데살로니가 교회는 신도들이 일도 하지 않고 세상을 등지고 예수만 기다리므로 바울은 그들을 책망하고 권고하기를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경고하고 값없이 형제들에게 얻어 먹으면서 폐를 끼치는 자들은 사귀지 말라고 하였고 예수가 온다고 누가 무슨 말을 하여도 마음을 움직이지 말고 멸망의 사람, 미운 물건이 나타나기 전에는 결단코 예수가 강림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살후 2장) 예수교 2천년 역사에서 예수의 재림 소동은 유럽에서, 아메리카에서 수없이 발생하여 예수교 신도들이 피해를 당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다. 한국 땅에도 예수교가 들어온 이후 크고 작은 예수 재림의 소동이 일어나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 1992년 10월 28일 예수의 휴거를 주장한 이장림 목사를 추종하는 자들의 광란 사건은 지금 지구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 예수 재림의 예언(Ⅱ) >> 본 문(마 10:23) 이 동리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리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모든 동리를 다 다니지 못하여 인자(人子)가 다시 오리라. >>> 해 설 위의 말씀은 예수가 미운 물건 짐승에게 죽음을 당하고 성도의 환란이 극심하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땅에서 발붙이고 살 수 없는 극한 지경에서 끝까지 견디는 자라야 구원을 얻는다고 강조하면서 환란 기간은 길지 않고 짧은 기간이니 이 동리에서 쫓아내면 저 동리로 피난하면서 자기가 곧 다시 오리니 너희가 이스라엘 동리를 다 다니기 전에 온다고 약속하였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한 것은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다니엘의 예언이 자기에게 이루어진고로 성도의 환란 기간은 한때 두때 반때, 즉 3년 6개월임을 두고 말한 것이다. 환란 기간이 짧을지라도 미운 물건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죽음을 당하고 학대받으므로 인간 사회에서 추방당하여 산과 동굴에서 숨어살다가 발견되면 그 지방에서 쫓겨나게 되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서 살다가 또 쫓겨나게 되는데 그러나 피난할 동리가 더 있을지라도 여러 곳으로 다니지 못하여 예수가 다시 오므로 고난은 끝이 나고 공중으로 승천하여 성도들이 하늘에서 영광을 누린다고 하였다. 환란이 극심하므로 육체를 가진 자로서 환란을 극복할 수 없다고 예수는 말하였다. 그러므로 아이 밴 자와 젖먹이는 여자가 고통이 심한고로 화가 있다고 하였다. 초기 예수의 제자들 당시 국가에서 신앙의 자유를 주지 않고 유대교를 비롯한 이교(異敎)들이 박해하므로 제자들이 대부분 순교를 당하였다. 사도 바울의 서신 내용도 순교 정신이 없으면 신앙을 지키지 못한다고 강조하고 바울도 수차 옥중 생활을 하다가 로마에서 순교당하였다.(히 11:35~40 참조)
* 남방 여왕 >> 본 문(마 12:42)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예수 당시의 사람들을 가리킴)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자(솔로몬보다 지혜가 더 있다는 뜻)가 여기 있나니라. >>> 해 설 본문에서 말하는 심판 때는 이 세상이 끝이 나고 창세 이후 세상에 출생하였다가 죽는 자가 전체 부활하여 하늘에서 시행하는 심판을 말한 것인데 예수는 자기보다 능력이 미약한 요나의 전도를 받고 회개한 니느웨 사람과, 솔로몬의 지혜의 말을 듣고 믿은 남방 여왕도 구원을 얻으므로 그들이 의인으로서 심판자가 되어 심판할 때에 우리는 예수보다 지극히 약한 선지자의 말을 듣고도 깨달아 믿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었는데 예수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는 자를 니느웨 사람과 남방 여왕이 예수 당시 사람들을 정죄하여 영원한 벌을 내리는 심판이 있다고 하였다. 예수가 이같은 말을 한 것은 당시 사람들이 예수를 배척하고 영접하지 않으므로 노여워서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책망한 것이다. 내세에 죽은 자가 부활하여 심판받는다는 예수교 신앙은 추상적이고 허무한 말이다. 예수의 말을 인용한다면 솔로몬이 구원을 얻어 내세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누리는 성도로 인정하는데 솔로몬의 일대기를 왕정 시대 기사에서 언급하였다. 1천명의 비(妃)와 빈(嬪)을 두고 음행으로 일생을 호색과 쾌락으로 살고 이방의 공주들을 비로 삼으면서 솔로몬 말년에는 우상을 섬기는 신당이 예루살렘에 세워지고 우상 숭배를 금지하지 않은 것은 솔로몬이 타락하여 국가의 질서가 문란하고 솔로몬 말기에 내란의 싹이 트다가 그가 죽은 후 왕국은 남북으로 분열되었으니 그는 성군이 아니요 백성을 고달프게 한 악한 임금이다.(왕상 12장 참조) 죽을 때까지 중한 죄를 범한 자가 구원을 얻었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예수 당시 사람들은 지구의 생김새를 알지 못하였다. 예수 당시 이스라엘 수교국 중에서 제일 먼 나라는 스바 에디오피아다. 예수가 스바를 땅끝이라고 하였으니 지구를 바로 알지 못하였다. 에디오피아를 가려면 홍해 바다길로 간다고 하여도 20일이 걸리고 육지로 걸어 간다면 2개월 이상 걸어 가니까(1천7백km) 먼 나라다. 그러나 땅끝이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 예수는 에디오피아까지 복음이 전파되면 온 천하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한 말은 지금의 전 지구를 말한 것이 아니다. 당시는 지구의 동반구(東半球)도 제대로 알지 못하였으니 서반구가 있는 것은 상상도 못하였다. 제자들도 에디오피아를 땅끝으로 알고 살았다. 제자 빌립이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를 전도하여 세례를 주었는데(행 8:26~40) 제자들은 당시 땅끝까지 예수의 소식이 전해졌다고 믿으면서 예수의 재림을 기다렸다.
* 보혜사 성신(保惠師 聖神) 예수가 잡혀가던 날 밤 만찬석에 올라가서 보혜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의 예언을 하였다.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까지 장문의 강론 내용은 보혜사가 오면 하나님의 뜻을 완성한다고 보혜사의 사명을 다각도로 언급한 것이니 예수의 공공 생활에서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은 산상보훈(山上寶訓)으로, 초기 예수가 선포한 율법으로 예수의 중심 사상을 대변하였듯이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은 예수의 최후 만찬 보훈으로 예수를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능력과 소망을 주는 말씀이 된 것이다. 보혜사가 오면 예수보다 더 큰 일을 행하고 보혜사는 진리의 영으로 하나님의 깊은 사정을 통달하는 신으로 세상을 심판한다고 하였으나 예수가 떠난 이후 그의 말대로 제자들이 세상을 심판하지 못하고 뜻을 성취하지 못하였으니 예수가 말한 보혜사는 유명무실한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동거한다는 성신이 생명 있는 신의 역사라면 세상에 나타나는 증거가 있을 것이요 20억이 넘는 신자 중에 미래사를 예언한 예언자는 한 사람도 없는 것은 보혜사 성신은 책에 써있을 뿐 실상은 없는 것이다. 다만 기복(祈福) 신앙을 추구하는 자들이 금식 기도하면서 욕심으로 구하다가 마귀의 영을 받아 오랑캐 방언(謗言)과 입신(入神)이나 하고 있어 자신과 타인에게 해가 될 뿐이니 죄인들에게는 악신의 조종을 받으나 예수의 이름으로 행동하므로 어리석은 사람들은 속임을 당하고 있다. 예수가 말한 보혜사는 사망 권세를 이기고 영생의 복음을 들고 나타난 의인, 감람나무가 참 보혜사 성신이니 의인이 보혜사요 보혜사는 곧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다. 예수는 자기가 세상을 구원할 사명자로 스스로 생각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므로 그리스도가 아닌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요 참 그리스도가 앞으로 올 것을 말하면서 메시아로 부르지 않고 보혜사 성신으로 표현하였다. 오순절에 강림하였다는 바람과 불 같은 외형으로 나타나는 이적이 보혜사가 아니고 만국을 다스리고 원수 사망을 멸하는 승리자가 보혜사 성신이다.
* 예수, 요한을 비판함 >> 본 문(마 11:13~15)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이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아가 곧 이 사람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라. >>>해 설 예수의 말세관을 위에서 다니엘서를 들어 설명하였다. 다니엘은 짐승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성전 제단을 점령하면 세상은 끝이라고 수차 언급하였으니 예수는 짐승 시대가 눈 앞에 다가왔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구약 시대 마지막 선지자라고 말하는 말라기 선지자는 크고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기 직전 선지자 엘리아가 와서 주의 길을 예비한다고 예언하였는데(말 4:5~6) 메시아를 기다리는 예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아가 먼저 와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한다고 믿고 있었다. 예수가 말한 대로 요한이 엘리아의 신과 능력으로 왔다면 모든 예언이 끝이 나는 동시에 하늘나라가 회복되었어야 마땅하고 요한이 증거한 대로 예수는 심판자로 와서 사망 권세 잡은 마귀를 멸하고 영생의 나라를 이룩해야 참 메시아가 되는 것이다. 요한이 예수를 증거할 때 천국이 임하였다고 한 것은 구세주가 왔으니 그가 심판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는 대역사가 예수를 통하여 실현될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세상 권세를 멸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온 세상에 충만할 것을 믿었으나 예수가 숨어 다니고 죽었다가 부활한다고 한 말을 옥중에서 전해 듣고 요한은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부인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는 목수 요셉의 아들로 알고 있을 때 요한은 공중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듣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백성들에게 증거하였으나 그리스도에게 죽음이 있을 수 없는 유대교의 절대적 신앙은 변할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자기가 증거한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다른 이를 기다리는 신앙을 가졌으니 요한은 제일 먼저 예수를 그리스도로 증거하고 제일 먼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배척한 사람이다. 예수는 요한의 증거를 믿고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비통한 마음으로 요한을 책망하였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더 큰 자가 없으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도 요한보다 크다고 한 것은 요한은 구원 얻지 못하고 지옥 자식이 되었다고 심판하였다.(마 11:11) 예수가 당시를 말세라고 증거하였으나 말세를 이루지 못한 것은 요한이나 예수는 말세를 이루는 사명자가 아니니 예수가 마귀를 이긴 승리자 구세주라면 지금까지 하나님의 원수인 사망 권세가 왕노릇 할 수 없다.
* 요한의 증거 >> 본 문 요한이 세례를 베푸는데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리켜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 해 설 요한의 신상 명세서는 누가의 글에서(눅 1:40~80) 잘 표현되어 있다.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로 출생하여 부친의 성직을 계승하여 제사장이 될 사람인데 정의(正義)에 불타는 성품을 지닌 그는 부패되고 고루한 유대교 교권주의를 배격하고 혁신을 부르짖는 투사로서 출가하여 금식기도 하면서 고행을 하였다. 요한의 모친 엘라사벳과 부친 사가랴의 글에서(눅 1장) 아들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로 옛 아합 왕 시대 엘리아와 같은 성품의 소유자로 역사할 것을 예언하였다. 성경 본문상으로 보면 다시 온다고 말라기 선지자가 예고한 엘리아가 요한이 될 수 있으나 과연 요한이 끝날 크고 두려운 심판의 날을 이루려고 온 사람인가. 성경상으로 보면 불같이 급한 무서운 성격은 옛날 엘리아와 같으나 뜻은 이루지 못하였다. 요한과 예수가 하늘나라를 회복하지 못하였으니 그들은 사명자가 아니었다. 인가를 떠나 산과 들에서 생활하는 요한의 독특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존경하는 자와 비방하는 자가 있었으니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요한은 귀신에게 미친 사람으로 인정하고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지를 않았다.(마 11:18) 그러나 의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헤롯 왕의 악행을 책망하는 용기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숭배하였다. 요한은 메시아를 고대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당신 생전에 보기를 갈망하며 금식 기도 하는 가운데 음성이 들려온 것이니 "네가 그리스도 보기를 원하니 너는 요단 강에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므로 요한이 세례를 베풀기 시작하였으니 메시아로 오신 사람을 찾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는 독특한 예식을 행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의 종교 의식은 할례가 있을 뿐 세례 의식이 없었다. 요한은 예수를 만난 후 메시아를 증거하면서 하늘나라 회복을 확신하였다. 그는 생각하기를 메시아가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면 천지를 진동시키는 심판이 진행되고 새 세상이 될 것을 확신하는고로 자기의 마음은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의 기쁨이라고 표현하였다.(요 3:29) 요한은 세례 받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메시아를 만나 구원을 얻으려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하였다. 당시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에게 "심판자가 오셨으니 임박한 진노를 면하려면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계시는 메시아는 성신의 불로 죄를 정결케 하여 알곡(의인)은 하늘 창고(하나님 나라)에 들이고 쭉정이(죄인)는 불에 태운다"고 한 것은 지옥의 형벌을 받을 것을 말한 것이다. 요한은 예수의 위대한 능력을 평가하기를 나는 그의 신을 듣기도 감당하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예수가 만국을 심판하고 사망 권세를 멸하고 영생의 세계를 완성함으로써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으로 믿은 것이다. 회개의 열매가 없는 자는 찍어 불에 던진다고 하였으니 이 역사는 먼 훗날이 아니고 예수 생존 당시 요한은 눈으로 목격할 것을 믿고 새 세상을 상상하면서 이사야의 예언(지상낙원)이 응하였다고 증거하였다. 요한이 절대권을 가지고 있는 헤롯 왕의 간음죄와 악행을 당당하게 책망한 배경은 세상 권세를 예수가 멸할 것을 믿은고로 자기가 일시적으로 옥중에 갇혀 있으나 예수의 권능이 나타나면 자기도 구출하고 헤롯 왕은 물론이고 로마 황제도 심판하여 이스라엘의 영광이 만방에 빛날 것을 믿었는데 옥중에 오래 있으면서 제자를 통하여 예수의 소식을 전해 들을 때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마음에 단정하고 다른 이를 기다리는 마음이 생겼다. 예수가 권능을 나타내지 못하고 비겁하게 갈릴리에 숨어 있으면서 메시아로서 생각할 수 없는 죽음을 말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사망을 초월한 메시아를 믿는 그의 신앙관으로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할 수가 없는고로 예수를 배척하고 옥중에서 죽을 때까지 예수와 단절하였다.(마 11장 참조) 세상 죄를 담당한 메시아라고 증거한 예수를 메시아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요한의 마음도 아팠을 것이다. 또한 요한의 증거를 믿고 예수에게 온 무리들에게 요한이 실족하여 자신을 의심하므로 흔들리는 갈대라고 책망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요한을 비판하는 예수의 마음도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이사야가 예언한 바 광야에서, 사막에서 주의 길이 예비되고 사막에 거룩한 길, 구속함을 얻은 자가 모여 돌아오는 하나님의 대로(大路)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이 아니요 한국의 사막이니 흰 돌이요 素砂 또는 白石, 白沙地이니 정도령의 출현지로 한국의 선지자들은 예언하였다. * 승천과 성령 강림 >> 본 문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었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께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일제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리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감람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빌립, 도마, 바돌로매,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 해 설 예수가 세상을 떠난 이후 사도 바울과 전도에 동행한 누가라고 하는 사람이 로마 제정(帝政) 밑에서 총독으로 있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문서로 전도하는 가운데 예수의 승천과 성령 강림과 제자들의 전도 현황을 수록하였다. 누가는 학식이 풍부한 의사(醫師)로서 신사적인 인격의 소유자로 누가의 쓴 문체는 다른 제자들보다 섬세하고 세련되었다. 데오빌로 총독은 누가와 우의가 돈독한 친구가 되는고로 누가는 신흥 종교에 입교한 자기 신앙을 간증하면서 총독을 권유하여 예수교에 입교시키려고 장문(長文)의 종교 활동을 기록하여 전하였다. 본문의 기사는 누가 자신이 친히 본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들은 말을 옮겨 쓴 것이니 본문 기사는 누가의 주석(註釋)이 가미되었다. 예수의 제자들이 쓴 3대 복음서에 없는 기사까지 수록된 것을 보아 총독에게 편지할 때 설득력이 있도록 말을 만들어 보완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3대 복음서에 없는 기사 중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와 대화하면서 제자들은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가 되기를 염원하여 지상 천국의 시대가 열린 것으로 생각을 하고 질문하였다. 제자들은 예수 생전부터 예수가 땅에서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으로, 메시아로 영광을 누리기를 믿은 것이다. 예수의 대답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라 회복의 시기는 너희가 알려고 하지 말고 너희가 할 사명은 내가 하늘에 올라간 후 아버지께서 성신을 보내리니 너희가 성신의 권능을 입고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예수 승천에 관한 기사는 복음서 원문에는 없는 기사를 삽입시킨 대목이 있으니 복음서에서 예수가 제자들과 이별할 때 원문에는 "떠나시니" 하였으나 성경을 편집한 사람들은 주석을 가미하여 "떠나 올리우시니" 하였다. 그것은 예수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승천한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올라갔다고 첨부하여 기록한 것이다. 또한 예수가 제자들과의 이별 장면에서 원문에는 "저희가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갔다"고 기록하였으나 성경 편집자들은 "저희가 그에게 경배하였다"고 가미하여 첨부하였다. 예수교가 인류에게 숭배를 받으며 지금까지 유지 발전하는 원인은 예수가 생전에 예언한 대로 부활 승천 성령 강림이 실현되었다는 성경 기사가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부활 승천하였다는 성경 기록이 사실인가 아니면 신화설인가. 예수가 부활 승천하였다는 사실은 책에 써있는 것뿐이요 2천년이 되도록 살아있는 예수가 그를 신봉하는 신도 중에 한 사람과도 대화한 사실이 없다. 지구상에 수많은 신도들이 금식 기도 하면서 예수를 부르고 재림을 고대하여도 응답을 받은 자가 없으니 성경 기사는 신화설로 취급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생각이다. 회교 창시자 마호멧이 시조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제사 드린 시온 산 예루살렘에서 승천하였다고 회교 신도들이 신앙하고 있으며 승천한 그 자리에 회교성전을 세우고 그들의 하나님 알라 신에게 경배하고 있으니 시온 산이 유대교와 예수교의 성지라고 하나 현실은 회교 수중에 있으니 예수가 승천하였다는 성지가 적대 관계에 있는 회교의 영지가 왜 되었을까. 이스라엘이 시온 산 동 예루살렘을 회교 수중에서 탈환하려고 지금까지 싸우다가 포기하고 아랍의 잠정적 소유로 인정하고 평화 협정을 맺은 것은 사실상 유대교나 예수교가 회교에게 굴복한 것이다. 3천 년간 시온주의를 부르짖던 유대교의 목소리도 모기 소리가 되었다고 회교는 조롱하고 있다. 종교마다 교조(敎祖)를 신성시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늘에서 영생하는 존재로 만들려고 승천하였다는 신화설을 사실처럼 인류에게 선교하는 것이다. 예수교 안에서도 개신교는 마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으나 카톨릭은 성모 마리아가 승천하였다고 믿으면서 예수보다 마리아가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모두가 거짓이다. 예수도, 마호멧도, 마리아도 죽어 사라진 사람이요 부활 승천하여 영생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즉 예수가 생전에 제자들에게 부활 승천 재림을 예언하였으나 예수의 말은 사장(死藏)되었으니 무익한 말이 되었다. 본문 기사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명하기를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신 강림을 기다리라"고 하였으니 그들이 평상시 모이던 장소인 마가의 2층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는 중에 바람으로, 불로 임하였다는 성신이 임하여 예언을 하고 방언을 하였다고 기록하였다.(행 2장) 이 기사를 토대로 지금까지 예수교는 평상시에도 성신의 도움으로 신앙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특별 집회를 열면 성신의 은혜를 갈구하면서 헌신하고 있으나 실상은 성신의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요 사람들은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기도에 몰두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고 이상한 방언을 하게 되면 성신받았다고 만족하고 있으니 스스로 속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 예수 공중 재림 >> 본 문(살전 4:15~18)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죽은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쫓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 해 설 예수 강림에 관하여 성경의 기사가 통일이 되어 있지 못하고 여러 가지로 기록한고로 성경 학자들도 여러 학설로 논쟁을 하고 있다. 제1설은 계시록 20장, 21장 기사와 바울이 말한 공중 강림(살전 4장)을 결부시켜 첫 부활에 참예하는 자는 천년 동안 공중에서 예수 신랑을 맞이하여 혼인 잔치를 하면서 영광을 누리니 이것이 예수의 재림이요 천년이 지나 성도들과 같이 예수가 백마를 타고(계 19장) 지상 강림하여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 예수의 3림이라고 주장하는 학설이다. 제2설은 기름 준비를 한 슬기로운 처녀들은 신랑 예수가 올 때에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여 혼인 잔치에 참예하는 자, 환란을 끝까지 참고 이긴 자이니 택함 받은 자들은 예수가 공중강림을 할 때에 천사를 보내어 지구상에 있는 성도들을 모아 예수를 공중에서 맞이하고 전쟁을 치루기 위하여 군대를 집결하듯 공중에서 지체하지 않고 예수를 선봉장으로 하여 지상에 내려와 예수와 싸우려는 악한 무리를 멸하고 마귀를 결박하여 옥에 가두어 천년 동안 활동하지 못하게 한 후 천년 동안 지상 낙원에서 행복을 누리는 지상 천국 시대로 최고의 영광을 누린다고 주장하는 학설이니 공중 강림은 성도들을 맞이하는 혼인 잔치 재림이요 지상 강림은 세상을 심판하는 3차 강림이다. 1설과 2설의 차이는 천년 왕국이 하늘과 땅에서 전개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성경 학자들은 7년 대환란을 두고 논쟁을 하고 있으니 성도가 환란 전에 승천하여 예수를 공중에서 맞이하고 예수가 말한 대로 7년 환란은 유대인이 당하는 환란으로 해석하는 자도 있고(마 24:15~22) 성도가 땅에서 환란을 당하고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땅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재앙으로 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자가 많은 것이다. 제3설은 천년 시대를 강조하지 않고 예수 강림시에 구원 얻은 과거 죽은 자가 부활하여 살아있는 구원 얻은 자와 동시에 공중에서 예수를 영접하고 땅은 파멸되어 없어지고 새 하늘 새 땅이 생긴다는 계시록 21장을 전적으로 믿고 있으니 지상의 천년 왕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교 근 2천년 기간 예수 재림을 기다리는 광신으로 인하여 시일을 정하고 강림을 증거하다가 패가 망신하는 사례가 허다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있으니 최근세에 들어와 지구상에 평화가 계속되면서 예수 강림을 고대하는 신도는 점차 사라지고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지상 천국을 찾고 있다. 바울의 공중 강림설은 2천년 예수교 역사에 신도들로 하여금 세상을 등지는 도피적 삶을 살게 하여 많은 사람들이 헛된 고생을 하게 하였으니 종교가 가져온 해악을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 재림을 학수고대하는 예수 재림 교회, 말일 성도 교회 등은 땅에서 지역적으로 재난만 생겨도 예수가 오지 않나 하여 하늘을 쳐다보며 예수를 사모하는 것이 신앙의 자세가 되어있다. 한국에 개신교가 들어온 지 1백여 년 기간에 시일을 정하고 예수를 기다리다 거짓말에 속임 당한 사례가 10여 사건이 생겼다. 1992년 10월 28일을 예수 강림일로 선포하고 소란을 피운 이장림(李長林) 목사의 강림설을 믿은 자가 큰 피해를 당하였다. * 바울이 예언한 멸망의 사람 (적그리스도) >> 본 문(살후 2장)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주 예수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는 편지로나 주의 강림이 임박하였다고 마음에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누가 무슨 말을 하여도 미혹당하지 말라. 먼저 배도(背道)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예수가 오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나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강림하여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임으로 폐하시리라.(하략) >>> 해 설 사도 바울이 전도하여 세운 교회 가운데 데살로니가 신자들은 세상에서 살아갈 생업은 뒤로하고 예수의 강림을 지나치게 고대하므로 초조한 마음이 되어 이상한 꿈을 꾸어도 예수가 오는가 생각하고, 신자들이 모여 앉으면 어느 형제가 주님이 온다는 계시를 받았다느니 바울 선생으로부터 강림이 임박하였다는 편지가 왔다느니 하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살기 싫은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되었다. 당시 신자들이 그러한 마음을 가진 것은 당연한 것이니 예수교의 제 일인자인 바울은 예수를 전하면서 자기 생전에 예수가 다시 온다고 전하였으니 당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자기들도 살아 생전에 예수를 만날 것을 믿은 것이다. 초대 교회가 부흥되었다가 실패한 것은 기대한 대로 예수가 오지 않고 당시 사람들은 모두 죽으므로 예수교는 사람을 속이는 거짓 종교로 판명되어 사도들 당시 유대와 소아시아(터키)와 그리이스 등지에 교세가 확장되었다가 사도들이 대부분 순교당한 후 예수교는 아세아(중동 지역)에서 사라지고 로마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바울이 첫째 편지(살전서)에서 예수가 강림할 때에 신자들이 공중으로 승천하여 예수를 맞이하여 영광을 누린다고 하였는데 바울의 편지를 받은 후 그들은 날마다 하늘만 쳐다보면서 예수를 기다린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두번째 편지에서는 "예수의 강림이 임박하였으나 예수께서 생전에 말씀하시고 나도 주의 명을 받아 전에 저희와 같이 있을 때 한 말을 기억하라. 세상 끝이 되려면 멸망할 미운 물건 적그리스도가 거룩한 곳 하나님의 성전을 점령하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고 자기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를 죽이는, 그런 짐승이 등장하여야 예수가 온다"고 하였다. 바울이 가르치는 저 불법의 사람은 누구를 말함인가. 당시 지중해 연안국들은 제정 로마의 지배를 받으므로 로마 황제를 섬기면서 살았다. 로마 황제를 직설적으로 말할 수 없는고로 불법의 사람, 또는 멸망의 아들로 표현하였다. 본문에서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막는 자가 있어" 하였으니 막는 자는 하나님을 가리킨 것이다. 그중에서 옮길 때까지 막는다 한 것은 신도들이 공중으로 승천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로마가 예수교를 박해하기 시작하였으나 본격적으로 박해를 하지 않자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막고 있으나 우리가 떠나면 짐승이 성전(예루살렘 성소)을 점령하고 환란을 일으킨다고 하였다. 다니엘이 말한 짐승은 사도 당시 로마 황제로 단정하여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확신하고 당시를 말세로 생각하였다. 예수교가 로마에게 미움을 받은 원인은 황제보다 하나님 예수를 더 위하고 로마에게 순하게 복종하지 않은 까닭이다. 사도들은 순교로 대항하므로 신자들도 수많은 사람이 학살당하였다. 2천 년간 예수를 신봉하다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적대 세력에게 희생당한 신도는 수천만 명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소식 없는 예수를 상고 시대에 기다렸으니 인류 역사의 최대의 사기극은 예수 재림설이다.
* 옛 하늘과 땅이 소멸된다 >> 본 문(벳후 3:8~13)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려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땅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해 설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도 예수를 전할 때에 예수의 재림이 임박하였다고 강조함으로써 새 세상을 소망하는 당시 사람들은 3년이나 5년이 지루하고 신앙으로 인하여 박해가 심하므로 하루 빨리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가기를 기다리고 사모하였다. 신자들 중에는 예수가 곧 강림한다고 주장하더니 왜 더디냐고 불평을 하게 되니까 베드로는 그들을 달래기 위하여 편지를 전하면서 설명하기를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마음으로 세상 사람을 참고 기다린다고 예수가 오지 못하는 이유를 해명하였다. 베드로의 말은 구차한 변명이지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예수가 세상에 다시 오는 날은 하늘과 땅이 불에 타서 소멸되는고로 회개하지 못한 자는 멸망을 당하게 되니 모든 사람이 구원얻기를 기다리는 하나님의 마음은 하루가 천년 같은 심정이라는이다. 이렇게 심판을 미루고 있는 관계로 주의 날이 더딘 것으로 생각하나 주의 강림은 불시에 도둑같이 임하는고로 너희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주를 사모하고 기다리라고 하였다. 베드로의 말은 당시 사람들에게도 설득력이 미약하였고 2천년이 가까운 오늘의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이유를 설명한다면 무슨 말로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당시 한 말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니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회개하기를 기다린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말은 억지 주장이요 예수의 재림은 영원한 불발탄이니 오늘에 사는 지혜 있는 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옛 사람들은 우주의 중심은 지구로 생각하였고 하늘에 떠있는 별은 지구에 비하면 크기가 지구의 억만분의 일도 안 되는 작은 것으로 생각하였다. 요한의 글을 상고하여도 마지막 심판날에 하늘의 별이 땅에 떨어질 때 태풍에 나무에 달려있은 과일이 떨어지듯 별들이 땅에 떨어진다고 하였다.(계 6:13) 베드로의 글에서 하늘의 물체(해와 달과 별들)와 땅이 뜨거운 불에 녹아져 없어지고 새 하늘 새 땅이 생긴다고 하였으니 당시 신자들은 공포심을 가지고 신앙으로 하루하루 살다가 죽고 배교자가 속출하면서 예수교는 쇠잔하였다.
로마 제국은 예수교를 박해하여 포교의 자유를 주지 않았다. 이 시대에 요한은 선교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극형은 면하고 터키 앞바다, 육지에서 가까운 밧모 섬으로 유배당하였다. 예수 생존시 다른 제자들보다 신임을 받고 사랑을 받은 요한은 섬에 갇혀 있으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를 사모하면서 기도 생활을 하는 가운데 여러 가지 이상(異像)을 보게 되었다. 본문에서 요한이 본 이상에 대하여 절대성을 부여하려고 하나님의 계시(啓示)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예수에게, 예수는 천사에게, 천사는 요한에게, 이렇게 세 단계를 통하여 지시하였다. 유배지에는 지필묵(紙筆黙)이 없는고로 석방된 후 에베소에서 기록하였다. 서론과 결론에서 "내가 속히 오리라. 때가 가깝다"고 하였으며 "속히 이루리라.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였으니 먼 훗날을 기약하지 않았다. 1장 7절을 보면,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하였는데 기사 내용 가운데 그를 찌른 자(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데 동조한 자)도 생존자 중에는 예수의 강림을 목격하고 형벌이 두려워 애곡한다고 하였으니 요한도 예수의 재림은 임박한 것으로 믿은 것이다. 예수교가 요한의 말을 달리 해석하여 먼 훗날까지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예수 앞에서 심판 받을 때 예수를 박해한 자를 가리켜 '그를 찌른 자'라고 억지 해석을 하고 있다. 요한이 본 이상(異像) 가운데 핵심은 일곱 개의 금촛대와 촛대 사이에 흰 옷 입은 사람이다. 요한은 흰 옷 입은 사람을 예수로 알았고 그 사람도 자신을 예수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스가랴가 본 이상(슥 4장)과 요한이 본 이상(계 11장)을 종합하여 보면 촛대 곁에 있는 사람은 감람나무로 등대(촛대)에 기름을 공급하는 자, 주 하나님을 모시고 성전을 지키는 자이다. 계시록 11장에서 감람나무 선지자를 촛대라고 하였으니 촛대의 주인은 예수가 아니요 감람나무 의인이라고 해석하여야 성경 말씀이 짝이 맞는다. 계시록에 기록한 내용이 이스라엘 땅을 중심으로 세계 각처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으로 알고 있으나 실상은 하나님과 마귀의 싸움이니 하나님의 원수 붉은 용 짐승과 이긴자 감람나무의 싸움으로 감람나무가 서있는 한국 땅에서 전체가 이루어지는 기사들이다. 아마겟돈 전쟁이나 14만 4천 등은 영적이요 상징적인 말이다. 이 기사를 육적으로 해석하므로 예수교가 헛된 고생을 하면서 멸망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이 비행기에서 폭탄을 투하하듯 연속적으로 재앙이 쏟아져 지구가 파멸되는 것으로 기록하였으나 상징적인 것이요 육적 재앙은 아니다. 계시록의 핵심 기사인 2장과 3장에서 이긴자의 출현을 고대하는 하나님의 깊은 사정을 발견하게 된다. 7장의 인 맞은 자, 14만 4천의 비밀과 11장에 두 감람나무와, 12장에 붉은 용 마귀와 싸우는 영모(靈母)와 영자(靈子)의 정체와, 13장에 두 짐승(정권과 교권)의 실상과, 16장에 아마겟돈 전쟁과, 17장에 짐승과 음녀의 정체와, 20장에 사단의 결박과 석방과 천년성의 실상과, 21장, 22장의 새 세상, 새 예루살렘의 시기와 위치 등을 바로 알아야 될 것이다. * 이긴자(계 2장~3장) 본문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 사자(使者)에게 편지한 내용이니 지금까지 성경 해석은 요한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편지를 써서 인편으로 발송한 것으로 생각을 하며, 광의(廣義)로 해석하면 지구상에서 예수를 신앙하는 신자들을 향한 신앙적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님이 마귀에게 패한 이후 실낙원을 복낙원시키려고 적지(敵地)에서 외롭게 싸우면서 권토 중래(捲土重來)를 하려고 전략을 세울 때 속된 말로 연극과 쑈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긴자는 동방에서 출현시키면서 서방에서 출현하는 것같이, 소아시아(터키) 교회에서 나오는 것같이, 한 사람이 아니고 많은 사람이 이긴자가 되는 것같이 알려져 예수에게 충성하는 자는 모두가 이긴자로 믿고 있는 것이다. 계시록에서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리는 이긴자는 영모가 낳은 영자 한 사람이요 그가 붉은 용 마귀와 싸워 이기고 하나님 보좌에 올랐다고 하였고, 19장에서 마귀를 멸하는 백마승인(白馬乘人)이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자라고 명시하였다. 본문상으로 일곱 교회는 지금의 터키 서부 지역에 위치한 곳으로 에베소 교회는 바울의 서신에서 많이 언급하였으나 다른 교회는 바울의 서신이나 요한의 서신에서 찾아볼 수 없다. 요한이 유배지에서 에베소에 돌아와 계시받은 것을 일곱 교회 사자(使者)들에게 서신을 보냈다는 기록이 없으니 일곱 교회는 일곱 수인 하나님의 상징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계시록에는 일곱 금촛대 사이에 있는 사람을 예수로 표시하였고 요한보다 6백년 전 사람인 스가랴 선지의 글에서 일곱 금등대 옆에 있는 사람은 수룹바벨과 기름부음 받은 감람나무로 기록하였다. 스가랴서와 계시록은 내용이 같으니 성소의 일곱 금촛대, 일곱 등불은 하나님 자신을 가리킨 것으로 당신이 이긴자가 되어야 뜻이 완성되는 것을 암시하였다. 성소의 시무자는 제사장이니 스가랴서에서 당시 유대 총독 수룹바벨로 표시하였으나 육적 총독 수룹바벨은 형식적인 인물이요 사명자가 아니니 장차 오시는 온 세상에서 주 하나님을 모신 자, 감람나무를 가리킨 것이다. 성경에서 최고의 비밀이 여기에 있으니 육적으로 해석하는 자는 요한 당시 땅의 일곱 교회 실태를 말한 것으로 알게 만들어 이긴자의 중대성을 알지 못하게 인봉하였다. 스가랴서도 육적으로 해석하여 스가랴 당시의 사람인 수룹바벨로 인정한다면 억설이 되는 것이니 당시 수룹바벨이 여러 사람을 인도하여 바벨론에서 본국에 귀환하여 성전을 세우려고 시도하였으나 성사시키지 못하였다. 스가랴는 수룹바벨이 성전을 시작하고 완성한다고 하였고 수룹바벨 앞에 대항하는 세력은 무너져 평지가 된다고 하였고 일곱 눈 다림줄이 그에게 있고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신으로 이룬다고 하였다. 일곱은 온 세상을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였으니 만민 중에서 영적 수룹바벨인 이긴자 한 사람을 찾으려고 애쓰는 하나님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 계시록에서 일곱 교회, 복잡한 마귀의 시험에서 벗어나 이긴자는 축복과 권세를 준다고 한 것은 이긴자는 만 가지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벗어나 자유를 얻은 승리자가 되므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가 있는 것이다. 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여자가 낳은 아들은 하나님 보좌에 앉은 자로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린다 하였으니 성경의 짝을 찾아 맞추면 이긴자는 여러 사람이 아니요 한 사람을 가리킨 것이니 예수에게 충성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긴자가 된다는 기존 학자들의 말은 엉터리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깊은 비밀은 계시를 받은 사람도 뜻을 알지 못하였으니 다니엘도, 스가랴도, 요한도 글을 썼으나 뜻은 알지 못한 것을 본문에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 14만 4천의 비밀(계 7장) 해돋는 곳으로부터 올라오는 천사를 통하여 선택된 인 맞은 자, 14만 4천의 숫자를 액면대로 환란 중에서 신앙을 지킨 성도 14만 4천명으로 해석하므로 예수교 계통의 특이한 교파들은 헛된 고행을 하다가 패가 망신하는 사례가 지구상에는 자주 발생하고 있다. 14장에도 14만 4천은 첫 열매, 첫째 부활에 참예한 자라고 언급하였으니 인 치는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다고 자처하는 거짓 목자의 말을 믿는 신도들은 고난을 감수하면서 예수 재림을 고대하고 있다. 일부 성경 학자는 7년 환란 중에서 구원 얻은 이스라엘 민족 12지파 중에서 선택된 성도로 해석하여 이방 교회는 14만 4천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흰옷 입은 많은 무리가 환란 중에서 구원 얻은 이방 교회 성도라고 해석하는 것이 성경상 정답으로 인정하고 있다. 예수교 근 2천년 역사 과정에서 전쟁과 재난으로 세상이 혼란한 시기에는 거짓 목자가 나타나 예수 재림이 임박하였으니 살아서 예수를 영접할 자격을 얻으려면 순교 정신으로 신앙을 지켜야 14만 4천 수에 들어간다고 말하여 생업을 전폐하고 하늘나라 소망을 바라보고 세상을 등지고 고생하다가 죽은 사람도 허다하였다.(초대 교회 참상 히 11:35~40 참조)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세계적으로 50 년간 평화가 유지되면서 예수교 신자들은 예수 재림을 강조하던 예수 재림 교회마저 떠나 재림설은 사라져 가면서 땅의 소망을 가지고 세상에서 잘 살아보려고 힘쓰고 있으니 신앙의 변절자가 되었다. 계시록 본문에서 7수와 12수로 표시한 기록이 자주 나타난다. 7수와 12수는 하나님께 속한 하늘의 수, 완전수이니 사람의 수를 말한 것이 아니다. 모세의 법통을 계승하여 지금까지 메시아를 고대하는 유대교 신자는 예수를 신앙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스라엘 12지파에서 일정하게 1만 2천명이 인 침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될 수 없다. 평화 시대도 아니고 환란 시대에 순교 정신으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신봉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일부 성경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예언에서 단을 뱀으로 표현하고(창 49:17) 라이스로 이동한 단 자손이 우상을 섬기고(삿 18:30) 계시록 7장에서 12지파 가운데 단 지파가 빠진 것에 근거하여 단 지파는 사사 시대부터 이단자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난 것부터 하나님을 반역한 집단이요 끝날에 하나님을 대항하는 적그리스도가 단 지파에서 나올 것으로 해석하고 있으니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면 망한다는 말씀이 응하는 것이다. 단 지파 주류(主流)가 일찌기 가나안을 떠난 관계로 12지파 족보가 기록된 역대기서를 기록한 기자도 단의 족보를 기록하지 못하였고 단 지파가 가나안을 떠난 이후 1천2백여 년 지나 성경을 쓴 요한이 단 지파 족보를 쓰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본문의 말씀은 신령한 뜻이니 이스라엘 12지파는 땅에 있는 사람의 수가 아니요 삼위일체 하나님이 마귀를 이기고 승리한 것이니 당신 자신을 가리킨 것이다. 억지 해석 같으나 마귀를 이기고 구세주로 오신 주인공이 아니면 이 비밀을 풀 자가 없는 것이다. * 두 감람나무(계 11장) 계시록 11장은 다니엘서와 스가랴서를 결부시켜 해석하여야 실체를 바로 알 수가 있다. 다니엘서에서 7년 기간을 말하였는데 전 3년 반은 기름부음 받은 자가 활동하며 성도들에게 은혜를 부어주는 기간이요 후 3년 반은 기름부음 받은 자가 미운 물건 마귀에게 고난당하는 박해 시대라고 명시하였다. 본문에서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을 짓밟으리라"고 한 말은 미운 물건 짐승 마귀가 거룩한 성전을 점령하고 제사를 폐하여 성도의 권세가 없어지는 기간을 한때 두때 반때로 수차 기록하였으니 이 기간을 가리켜 계시록에서는 짐승이 감람나무 선지자를 죽인다고 하였다. 죽음을 당한 두 선지자가 동시에 증거하고 동시에 죽음을 당하고 동시에 3일 반이 지나 부활한다고 하였으나 실상은 차례가 있으니 12장에 등장하는 해와 달과 12별을 몸에 지니고 아이를 해산하는 여자가 첫째 감람나무요 그가 영적으로 낳은 아들이 둘째 감람나무이니 붉은 용 마귀는 두 감람나무를 꺾지 못하면 자기가 죽게 되는고로 결사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본문에서 두 증인, 두 감람나무, 두 촛대로, 주를 모시고 서있는 자로 기록한 부분과 스가랴의 기사에서 등대 좌우에서 금 같은 기름을 흘려내는 기름부음 받은 자, 온 세상에서 주를 모신 자로 기록한 것은 내용이 같은 것이다. 본문에서 마흔두 달, 1천2백60일, 3일 반 한때 두때 반때는 모두 3년 반을 말한 것이니 본문에서 감람나무 선지자가 자기의 정한 기간에 증거가 끝나면 무저항에서 올라오는 짐승에게 죽음을 당하고 3일 반이 지나 부활하여 승천한다고 기록한 것은 몸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인권을 박탈당하고 옥에 갇혀 자유를 빼앗긴 기간을 표현한 것이고 마귀의 멍에를 벗고 자유를 찾은 때를 부활한 것으로 표시하였다. 첫째 감람나무로 오신 박태선 장로가 3년 반을 증거하고(1955년 후반부터 58년 12월) 옥중에 들어가 61년 5.16혁명 이후 출옥하여 자유를 얻은 것은 성경에 기록한 기간과 일치하니 7년 기간에 되어진 사실이다. 둘째 감람나무는 첫째 감람나무와 다른 점이 있으니 첫째 감람나무는 한 사람 몫인 당신의 기간에 증거를 마치고 고난을 당하였고 둘째 감람나무는 처음 증거할 때부터 당신의 증거 기간은 삼위일체 세 사람의 기간을 증거한다고 하였다. 그 말씀이 실현되니 12년 증거하고 옥중 고난을 당하는 것은 원수 마귀와 싸우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당하는 고난이니 세상적으로는 실정법에 의하여 수난을 당하는 것으로 인정하나 영적으로는 하나님과 사단의 싸움이니 성도들로 하여금 불의 연단을 받게 하여 성도의 자격을 만드는 역사이다. 본문에서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사람들을 괴롭게 한고로 그의 죽음을 즐거워하여 서로 예물을 교환하고 시체를 장사하지 못하게 하고 많은 사람이 구경한다고 하였으니 마귀에게 속한 죄인들에게는 의인이 죄인을 괴롭게 하는 자다. 썩은 송장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고 옥에 갇혀 있는 것을 조롱하고 즐거워하는 죄인들의 행태를 말한 것이다. 본문에서 선지자가 죽은 곳을 영적으로 말하면 소돔과 애급으로 표현하였으니 죄악이 만연한 소돔과 하나님의 백성을 탄압한 애급을 지적한 것은 온 세상 마귀가 한국으로 집결하여 감람나무 역사를 꺾으려고 대항함을 뜻하는 것이다.
* 영모와 영자(계 12장) 모세와 이사야가 예언한 여인과 그의 후손은 2천년 전 예수가 아니요 예수의 제자인 요한은 끝날에 나타나 뜻을 이룬다고 기록하였다. 예수교가 12장에 나오는 여인과 그의 아들의 정체를 여러 각도로 해석하여 궁색한 억설로 해석하고 있다. 마리아와 예수로 해석하자니 예수가 육신으로 두 번 세상에 출생하는 것이 되므로 그렇게 해석할 수도 없고 교회 공동체로, 유대교에 관한 기사 등으로 성경 학자들이 횡설수설하고 있다. 예수가 여인의 후손이 아닌 것은 12장이 심판하고 있으니 12장은 예수교가 정교(正敎)가 아니요 사교(邪敎)라는 것을 증명한다. 본문에서 해와 달과 열두 별을 몸에 지니고 있는 여자는 땅에 속한 죄인이 아니요 의인 이긴자를 출산하는 산모로, 그가 임신하여 해산할 때 아파서 부르짖는 장면을 기록하였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원한을 알 수 있으니 하나님이 마귀와 싸우는 과정을 여자가 해산할 때 울부짖는 고통으로 표현하였다. BC 1천1백여 년 전 사사 시대 단 지파 자손으로 하여금 고국을 떠나게 하사 동방 한반도로 인도하여 3천 년간 이 민족을 연단시킨 후 단의 후손에서 이긴자를 키우실 때 길 예비자, 후견자를 먼저 세웠으니 1955년 등장한 박태선 장로가 그이다. 그가 등단한 후 제1성으로 "나는 동방 의인 감람나무로 주의 오신 길을 예비하는 길 예비자"라고 증거하였다. 초기에 하나님의 비밀을 공개할 수 없는고로 인봉하였으니 신자들까지 예수 재림의 길 예비자로 알고 있었으나 이긴자를 해산한 영모로서 길 예비자요 영적 아들이 뜻을 이룬다고 증거하였다. 영모인 여인은 하나님이니 하나님 되심을 증명하시려고 하늘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하늘의 해, 달, 별들로 옷을 입었다고 하였다. 12장을 상세하게 설명하려면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 지면 관계로 요약하였다. 여인이 해산하려고 고통스러워할 때 붉은 용 마귀가 여자 앞에 대기하고 있으면서 아이를 낳으면 잡아먹으려 하는 것은 아이를 죽이지 못하면 자기가 죽음을 당하므로 결사적으로 대항하는 것이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하나님 보좌로 올라갔다고 한 것은 모두가 영적 말씀이니 아들이 하나님이 되었다는 표현을 승천하였다고 하였다. 이긴자 아들을 잡아먹지 못한 마귀는 아들을 낳은 여인을 죽이려고 발악을 하였으니 본문에서 여자의 피난처는 광야라고 하였는데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길을 막은고로 사망을 이기지 못하였다. 이사야는 흰 돌 소사를 광야와 사막이라고 하였으니 사막 광야에 구원하는 거룩한 길이 있다고 하였다. 아들을 낳은 영모는 마귀를 이긴 이긴자가 되지 못한고로 피난처인 광야(소사) 승리제단으로 와서 이긴자의 보호를 받아야 되는데 성경의 예언대로 피난처에 오지 못한 것이 불행이 되었다.
* 두 짐승, 政權과 敎權(계 13장) 성경 본문에서 성도를 박해하는 세상 권세 잡은 자를 짐승으로 표현한 것은 인간의 양심으로 자행할 수 없는 악행을 하므로 육식동물인 맹수로 표현하였다. 다니엘서에서 지적한 넷째 짐승은 심히 두렵게 생기고 쇠이빨을 가진 자로 먹고 부숴트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아 죽이는 잔인한 자로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살아 남을 수 없다고 하였다. 다니엘이 말한 미운 물건, 짐승 시대가 당도하였다고 예수가 말하였으나(마 24장) 예수 당시가 말세가 아닌고로 예수의 말은 거짓말이 된 지가 옛날이다. 위에서 언급하였거니와 계시록의 역사는 승리자 감람나무가 오신 한국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긴자와 대항하여 싸우는 짐승도 한국 땅에 나타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마귀가 북한 공산당 속에 들어가 한반도를 삼키려고 지금까지 악행을 서슴치 않고 있다. 본문에서 짐승의 모양이 사자와 표범과 곰 같으며 하나님을 훼방하고 부인하며 일곱 머리 열 뿔이 있고 참람된 이름이 머리에 있으며 자기를 자랑하여 이 세상에 누가 짐승과 같은 자가 있으며 싸울 자가 있느냐고 무적 장수라고 호언한다 하였다. 짐승이 세상 권세를 잡으니 온 세상이 이상히 여기면서 짐승을 찬양한다고 하였다. 이 짐승이 성도와 싸워 이긴다고 하였다.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자는 죽음을 당하고 매매를 못하게 한다고 하였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는 구원이 없다고 하였다. 짐승에 관하여 지금까지 해석이 각양 각색이다. 첫째, 로마 바티칸 교황청을 짐승의 본거지로, 교황을 짐승으로 해석하는 교파(예수 재림교회)가 있으며 최근에는 엉뚱하게 유럽 EC가 짐승의 역할을 하면서 짐승의 표를 세상 사람에게 받게 한다고 허황된 논리를 펴는 곳도 있다. 11절에 또 다른 짐승이 나오는데 새끼양 같은데 두 뿔이 있어 귀여운 모습이다. 이 짐승은 먼저 나온 무서운 짐승을 찬양하면서 양 같은 이 짐승이 권세 잡은 짐승에게 경배하고 순종하면서 세상 사람들도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이적과 기사의 능력을 보여주면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죽음을 당한다고 하였다. 양 같은 짐승은 종교이니 예수의 탈을 쓴 거짓 종교다. 맹수는 정권이요 양은 교권이니 정교(政敎) 합작으로 짐승 독재자가 하나님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북한 공산당 독재자 김일성이 악한 짐승이다. 마귀가 맨 처음에는 소련의 스탈린을 짐승 역할을 하도록 했다. 이것이 에스겔을 통하여 예언되었다.(겔 38장~39장) 스탈린이 죽은 후 중국의 모택동을 등장시키려고 하였다가 그가 죽은 후 붉은 용 마귀는 김일성으로 하여금 짐승의 역할을 근 50 년간 하게 되었다. 본문은 짐승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악조건을 전제로 쓴 것이다. 공산당은 기독교 교도연맹을 어용 종교로 만들어 김일성을 동조케 하고 있으니 이 단체가 이적을 행사하는 양의 탈을 쓴 거짓 종교다. 짐승의 우상과 표란, 김일성의 동상이 북한 곳곳에 있으니 이것이 짐승의 우상이요 김일성의 초상화가 새겨져 있는 화폐가 짐승의 표요 김일성 뺏지가 또한 짐승의 표이니 북한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가슴에 뺏지를 달지 않고 손에 김일성의 초상이 그려진 돈을 쥐지 않고는 매매를 못하니 짐승의 표를 안 받은 자 없는 것이다. 짐승의 소원대로 한반도가 적화 통일되었다면 한반도는 김일성을 찬양하는 종교 일색이 될 것이요 그가 하나님이 될 것이다. 지구상에 공산당이 다 망하고 개방을 하고 개혁을 하여도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대를 물려받아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대항하는 악의 세력이 아직 남아 있는 증거이니 필경은 짐승이 망하고 이 땅은 이긴자 하나님이 다스리는 친정 시대가 올 것이다. 무론대소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한다고 하였으니 성경 말씀대로 북한 주민은 지방마다 세운 김일성 동상 앞에서 경배하고 짐승을 추모한다. 우상에게 경배 않는 자는 사상을 의심받으므로 형식으로라도 동상에게 절하니 짐승은 하나님으로 섬김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성경 학자들이 두 짐승의 실상을 알지 못하고 종교의 탈을 쓴 적그리스도가 끝날에 나타난다고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로마 교황이 짐승 적그리스도 역할을 한다는 해석은 틀린 말이다. 교황 숭배는 신앙적 차원에서 신도들이 자의로 경배하는 것이요 북한처럼 강권으로 인민들에게 숭배받는 것은 아니다. 본문의 맹수 독재자는 정권으로 통치하므로 강제로 숭배하도록 명하고 불복하는 자는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표는 짐승의 이름 또는 짐승의 수이니 그 수는 6백6십6(666)이라고 표시하는데 666에 깊은 비밀이 있다고 괴상한 해석들을 하고 있으나 숫자에 큰 뜻은 없고 6수는 마귀의 수로 알면 되는 것이다. 짐승 김일성이 6.25 전쟁을 일으켜 한반도를 삼키고 이 백성 위에 하나님으로 경배를 받으려 하였으나 하나님에게는 6.25 전쟁을 통하여 이긴자를 키우는 연단의 기간이 되었으니 이때부터 12장에 기록된 영모의 아들, 영자는 영적으로 모태에서 자라나는 태아가 된 것이다. 태아가 출생하여 마귀를 죽이는 이긴자가 되었고 인 치는 권세와 전쟁을 막는 권세가 있어 전쟁을 일으키려는 짐승의 세력을 꺾으니 한국땅에 짐승이 나타날 수가 없다. 북한땅에도 짐승의 세력이 소멸되고 영생의 복음이 전파되는 시대가 온다.
* 아마겟돈 대회전(大會戰) >> 본 문(계 16:13~16)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音)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 해 설 2차 대전이 끝나고 세계 각국에 거주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옛 조국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유엔의 승인을 얻어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면서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관계는 적대적 관계로 발전하였다. 이웃 나라이나 수교를 하지 않고 아랍 세계는 이스라엘을 불법 집단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생존권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을 패망시키려고 칼을 갈기 시작하였다. 아랍 세계가 이스라엘을 증오하는 것은 조상 아브라함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형제간의 싸움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 서로가 원한을 품고 후손들이 살아온 것이다. 6세기에 마호멧이 회교를 창설한 후 회교 세력은 이스라엘이 신성시하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시온 산 솔로몬 성전터에 회교 사원을 웅장하게 세웠다. 그들의 주장은 조상 아브라함께서 신에게 제사 올리던 성지를 장자 이스마엘의 자손이 소유하여야 당연하고 차자(次子)인 이삭의 자손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회교는 예루살렘을 성지로 신앙하고 있으며 아랍인들의 전설에는 마호멧이 시온 산에서 승천(昇天)하였다고 한다. 2차 대전 직후 동서 진영이 냉전으로 발전하면서 공산권은 아랍 세계를 자기들 편으로 끌어들이게 되었고 이스라엘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세계와 손을 잡으니 아랍 국가는 지리적으로도 소련 공산국가와 가까와지게 되었다. 에스겔 선지자는 끝날에 북방 나라, 소련(곡과 마곡)이 많은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 땅을 침략하고, 죽은 시체와 무기가 얼마나 많은지 시체를 매장하는 데 7개월, 무기를 정리하는 데에 7년이 걸린다고 하였으니 지금까지 성경 학자들이 3차 대전을 기정 사실로 주장하는 것은 에스겔의 기사(겔 38장~39장)와 계시록의 내용이 같은 상황이 되는 까닭이다. 아마겟돈 대전쟁이 최후의 심판으로 중동 지방에서 동서 진영 간에 벌어지게 되면 핵전쟁으로 세계 인구 3분의 1이 죽는다고 말을 하고 있다. 본문에서 귀신의 영이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세상의 왕들을 아마겟돈 전쟁에 가담하도록 끌어들인다고 하였다. 세계 정세가 에스겔의 예언대로 되는 듯하다가 중동의 전운이 걷히고 곡과 마곡, 즉 소련이 붕괴되면서 공산당이 사라지고 러시아가 90년, 91년 중동 전쟁 당시 이라크를 지원하지 않고 서방 다국적군의 입장에서 후원한 것은 성경 신학자들의 학설을 수포가 되게 만들었다. 이긴자의 존재를 모르면 세계 정세가 왜 변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소련 공산당 서기 고르바쵸프가 공산주의를 포기하고 민주주의를 제창하면서 세계 정세는 돌변하고 성경상 악조건의 예언도 사장(死藏)되고 있는 것이다. 이긴자가 등단한 후 공산당을 붕괴시킨다고 선포한 지 5년이 지나 실현되었으니 고르바쵸프의 사상 변화는 인간 본연의 구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의 능력이 그 마음을 움직여 70여 년 간 뿌리박혀 있는 공산 사상을 뽑아 버리는 용기를 준 것이다. 세계가 불안해 하는 화약고 중동의 위기가 점차 사라지고 40여 년 간 결사적으로 싸우던 이스라엘과 아랍 해방기구가 정식으로 화해함으로써 평화가 정착되고 있으며 인접국 요르단과 평화 협정을 성립시키고 시리아와 레바논과 화해하면 중동 평화는 영구하게 보장된다. 정치적으로 평화가 성립되었으나 종교적으로 유대교와 회교의 원리주의는 엄연히 존재하므로 분쟁은 오래갈 것이다. 유대교 시온주의자들은 성지 중의 성지인 동부 예루살렘 시온 산이 아랍 수중에 있어 그들이 시온 산 회교 사원에서 알라 신을 부르며 경배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으니 예루살렘을 통일하여 시온 산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 이사야의 예언대로 세계 만민이 예루살렘으로 모여오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고 그들은 믿고 있으나 유대교의 이상은 실현될 수 없는 정세로 변하였으니 모든 선지자가 예언한 낙원은 유다 예루살렘이 아니요 감람나무 선지자가 오신 한반도임을 증명하고 있다. 90년 걸프전이 시작되었을 때 예수교 신자 중에 일부는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일시적으로 소란을 피우고 하나님의 심판과 예수 강림이 임박하였다고 주장하다가 정전이 되니 그들은 벙어리가 되었다. 아마겟돈은 신령한 뜻으로 해석하여야 정답이 나오는 것이다. 붉은 용 마귀가 자기의 원수인 영모와 영자를 죽이려고 분노하는 것을 계시록 12장에서 언급하였다. 온 세상 마귀가 영적 아마겟돈인 이긴자와 싸우려고 총집중하는 것이니 이스라엘을 패망시키려고 아랍권과 공산권이 연합 작전을 하다가 패망하듯이(겔 38장~39장) 마귀가 이긴자를 꺾으려다가 자기가 패망하는 것은 기정 사실이다.
* 붉은 빛 짐승과 붉은 빛 음녀 >> 본 문(계 17장)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하략) >>> 해 설 17장의 짐승과 음녀는 13장의 두 짐승이다. 17장의 음녀는 13장의 순한 짐승 양이니 음녀는 양의 탈을 쓴 이리로서 하나님과 예수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겉모양을 단장하였으나 음녀라고 표현한 것은 두 주인을 섬기는 자로 신앙의 정절이 없고 세상 권세자와 야합하여 영화를 누리면서 하나님의 성도들을 죽이고 환란을 당하게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짐승과 여자가 붉은 빛 옷을 입은 것은 공산주의 사상을 소유한 것을 뜻한다.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 것은 음녀가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협력하는 관계로 짐승이 음녀를 우대하는 것이다. 13장과 17장의 기사는 붉은 짐승 공산당이 한반도를 통치하는 악조건 시대에 나타나는 현상이요 이긴자를 통하여 공산당이 와해가 된 시점에서 음녀는 타고 있을 짐승이 없으니 음녀도 불가불 붉은 옷을 벗어야 될 것이다. 해방 신학 사상(일부 카톨릭) 같은 좌경 활동은 세상이 받아주지 않으니 음녀의 음행도 소멸될 것이다. 공산당이 일방적으로 독재 정치를 강행하면 인심을 얻을 수 없는고로 종교인들에게 유화 정책을 쓰려고 종교 강대국인 한국의 국민들에게는 종교를 앞세운 것이다. 요한의 계시는 적화 통일이 되어 짐승의 권세가 전 백성을 통치하는 짐승 시대에 되어지는 광경이다. 공산당이 소멸된 이긴자 시대는 계시록의 짐승 시대는 나타날 수 없다. 본문에서 백성들이 짐승에게 굴복하고 경배하게 되면 종교를 싫어하던 짐승은 자기 등에 태우고 있던 음녀가 미워서 벌거벗기고 그 살을 먹고 불로 태워 죽인다고 하였으니 짐승이 종교를 임시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면 없애버리는 것이다. 세상의 왕들이 음녀와 음행하였다는 뜻은 하나님과 결혼한 여자가 세상 권세자와 손을 잡는고로 창녀로 표현하고, 일곱 머리는 음녀가 앉은 곳으로 일곱 산이라고 본문에서 지적한 것은 로마 교외(郊外) 일곱 산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는 바티칸 교황청을 가리킨 것이다. 한국땅에서 좌경 세력들이 반정부 활동을 할 때에 카톨릭이 음양으로 동조하여 성당이 반정부 활동의 기지가 되었던 사실은 성경 기사와 근사(近似)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이스라엘의 예언에서 단이 말과 말 탄 자를 굴복시킨다는 뜻은 짐승과 음녀, 즉 정권과 교권을 무너트리는 강자임을 말하였다.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시대가 실현되면 세상을 호령하던 공산당과 거짓 종교는 소멸되는 것이다. 공산당이 붉은 색을 좋아하여 국기(國旗)도 붉은 색으로 표시하고 붉은 군대(亦軍), 붉은 별(赤星) 등 모든 호칭을 적색으로 부르는 것은 공산 혁명은 피를 흘려야 된다는 폭력의 당위성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다. 민주 진영에서 저속한 말로 공산당을 빨갱이라고 부르는 것은 20세기에 처음 생겨난 말이 아니요 성경은 요한을 통하여 공산당을 붉은 짐승이라고 기록하였다. 또한 음녀가 성도의 피를 마시고 취하였다고 한 것은 로마 카톨릭이 중세까지 반기를 드는 신자는 종교 재판에 회부하여 처형함으로써 억울한 피를 흘리게 하였다.
*천년성, 천년 세계(계 20장) 계시록의 기사를 육적으로, 직설적으로 해석하므로 숨겨진 비밀은 알지 못하고 장님 코끼리 구경하듯 신학자들이 여러 갈래로 논쟁을 하고 있다. 성경의 기록을 가감하지 않고 신앙한다는 정통 성경 무오론자(無誤論者)들은 예수가 강림할 때 순교자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고 표를 받지 않고 신앙을 지킨 자들이 첫 부활에 참예하여 공중 혼인 잔치에 올라갔다가 백마를 탄 예수를 선두로 성도들이 지상으로 내려가 사단을 무저항에 가두고 천년 세계, 지상 천국에서 예수와 더불어 왕노릇하다가 천년이 차면 사단이 석방되어 나와서 성 밖에 있는 백성, 곡과 마곡을 충동하여 성안에서 예수와 같이 영광을 누리는 성도를 멸망시키려고 포위할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소멸하고 성안에 있던 성도들은 하늘로 승천하여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영생 복락을 누린다는 신학설을 대부분 주장한다. 또한 계시록의 기사는 상징적으로 기록하였을 뿐이고 예수 강림시 공중에서 예수를 영접한 성도는 혼인 잔치를 치르고 지상에 내려오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영광을 누리고 땅의 천년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교파도 있다. 7장에서 14만 4천은 삼위일체 하나님 당신을 가리킨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20장에서 첫 부활에 참예하는 자, 둘째 사망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성도, 천년성에 들어간다는, 거룩한 천년성은 많은 사람이 사는 육적 성이 아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성전으로 표현하듯이 천년성, 거룩한 성은 하나님 당신을 가리킨 것이니 본문에서 성을 에워싼 무리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소멸한다고 기록하였는데 육적 재앙의 불이 아니다. 천년성 하나님은 12장에 기록한 여자이니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리는 이긴자를 출산한 영모님이다. 그가 마귀의 장막을 뚫고 피난처로 가지 못한 사실을 12장에서 설명하였다. 20장에서 천년성이 되신 영모가 성을 에워싼 악한 무리를 뚫고 나오지 못하고 죽은 것을 성경에서는 불이 내려와 성과 성을 포위한 무리를 멸하였다고 하였으니 승리자를 배출한 영모와 그를 따르던 신도는 없어지는 것을 말한 것이니 세칭 전도관의 시종(始終)을 말한 것이다. 계시록의 모든 기사는 한반도 이긴자와 관련된 사건들이니 지금까지 이스라엘 땅을 중심으로 중동 지역 또는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는 사실로 해석함으로써 짝이 맞지 않고 엉뚱하게 억지 해석을 하므로 허공을 치고 있다. 이긴자를 출산하기 전까지 영모님이 신도들의 목적지로 천년성에 살아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실상은 당신이 천년성인고로 당신 앞에 온 자는 천년성에 온 것이 된다. 성경에서 천년성은 완전한 하나님 나라가 못되는고로 마귀에게 점령되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봐서도 영생의 나라, 신천신지는 아니니 영모님이 셋째 울타리, 삼천성을 말씀하면서 신도들에게 그곳에 가라고 하였다.
* 새 예루살렘(계 21장) 예수교 신도들은 하늘에 새 예루살렘 도성을 흠모하며 그곳을 영원한 본향으로 믿으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호화찬란한 도성은 하나님의 지혜로 꾸며진 극치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한이 환상으로 본 하늘나라 도성이 과연 실존하는 성인가. 성의 크기가 1만 2천리 장광고(長廣高)가 똑같은 성의 모양과 12문과 12천사며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 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7장에서 이스라엘 12지파 이름이며 1만 2천과 맥이 같은 것은 7장에서 14만 4천이 육적 숫자가 아니고 12수, 완전수로 하나님의 본체를 가리킨 것이라고 전편에서 말하였듯이 새 예루살렘의 아름답고 영화로운 광경도 눈에 보이는, 사람이 들어가 사는 도성이 아니요 의인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무형의 마음 상태를 유형의 건축물로 표현한 것이다. 본문 기사를 전부 육적으로 해석하니 짝이 맞을 수가 없다. 성경상 예루살렘은 아브라함 당시 제사장 멜기세덱이 살렘의 왕으로 있을 때부터 부르는 지명이다. 그 이후 사사 시대까지 여부스로 부르다가 다윗이 유대 왕국을 세우면서 수도로 정하고 예루살렘으로 개칭하였다. 2세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후 성소를 여호와 하나님이 임재한 집으로 경모하면서 유대교는 장차 오시는 메시아는 예루살렘으로 강림하여 만민을 다스린다고 믿고 있다. 예수교가 하늘나라를 예루살렘으로 표현한 것은 유대교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니 유대교는 땅의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된다고 믿고 있으며 예수교는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 새로 생겼다고 주장하여 새 예루살렘으로 부르는 것이다. 성경에서 시온이라는 어휘가 예루살렘보다 몇 배나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예루살렘과 같은 뜻이니 아브라함 당시는 모리아 산으로 부르면서 아브라함이 제사드리는 산으로 예루살렘 시내 동쪽에 위치한 작은 언덕에 성전을 지은 이후 그곳은 성지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 있다. 이사야의 글(사 2장)에서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하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고 하였는데 유대교의 해석은 메시아가 시온에 오시면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으로 만국을 치리(治理)한다고 믿고 있으나 이것 역시 땅의 시온과 예루살렘이 아니고 하나님 당신이 시온이니 완성자가 거룩한 성이요 시온으로 자유율법과 말씀으로 철장을 삼아 만국을 다스리는 것이다. 땅의 예루살렘은 4천년 긴 세월 주인이 수도 없이 바뀌면서 많은 피를 흘리며 싸운 곳으로 지금도 유대교와 회교가 작은 도시를 동서로 분할하여 차지하고 있으면서 적대시하고 있으니 복지가 아니고 화지(禍地)가 되고 있다. 하늘에 있다는 상상적인 예루살렘도 요한의 글에서 언급하였을 뿐이요 예수교 신자가 한 사람이라도 새 예루살렘이 있는 것을 확인한 사람이 없으니 가상적인 것이다.
* 생명 나무 >> 본 문(계 22:1~2)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 해 설 21장에서 새 예루살렘 거룩한 성은 사람이 많이 거주하는 형상 있는 도성이 아니요 하나님의 본체이니 당신의 영화로운 마음의 상태를 세상 사람의 말로는 그 이상 아름답고 존귀하게 표현할 수가 없어서 열두 가지 보석과 진주로 성을 꾸몄다고 기술하였다. 또는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로 표현도 하였다. 22장의 생명 강, 생명 나무도 땅에 심은 나무가 아니요 땅으로 흐르는 강물이 아니다. 태초 에덴동산의 생명 나무도 땅에 심은 나무가 아니듯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흐른다는 생명수는 거룩한 하나님의 몸에서 흐르는 생명이니 도성인신(道成人身)하신 이긴자에게 임재하신 하나님의 신이 이슬의 은혜, 생명수가 넘쳐 흐르고 있으니 하나님의 이슬은 만민이 마시고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열두 가지 실과가 달마다 맺힌다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수(完全數)를 표시한 것으로 신령한 세계에서 사는 영화로운 하나님이 열두 가지 실과나 먹고 살지는 않는다. 하늘나라는 빛의 세계로서 밤과 낮이 반복되는 곳이 아니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므로 연월일시(年月日時)가 없다. 그런즉 임의로 먹어서 맛을 느끼는 열매가 아니니 본문에서 열두 가지 실과를 육적으로 해석하면 근본적으로 어긋나게 된다. 성경은 비유와 상징이다. 22장 마지막 말씀의 골자는 때가 가깝다고 하였고 내(예수)가 속히 오리라는 말이 거듭되었으니 예수를 신실하게 믿으며 하늘을 바라보면서 예수 오기를 고대하며 사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다. 2천년 가까운 긴 세월 허다한 사람들이 헛된 고생을 하면서 살다 죽었다. 다만 예수를 믿다가 죽어도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나 임종시에 태반이 의식을 잃으므로 기쁨으로 세상을 이별하는 자가 없으며 많은 사람이 공포에 눌리고, 죽는 순간까지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것을 체험한 필자는 50년 신앙 생활에서 25년 목회를 하면서 평상시 내세의 소망을 위하여 헌신 봉사하는 신자들도 죽을 때는 내 손을 잡고 "나를 살려주세요. 조금만 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하면서 애원하는 신자까지 목격하면서 깊이 깨달은 것이 있으니 내세 천국은 없는 것이라는 것을 나의 신앙 양심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요한이 환상 중에 천사를 통하여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하였으나 뜻을 알고 기록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심판으로 무한대로 쏟아지는 재앙은 지구가 불에 타서 녹아지고 그 가운데 모든 생명체가 소멸되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과연 이 세상은 시한폭탄을 장진한 화약고와 같은 것인가. 예수교의 주장대로 현세는 장망성(獎亡城)인가. 성경의 언약은 메시아가 오시면 현세에서, 지상에서 시온의 영광이 온 세상에 충만하다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증거하였으니 지구와 우주는 영존하면서 희락과 기쁨을 누리고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불사 영생의 노래 소리는 끝없이 이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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