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92) | ||||
![]() 우선 휘발유 가격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원유의 국제 가격이 빠르게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유사가 원유를 저렴하게 구입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불안한 국제 정세 탓에 원유 가격이 오르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작년 12월에 리터당 평균 341원이었던 원유 가격이 지난 5월에는 377원으로 10.6퍼센트가 올랐다. 적어도 그만큼의 원가 상승 요인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원유 가격 상승률과 휘발유 가격 상승률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에 재경부가 문제삼은 것도 그 부분이다. 실제로 지난 6개월 사이에 휘발유의 공장도 가격은 리터당 485원에서 606원으로 24.9퍼센트나 상승했다. 재경부가 정유사에게 원유 가격 상승을 핑계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비난을 한 것도 그런 사실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재경부의 지적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첫째, 재경부가 거론한 휘발유의 ‘원가’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원유를 정제하면 휘발유, 등유, 경유(디젤), 나프타, 중유, 윤활유, 아스팔트, LPG와 같은 ‘석유화학제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는 휘발유의 생산 원가만을 분리해서 알아내는 일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 쇠고기 중에서 등심이나 갈비의 ‘원가’를 알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일이다. 도축장에서 등심이나 갈비를 따로 구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휘발유만의 ‘이윤’도 계산이 불가능하고, 휘발유 가격만을 근거로 정유사가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주장은 무책임한 것이 된다. 정유사는 원유를 정제해서 생산되는 모든 제품으로부터 원가를 회수하고 적정 이윤을 얻어야만 하는 입장이다. 실제로 같은 기간 동안에 등유는 4.6퍼센트가 올랐고, 경유와 중유는 각각 10.8퍼센트와 9.8퍼센트가 올랐을 뿐이다. 둘째, 원유 가격이 올라가면 석유화학제품의 생산비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원유를 수송하고, 정제하는 과정에서도 중유와 같은 석유화학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휘발유의 경우에는 옥탄값을 조절하기 위해 MTBE와 같은 석유화학 가공제품을 20퍼센트나 첨가해야 한다. 결국 휘발유가 다른 제품보다 더 큰 원가 상승 압력을 받게 된다. 셋째, 세계화 시대의 석유화학제품은 국제 시장가격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 인상을 최대한 억제해주기를 원하지만 정유사의 입장이 그렇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정유사의 생산량과 국내 소비량은 물론이고 국제적인 수요까지 고려해서 정말 복잡한 방정식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개월 동안 휘발유의 국제 가격은 리터당 394원에서 518원으로 무려 31.5퍼센트가 올랐다. 경유와 중유는 각각 15.6퍼센트와 25.0퍼센트가 올랐다. 정유사가 작년에 2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남겼다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우선 순이익 자체만으로 폭리라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작년 우리 정유사의 총매출은 80조원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정유산업이 거대한 장치산업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결코 이윤이 많다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국민들의 고통을 고려해서 정유사가 이윤을 포기해주면 좋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는 분명하지도 않다. 정유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법으로 허용된 ‘복수폴 제도’를 거부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주유소의 간판에 상관없이 타 회사의 제품을 팔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쇠고기와 쌀에도 생산자의 이름을 요구하는 세상에 정유사만 자사의 상표를 포기하라는 주장은 정당한 것이 아니다. 소비자와 주유소와 정유사가 공동으로 휘발유와 경유 제품의 가격을 합의하자는 것도 시장 경제 원칙에는 어긋나는 것이다. 정유사가 사회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게 된 것은 물론 정유사의 탓이다. 그동안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원유 가격의 변동과 제품 가격의 연동이 합리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유산업이 70년대 우리 경제를 살려내는 핵심산업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늘날 정유산업에 대한 공로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유사가 사회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은 온전하게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이제라도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논란에서 가장 비합리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재경부다. 관세, 교통세, 주행세, 교육세,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온갖 명목으로 리터당 900원의 세금을 꼬박꼬박 챙기고 있는 것이 바로 재경부다. ‘연료 소비 합리화’를 내세워 경유와 LPG의 가격을 혼란스럽게 만든 것도 재경부였다. 과연 엄청난 세금으로 어느만큼의 ‘소비 억제’ 효과를 얻었는지를 밝혀야 하고, 비싼 유류 가격 때문에 발생한 ‘경기 억제’의 부작용은 얼마나 되는지도 밝혀야 한다. 1994년에 10년 동안만 부과하겠다던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분명한 해명도 필요하다. 비싼 세금 때문에 불법으로 만들어져서 유통되고 있는 유사(가짜) 휘발유를 방치해서 발생한 국민의 피해에 대해서도 사과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진지한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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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duckhwan@sogang.ac.kr | ||||
2007.06.18 ⓒScience Tim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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