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용서해주기를 애걸함[乞宥]



 

421

 

 


『목민심서』는 72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걸유(乞宥)’라는 조항입니다. 목민관으로서 백성과 나라를 위해 제대로 일했건만 어떤 경우 우연한 잘못으로 법망에 걸려 큰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경우 그 목민관에게 큰 혜택을 입은 백성들이 진심으로 그런 목민관을 위해 탄원서나 진정서를 제출하여 사정기관에서 전공(前功)을 인정해 용서해주거나 선처해달라는 내용이 다름 아닌 ‘걸유’입니다.

내용도 길지 않고 짤막한 분량이지만 다산의 깊은 뜻이 담겨 있고, 그의 세상을 관찰하고 사태를 파악하는 심도 깊은 통찰력을 알아볼 수 있는 조항이기도 합니다. 형식적인 법규에 위반하여 능력 있고 우수한 인재가 곤경에 처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백성들이 그런 목민관을 구제하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옛날부터의 좋은 풍속이라고 말한 다산은, 선량한 백성들이 힘을 모아 임금에게 호소하여 선처를 받도록 노력하는 일은 그것 자체가 훌륭한 일이라고 칭찬합니다.

“진정 백성이 목민관을 사랑하고 받드는 정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어, 호소하는 소리가 몹시 슬퍼 감동할 만하면 비록 그가 지은 죄가 깊고 무겁더라도 그냥 그 죄를 용서해 줌으로써 백성의 뜻을 따르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고는 거기 파생하는 문제점까지 세밀하게 설명합니다.

“만일 간사한 꾀로 백성을 움직여 임금을 속이는 경우 같은 것도 그 판별이 지극히 쉬우니 걱정할 필요도 없다”라고 말하여 요즘 동원된 탄원서나 진정서 등으로 사정기관을 속이는 따위야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극심한 당파싸움으로 호시탐탐 상대방을 파멸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강구하는 일이 많아 진실한 뜻과 양심적인 마음으로 ‘걸유’를 하는 경우에도 같은 당파로 몰아 악독한 처벌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탄원서나 진정서를 올리고 싶어도 그냥 둘 수밖에 없는 세상을 한탄했던 것이 다산의 입장이었습니다.

거짓 탄원서나 진정서가 판치는 요즘에는 어려운 일입니다만, 참 일꾼들이 형식적인 법규에 걸려 고통 받을 때에는 진실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용서받을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도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박석무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