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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교육정책

참을 수 없는 경쟁기피증(중앙일보)


얼마 전 미국 CNN 방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코스닥 상장 2년3개월 만인 올 3월 시가총액 1조원을 돌파한 온라인 사교육업체 메가스터디의 손주은(46) 사장이 나왔다. 4분30초짜리 방송에서 CNN은 "교육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중요한 비즈니스지만 한국처럼 큰 시장(Big Market)은 없다"며 "한국 학생들은 하루 18시간을 입시 공부에 매달린다"고 전했다. 이어 "메가스터디 온라인 강좌에 밤마다 150만 명의 학생이 몰려든다"며 "손 사장이 학생들의 공부 방법을 바꾸는 비즈니스에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손 사장은 방송에서 "강의는 내 삶의 에너지이고 가르치는 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사회탐구 스타 강사였던 그는 2000년 자본금 3억원으로 회사를 세웠다. 현재 그의 보유주식 가치는 2057억원, 코스닥 시장 개인 랭킹 5위다. 한국 언론들은 사교육을 등에 업고 떼돈을 번 손씨에 대해 보도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외국 언론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월 15일 그의 성공 스토리를 1개 면에 실었다. '한국의 인터넷 스타'라는 제목이었다. 지난해에는 비즈니스위크와 로이터통신도 다뤘다. 사교육을 비즈니스 영역으로 본 것이다.

손씨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부실한 공교육과 수시로 바뀌는 입시제도, 그리고 학부모의 교육열을 철저히 활용했다. 그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건 실력이다. 메가스터디 강사 500명은 '무한 경쟁' 원칙에 따라 평가받는다. 각자의 실력을 보여 주려고 인터넷에 30분 이상 되는 '맛보기 강좌'를 올려놓는다. 수강생이 외면하면 짐을 싸야 한다. 인기를 끌다가도 강의가 부실해지면 금방 수강생이 줄어든다. 수강생 머릿수가 실력의 잣대다. 피 말리는 경쟁이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 연봉 20억원대 스타 강사도 나온다.

이 얘기를 하는 건 교단의 현실이 안타까워서다. 교사들에겐 어디로 떠날 수도 없는 학생들이 배정된다. 교사의 실력과는 상관없다. 교사 평가를 하자면 '전인 교육'이니, '교육이 시장판이냐'는 등의 논리로 반대한다. 그러면서 62세까지 정년을 보장받는다.

물론 사교육과 공교육은 다르다. 학원 강사는 아이들만 가르치면 되지만 교사는 잡무 등 일이 많다. 하지만 학생들 잘 가르치는 게 교사의 목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탄탄한 실력으로 아이들을 감동시켜 보라.

공교육의 성공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대원학원을 세워 30년간 '아이비리그' 등 미국 명문대에 333명을 합격시킨 이원희 이사장. 그는 "교사 평가로 학생실력 향상과 인성지도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말한다. 담임 간, 학과 담당 교사 간 경쟁을 시켜 그 결과를 매년 공개한다는 것이다. 이 학교엔 '경쟁 바이러스'가 생겨났다.

올 3월 1학년을 대상으로 담임선택제를 도입한 서울 충암고 김창록 교장도 같은 말을 했다. 20개 반 담임들이 반 성적 순위에 신경 쓰며 학생지도에 더 열심이라고 한다. 그는 "학생들이 시험을 봐야 실력이 늘듯 교원평가는 교사들의 약"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내년 3월 교원평가를 하려고 지난해 말 국회에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전교조가 '교단의 독'이라며 반대하자 의원들은 법안 심사조차 안 했다. 일정상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돼야 시행이 가능해진다.

의원들도 학부모다. 자식을 학교에 맡긴 부모 마음으로 법안을 통과시켜라. 대선 정국에 표 계산이나 하며 전교조 눈치를 또 본다면 의원 자격도, 학부모 자격도 없다. 교사들의 '참을 수 없는 경쟁 기피증'을 언제까지 방치할 셈인가.

교사들도 생각해 보자. 학원강사처럼 큰돈은 못 벌지만 제자 키우는 보람을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있는가. 경쟁을 두려워하면 발전도 없고, 제자도 등을 돌리게 된다.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