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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영재교육

[시론] 사설학원식 교육 빨리 탈피해야...

“영재교육원에 영재가 없어요”
1877년부터 1956년까지 미국에서 살았던 터먼(Lewis Madison Terman)이라는 심리학자가 있다. 1916년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교육학)로 재직하면서 이전에 프랑스에서 개발된 비네-시몽 지능검사를 더 발전시켜 스탠퍼드-비네 검사의 안내서인 ‘지능의 측정(The Measurement of Intelligence)'이라는 책자를 발간했다.

터먼 교수가 세계적인 관심을 끈 것은 1921년부터 종합적이면서 장기적인 ‘우수 아동연구’를 시작한 일 때문이었다. IQ점수 140이 넘는 캘리포니아 주의 어린이 1천528명을 대상으로 의학적, 인류학적, 심리학적 조사를 실시한 후 흥미, 학업, 성취도, 독서, 게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조사가 진행됐는데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수한 아이들은 보통 아이들보다 건강하고 안정적”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쉽게 설명해 우수 아동 가운데 가장 성공한 어린이와 가장 실패한 어린이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것은 성격적인 요인으로 성공한 어린이의 경우 목표달성을 위한 지속력, 통합력, 자신감이 매우 강하게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터먼 교수의 연구결과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많은 영재들은 학업보다는 사회적인 능력 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남다른 리더십을 갖고 있다든지, 혹은 남다른 창의력을 갖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든지, 혹은 다른 아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강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든지 했을 때 그것을 ‘영재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지능이 높은 어린이들을 영재로 보는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 21세기 영재란 창의성, 사회성, 감성, 도덕성 등 전인적인 측면에서 자신을 둘러싼 집단(사회)적인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때 그 능력을 ‘영재성’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업 면에서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난 아이들을 영재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9일 MBC PD수첩에서 방영한 영재교육 실상은 매우 충격적이다. “영재교육원에 영재는 없어요. 다 (사설 입시학원에서) 선행하고 온 애들이지”라고 말하는 서울교대 영재교육원 재학생 어머니의 발언은 사회적인 충격파를 던져주고 있다.

영재교육이 변질되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과학고에서 신입생을 뽑을 때 영재교육원 출신자들에게 가산점을 부여하기 시작했으며, 과학영재로 뽑힌 학생들이 “의학도 과학이다”라는 주장과 함께 의대로 쏟아져 들어가고 있는 교육 풍토는 순수한 의미의 과학영재 육성정책을 당혹케 하고 흔들어대는 근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과도한 교육열에 휩싸여 있는 학부모들이 입방아에 오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학부모들만 탓할 일도 아니다. 어떻게 해서 영재교육원 입시전문학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영재교육원 입시예상문제들이 시중에 나돌게 됐으며, “영재교육원에 영재는 없다”는 말이 재학생 학부모에게서 서슴없이 나오는지 1차적인 책임은 교육당국과 영재교육원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초등학생 이하부터 대학원에 이르는 ‘전주기적 과학영재 특별관리 육성체계 구축’을 완료했다. 과학신동 프로그램(초등학생 이하)부터 초.중고생(과학영재교육원), 고교생(과학영재학교, 과학고, 국제 과학올림피아드), 대학생(대통령 과학장학생, 이공계 국가장학생), 대학원생(석박사 과정 연구장학생)으로 이어지는 전 교육과정에 걸친 영재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기술부는 ‘창의적 과학기술인재 양성’ 계획에 따라 올해 과학영재 3천962명을 배출할 계획. 지난해에 비해 5%가 늘어난 인원이다. 이들 과학영재들은 전국 25개 대학에 설치한 ‘과학영재교육원’에서 교육을 받은 초.중등학생들로 자동적으로 영재교육을 수행하는 상급학교 지원자격이 부여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 내용이다. 정부의 의도대로 어떤 방식으로 “20~30년간 이어지는 영재다운 영재교육”을 시행해 나갈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과학영재 교육은 미래 한국을 짊어질 인재양성을 위해 필수적인 사항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서는 성공 가능성을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영재교육의 커리큘럼 개선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강봉 편집위원  aacc409@hanmail.net


2007.01.10 ⓒScience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