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책/영재교육

세상 어디나 지름길은 있다

세상 어디나 지름길은 있다 (상)
신동호의 발견의 즐거움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 같은 사람을 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흔히 “세상 참 좁다”고 말을 한다. 이런 경우 우연한 일이겠지 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간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만일 60억 명의 세계인 가운데 어떤 한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내려면 중간에 몇 사람이 이메일을 중계해야 그 사람에게 전달될까?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이 필요할 것 같지만 정답은 6명이다.

세상은 매우 넓은 것 같지만 도처에 지름길이 존재한다. 2003년 컬럼비아 대학 수학자인 던컨 와츠 교수는 전세계 수만 명을 상대로 서로 아는 사이를 통해 전혀 모르는 몇 명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실험을 실시해 결과를 발표했는데 대부분 5-7명을 건너 메일이 전달됐다.

6명만 건너뛰면 누구하고나 연결된다는 이른바 ‘6단계 분리’ 이론은 1960년대에 하버드 대학 사회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 교수가 체계화했다. 1967년 밀그램 교수는 네브래스카 주의 오마하에 사는 사람을 임의로 추출해서 160통의 편지를 띄웠다. 그 편지를 최종적으로 받아야 할 사람은 보스톤에 사는 한 증권 브로커였다. 편지 내용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편지는 보스톤에 사는 증권 브로커에게 전달되어야 할 편지입니다. 이 증권 브로커의 이름을 참조해서, 귀하가 알고 계시는 분 중 가장 이 사람에 근접한 사람 한 분을 골라서 전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지는 보스톤의 그 증권 브로커를 향해 아는 사람에서 아는 사람으로 전달됐다. 160통의 편지 중 최종적으로 증권 브로커에게 전달된 편지는 42통이었다. 전달된 편지가 몇 사람을 거쳐서 도착했는지를 조사해 보니 평균 5.5명이었다. 그 뒤 밀그램은 아무리 넓고 복잡한 세상도 대체로 6단계를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일컬어서 ‘6단계 분리’라고 한다.

6단계 분리에서 힌트를 얻은 미국 코넬 대학의 스티븐 스트로가츠와 컬럼비아 대학의 던컨 와츠 두 수학자는 복잡한 네트워크가 어떻게 ‘좁은 세상’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모형을 만들어 1998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모형 실험 결과 세상에는 지름길이 있었다. 두 수학자는 전력 송전망과 생물의 신경망 그리고 23만5천명의 배우를 수록한 인터넷 정보은행 등 3개의 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몇 안 되는 지름길이 ‘좁은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를 ‘좁은 세상 효과’(small world effect)라고 한다.

지름길이란 어떤 조직이나 시스템에서 고착된 영역을 뛰어넘어 통신이 이루어지게 해주는 사람이나 부품을 말한다. 부서 간 계층 간 장벽을 넘어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게 해주는 사람이 대표적인 지름길이다.

어떤 조직이나 기업이든 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여 있으면 발전이 없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만 알 뿐 조금만 떨어져도 모르는 조직은 발전 가능성이 낮은 것이다. 그래서 집단은 다양한 외부의 세계와 연결된 사람들이 모일 때 가장 큰 힘을 낼 수 있다.

또한 관료적 조직에서는 지름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회사마다 건의함을 만든다. 의사 소통의 마비가 자칫하면 엄청난 파국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1986년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의 사고이다. 이 사고는 매우 낮은 온도에서 견디지 못하는 고리가 부서지면서 일어났다.

조사 결과 우주 왕복선 수리를 맡은 기술자들은 이 부품이 온도에 민감해 폭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런 우려를 정책 결정자에게 알릴 수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두 수학자는 만일 기술자와 미국 항공우주국 최고 관리들 사이에 지름길이 있었다면 이런 사고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동호 뉴스와이어 편집장
전자신문, 한겨레신문 기자를 거쳐 과학동아 편집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건축학과와 환경대학원을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나이트 사이언스 저널리즘 펠로우쉽을 수료했다. 현재 보도자료를 언론에 배포해주는 상업통신사인 뉴스와이어의 편집장 겸 이사직을 맡고 있다.
/신동호 뉴스와이어 편집장  


2007.01.29 ⓒScience 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