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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모음/다산 칼럼 모음

‘굿바이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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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헤밍웨이’


최근 신문보도에 의하면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있는 21개 도서관에서 대출 실적이 저조한 책들을 퇴출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여기에는 헨리 애덤스의 『교육론』을 비롯한 다수의 인문과학 서적들과 에밀리 다킨슨의 시집, 헤밍웨이의 소설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페어팩스 카운티의 21개 도서관을 관장하는 샘 클레이 회장은 “많은 책이 꽂혀있는 서가에서 한 권의 책만 읽힌다면 아까운 일”이라며 “사람들이 보지 않는 책은 가차 없이 골라내버리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 되었다.

헤밍웨이 작품, 사람들이 찾지 않아 도서관에서 퇴출시키다니

엄숙하고 딱딱한 인문과학 서적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헤밍웨이의 소설들까지 도서관에서 사라진다는 사실에 나는 조그마한 충격을 받았다. 헤밍웨이가 누구인가! 그의 소설들, 특히 전쟁소설들은 전쟁의 무의미함, 전쟁 속의 인간 행태를 큰 스케일로 그려낸 20세기의 고전이 아닌가. 그의 작품들이 도서관에서 퇴출 위기에 처한 반면, 그가 작품 활동을 했던 쿠바의 집필실, 그가 자주 다녔다는 카페는 연중 관광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쿠바는 헤밍웨이 때문에 먹고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헤밍웨이의 작품은 읽지 않으면서 헤밍웨이의 자취를 찾아 즐기는 현상에서 현대 문명사회의 한 단면을 본다.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독자들은 인문학 서적을 외면하고 자극적이고 현란한 제목을 달고 나오는 책을 더 선호하고 있다. 물론 재테크나 건강, 처세 등을 다룬 실용서가 가치 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동안 그 가치를 검증받은 고전들을 단지 찾는 사람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퇴출시켜야 하는가? 이렇게 퇴출된 책들은 도서관의 서가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너무나 많은 책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니까.

사실, 책이 너무 많은 것도 인문학 서적이 퇴출되는 한 원인이 될 것이다. 때로는 ‘책이 이렇게 많아도 될 것인가’ 라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더구나 양적인 성과를 기준으로 하는 현행 대학교수 업적평가 제도 때문에 교수들은 너나없이 저서들을 쏟아내고 있다. 나도 물론 그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신간을 비치하려면 인기 없는 고전들을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도서관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실학자 홍대용, “책이 너무 많아서 걱정”

책이란 많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옛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다. 걸출한 실학자인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은 어떤 사람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날의 학자는 책이 없어서 걱정이었고 오늘날 학자는 책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옛날에는 책이 없어도 영웅과 현자가 배출되었는데 지금은 책이 많아도 인재(人才)가 날로 줄어드니, 어찌 옛과 지금의 운명이 달라서일 뿐이겠습니까? 실로 책이 많은 것이 그 빌미가 되었던 것이지요.

책이 많은 것이 인재가 날로 줄어드는 빌미가 되었다는 홍대용의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홍대용이 살았던 18세기에 비하면 지금은 그 천배, 만배가 넘는 책들이 범람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현대판 분서갱유(焚書坑儒)’라는 엉뚱한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갱유’는 안 되겠지만 ‘분서’만이라도.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굿바이 신채호’, ‘굿바이 염상섭’하는 날이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지 않는 책은 가차 없이 골라내버리고 있다”는 천박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전철을 제발 우리는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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