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미기타/책 읽기

황농문의 "몰입"

2021. 11. 16 방랑객

 

고등학교 시절에는 도무지 풀리지 않는 어려운 수학문제는 메모지에 적어 책상머리맡에 붙여 두고 수시로 보며 생각을 했었다. 대부분의 문제는 하루 안에 풀렸지만 어떤 문제는 3일 정도가 걸려서 해결이 되기도 했었다. 더러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일주일에 겨우 한 문제를 푸는 때도 있었고, 많아야 서너 문제를 넘지 않았다.

 

내 수학 공부는 그것이 전부였다. 이런 공부 방식은 고3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이런 공부 방식에 대해 수학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소개를 하기도 했었다. 이런 방식의 수학 공부는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고 결국은 그 힘으로 인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몰입(flow)의 힘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황농문은 『몰입』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그때 내가 했던 모든 과정이 몰입의 전 단계쯤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려 50년도 더 지난 지금에 와서야 말이다.

저자도 이 책을 내기까지는 자기의 몰입은 그저 개인적인 것이라 여겼던 모양이다. 그러나 주변의 격려와 함께 몇몇 대학생들이 저자의 방식대로 몰입을 하고 그 경험이 놀라움을 알려오자 비로소 몰입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저 그렇구나 하고 흘려버리기에는 조금 아까운 책이다. 특히 교사들에게는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몰입은 그 이론의 창시자라 할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에 의하면 ‘삶을 훌륭하게 가꾸어 주는 것이 행복감이 아니라 깊이 빠져드는 몰입이라고 단언하며, 몰입에 뒤이어 오는 행복감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이어서 우리의 의식을 그만큼 고양시킨다’고 했다. 몰입에 의하여 일과 놀이가 하나로 어우어지는 것이 바람직하고 건강한 삶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몰입은 개인의 실력과 과제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실력이 가장 낮고 과제의 난이도 역시 가장 낮은 상태가 무관심으로 그 예가 TV시청 같은 것이다. 그저 무료한 시간 죽이기다.

반면에 과제 난이도도 높고 실력도 높은 경우에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깊이 빠져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어느 순간 몰입에 이르게 된다. 취미생활이 그에 속한다. 취미는 그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삶의 한 방편이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므로 그 일에 빠져들기가 그만큼 쉽다. 너무 빠져들다 보면 밥 먹는 것도 잊어버린다. 우리가 잘 아는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의 일상이 그랬다고 한다. 결국 몰입은 대상에 대한 집중도가 최고조로 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몰입은 결국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 후천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목표가 명확해야 하고 둘째, 일의 난이도가 적절하고 셋째, 결과의 피드백이 빨라야 한다고 했다.

과제의 난이도가 상상을 너무 높다면 어떻게 될까? 저자는 이 경우 몇날 며칠을 생각하고 또 생각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이 경우가 진정한 의미의 몰입일지도 모르겠다.

아인슈티인은 “나는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9번은 틀리고, 100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맞는 답을 얻어낸다”고 했다는 말은 음미할 만하다.

우리는 흔히 최선을 다 한다는 말을 한다. 최선을 다 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 한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 이는 결국 몰입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일에 깊이 빠진다는 말은 질적인 시간 개념이라기보다는 양적인 개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몰입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고 이를 누구나 따라할 수 있도록 단계별로 정리를 해 두었다. 문제는 몰입에 이르는 과정이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만 주의하면 된다. 마라톤은 오랜 시간 긴 인내가 필요하다. 자칫 페이스를 놓치기라도 하면 완주에 실패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마라톤은 최적의 페이스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몰입에 이르려면 바로 이 페이스를 찾는 일이 그 출발이 된다.

오래 생각에 집중하다보면 비몽사몽의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이를 ‘선잠’이라고 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걸작 소설 『꿈』에서 이를 ‘가수면’이라고 했다. 어떻든 잠들어 있을 때와 깨어있을 때의 경계 지점이다. 몰입은 이 상태에서 가장 활발히 작동된다고 한다. 이 상태에서는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문제들이 잠결에 언뜻 생각이 그 해결책이 나타나기도 한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한 문제에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다보면 늘 그 문제가 머릿속을 맴돌며 일상이 되었었다.

그러다가 문득 잠을 자다가 그 중간에 꿈처럼 멋진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문제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 생각이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머리맡에 메모지를 두고 자다가 그런 경우에 이르면 얼른 잠결에도 그 아이디어를 끄적거려 놓고 다시 잠을 잤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보면 무엇을 썼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꽤 많은 새로운 정보들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작성한 논문이 전국 논문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하게 했었다.

몰입은 명상이나 선을 하는 사람들이 집중하는 상태와 비슷하다. 참선을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삼매와 비슷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삼매란 순수한 집중을 통하여 마음이 고요해진 상태로 불교 수행의 이상적인 경지를 말한다. 몰입에 들어가려면 난이도가 높아 조금도 진전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절실한 감정이 있어야 한다. 이는 마치 불가에서 동안거나 하안거를 할 때 각 스님에게 주어지는 화두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스님들의 동안거나 하안거를 하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을 듯싶다. 물론 기독교에도 기간을 정해놓고 하는 기도회가 많은데 이 역시 몰입의 한 형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몰입은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일종의 수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몰입과 쾌감의 관계는 매우 정적이다. 집중도가 올라가면 쾌감이 증가한다. 말하자면 몰입을 하면 그 과정에서 도파민을 분출케 함으로써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의 다음 말이 특별히 와 닿는다.

“1분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1분 걸려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밖에 못 푼다. 60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보다 60배나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10시간 생각하는 사람은 600배나 난이도가 높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생각시간을 늘려갈수록 점점 더 높은 난이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남보다 수십 배 혹은 수백 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영재라 하고, 수천 배 혹은 수만 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천재라고 한다면 결국 천재와 보통 사람의 지적 능력 차이는 질보다는 양의 문제다. 이제는 그저 남는 게 시간인지라 일상 속에서 몰입을 다양한 방법으로 실천해 볼 좋은 기회가 분명해 보인다.

 

출처 

초등교육과정포럼 | 황농문의 『몰입』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