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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 오면

낙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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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6. 1. 11:37



 6월이 오면, 인생은 아름다워라!
                                               - 로버트 S. 브리지스

6월이 오면 나는 온종일

사랑하는 이와 향긋한 건초 속에 앉아

미풍 부는 하늘 높은 곳 흰 구름이 지은

햇빛 찬란한 궁전들을 바라보리라.

그녀는 노래하고, 난 그녀 위해 노래 만들고,

하루 종일 아름다운 시 읽는다네.

건초더미 우리 집에 남몰래 누워 있으면

아, 인생은 아름다워라 6월이 오면.



When June is come, then all the day,
I'll sit with my love in the scented hay,
And watch the sunshot palaces high
That the white clouds build in the breezy sky.
She singth, and I do make her a song,
And read sweet poems whole day long;
Unseen as we lie in our haybuilt home,
O, life is delight when June is come


* 로버트 S. 브리지스(Robert Seymour Bridges 1844-1940)는 영국의 시인, 수필가. 옥스퍼그 대학에서 약학을 공부하고 소아과 병원에서 근무했으나 1882년 부터 순순한 감정과 운율을 살린 시를 쓰는데 전념했다. 시집 <Shorter Poems>를 통해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었고 1913년 계관시인이 되었다.

* 마치 한 폭의 맑고 투명한 수채화같이 6월의 전원 풍경을 깔끔하게 묘사한 시다. 모든 감각적 이미지(시각적, 후각적, 청각적-white, sunshot, scented, sweet, breezy, song 등)을 총동원하여 청명한 하늘에 떠 있는 구름 궁전, 햇빛 쏟아지는 언덕 그리고 풋풋한 건초더미 속에 호젓하게 앉아 있는 연인들의 모습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다.

시적 기교를 피하고 단순한 언어를 사용하여 화자가 느끼는 삶의 환희를 솔직한 어조로 전달하고 있는 이 시는 1연에서는 풍경을 묘사하는 큰 그림을 그리다가, 마치 카메라가 점차 피사체를 좁혀가듯 2연에서는 화자와 연인을 클로즈업 한다. 시 전체를 통해 사용한 day/hay, high/sky, song/long, home/come의 거의 완벽한 각운(rhyme)은 화자가 사용하고 있는 자연의 질서와 삶의 환희에 대한 찬미의 목소리에 잘 맞아 떨어진다.

자연은 계절마다 아름답지만, 6월에 유독 더 눈부시다. 푸른 물이 뿜어나오는 진한 진초록 잎들, 흐드러지게 핀 꽃들, 자연이 가장 싱싱한 생명의 힘을 구가하는 때다. 사람의 삶에도 계절이 있다면, 나름대로 모든 계절이 의미 있지만 단연 청춘이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나릇나릇한 몸매와 통통튀는 용수철 같은 발걸음, 온몸으로 발산하는 생동감, 삶에 대한 도전과 자신감-모두 멋있지만, 청춘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마도 아직은 낭만을 잃지 않고 달콤한 사랑에 빠지는 나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시인들은 청춘의 달 6월을 사랑의 달로 불렀고, 레오 로빈이라는 작사가는 오래전 <1월 속의 6월(June in January)>이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부른 적도 있다.

‘사랑에 빠졌으니 1월 속의 6월이네! It's June in January because I'm in love!’

로버트 S. 브리지스는 1913년부터 1930년까지 17년 동안 영국 시단의 대표로, 왕실에서 임명하는 계관시인(the poet laureate)이었다. 그의 시들은 항상 기쁨과 희망, 삶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데, 그 희망의 원천은 앞에 인용한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부분 자연과 인간의 합일이 가져오는 신비주의적 순간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완벽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의 대표적인 연시 <깨어나라, 내 가슴이여, 사랑받기 위하여 깨어나라(Awake my heart, to be loved, awake)>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 ‘완벽한’ 사랑은 싱싱한 육체를 전제 조건으로 하는 청춘의 사랑이다.

‘청춘’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괴테가 생각난다. 대학 때 독문학을 부전공했는데도 지금은 다 잊어버려 독어에 거의 까막눈이 되었지만, 청춘을 갈망하는 파우스트의 처절한 외침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폭동의 심장을 가졌던 그날들을 내게 돌려달라. 환희가 너무 깊어 고통스러웠던 시절, 증오의 힘 그리고 사랑의 동요 - 아, 내게 젊음을 다시 돌여달라!”

그 ‘폭동의 심장’을 가지고 청춘을 다시 살라면 난 아마 파우스트처럼 선뜻 예스라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향기로운 초여름 6월이 오면, 아름다운 하늘, 꽃, 숲, 미풍을 느끼며 ‘아, 인생은 아름다워라.’하고 노래하는 마음만은 늘 간직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장영희 [이 아침 축복처럼 꽃비가]에서 <늘푸른나무/문화산책/2011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