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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자료/교회

교회내 라떼족 문제와 해결

예수,코리아  21.09.22 07:18

 

교회내 라떼족 문제와 해결
황인상 기자 | 기사입력 2021/09/21 [12:16]


▲ 자신의 과거 경험 등을 바탕으로 행동을 강요하고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이들을 향해 ‘라떼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한국에서 유행하는 문화나 신조어 등이 미주 한인 사회에도 빠르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라떼족’이 아닐까 싶다. 단어만 듣고 서는 커피를 좋아하는 애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의미는 전혀 다르다.

 

‘라떼족’은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의 행태에 관해 비꼬는 의미를 담은 신조어다. 여기에는 기성세대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기억 속 체험이나 경험을 근거로 젊은 세대들의 행동과 생각을 못마땅해 내뱉는 말에서 기인한다. 흔히들 기성세대들이 “나 때는 이러지 않았어…, 나 때는 그렇게 했는데”라고 말할 때 그 음이 커피 메뉴의 한 종류인 라떼와 같이 들린다고 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라떼족’이라고 부른다.

 

최근 라떼족은 직장 내 조직 문화를 위협하는 최대의 문제아(?)로 인식되며 조직 내 갈등 유발의 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올해 한국 직장인들이 들을 수 있는 최악의 별칭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조직 내 문화와 세대가 다른 구성원들 간의 융합 문제 측면으로 살펴보면 미주 한인교회 내에서도 ‘라떼족’에 관해 살펴볼 부분이 적지 않다. 게다가 이민 교회라는 특수성은 이를 더 부추기는 요소가 많은 것 같다.

 

오렌지 카운티에 자리한 한 한인교회에 출석 중인 A 형제는 최근 교회 행사 문제로 회의를 하는 도중 부쩍 심기가 불편했다. 행사에 필요한 인력과 예산을 논의하는 목사님이 “우리 때는 이런 거 그냥 자비로 했어. 교회 일에 누가 행사비를 받아?”라고 했다. 교회 내부 인력이 아닌 외부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 문제인데 저비용, 은혜로 해결하자는 주장에 기껏 준비한 예산 자료가 소용이 없게 됐다. 당시엔 다 그렇게 했다는 것이 근거지만 A 형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남의 일에는 형식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잣대를 대는 것도 ‘라떼족’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평소 교회 성도들에게 주일 예배를 잘 지킬 것을 잔소리하듯 강조해온 B 장로는 정작 본인은 연휴가 낀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일이 있었다. 요즘은 소셜 미디어가 발달해서 어디서 누가 뭐 하는지를 금방 알 수 있는 시대. ‘개인사’라는 이유로 주일예배를 빠졌지만, 평소에 그토록 주일예배 참석을 강조해온 그가 연휴가 낀 주말에 교회를 빠지고 여행을 즐기고 있는 B 장로의 사진은 과연 누구의 귀감을 살 수 있을까? 그가 청년들에게 주일예배 잔소리만 하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일일지 모른다.

 

▲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교과서가 될 수 없다. 세대간 경청과 설득, 존중이 필요하다.

▲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교과서가 될 수 없다. 세대간 경청과 설득, 존중이 필요하다.

 

흔히 지나치게 오버를 하는 행동도 ‘라떼족’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교회 내 특정인의 생일이나 행사를 위해 성도에게 무리한 요구를 강요하거나 행사 참여를 강제하는 행위도 그렇다. 30대 초반 A 성도는 C 권사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목사님 생일에 축하 인사를 강요하는 듯한 단체 톡을 받았다. 분명 축하해야 할 일이지만 이렇게 특정인으로부터 강요성 문자를 받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평소 교회 내 특정 행사나 목사님 생일과 같은 때에 무리하게 오버하는 C 권사를 보는 성도들의 심기는 불편하다. ‘라떼족’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인식 된다.

 

교회 내 라떼족이 심각한 이유는 이것도 곧 교회 조직과 화합에 영향을 미치고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된 사례는 어느 세대에게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일이지만, 그 행동을 특정 짓는 신조어가 생겼고 그 행동과 집단이 한 단어로 집중되면서 구성원들에게 낙인이 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가뜩이나 뒷말이 많은 교회 내에서 저 장로님 ‘라떼족’, 저 목사님 ‘라떼족’이라고 말이 많아진다면 그 조직은 결국 세대 간 신뢰를 잃고 와해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자신의 생계와 관련된 회사가 아닌 자발적 참여로 구성된 교회라면 기분이 상한 성도는 언제든 그 조직을 떠날 수 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우선 본인이 ‘라떼족’에 해당하는지 평소 활동과 언행에 대해 살펴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김정호 목사(후러싱제일교회)는 미국 한 기독 언론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30대 목사와 대화를 소개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자신 같은 사람을 뭐라고 하는지 묻고 “꼰대요?”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김 목사는 자신도 어느 때부터 “내가 나는 옛날에 이랬다저랬다”를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었다고 밝히며, 자신이 50대 라떼족이 되어 있더라는 글을 올렸다.

 

▲ 교회 내 ‘라떼족’은 조직의 화합과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현재의 기성세대도 그들이 청년일 때 들었던 그 말들을 자신도 모르게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이민 사회이기에 자신이 미국에 왔을 때 그 무용담을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참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때는 말이야”라고 말을 꺼내기에 앞서 과연 이 경험이, 이 무용담에 저 친구들에게 어떤 영향과 기분을 전달할지를 먼저 살펴봐야 하는 시대가 왔다. 이유는 세대가 변했고 세상이 변했으며 환경도 변했다. “내가 미국 올 때, 내가 믿음을 가질 때”와 지금 MZ 세대(1980~2000년 초 출생)들이 겪었고 맞이하는 환경은 천차만별이다. 내 경험이 오늘의 교과서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는 것이 ‘라떼족’ 탈출의 시작이다.

 

다음으로 내 일상과 언행이 일치하는지, 그것이 불일치한다면 결코 남에게 강요하거나 잔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남을 도우라고 청년들에게 독려하면서 정작 자신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인색하다면 그들이 어떻게 볼지 생각해보시라. 평소 삶이 언행 불일치에 가깝다면 남에게 강요할 필요가 없다. 최소한 ‘라떼족’이라는 비웃음은 듣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라떼족’에게서도 배울 부분은 많다. 위기나 문제 해결의 노하우가 필요할 때는 기성세대들의 지식과 경험 등은 분명 큰 도움이 된다. 이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배우고자 하는 분위기, 선배는 노하우를 통해 후배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분위기는 세대 화합과 교회 성장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서로서로를 인정하고 명령보다는 설득, 강요보다는 참여가 이뤄지는 분위기가 된다면 ‘라떼족’과 부드러운 라떼 한잔을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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