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4-07 19:30:00
이 설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now@donga.com
- 10년이 넘은 민선자치제에 대한 현장 공무원들의 불만에 한국지방행정연구원 금창호 박사는 “관선과 민선은 각각 공직의 안정성과 민주성을 대표한다”라며 “민선의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효익을 살리고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일어나는 단절감을 줄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론은 버킹검’
취직이 어려워지고 평생직장이 사라지면서 공무원은 최고 인기 직종으로 떠올랐다. 요즘 공무원 시험은 ‘고시’에 가깝다. 몇 달이고 고시학원이 밀집한 노량진과 집을 오가며 학업에 몰두해도 붙을까 말까다. 경쟁률은 매년 최고치를 갈아치운다. 옛날 9급, 7급 공무원 시험과 달라도 한참 다른 것이다.
자연히 인재가 늘었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SKY 대학 출신 7급, 9급 공무원이 적지 않다. 쉰에 가까운 9급 출신 6급 공무원들, 과연 그들은 이런 ‘끼’ 많은 신세대 팀원들과 불화가 없을까. 24년 경력 서울시 자치구 팀장의 말이다.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개성 있는 사람도 몰개성화됩니다. 가끔 신입 7급 직원들 가운데 이를 답답히 여기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러나 요즘 젊은이들은 금세 적응합니다. 시키는 일을 고분고분 잘하는 편이고요. 또 공무원 일이라는 게 경험에서 나오는 ‘노하우’를 무시할 수 없어 나이 많은 팀장들을 잘 따릅니다.”
부산시 자치구의 한 팀장은 새내기 공무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우수 인력이 공조직에 몰리면 국민은 이를 ‘인력 낭비’라며 공격하고, 우수 인재들은 공무원이 된 뒤 오히려 더 위축된다는 것.
실제 ‘안정성’에 끌려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나는 신입 직원도 많다고 한다. 서울시 4년차 7급 공무원 2명은 “평생 다닐 수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들어왔다. 그런데 생각보다 업무량도 많고, 신인사며 공조직 개혁에 사기도 저하되는 등 가끔 회의를 느낀다. 이런 이유로 시청을 떠나는 이도 많다”고 말했다.
‘책임전가’ ‘처리방치’ ‘적당주의’ ‘선례답습’. 우리네 행정풍토는 이렇게 읽힌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우리도 융통성 없는 조직구조가 답답하다”고 말한다. 경기도 한 시청 6급 공무원이 말하는 그들만의 스트레스는 이런 것이다.
“공무원의 업무는 법규대로 일을 처리하는 거예요. 법에 구속돼 융통성을 발휘하기 힘들지요. 그런데 민원인의 요구는 갈수록 다양해져요. 방법을 바꾸면 일처리가 훨씬 유연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일은 법대로 해야 하죠. 콱콱 막힌 벽. 바로 거기서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받게 돼요. 그 스트레스가 분출되지 못하면 패배의식으로 자리 잡는 것 같아요. 1급부터 9급까지 나뉜 복잡한 조직 구조에서 아래위로 눈치 봐야 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공무원 사회에 ‘결론은 버킹검’이라는 말이 있다. ‘결과는 늘 똑같다’는 의미로, 사건이 터지면 공무원 몇몇을 잘라버리고 덮으면 된다는 자조의 목소리다. ‘낀 세대’인 6급은 부하직원 혹은 직속 상사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결재자가 아닌 협조자의 위치이기에 직접 책임은 지지 않는다. 결과는 인사로 나타난다.
정치인 시다바리?
이명박 대통령의 ‘공무원 머슴론’에 대해 공무원 노조는 “상명하복의 절대적 계급체계, 승진과 보직의 권력을 두루 갖춘 고위직의 권위 앞에서 하위직의 창의적인 생각은 한낱 권력의 틀을 깨는 부담으로 작용될 뿐”이라고 반박했다. 노조는 “공직사회에 층층이 쌓인 계급의 병폐를 개선하려 하지 않은 채 공무원 개개인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라 꼬집기도 했다.
다음날,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홈페이지에는 여러 의견이 올라왔다.
‘허가, 신고 업무를 하는데 목에 깁스 안 한 공무원 어딨어. 그게 우리나라 공무원의 현실이야. 돈 주고 술 사주고 접대하면 되고, 안 하면 법대로 하라고 하고. 공무원이 누구 때문에 먹고 사는지 아직도 모르나.’(피바람)
‘세금으로 녹봉 받을 때, 그 돈 내려고 피 같은 돈 빨리는 시민도 있어요. 쉬는 날 없이 일하는 시민 많은 거 아시죠…그런 사람들 마음을 헤아리는 노조가 되면 좋겠네요. 세금 걷은 거 남으면 내년 예산 줄어들까봐 억지로 다 쓰려고 하지 말고요.’(아이디 시민)
홈페이지에 빗발치는 시민들의 비난에 한 공무원은 이런 글을 남겼다.
‘잘되면 정치인들이 잘해서 그런 것이고 잘못되면 모두 공무원 잘못인가?…결론적으로 이 나라의 공무원들은 단지 정치인들의 시다바리다. 때문에 공무원들에게 정책적 실패를 떠넘기지 않았으면 한다. 시도 때도 없이 바뀌는 교육정책, 부동산 정책으로 공무원들도 머리 아프기는 마찬가지다….’
감정 섞인 글도 많았지만 대다수 글의 핵심은 ‘내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이 안정적인 삶을 누리는데 왜 제대로 봉사하지 않느냐’는 메시지였다. 취재차 만난 한 공무원이 한 말이 떠오른다. 공무원 사회에서 한 발짝 떨어져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그였다.
“업무 시간에는 시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공무원도 월급을 받는 직장인입니다. 신인사제도와 성과 위주 평가에 무조건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변화의 바람을 긍정하는 공무원도 있습니다. 다만 공조직의 업무가 잘 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짝하던 공무원 조직 개혁이 흐지부지된 선례를 교과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신동아 2008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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