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8-04-07 19:30:00
- 2007년부터 서울시·울산시 등 여러 지방부처들은 불량 공무원을 퇴출하는 ‘현장시정 추진단’ 등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단행한 지난 2월의 발탁인사가 공격을 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5급 인사의 기준은 능력과 성과였다. 굵직한 사업에 25% 이상 기여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팀장, 과장이 평가해 43명이 승진했다. 이 가운데 24명이 6급이 된 지 10년이 안 된 직원이었다. 6년 5개월 만에 사무관을 단 직원도 나왔다.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려면 평균 12년(2007년 서울시 기준)이 걸린다. 오세훈 시장이 주장한 능력 위주의 ‘신인사 Fast Track’이 처음으로 가동된 것이다.
이 인사를 두고 서울시 인력개발과 마채숙 팀장은 “인사에 불만이 없을 순 없다. 이번 인사에선 평소 열심히 하는 분들이 승진했다고 생각한다. 서열을 모두 파괴한 게 아니라 20%는 고령자를 고려하는 식으로 적절히 안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공무원들의 의견은 다르다. 7급으로 입사해 지난해 6급으로 승진한 9년차 공무원의 말이다.
“시청은 작은 정부입니다. 건축, 노인, 복지, 세무 등 과에 따라 업무 성격이 천차만별이지요. 성과를 인사 기준으로 삼는다면 민원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민원 처리에 수치화할 수 있는 성과가 있을 리 없잖아요. 이번 승진 대상자 중 상당수가 실·국장이 추천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조활동을 하는 7급 공무원은 “공조직에 맞지 않은 인사제도는 전시행정일 뿐이다. 높은 연령의 6급 공무원 가운데 피로감에 지쳐 자치구로 가거나 연수를 희망하는 문의가 빗발친다”고 귀띔했다.
부산 B구청 6급 공무원 정현우(가명)씨. 29년차인 정씨는 5급 승진 때마다 가슴앓이를 했다. 과장 또는 실국장이 바뀔 때마다 ‘학맥’ 라인의 팀장 혹은 주무팀장들이 덩달아 옮겨왔던 것. 정씨의 얘기다.
“근무평정의 각 단계(수우미양가)는 다시 10단계로 나뉩니다. 10점 만점에 최소 평가 단위가 0.02점인 셈이지요. 아등바등 점수를 관리해도 한번 ‘우’를 받으면 승진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그런데 평가자가 원하는 사람을 승진시키기 위해 다른 직원의 평정을 깎는 경우가 있습니다. 승진 자리는 제한돼 있으니 순위권의 직원들을 뒤로 밀어내는 것이지요. 저 역시 그런 일을 겪었고요.”
5급으로 승진하려면 6급이 된 지 적어도 5년이 지나야 한다. 여기에 근무연수가 많을수록 경력점수가 올라간다. 그리고 1년에 두 차례씩 하는 최근 2년간 근무평정이 반영된다. 이 점수는 경쟁이 워낙 치열해 내리 ‘수’를 받아야 승진 기회를 가질 수 있다. 0.1점으로 승패가 갈리는 싸움이다.
이런 시스템은 승진을 목전에 둔 공무원만 평가관리에 ‘올인’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승진 대상자는 독서실에서 시험과목과 인사 가점을 주는 영어, 컴퓨터 자격증 ‘벼락치기’에 몰두했다. 반면 최소근무 연한을 채우지 못하거나 근무평정이 처지는 공무원은 아예 승진을 포기했다. 깐깐한데다 비합리적인 인사고과를 관리하느니 적당히 일하고 월급만 받아가겠다는 심산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전체 공무원의 5%만 열심히 일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서울시는 이런 악습을 없애기 위해 올해 인사·평가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꿨다. 경력 30%, 교육 20%, 평정 50%에서 경력 70%, 평정 30%로 배점을 달리한 것. 교육은 아예 이수제가 됐다. 행정학과 행정법 등에 대한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또 수시로 근무평정을 하고 이것을 모아 승진·퇴출에 반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내년부터 시행될 새로운 평가 시스템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히 맞선다. 서울시 6급 공무원의 얘기다.
“이번 평가 시스템 개혁은 개악(改惡)입니다. 교육(시험)은 숫자로 나타나는, 그나마 객관적인 잣대입니다. 그게 없어지면 평정이 절대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과장, 국장 등 상급자에게 더욱 더 충성해야 하는 시스템이지요.”
업무를 등한시하는 분위기는 바로잡을지 몰라도, 자칫 실적을 과대포장하거나 상사에게 잘 보이는 데 집중하는 비생산적인 방향으로 갈 수도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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