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코리아 21.05.06 03:24
스위스 공동신조(1675)의 번역과 간략한 해설
Canon 1 : 최고의 심판자(the Supreme Judge)이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라는 그의 말씀을 모세와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기록하도록 하시며 보전하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그것이 기록된 때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탄의 속임수나 사람의 속임수로 더럽혀지지 않게 하시려는 부성적인 보살핌(paternal care)으로 그것을 지켜보시며 소중히 간직 되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마땅히 교회는 그분의 특별한 은총과 선함을 지니고 있는 것이며, 세상 끝날까지(벧후 1:19), “확실한 예언의 말씀” 그리고 “성경”(딤후 3:15)은, 하늘과 땅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마 5:18)할 것을 믿는다.
제1조에 대한 간단한 해설:
제1조에서 3조까지는, 구약성경의 보존에 관한 카펠(Louis Cappel)의 도전에 대한 반응으로서 작성한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등 앞선 신조나 교리들이 그러하듯, 이 신조 또한 그 시대의 오류에 대한 반응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즉 엄밀한 정통주의의 신학과 프랑스의 소뮈르 학파 사이에는 세 가지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언어적 영감(Verval inspiration)에 있어서의 차이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카펠에 대해서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카펠은 저명한 위그노 가문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17세기 첫 성경학자들(Biblical scholars)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히브리 성경 본문의 역사에 중점을 두고서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문자적 영감(a literal inspiration)으로서의 정통 이론과는 다른 결론에 이르렀지요. 그는 히브리어의 발성 체계가 아담으로부터 기원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모세로부터도 아니고, 에스라나 대회당(the Great Synagogue) 으로부터 기원한 것도 아닐 뿐더러, 오히려 바벨론 탈무드(the Babylonian Talmud)가 완성된A·D 470년 경 후에 유대교 문법학자들에 의해서 완성한 것으로 유추되는 증거를 발견하고, 이를 실제로 입증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시각은 유대인의 동전, 페니키안(Phoenician) 및 포에닉(Punic) 기념비, 모압 비석(the Moabite stone)의 비문(1868년에 발견), 그리고 다른 셈족 언어로 된 비유들의 글귀에서 모음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카펠은 또한 마소라 본문(Codex Massora)의 문자적 진실성과 신성함에 대한 전통적인 시각이 확고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즉 현대 문서비평 혹은 본문비평의 여러 방법들과 추론들의 시작이 이미 카펠과 같은 17세기의 인물에게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원숙한 신학적 대지가 완성될 무렵부터 이미 마귀가 뿌린 불신의 싹이 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실 제1 스위스 신앙고백(Confessio Helvetica Prior)(1536)이 작성되기 전까지의 신조들을 보면, 신조의 시작이 하나님에 관한 것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2 바젤 신앙고백이라고도 불리는 제1 스위스 신앙고백의 작성보다 2년 앞서 작성된 바젤 신앙고백(The First Confession of Basel)(1534)을 보더라도 그 첫 장은 ‘하나님에 관하여(Concerning God), 그리고 ‘하나님의 본성(Of the Nature of God)에 관해 진술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1530년에 멜랑흐톤(Philip Melanchton), (1497-1560)에 의해 작성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에서도 ‘하나님’에 관해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될 뿐 성경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1 스위스 신앙고백은 바젤 신앙고백과 달리 ‘성경에 관하여’(Of Holy Scripture)서 진술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후로 취리히의 종교개혁자 츠빙글리의 후계자인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1575)가 작성한 제2 스위스 신앙고백(Confessio Helvitica Posterior, 1566) 또한 제1장에서 ‘성경이 참 하나님의 말씀’인 것에 관해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스위스 공동신조(1675)에 이르기까지, 성경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시작하는 것이 스위스의 신조들의 중요한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그런즉 스위스에서는 종교개혁의 시대 초기부터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된 성경에 대한 강조가 중요한 출발이었음을 파악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문자적 영감에 대해 카펠이 주장한 바와 같은 오류에 대한 변증을 함에 있어서, 스위스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최소한 제1 스위스 신앙고백(1536)의 작성에서부터-의 준비가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성경의 영감에 대한 반론과, 그를 바탕으로 한 비평적 관점은 오히려 더욱 확고하게 고착하기에 이른 실정입니다.
하지만 17세기의 개신교의 정통주의 신학인 칼뱅주의, 그리고 루터주의에서는 성경의 영감의 교리에 대해서 매우 민감하게 여겼습니다. 심지어 바젤(Basle)에서 39년 동안이나 히브리어 교수를 역임했으며, ‘랍비들의 주(Master)’라 불리던 벅스토프(Johannes Buxtorf, 1564-1629)조차도 히브리어 모음에 있어서의 신성한 영감을 옹호하기는 마찬가지였지요. 당시 개신교 진영에서 성경의 영감의 교리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황 무오설만큼이나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 반해 로마 가톨릭교회는 성경보다 지상의 교회의 신성한 권위에 더 많이 착념했었는데, 그러한 지상의 교회의 수장인 교황의 무오설을 주장하는 것은 지상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성한 권위의 근원이었던 것입니다. 칼뱅주의와 대부분의 개신교 진영에서는 바로 그러한 권위의 자리에 성경을 둔 것입니다.
Canon II: 그러나 특별히, 우리가 전해 받은 구약의 히브리어 원본(Hebrew original)은 오늘날까지도 유대 교회에서 전해 내려오는 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 3:2)는 말씀은, 그것의 자음뿐만이 아니라 그것의 모음들-모음점들(vowel points) 자체에서, 혹은 최소한 그 점의 효력에서도-에 있어서, 그 요소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그 단어들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그것은, 신약 성경의 원본과 함께 우리의 신앙과 실천의 유일하고 완전한 규칙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의 표준에 따른, 시금석(a Lydian stone)에 관해서는, 동·서양에 모든 남아있는 판본들(extant versions)에 적용되어야하며, 다른 것들에 있어서도 어디에서나 일치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읽는 성경은 원본을 가지고서 직접 번역한 본문이 아니라 이제까지 보존되어온 수많은 사본들(Manuscript)을 비교하고 분석하여 작성한 표준본문(Textus Receptus)을 기초로 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원본 자체는 보존되지 못하고 사멸되었을지라도 그것의 사본들이 오류 없이 원본의 내용을 보존하고 있음을 규명하여,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보는 성경 본문에도 오류가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본이라는 것은 원본의 보존을 위해서 필사한 것이지만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 원본이 사라져버렸으므로, 이후로는 사본들을 계속해서 필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본이 보존되지 못한 데에는 그것 자체를 우상화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원본을 보존하려는 과정에서조차 피할 수 없었던 한계적 상황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라 하겠습니다. 사본의 재료인 파피루스(Papyrus)나 양피지(Parchment)조차도 그 재질의 특성상 아주 오래 보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하물며 보존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고대의 형편에서 원본 성경이 보존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더구나 원본이 있었던 시대조차도 원본 성경을 광범위하게 접근하여 다룰 수는 없었으므로, 이 역시 필사하거나 혹은 구두로 전수하는 경우(Oral tradition)가 동시에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본문의 연구는 불가피하게 사본에 대한 연구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구약 사본들은 서기관들에 의해 필사되었고, 신약 사본들은 교부들과 수도사들에 의해 필사되어왔습니다. 그리고 사본의 필사 과정에서 잘못 읽기, 잘못 표기하기 등의 오류가 발생하기도 했는데, 구약 사본의 경우에는 모음이 개발되어 표기되기 전에 자음만으로 기록할 때에 특히 오류가 많았으며, 신약 사본의 경우에도 대문자 사본에서는 띄어쓰기가 없었기 때문에 잘못 읽거나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음이 당연할 것입니다. 구약 사본의 경우에도 사본이 안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들-보존의 문제나 필사 과정에서의 여러 오류의 가능성 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후 1세기의 랍비 아키바(Akiva ben Yosef, AD 15?-135)라는 인물이 당시에 흩어져 있던 사본들을 집대성하고 정리하여 표준적인 히브리어 본문을 작성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히브리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다양한 구약 주석의 방법들이 개발되었으며, 히브리어 성경의 본문 내용을 구분하기 위한 구절의 구분과 부호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주후 6-7세기경에 마소라 사본(Codex Massora)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히브리어는 원래 별도의 모음이 없이 단어를 이루는 글자 자체의 고유한 소리를 경우에 따라서 일일이 기억하여 발음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사건과 흩어진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의 시대를 거치면서 예루살렘에서조차 히브리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음으로써 히브리어 문장들의 발음법이 소실될 우려가 농후해졌으며, 마소라 학자들이 히브리어 발음법의 보존을 위해 새로이 모음을 고안하여 표기하게 되었는데 이를 가리켜 ‘마소라 모음’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마소라 학자들은 성경의 개인적인 필사과정에서의 오류를 방지하도록 치밀하게 규정한 표준적 필사 규정들을 제정하여, 그러한 기준에 미달하는 필사본은 폐기하는 엄격함을 고수했기 때문에 마소라 사본 이후부터 히브리어 성경은 급격한 정확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한 마소라 학자들의 성경 필사의 원칙들을 일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반드시 깨끗한 가죽 만을 사용한다.
2. 유대인이 그 가죽(parchments)을 준비해야 한다.
3. 반드시 검은색 잉크를 사용하는데 그 잉크는 정해진 특별한 방법대로 제조해야 한다.
4. 각 권에 있는 본문의 절과 단어와 글자의 개수를 세어 각 권의 끝 부분에 적어 놓음으로써 필사자들이 바르게 옮겨
적었는 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도록(이 방식을 처음 고안한 것은 초기 소페림(Sopherim)으로 추정된다) 한다.
5. 두 개의 글자가 서로 너무 가까이 쓰여 져서 붙어버렸으면 그 문서는 무효로 취급한다.
6. 단 한 글자가 추가되거나 누락되어도 그 문서 전체를 폐기되한다.
7. 각 절에서 어떤 철자가 몇 번 등장하는지를 계수한다.
8. 히브리어 알파벳의 각 철자가 들어가 있는 절들을 모두 계수한다.
9. 본문은 정확히 들어맞도록 계획된 단(perfect columns) 위에 기록한다.
따라서 어떤 단어가 누락되면 즉각적으로 표시가 나는 것이다.
10. 각 단(column)은 48줄 이상 60줄 이하여야 한다.
두루마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의 수가 동일해야 하며 각 단은 정확히 30자(letter) 넓이여야 한다.
11. 모세의 다섯 번째 책이 끝나는 부분은 정확하게 줄이 맞아야 한다.
12. 각 페이지의 중간에 위치해야 할 단어가 어떤 것인지를 밝혀 놓는다.
따라서 한 단어나 철자, 혹은 절 전체가 누락되면 즉시 알아챌 수 있도록 한다. 아울러서 각 권의 중간 단어도 밝혀 놓는다.
13. 중앙에 오는 단과 단어와 글자가 원본과 맞아야 한다.
14. 필사는 절대로 기억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서기관은 필사하는 모든 단어를 큰 소리로 “말하면서” 기록해야 한다.
15. 진위가 확인된 필사본만이 사용될 수 있다.
16. 본문에서 여호와(Jehovah)라는 단어가 등장할 때마다 그 단어를 기록하기 전에는 펜을 물에 씻고 온 몸을 씻어야
한다. 하나님(God)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경외하는 마음으로 펜을 물에 씻어야 한다.
17. 펜의 사용, 글자의 모양, 글자나 단어나 문단 사이의 간격 등에 관해서도 엄격한 규정한다.
18. 완성된 필사본은 30일 이내에 검증 작업을 해야 한다.
만약 세 페이지에서 고칠 것이 나오면 그 문서는 전체를 다시 작업해야 한다.
19.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필사본은 곧장 파기한다.
이러한 마소라 학자들의 필사에 대한 규정들과 여러 율법학자들의 열심은, 우리들이 자칫 홀대할 수 있는 유대인들의 성경의 보존에 있어서의 열심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심지어 롬 3:2절에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나음에 관해 언급하기를, “범사에 많으나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고 했으니,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과 같은 신적 권위에 위임된 자들 외에 함부로 비판할 수 없을 정도의 열심과 유익을 끼친 자들인 것입니다.
한편, 현존하는 히브리어 사본 중에서 잘 보존된 가장 오래된 사본은 ‘사해 사본’(Dead Sea Scrolls)입니다. 쿰란 사본(Codex Qumran)이라고도 부르는 사해 사본은, 1947년 사해 근처의 쿰란에 있는 여러 동굴에서 양치는 목동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습니다. 사해 사본은 주전 2-1세기경 쿰란의 종단에 속한 유대인들이 은거하면서 당시의 성경을 필사한 것들인데, 이를 마소라 사본과 대조해 본 결과 내용에 있어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이는 곧 마소라 사본의 신뢰성을 어느 정도로 확인시켜준 셈인데, 소뮈르 학파의 루이스 카펠의 마소라 사본에 대한 진실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보는 주장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음이 사해 사본에 의해 입증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해 받은 구약의 히브리어 원본(Hebrew original)은 오늘날까지도 유대 교회에서 전해 내려오는 대로 유지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롬 3:2)는 말씀은, 그것의 자음뿐만이 아니라 그것의 모음들-모음점들(vowel points) 자체에서, 혹은 최소한 그 점의 효력에서도-에 있어서, 그 요소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그 단어들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한 스위스 공동신조의 제2조의 문구야말로, 그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 선언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본문, 특히 사복음서에서 예수께서는 수시로 성경을 읽으시거나 인용하시어 가르치시는 내용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특히나 회당에서 공적으로 성경의 특정 본문을 낭독하고 그에 대해 설명하시는 경우들을 자주 볼 수가 있는데, 그러한 본문들 가운데서 신약시대에 이미 구약성경의 공인된 본문이 있었던 것을 유추할 수 있으며, 특히 단어와 문장의 발음에 있어 모음으로 표기할 수 있는 표준적인 발음법이 정립되어 있었음을 암시한다 하겠습니다. 이는 사도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지요.
계속해서 제2조에서는 “따라서 그것은, 신약 성경의 원본과 함께 우리의 신앙과 실천의 유일하고 완전한 규칙을 이룬다.”고 고백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마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 2항에서 구약정경과 신약정경의 목록을 나열한 뒤에, “이 모든 책은 신앙과 생활의 규칙으로서 있도록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한 것과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다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정경의 목록을 확정하고 그것이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과 달리, 스위스 공동신조는 그에 더하여 구약과 신약 본문의 모음체계의 영감에 대한 도전에 반응하여 모음체계의 영감 또한 규정하고 있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들의 시대에 성경은 사회와 문화, 그리고 생활과는 근본적으로 분리된 가운데 있습니다. 극단적인 원리주의나 근본주의적인 교파를 제외하고, 정통적인 기독교 교파들 가운데서 성경이 신앙뿐 아니라 그 실천, 즉 생활에 연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스위스 공동신조에서 고백하는 “우리의 신앙과 실천의 유일하고 완전한 규칙을 이룬다.”는 문구를 절실히 실감하기가 여간해서는 어려운 것이지요.
그런데 그처럼 우리의 신앙과 실천의 유일하고 완전한 규칙을 찾아볼 수 없음으로 말미암는 폐해는 우리의 신앙과 실천에 있어서 뿐 아니라 신학, 그 가운데서도 소위 성경신학의 영역에서 아주 치밀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소뮈르 학파의 루이스 소펠과 같은 인물들이 정경에 근거하지 않고 여러 사본들을 바탕으로 오히려 정경을 비판하는 관점 가운데서 찾아볼 수가 있는데, 이에 반대하는 맥락으로 제2조에서는 끝부분에서 “그것의 표준에 따른, 시금석에 관해서는, 동·서양에 모든 남아있는 판본들(extant versions)에 적용되어야하며, 다른 것들에 있어서도 어디에서나 일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정경 이외의 사본들, 예컨대 마소라 사본이나 여러 공인된 사본들 이외의 또 다른 사본들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미 검증된 정경의 본문을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뮈르 학파의 활동 이후에도 계몽주의 시대를 통해 여러 비평적 접근이 성경 본문에 대해서 이뤄졌고, 그러한 접근법은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현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도마 복음(Nag Hammadi Library)이야말로 사복음서보다도 더욱 중요한 복음서라고 하는 주장을 하기에까지 이른 실정이지요. 도마 복음은 1945년에 이집트의 나그함마디라는 곳에서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된 콥트어로 된 사본으로서, 신약 성경 27권에 포함되지 않는 위경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후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신약 성경과 구약 성경의 정경의 목록을 확정할 때에 정경에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기존 사복음서의 내용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상당부분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즉 “그것의 표준에 따른, 시금석에 관해서는, 동·서양에 모든 남아있는 판본들(extant versions)에 적용되어야하며, 다른 것들에 있어서도 어디에서나 일치해야 한다.”고 한 제2조의 문구에 해당하는 검증을 통해 정경에 포함할 수 없다고 판명된 위경(Pseudographia)일 뿐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니고데모복음, 바돌로메 복음, 베드로 복음, 마리아 복음, 야고보 원복음, 빌립 복음, 요셉 복음, 맛디아 복음, 위마태 복음, 나사렛인 복음, 히브리인 복음, 애굽인 복음, 바울 행전, 요한 행전, 안드레 행전, 도마 행전, 베드로 행전, 바나바 행전, 빌립 행전, 빌라도 행전, 야고보 행전, 다대오 행전, 사도 서신, 고린도3서, 라오디게아서, 그리스도와 압갈 서신, 바나바서신, 바울과 세네카 서신, 베드로 묵시, 바울 묵시, 야고보 묵시, 도마 묵시, 스데반 계시록 등 수많은 사본들을 정경에 포함시키지 않을 때에, 기존의 검증된 정경들과 공인된 사본들의 대조를 통해 제외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대의 신학과 그를 통해 실천되는 신앙에 있어서도, 성경의 정경을 시금석으로 하는 일치된 신학과 신앙이 여전히 요구되는 것이지요.
Canon III: 그러므로 우리는 히브리어 원본(the Hebrew Original)이 보여주는 본문(the text)이 인간의 의지만으로 확정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의 견해를 인정할 수 없으며, 그들이 히브리어 독법을 모두 개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칠십인역(the LXX)과 또 다른 헬라어 판본들, 사마리아 오경(the Samaritan Pentateuch), 갈데아 탈굼(the Chaldaic Targums)에 의해서, 혹은 여타의 다른 출처들에 의해서도 개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을 타당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그들은 심지어 그들이 다양한 방식 가운데서 변질되었다고 주장하는 히브리어 원문 자체의 다양한 독법으로부터 그들 자신의 합리적인 능력이 가리키는 수정들을 따르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들은 마침내 현재의 히브리어 판형 외에도, 우리의 히브리어 본문과는 다른 히브리어 원문과 또 다른 고대 해석자들의 판본이 있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이러한 판본들은 또한 고대 히브리어 원본을 각기 다르게 나타내보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과 그것의 신성한 권위(sacred authority)의 기초를 극심한 위험으로 몰고 갈 뿐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신학에 있어서는 교리나 교리문답, 혹은 교의학이나 조직신학과 같은 신학 학문보다는 소위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이라 불리는 신학 학문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성경을 교리적인 접근에 의해 다루기보다는 구속계시의 점진적인 발전(Progressive revelation)을 연구하는 방법에 의해 다루는 것이 보편화 된 것입니다. 문서설과 같은 비평주의의 방법이 아니라 하더라도, 구속사(Heilsgeschichte, Salvation history)를 핵심으로 하는 점진적인 구속계시의 발전을 연구하는 것으로서 성경 본문을 분석하는 것이 신학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신학을 별도의 신학 방법으로 강조하기 시작한 인물은 요한 필립 가블러(Johann Philipp Gabler)인데, 그의 성경신학의 특징은 바로 교의학과 성경신학의 예리한 구별에 있었습니다. 그러한 가블러의 성경신학은, 특정한 성경 본문의 저자가 그 본문을 대할 때에 자기 자신의 믿음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조망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므로 이후로 특정 성경 본문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문맥을 파악해야만 하는 것이 보편적 기준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화란 태생의 프린스턴 신학교 교수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Johannes Vos, 1862-1949)에 이르러 확연하게 발전을 이뤘습니다. 그는 당시 독일에서 시작된 고등비평(higher criticism)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바, 본문의 역사적 기원, 즉 자료, 사건, 날짜, 인물, 장소, 사물, 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는 방법을 상당부분 개혁신학 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일련의 신학적 변화의 배경이, 사실은 소뮈르 신학의 루이스 소펠이 보여준 일련의 비평적 관점에까지 소급이 되는 것이지요.
"본문에 대한 인간 저자의 배경에 집중, 소펠의 관점"
그런데 이러한 양상에 있어서 그 기초를 제공하는 루이스 소펠의 성경 본문의 신뢰성에 근거하는 일련의 비평적 관점에 대해, 스위스 공동신조 제3조에서는 “우리는 히브리어 원본(the Hebrew Original)이 보여주는 본문(the text)이 인간의 의지만으로 확정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의 견해를 인정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본문에 대한 인간 저자의 배경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소펠의 관점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앞서 이 신조의 제1조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 1:16)이라는 그의 말씀을 모세와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기록하도록 하시며 보전하도록 하셨을 뿐 아니라, 그것이 기록된 때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탄의 속임수나 사람의 속임수로 더럽혀지지 않게 하시려는 부성적인 보살핌(paternal care)으로 그것을 지켜보시며 소중히 간직되도록 하신다.”고 고백하는 바와 같이, 성경의 자음뿐만이 아니라 모음, 그리고 그 보존에 이르기까지 부성적으로 보살피신다는 것이지요.
사실 성경 본문의 무흠함에 대한 부정, 특히 마소라 사본의 모음체계에 대한 부정은 루이스 카펠만이 아니라 벨라르민(Robert Bellarmine, 1542-1621)과 같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신학자들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즉 마소라 사본에 있어서 중요한 난외주들이 빈번하게 오류로 표기되어 있어서 광범위한 수정이 불가피하며, 특히 그 사본들 가운데에도 서기관들의 광범위한 오류들이 발견되기 때문에 그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오히려 라틴어 역본인 불가타(Vulgata) 성경이 더욱 오래되었으며 그 권위가 인정된다고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로마 가톨릭교회가 마소라 사본이 아니라 불가타 역본을 더욱 권위있는 판본으로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루이스 카펠은 바벨론 탈무드를 작성한 사람들에 의해 작성된 문법체계가 마소라 사본의 모음 표기법보다 우선하며 권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유대인의 동전, 페니키안(Phoenician) 및 포에닉(Punic) 기념비, 모압 비석(the Moabite stone)의 비문(1868년에 발견), 그리고 다른 셈족 언어로 된 비유들의 글귀에서 모음이 없는 것 등을 든 것입니다. 그런즉 카펠의 그러한 주장은, 성경 본문 자체가 아니라 성경 주변에 해당하는 여러 간접적인 자료들로서 오히려 마소라 사본의 본문을 비평하는 방법인 것이지요. 실제로 카펠을 비롯한 소뮈르 학파의 사람들은 “히브리어 독법을 모두 개정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칠십인역(the LXX)과 또 다른 헬라어 판본들, 사마리아 오경(the Samaritan Pentateuch), 갈데아 탈굼(the Chaldaic Targums)에 의해서, 혹은 여타의 다른 출처들에 의해서도 개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제3조에서 분명하게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음체계의 영감, 선행하여 전수되고 보존된 발음체계 전제"
유니온 신학교의 로버트 레담(Robert Letham, 1947)- 교수는『아만두스 폴라누스: 소외된 신학자』(Amaddus Polanus): A Neglected Theologian, Sixteenth Century Journal vol. 21. no. 3 (1990)라는 글을 통해, 폴라누스가 1609년에 『기독교 신학 개요』(Syntagma theologiae christianae)라는 책에서 모음이 모세와 선지자들에 대한 원래의 계시에 속한다고 주장했다고 언급했으며, 또한 벅스도르프(Johannes Buxdorf, 1564-1629)도 1620년에 『티베리우스 혹은 마소라 사본의 주석』(Tiberias sive commentarius Masorethieus)이라는 책을 써서 마소라 사본의 모음 부호들도 영감된 것을 주장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러한 모음체계의 영감에 대한 견해에는, 후대에 성립된 모음체계가 결코 자의적인 체계가 아니라 이미 선행하여 전수되고 보존된 성경 본문의 발음체계가 있었음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즉 일부 구두로 전수되어 왔던 발음체계를 표기하는 방법으로서 모음표기체계가 나중에 도입되었을 뿐인 것이지요. 일반적으로 바벨론 포수기 등을 거치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문화 가운데서 성경의 히브리어 발음법이 소실된 것으로 설명하지만, 그러한 형편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전수된 발음법을 더 이상 소실되지 않도록 하고자 모음체계를 나중에 도입하여 전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카펠과 소뮈르 학파가 제기하는 마소라 사본의 오류와 부패 가능성에 대한 주장은, 당시에 이미 여러 개혁자들에 의해 논박되었으며, 스위스 공동신조 제1~3조에서 공동으로 반박하는 고백을 채택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제3조에서는 “그들은 마침내 현재의 히브리어 판형 외에도, 우리의 히브리어 본문과는 다른 히브리어 원문과 또 다른 고대 해석자들의 판본이 있다고 단언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판본들은……우리의 신앙과 그것의 신성한 권위(sacred authority)의 기초를 극심한 위험으로 몰고 갈 뿐이다.”라고 했는데, 이후로 계몽주의의 대두와 문서설과 같은 비평주의의 방법의 번성으로 말미암아 제3조의 그러한 염려는 광범위한 현실이 되었는데, 개혁신학에 있어서도 인간 저자 및 시대와 문화, 그리고 역사에 대한 탐구에 중점을 두는 일부 성경신학의 방법들로 내재해 있는 실정입니다.
"확고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서 본문을 대해야"
민 23:12절에서 발람이라는 점치는 자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라고 발락 왕에게 말했는데, 이후로 19절에서 그는 또한 이르기를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고 말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사 40:6-8절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기록하기를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고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하심에 대해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라고 대답하는 것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고 말씀하심을 기록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거짓되고 유한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자체는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불변하심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온전할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즉 성경 자체가 성경의 모든 말씀들에 대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보존하시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말씀들의 전반적인 맥락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하신 바를 보존하시고 이루시는 의미로 히브리어 자음뿐 아니라 히브리어 모음에 있어서도 영감하시며, 또한 보존하시는 것을 스위스 공동신조 제1-3조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성경을 볼 때에 얼핏 그 본문을 기록한 인간 저자들의 배경과 의도하는 바를 파악함을 통해 비로소 그 의미와 뜻을 알 수 있다고 하는 관점보다, 오히려 그러한 인간 저자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기록하도록 하시는 분이 누구신지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서 본문을 대해야 할 것입니다. 즉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1장 8항에서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국어였던)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기록될 때에 여러 나라에 가장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졌었던)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영감하셨고, 또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섭리로 모든 시대를 통해 순수하게 보존되었으며, 그 때문에 [신적인]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단순히 율법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마 5:17절에서 언급한바 “율법이나 선지자”라는 문구에서 알 수 있듯이 율법서와 선지서, 즉 구약성경 전체를, 그리고 더욱 신약성경까지 포함하는 성경 전체를 지칭합니다)의 일점[ἕν] 일획[ἰῶτα]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장대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