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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직업교육

재벌 창업자들의 5대 성공 요인

인터뷰 주제, 즉 3~4세들이 창업 1세대에서 배울 점에 대해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 1세대 창업자들은 어떤 평가를 받았나?

 

“몇년전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한국 창업자 정신’을 이렇게 분석한 적이 있다.

한국 창업자에게는 5가지 정신이 있다. 첫째, 위험을 안고 창업에 뛰어드는 모험 정신을 갖고 있다. 둘째,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셋째, 나도 할 수 있다는 ‘can-do’ 정신을 갖고 있다. 넷째, 위에서 결정해 아래로 지시하면 신속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톱-다운(top-down)’ 일처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다섯째, 앞서 가는 기업을 따라잡으려는(catch-up) 정신을 갖고 있다. 한국의 창업자들은 이 다섯가지 정신을 갖고 기업들을 큰 그룹으로 성장시켰고 한국 경제의 기틀을 만들었다.”

 

― 1세대 창업자들이 나오게 된 시대적 배경은?

 

“해방 전후 일본의 적산기업들을 불하 받고 6·25 이후 전쟁 복구를 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많은 기업들 가운데 살아남은 기업들이 재벌이 됐다. 개발도상국 시대에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잘 살아보자’를 모토로 내걸고, 한편으로는 기업인들을 몰아치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인들이 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줬다. 거대 기업이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정부가 시스템을 만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정경유착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이 이제는 60~8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3~4세들이 이 기업들을 경영하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직후 환희에 싸여 서울역 앞을 행진중인 서울 시민들./국가기록원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 명동 거리(위)를 걷고 있는 피란민과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소총으로 무장하고 남하하는 북한 인민군./조선일보 DB

― 창업자들에게서 배워야할 점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보자. 30여년간의 재벌가 연구 경험에 근거해 판단해 볼 때

    3~4세들이 본받아야 할 창업자를 꼽는다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다.”

4명의 창업자에 대해 한사람 한사람씩 차례로 물어보기로 했다.

 

개발도상기에 한국 산업의 틀을 만든 대기업 창업자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자./조선일보 DB

창업자 교훈 ① 정주영 : 상상을 초월하는 창의력

 

― 정주영 회장에게서는 어떤 점을 배울만한가?

 

“정주영 회장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도전 정신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보다도 그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창의적 기업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 예를 들면?

 

“정 회장이 소양강 댐을 건설할 때 일본의 세계적인 댐 기술자 구보다가 일본의 철근과 콘크리트를 팔아먹기 위해 중력댐(콘크리트댐)을 짓자고 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강원도에 있는 흙, 자갈, 모래를 사용한 사력댐을 짓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경비가 30% 정도 절감된다고 했다.

당시 한국 경제학의 태두라고 불리던 태완선 경제부총리는 ‘사력댐이 성공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다녔다. 그런데 정주영 회장은 이것을 성공시켰다.

서해안 서산 간척지를 만들 때 폐선으로 물막이 공사를 해 성공시킨 정주영 공법은 당시 전세계 건설업계에서 생각도 못하던 것이었다. 아무도 상상해 본 적도, 시도해 본 적도 없던 것을 성공시켰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84년 서산 간척사업 현장에서 공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조선일보 DB

― 정 회장을 직접 만나봤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나?

 

“어떤 어려운 이야기도 간단하고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예를 들어 1992년 대통령 선거 후보에 나섰을 때에는 ‘반값 아파트’라는 공약을 내놨는데, 누구나 알기 쉬운 간단명료한 표현 아닌가? 절대 어려운 용어를 안쓴다. 정 회장은 이렇게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 DNA 가장 잘 이어받은 첫째 아들

 

― 정주영 회장은 어떻게 이런 능력을 갖게 됐을까?

 

“타고 났다고 봐야 한다; 100년에 한번 날까 말까한 사람이다. 본인은 격물치지(致知在格物) 정신으로 열심히 사업 연구를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하지만, 그건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정 회장의 본능적인 감각은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고 본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할아버지의 이런 본능적인 감각을 물려 받았을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정주영 회장의 아들 8명 가운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이런 감각 DNA를 가장 많이 물려받았다고 본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평소에 말을 할 때 주어와 술어가 잘 맞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현대차 그룹을 키운 능력을 보라. 아버지의 사업 감각을 물려받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말은 정주영 회장 비서실에서 오래 근무했던 사람이 나에게 했다.

 

현대그룹 2세들 간에 벌어진 ‘왕자의 난’(그룹 경영권 다툼) 때 정 명예회장이 자동차를 맡으면 망한다고 세간에서 많이 이야기 했으나 자동차그룹이 이렇게 큰 기업이 됐지 않은가? 아버지의 본능적 사업 감각을 물려받은 것이다.”

(필자는 정몽구 회장의 표현력과 관련된 체험이 있다. 지난 2006년 10월 미국 조지아주 기아차 공장 기공식에서 정몽구 회장은 기자들의 첫 질문에 미리 생각한 서너 문장을 이야기 했다. 단어와 문장, 논리 구조가 매우 정확했으며, 짧은 몇마디에 필요한 핵심 내용을 모두 담아 추가 질문이 필요 없었다. 답변을 사전에 준비해서 그런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단명료했다. 선입견을 갖고 있던 기자들이 모두 놀라며 “정 회장 정말 말 잘하네”라고 입을 모았다. 그 날 정 회장의 발언 모습은 세간의 일반적 평가와 매우 달랐다.)

새해 첫 출근일인 지난달 4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2조 근로자들이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고 북구 현대차 명촌 정문으로 들어가고 있다./뉴시스

― 정주영 회장의 생활은 어떠했나?

 

“정 회장이 1992년에 국민당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서울 청운동 자택을 기자들에게 개방한 적이 있다. 새벽 4시에 아들들과 며느리들이 청운동 자택에 모였다. 4시 30분에서 5시 사이에 2층 식당 테이블에서 정 회장이 아들들과 같이 밥을 먹었는데 별로 말이 없었다. 이야기가 있어도 주로 정 회장이 했고 자식들은 한 두마디 하는 정도였다. 아버지의 권위에 지식들은 고개를 못드는 분위기였다. 그 날은 다섯째 아들인 정몽헌 당시 현대전자 회장이 ‘(국민당) 대표님, 9시 뉴스 봤더니 헤어스타일이 약간 이상했습니다’라는 이야기 한마디 했다. 정주영 회장은 성질이 급해서 그런지 밥도 10여분만에 후닥닥 다 먹었다.”

 

창업자 교훈 ② 이병철 : 철저한 사업가 정신과 미래 예측

 

― 두번째 창업자 사례를 꼽는다면?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는 못만나봤지만 꼽지 않을 수 없다. 이 회장은 사업이 된다고 판단하면 철저하게 해서 이뤄낸 사람이다. 예를 들어 자기 사돈이었던 LG그룹이 전자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전자사업이 향후 유망업종이라고 판단되자 뛰어들어 경쟁을 했다. 그만큼 사업가 정신이 철두철미했다. 대기업 창업가들 가운데 사업가 정신이 가장 철저했던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오늘의 삼성그룹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회장은 삼성그룹을 쪼깨서 자녀들에게 나눠주는 대신, 셋째 아들인 이건희 회장에게 모두 물려주는 방식으로 그룹을 유지시켰다. 그의 사후에 이건희 회장이 제일제당은 큰 형, 제일합섬은 둘째 형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제일모직을 가졌다. 큰 누나에게는 전주제지, 막내 여동생에게는 신세계 백화점을 줬다.”